제목: 염려의 덫 // 본문 빌립보서4:6- 7 절 // 26년 6월 14일 // 찬송 : 486 337
중국 기(杞)나라에 살고 있던 사람이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있습니다. 곡기를 끊어 버린 이유는 ‘하늘이 무너지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염려,불안때문이 었습니다. 이를 딱하게 여긴 사람이 말했습니다. “이 사람아, 어찌 하늘이 무너져 내리겠는가.” 절대 그럴이이 없네 그러자 그 사람은 또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땅이 무너질 수 있는 것 아니오. 땅이 무너지면 우리는 다 끝나는 것이오.” 불안,걱정이 되서 갇혀삽니다. 그래서 고사성어로 만들어졌는데 기인지우(杞人之憂), 줄여서 기우(杞憂)라고 합니다.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일어날 가망성이 없다. 걱정도 기우에 불과한데 염려,걱정근심의 덫에 걸려서 누리지못하고 살아갑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하나님이 지키신다. 함께하신다
백팔번뇌는 몸과 마음을 괴롭히고 어지럽게하는 번뇌를 108가지로 나눕니다. 번뇌 염려 근심을 없애고 무념무상으로 살기위애 삼배 백팔배 3천배를 하면 없어지는가? 멍때리기대회 90분 –평온한 심박수를 유지해야한다. 사람들은 염려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108배는 108가지의 번뇌를 없애기위해 합니다. 염불은 무념무상 잡념을 지우는 것입니다. 집착과 고통의 연결고리를 끊으려고 마음수련을 합니다. 마음 내려놓기, 마음 다스리기를 하려고 아무리 노력해 보아도 현실은 더 악화됩니다.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안 됩니다.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분노가 통제가 안 되는 것입니다. 불안이 조절이 안 됩니다. 염려는 염려로 끝나지 않습니다. 염려는 일어날지도 모를 ,기우에 그칠 막연한 불안감이 염려를 만들어냅니다. 염려의 덫에 걸리면 꼼짝 못 합니다. 본능적으로 염려의 늪에 빠져 살아갑니다. 왜 이 늪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생각이 너무많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줄줄이 사탕처럼 엮어서 만들어냅니다. 더 깊은 늪속으로 들어갑니다. 실타래처럼 얽힌 근심들은 사람의 뼈를 마르게합니다. 심령을 상하게만듭니다. 시31:9 내가 근심때문에 눈과 영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 나의 연수를 탄식으로 보내며 기력이 약하여지고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
염려는 “여러방향으로 이끌리다”이란 뜻입니다. '찢어진다'는 뜻입니다. 염려는 단순한 걱정이 아니라 마음이 여러 갈래로 찢어져서 집중하지 못하는 영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마음이 찢어지면 작은 일에도 힘들어하고, 아무것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게 됩니다. 소망은 한 쪽 방향을 향해서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 두려움은 정반대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염려한다는 것은 한 쪽으로 가지 않고 이곳 저곳 양쪽으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이쪽이냐 저쪽이냐? 이것이냐 저것이냐? 염려의 가장 치명적인 이유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지 못하는 불신때문입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 믿음이 적은자들아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잔잔하게 하십니다. 믿음이 없는 자들아.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은자들아.....
“걱정하다”(worry)의 어원은 목을 죄이다. 교살하다“'(to strangle'), 는 뜻입니다.“ 염려는 영적인 숨통을 조이고 마음을 둔하게 만들어 정상생활을 못하도록 가로막는 장애물입니다. 암막커튼처럼 말씀과 은혜를 막아버립니다. 복음의 빛을 가려버립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근심은 후회할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하는 회개를 이루는것이요 세상근심은 사망을이루는것이니라”(고린도후서7:10) 하나님께서 하게하는 근심은 자신의 무능과부족함을 깨닫게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게됩니다. 더욱의지하게됩니다. 회개하고 구원에 이르게합니다. 세상근심은 염려하다가 망하는 것입니다. 욕심에 의해 만들어진것이기때문입니다. 세상근심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가룟유다는 물질에 눈이 멀어서 예수님을 배신합니다. 가까이서 말씀도 듣고 기적도보았습니다. 그런데 마음은 멀리있었습니다. 물질에 관심입니다. 입술로는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유다는 돈궤를 맡으면서 욕심에 붙잡혔습니다.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그들이 은 30을 달아주거늘....죄책감으로 근심에 사로잡혀 사망합니다. 죄책감은 나를 무너뜨리고 회개는 하나님께 돌아가게 만듭니다.
사실 염려 걱정에 싸여보면 숨통을 죄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심장이 뛰고 가슴이 답답해집다. 염려와 근심에 눌려살면 두통, 편도선염, 위궤양, 요통들이 생겨납니다. 또 걱정은 사고 기능을 자극하고 소화기를 자극하여 위장장애를 달고 삽니다. 근육운동의 조정 기능까지도 영향을 미쳐서 맥이빠지게 만들어버립니다. 기가빠지게합니다. 신이나게! 흥이나게 ! 활력있게! 생동감있게 살아야하는데 축쳐져있습니다. 기가빠지는 이유는 지나친 걱정, 지나친 욕심, 지나친 경쟁심, 지나친 감정소모, 지나친 생각입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밤에도 쉬지못함 : 2장23.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 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밤에도 쉬지 않으니 삶이 방전됩니다. 고갈되어 늘 목이 마릅니다.
멜라토닌이 분비되어 졸음을 유도하고 ,깊은 수면을 통해 수면을 유도하여 활기가 차야 되는데 스마트폰,모니터에서 나오는 불루라이트가 멜라토닌 분비를 감소시켜 만성피로증가하게 한다. 보약 10-11시에 잠들면 12시부터 멜라토닌 생성... 밤에도 숙면을 취하지 못하면 지친다.
걱정은 기쁨을 훔쳐가는 가장 큰 도둑입니다. 평생 감사로, 기쁨으로 내잔이 넘치나이다 고백하며 사는 인생이 최고의 복입니다. 영생을 얻은 곳에는 기쁨이있습니다. 생명나무와 함께 사람을 두신곳이 에덴곧 기쁨의 동산입니다. 주께서 내안에 두신 기쁨은 곡식과 포도주가 풍성할때보다 더합니다. 비교가 안됩니다. 내안에 있는 기쁨, 나를 선택하신 기쁨, 구원의 기쁨.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기쁨입니다. 다윗의 이 고백은 압살롬의 반역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남은것은 벌망밖에 없는데도 추수때보다 더 기쁘다고 고백합니다. 평안히 눕고 평안히 자겠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안전하게 지키실 것을 믿기때문입니다. 기도함으로 보호하고 너를 인도하겠다는 약속을 받음으로 기가막힌 기쁨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렘29장11절에“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염려하는 생활은 우리를 행복하게 살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염려하는 생활은 우리에게서 활기를 빼앗아 가 버립니다. 기운빠지게만듭니다. 맥이 빠집니다. 적재한계선을 넘으면 배가 침몰하듯이 근심과 염려에 눌리면 견디다못해 무너집니다. 무거운짐을 나홀로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와라, 내려놔라. 맡겨라 짐은 쉽고 가벼워질것이다. 마음이 쉼을 얻을 것이다. 쉰다. 새롭게한다. 다시 살린다. 해방시킨다. 너의 행사를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네 길을 맡기라 그를 의지하며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리라. 염려의 올가미를 끊어버리는 것은 맡기는것이다. 이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죽을 일쌓였구나... 참 쉬는 날 없었구나... [묘지에 가면 끝] 만족하고 살면 이미 부자입니다. 하박국의 만족입니다. 인생이 날마다 소풍이요 휴가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배우라. 온유와 겸손을 배우라. 가는 길이 쉬어진다. 목적지까지 가는데 차가 막힙니다. 조마조마 추월, 속도,끼어들기, 급제동.... 투덜대며 갈것
사람들은 예외없이 염려, 걱정, 불안, 두려움 등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욥기 5:7"사람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꽃이 위로 날아가는 것 같으니라.“ 죄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여자에게“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라”,남자에게는“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 그 소산을 먹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쉼을 잃어버린 인간에게 하나님께서는 안식을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가는 사람? 창8: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성경에는 근심을 2가지로 나눕니다. 하나님뜻대로 하는 근심과 세상근심입니다 . 그런데 세상근심은 영혼을 병들게합니다. 그 염려의 뿌리는 결국 자신에 대한 염려입니다.
염려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작년에 하던 염려가 새해가 되어도 따라옵니다. 염려 이월입니다. 염려는 연말 정산이 안 됩니다. 아무리 염려하지 않으려고 해도 자리잡고 떠나지 않습니다. 어떻게하면 염려,근심이라는 덫에서 벗어날수있을까?
본문에서 말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강력한 금지 명령이요 충고입니다. 염려를 허용하지 말고 지금 당장 중단하라. 명령이다. 중단하라. 스톱하라. 멈춰라. 단추를 누르라. 염려의 싹을 완전히 잘라버려라. 염려를 붙들고 키우지 말라. 기우에 불과하다. 염불은 기도가 아니다. 잡생각을 없애고 무념무상의 마음을 만든다고한다. 나미아미타불[몸과마음맡깁니다] 관세음보살[ 마음의 안정, 고통해소] 염려가 사라지는가?
⚑머리에 새가 똥을 싸고 지푸라기를 얹어서 집을 짓고 살려고 하면 즉시 털어버립니다. 사탄은 근심과 걱정은 마귀가 덫,올가미를 씌우는 것입니다. 염려로 묶어서 은혜를 누리지 못하게합니다. 평안을 무너뜨립니다. 평강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 말입니다 .의식주에 마음 빼앗기면 주님을 모실 공간이 없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마6:27). 염려가 가장 쓸데없는 것,기우에 불과하다. 더큰 덩어리를 만들어냅니다. 어리석은 부자처럼 더 가지려는 탐욕, 그리고 이미 가진적을 잃을까봐 염려하는것이다. 2개의 영적 암덩어리는 탐욕과 염려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마6:31). 탐욕과 염려의 덫을 놓고 걸려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6:34). 공중의 새도 둥지하나로 만족합니다. 여우도 굴이 불안하여 비상시대비 하나더 가지지 않습니다. 다람쥐도 겨울음식 2년치를 준비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탐심때문입니다. 눅 12: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벧전 5:7 중단하고 맡기라. 염려를 기도로 바꾸라. 맡기는 순간 내 문제는 하나님의 문제가 됩니다.
땅의 것을 추구하면 염려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 더 편안하게 살고 싶은 욕구 등에 시달립니다. 땅의 것을 추구하는 순간 마음속에 전쟁이 벌어집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6) 아멘! 주님은 다른 것을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관심의 이동이 필요합니다.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관심,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고후7:10 .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와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는 대조를 이룹니다. 핵심적인 키워드는 ‘염려’와 ‘기도’입니다. “염려할 것인가, 기도할 것인가?” “문제를 내가 쥐고 있을 것인가, 하나님께 맡길 것인가?” “염려의 짐을 내가 들고 다닐 것인가, 하나님께 맡길 것인가?” “염려를 상대할 것인가, 하나님과 상대할 것인가?” ‘염려’와 ‘기도’는 모두 집중하는 일입니다. 염려는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고 기도는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와 간구를 하라고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5:7). 염려를 주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염려는 언제 일어납니까? 내가 맡아서 해결하려고 할 때 입니다. 책임감이 너무 강한 사람이 있습니다. 기도를 왜 합니까? 내가 할 수 있으면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할 수 없기에” “하나님께 맡깁니다” “믿음”은 “맡긴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맡긴다는 것은 인격적인 신뢰를 말합니다. 믿음은 신뢰를 통해서 드러납니다. 신뢰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는가는 무엇으로 증명합니까? 무거운 짐을 얼마나 맡겼는가를 보면 압니다. 다 맡겼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염려하고 있다면 맡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맡겼다면 염려를 하지 않아야 합니다. 대게 기도는 짧게 하고 염려는 길게 한다. 언제까지 기도해야 합니까? 염려가 떠나갈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내안의 분노가 하나님의 긍휼로 바뀔때까지.. 질병의 공포가 평강으로 덮일때까지입니다. 기도가 깊어지면 염려가 자리할 곳이 없어집니다. 기도하기 전에는 염려가 마음의 중심에 자리 잡았습니다. 그야말로 “염려 덫,올무”에 걸려서 포로가 되었습니다. 기도가 같이 깊어지면서 염려의 덫이 없어집니다. “염려 아웃”입니다. 올가미가 사라집니다. 처음부터 염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씨름하는 과정이 분명히 있습니다. 기도가 깊어지면서 신기한 일이 일어납니다. 염려 암덩어리가 점점 작아지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그 문제가 나를 덮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기도가 깊어지면서 문제가 내 손에 잡힙니다. 문제가 작아진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내 믿음이 커진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왜 기도하라고 하는가? 기도를 해야 믿음이 자랍니다. 믿음이 자라면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깊어집니다. 신뢰가 깊어질수록 하나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그때부터 기도는 바뀝니다. 기도하다 보면 기도하는 사람이 바뀝니다. 최고의 응답입니다. 내가 바뀝니다. 내가 바뀌면 나에게 일어난 일을 다르게 바라보게 됩니다. 전에는 힘든 문제가 나를 불행하게 하고, 나를 망하게 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기도를 하면서 믿음이 자라게 되고 어느 순간부터 다르게 보이는 것입니다. 걱정거리가 감사할 거리로 바뀝니다. 문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보입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기도는 계속 변합니다. 처음은 기도와 간구였습니다. 문제를 아뢰고 구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가 깊어지면 감사로 바뀝니다. 염려거리가 감사 제목으로 바뀝니다. 감사는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만 일어납니다. 그 감사는 깨달음에서 옵니다. 하박국의 감사입니다. 욥의 감사입니다. 사도바울처럼 태장을 죽을만큼맞고 감옥에서 옥살이를 하는데 주안에 기쁨을 누리므로 할렐루야 찬양하고 예배합니다. 환경은 감옥인데 마음은 천국입니다. 이전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나 기도가 계속되는 가운데 문제가 감사로 바뀌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집니다. 그 관계가 깊어지면서 내 믿음이 커지는 것입니다. 7절은 염려에 대한 최종적인 응답입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문제가 해결되거나 염려거리가 없어진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어디를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염려가 일어나는 곳? 근원지! 깨끗이 정리하고 마음과 생각속에 평강으로 채웁니다. 항상 마음과 생각이 문제입니다. 삶이 왜 힘듭니까? 돈이 없어서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과 생각을 내가 통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안 됩니다. 내 마음대로 안 되니까 힘든 것입니다. 근심 염려,걱정의 올무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안됩니다. 왜 기도합니까? 기도할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염려를 이기는 힘은 하나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했습니다. 염려와 걱정의 근원지인 마음을 평강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염려를 없애 주겠다 하지 않았습니다. 염려거리는 죽을때까지 일어납니다. 염려거리 해결하고 나면 또 다른 염려거리가 생깁니다.
임신이 잘 안되어서 염려합니다. 감사하게도 아이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염려가 생깁니다. 출산할 때까지, 건강한 아이가 건강해야하는데 걱정합니다. 그러면 염려졸업입니까? 커가는 동안 학업 문제, 친구 문제, 진로 문제 등으로 계속 염려합니다. 재정 문제에 시달리다가 해결된 듯하면 건강에 문제가 생깁니다. 건강이 좀 괜찮아지면 부모님 문제, 자녀 문제가 생깁니다. 가정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회사에서 문제가 터집니다. 염려걱정거리는 신기합니다. 마치 기다리고 있는 듯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문제 해결이 전부가 아닙니다. 지상의 삶은 끝없는 문제의 연속입니다. 무덤에 가야 끝이 납니다. 염려에 시달리다 보면 마음과 생각이 너덜너덜해집니다. 마음이 지칩니다. 병이 듭니다. 밀려오는 문제들로 인해 내 마음과 생각이 견뎌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맡기고 기도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다” 약속하셨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만한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당시 빌립보에는 엄청난 군사력을 갖춘 로마의 주둔군들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강력한 로마의 군대가 보호해 주고 있었기 때문에 빌립보 시민들이 평안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 마음과 생각 안에 평강의 왕과 그 휘하 부대가 들어와서 주둔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왜 6절의 시작에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를 언급했는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슨 재주로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평강의 주둔군이 나를 지키시면 우리 마음 안에 어떤 염려도 파고들어 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평강의 강력한 주둔군이 없다면 어떻게 됩니까? 외세의 공격에 대책 없이 당하고 무너져 버릴 것입니다. 염려,근심의 화살을 막아내지 못하고 올무에 걸려서 포로로 살아갑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빼앗기고 삶은 비참해집니다. 수시로 내 마음과 생각을 강도에게 탈취당했습니다. 생활의 염려,근심,걱정 강도떼들이 아예 마음과 생각을 점령해버립니다. 사탄의 공격무기가 생활의 염려와 근심의 올가미를 던져서 덫에 걸려들면 늪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노예로 살아갑니다. 생활의 염려로 영적인 감각을 마비시켜버립니다. 올가미, 덫.,함정.올무. 새나 짐승을 잡기위해 쳐놓은 것처럼 사탄은 염려거리를 던져주고 올가미애 걸려들게합니다. 무차별 공격한다. 이전의 삶에는 마음과 생각을 지켜줄 방어막이 없었습니다. 너무도 허술한 울타리만 쳐져이었습니다. 사탄은 걱정,염려의 불화살로 공격합니다. 이제는 방어무기가 있습니다. 사용하시면 됩니다. 맡기라. 기도하라. 그러면 평강의 마음을 지키리라. 유지하리라.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잠28:28). 염려,근심거리가 내 마음의 운동장에서 놀개하면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무너지게합니다. 마음의 성벽이 무너지면 대책이 없습니다. 온갖 염려와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리면서 불안속에 살아갑니다. 마음과 생각에 구멍이 뚫려버렸습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놀라운 비밀을 알려줍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의 평강이라는 성벽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고 초청하십니다. 여호와의 성벽은 철옹성입니다. 누구도 뚫지 못합니다. 지속적인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내가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갑니다. 나와 동행하시고 모든 염려아시니 나는 숲의 새와 같이 기쁘다. 내가 기쁜 맘으로 ......... 평강의 주둔군이 계시면 최상의 퀄리티를 제공합니다. 일시적인 마음의 위안이나 평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십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어떤 것입니까? 그 평강은 절대 흔들리지 않습니다.하나님의 평강은 누구도 깨뜨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문제로부터 초월해 계시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보호하십니다. 염려를 우리의 힘으로는 못 이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평강을 주시면 넉넉히 이깁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빌립보서는 기쁨의 서신입니다. 염려가 무엇입니까? 기쁨을 빼앗긴 상태입니다. 항상 기뻐하는 삶은 염려를 극복한 삶입니다. 여기에서 기쁨은 깊은 곳으로부터 나오는 기쁨입니다. 이것은 주 안에서 주는 기쁨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라고 했습니다. 기쁨과 평강은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성경은 모호한 약속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선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평강의 하나님만이 우리의 답입니다. 염려 없는 삶은 어떤 방법이나 환경의 문제가 아닙니다. 평강의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 됩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평강을 누려야 합니다. 복중의 복은 평강의 복입니다. 아무리 모든 것을 가지고 있어도 ‘샬롬’, 평강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평강을 누리는 것은 신자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이고 특권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평강은 사명입니다. 평강을 세상에 흘려보내야 합니다. 세상이 이렇게 혼란하고 복잡한 이유는 세상의 평화가 어떤 것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평화를 모르는데 어떻게 세상을 평화롭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다 될 줄 알았습니다. 고통은 물질의 문제 때문만이 아닙니다. 인간의 마음이 병들면 세상은 전쟁터가 됩니다. 관계들이 다 깨어졌습니다. 서로가 적이 되어 싸웁니다. 분노로 가득한 세상, 위기의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에서 샬롬이 완성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샬롬의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염려 가득한 세상 속에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먼저 평화를 누리고 평강의 마음을 주위로 흘러 보내야합니다. 매일의 삶 속에 끊임없이 염려할 것들이 밀려올 것입니다. 그럴 때 기도와 간구로 지속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관건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여러분들의 마음과 생각을 덮어주시고 지켜주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누리는 그 샬롬을 세상 가운데로 흘려보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