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 그 색채의 오묘함을 위하여
알파화학공업사가 설립된 것은 1962년도의 일이다. 그로부터 3년이 흐른 1965년도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알파에서 생산된 포스타칼라 및 수채화물감을 시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국산 물감이 없었다.
“전문가용은 물론 학생들이 쓰는 물감조차 전무하던 때 학생들의 손에나마 외제가 아닌 자랑스러운 한국의 미술재료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설립자 전영탁 회장의 말이다. 그로부터 또 4년이 경과한 1969년도에는 국내 최초로 전문가용 포스칼라인 『알파700』를 개발하여 시판하게 된다. 700라는 숫자는 700번의 실험 끝에 제품이 탄생했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붙여진 것이다.
1981년도에는 아크릭칼라를 세계에서 6번째로 개발하는데 성공했고, 1985년도에는 디자인 재료인 『알파 마카펜 128색』을 내놓으므로써 알파는 우리나라가 더 이상 그림물감 분야에 있어서 후진국이 아니라는 것을 과시한다.
알파화학공업사를 알파색채(주)로 바꾼 것은 1988년도의 일이며, 이때부터 보다 좋은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본격적인 노력이 경주되었고, 그 결과 1991년도에는 전문가용 신제품인 『알파-플러스』를, 2000년도에는 전문가용 『솔거 수채화물감 48색』과 전문가용 『체향 동양화채색 24색』 등을 잇달아 출시, 우리나라가 물감 분야에서 후진국을 탈피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선진국에 진입했음을 대내외에 널리 알리게 된다.
현재 알파색채(주)에서는 아시아 중동국가를 위시하여 전 세계 50여 개국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알파나 색채 선진국인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독일같은 나라의 화사나 원료는 모두 똑같은 것을 사용한다. 원료를 생산하는 공정이 까다롭고 복잡하기 때문에 어느 나라에도 원료에서부터 완제품까지를 생산하는 색채회사는 없다. 모두 원료는 원료만을 생산하는 회사에서 사다가 쓰기 때문에 물감의 질은 원료 가공 공정에서 결판난다. 알파색채(주)에서는 생산 공정을 컴퓨터가 제어하는 초현대식으로 교체하는데 막대한 자본을 투자했다. 기계 설비가 외국 경쟁업체들과 비교해서 뒤지지 않으며, 좋은 물감을 만들어 내겠다는 실험실의 열기 또한 그러니 알파색채(주)에서 생산해 내는 제품이 다른 나라의 것과 비교할 때 떨어질 까닭이 없다. 그 중심에 창업자 전영탁 회장이 있다. 1919년생이니까 아흔이 다 돼 가는데, 아직도 건강하다. 자신이 건강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하여 간략하게 언급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고향이 함경도 영흥이다. 영흥은 조선 태조 이성계를 배출한 고장으로 일찍이 외세가 드세게 몰아치던 곳이다. 일본과 중국과 러시아가 각축을 벌이는 가운데 거기서 살아남으려는 방편으로 부친께서는 미국인 선교사들이 가지고 온 기독 신앙을 받아들였고, 그렇게 되자 가족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지 않았다면 살아남기 힘들었을 일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해방과 6.25전쟁을 겪으면서도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은혜를 받은 것이고, 말씀에 따라 수순하게 사니 더 많은 은혜를 받았다. 술 담배를 평생 입에 대본 적이 없으니까, 간도 좋고 위장도 튼튼하고 뇌세포도 멀쩡하여 치매 걱정도 없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는데, 그 중에서도 슬하에 둔 2남 2녀가 훌륭하게 자라준 것이 가장 큰 은혜를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장남은 프랑스에서 공학박사학위를 받은 다음 홍익대학 교수로 있고, 둘째 아들은 알파색채(주)의 부사장이다. 큰 딸은 동양화가이고, 디자인을 전공한 둘째 딸은 미국에 살고 있다. 국민대학 교수인 큰사위는 텍사스 공과대학에서 유기화학을 전공한 이학박사다. 공학박사인 장남과 이학박사인 큰사위가 많은 도움이 돼 주었지만 알파색채(주)가 오늘날과 같은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창업자의 집념이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
일본이 우리보다 색체공학이 앞서 있었다. 전영탁 회장은 물감을 만들겠다고 결심한 후, 제일 먼저 일본의 책들을 구입해 가지고 모조리 독파해 나갔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일본식 교육을 받은 것이 도움이 되었다. 일본의 중앙대학교를 졸업한 후 해방 전에 잠깐 고향의 여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것을 제외하면, 색에 미쳐 숱한 밤을 연구실에서 지새웠다. 700번의 연구 끝에 『알파700』를 출시했다는 것이 그 반증이 될 것이다.
전영탁 회장은 오로지 연구에 전념하였고, 회사 경영은 아내가 맡았다. 현재도 알파색채(주)의 대표이사는 아내인 남궁요숙 씨다. 회사의 재정 상태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일본 책을 구해서 읽으며 연구를 시작했는데, 이제는 일제 물감을 능가하는 제품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는 것, 그것만이 자랑일 뿐이다.
“이제 우리 알파 제품은 일제에 절대 뒤지지 않습니다.”뿐만이 아니다. 구미 색채 선진국들은 우리보다 대강 200년 정도 앞서서 제품을 생산해 내기 시작했었다. 그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제품이 알파에서 생산되고 있다. 알파색채(주)가 있기 때문에 화가 지망생이나 화가들이 이제 더 이상 비싼 돈을 주고 수입품을 사서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정부는 반세기만에 알파, 색채 그 오묘함을 위하여 평생을 받친 전영탁 회장에게 2001년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여했다. <알파색체(주) 02-385-008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