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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茶) 공부 방

[스크랩] 여연스님의 차와 선 (9)

작성자설옥|작성시간10.03.10|조회수15 목록 댓글 0
제목 : 여연스님의 차와선-고려시대의 차문화4

"맑고 절절히 구르는 거문고 소리 창망한 칼기운 적막하다/매화 붉은 꽃망
우리엔 한 밤중에 눈이 내렸고/달빛은 침상 위 책에 내린다/사윈 불에 차는
더디 끓고/엷은 향기는 데운 술에 남았구나/쇠잔한 등불은 낡은 벽에 아른
거렸는데/아슴프레한 새벽빛 천천히 밝아온다."

겨울밤 책을 읽으며(冬夜讀書)라는 詩로써 조선의 사대부집 여인이 그야말
로 눈처럼 맑고 투명한 맛이 깃든다.소복 소복 매화나무 꽃가지에 눈이 내
리는 늦은 겨울밤 사이어가는 화로불에 차끓는 소리, 바람 속 차 향기가 술
잔에 녹아나는 따뜻한 여인의 閨房, 상상만 해도 아련한 꿈에 취하게 한다.

八關齋에 이어 燃燈會는 고려 불교와 차와 국가 정책과 잘 어울러진 文化
행사였다. 고려는 太祖때부터 訓要十條를 국가정책으로 이념化하여 숭불 정
치 이념의 토대를 굳건히 하였던 것이다.

이런 유례로 신라시대부터 내려온 것을 더욱 세련되게 가미 연출한 것으로
부처님의 공덕을 기리며 부처님께 일반 백성들이 국가와 왕실의 태평을 기
원하는 행사였다. 2月에 치루어지다가 의종때부터 정월 보름에 행해졌다. 조
선시대 초기까지 4月8日에 지냈다.

그 행사의 내용은 왕궁에서 백성의 마을 구석구석에 이르기까지 등불(연등
물고기 날짐승 등 고려시대 생활文化의 갖가 지 紋樣)을 밝히고 임금을 비
롯하여 민중 전체가 술과 음악 가무로 一心同體 하여 즐기며 차를 마시는
민족의 대축제였던 셈이다.

전날인 小會日에는 왕과 여러 신하가 奉恩寺에 가서 왕이 福酒를 飮福하였
으며 大會日에는 왕에게 차를 올리고 신하들에게 차를 하사했으며 이어 술
과 식사를 하였고 신하들이 왕에게 꽃과 술을 올리고 다시 왕은 신하들에게
꽃과 술을 하례하는 의례가 뒤따랐다는 기록이 "고려사 2, 3권 禮記"인 上元
燃燈會儀편에 보인다.

고려시대 차행사에 중요한 것으로 왕궁에서 임금이 부처 님전에 齋를 올리
는 功德齋가 있었는데 이 儀式은 현세의 念願을 실현하려는 다시말해 임금
이 나라를 평화롭게 백성의 따뜻한 삶을 꾸려 주십사 부처님께 차을 올리고
비는 것이다.이 齋때에 불전에 쓰는 茶는 임금이 직접 차맷돌에 갈았었는데
團茶라고 하는 떡차를 <오늘날 일본의 차會때 쓰여지는 가루차(抹茶)> 즉
분말 차인 셈이다.

고려6대 성종년간에 공덕제를 지내기 위해 성종이 손수 차맷돌에 차가루
내는 것을 보고는 최승로(927-989)라는 학자가 상소문을 올린 문헌 "왕께서
功德齋를 올리기 위하여 손수 차를 갈거나 체질을 한다 하옵는데 聖體 (왕
의 몸)에 지나친 무리가 될까 신(臣)은 안타깝습니다"을 보면 그당시차 례공
양이 실로 얼마나 뜻 깊었음을 알 수 있으리라.

숙종4년(1099)에는 왕이 왕비, 원자, 신하들을 거느리고 삼각산 僧伽寺에
행차하여 차를 올리며 齋를 지냈으며 1104년에는 崔謂에게 임금의 옷과 차,
향을 보내 비가 내리도록 비 는 祈雨齋를 삼각산에서 지내기도 했었다.
오늘날 불교에서 행하고 있는 수륙제, 즉 바다와 땅에 있는 외로운 영혼과
귀신 떠도는 亡魂을 위해 올릴 때도 차와 과자(다식)을 썼으며 조선조 초기
때까지 이런 풍속이 내려왔던 것이다.

차례로써 모든 국가의 행사 가정의 齋禮는 말할것도 없이 冠禮, 婚禮, 喪
禮를 치렀던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앞서 말한 왕이 죄인의 斬刑을 결정하
기전 차를 마셨다는 重刑, 奏對儀의 의식을 살펴보면 茶房 참성원이 夾戶
(한 집에서 차를 끓여내는 등의 일을 하도록 만든 집채)로 부터 차를 들고
들어오면 다시 칠품원이 뚜껑을 벗기고 執禮가 殿閣에 올라가 기둥 밖에서
절한 후 차를 전하고 놓은 뒤 내려가고

다음에 院房의 8품 이하가 宰樞(재상)에게 차를 올리며 집례가 내시 殿閣
에 올라가 엎드려 차를 내어갈 것을 청한 다음 단필주 재원(丹筆奏戴員)이
들어와 아뢰기를 "붉은 글을 쓰는 붓으로 참형을 결정하시되 有人雁에 들어
갈자를 제외하소서"라고 아뢴다.

이때 왕에게 進茶할 뿐 아니라 신하들에게도 차를 내게 해 차를 함께 마시
면서 여유롭게 신중하고 정의로운 의견을 교환했었다. 이러한 의례는 법을
다루는 사헌부에서 茶時에 다례를 의식하는 것과 같았다. 天上天下 至高한
임금이 죄인에게 공정함을 잃지 않기 위해 차를 마시고 맑은 정신으로 대했
다는 고려의 역사를 되돌아 보면서 오늘의 우리는 무슨 성찰을 가져야 할
까.

맑고 투명한 사회, 삶의 질을 높이고 정의로운 사회는 고사하고 평온한 한
잔의 차, 따뜻한 겨울을 다같이 지내는 소외가 없는 땅에서 피는 매화 한송
이 맞이 할 수 있었으면…


자료출처 : 한국차문화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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