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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茶) 공부 방

[스크랩] 여연스님의 차와 선 (10)

작성자설옥|작성시간10.03.10|조회수13 목록 댓글 0
제목 : 여연스님의 차와 선-고려시대의 차문화 5

겨울 裸木 위에 꽃피는 눈송이, 그 속으로 한두송이 불타는 붉은 동백꽃,
山房은 죽음처럼 적막하다.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피고 홍염의 숯불을 놋쇠화
로에 담아 찻물을 끓이는 一枝庵의 겨울 저녁,

이 寂靜의 고요가 온 생의 둘레로 감돈다면 아마도 어둔 생명의 迷惑이 한
꼬뚜리로 열리는 것이 아닐까. 어이차 망상의 사윈 불꽃들을 화로 불에 쏟
아 붓고 빈 뜨락에 나서면 잉크색 하늘 위로 듬벙 은하수가 사무치도록 청
징하고 청정하다.

"우뚝 솟은 바위 무더기 몇발인지 알까마는/위에 있는 숲은 누대 하늘끝에
잇닿았네/북두로 퍼낸 은하수로 밤차를 달이니/차 연기는(茶煙)는 달속 계수
나무를 싸늘하게 닫아 건다네"
저 아득히 멀고 높아 우러러 우러르는 진각국사(고려)의 茶心이 미련한 내
마음에도 얹혀진다.북두칠성으로 은하수의 물을 길러다가 차를 달이고, 차
달이는 연기는(茶煙) 다시 달속에 있는 계수나무를 가리운다 하였으니 이것
이 무슨 꿈결 속의 운치인가. 어쨌든 우리의 옛 先人들은 생을 꿈꾸듯 산것
같다.

고려 차문화의 족적을 얼핏 살펴 보았지만 그 사회생활 문화 속에 차가 차
지하는 의미가 얼마나 깊고 넓은 삶의 中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리라
.정월 초하루날 대설에서 조회(元會儀)를 할 때에도 임금과 신하가 함께 차
를 마셨으며 외국의 사신들과도 더불어 茶宴을 베풀었다.

사신맛이 다례에서는 중국 쪽의 왕의 詔勅(조칙:왕의 문서)을 가져온 사
신에게는 進茶 의례를 갖추었고 왕의 문서를 갖고 오지 않은 사신에게는 設
茶(차만 베풀고)만 하고 간단한 예를 갖추며 객관으로 모셨다.

왕실에서는 太后나 왕태자의 책봉, 왕자나 王妃의 책봉과 元子 탄생축하
왕태자의 생일 축하 의례시에 진다하였으며 공주가 시집갈 때에도 차를 베
풀었다는 기록이 고려사禮편 제65권 冊太后儀, 冊王子 王妃儀, 제21권 禮9편
公主下嫁儀에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고려시대에 이처럼 성행했던 차의식을 외국사람인 송나라 사신으로 1123년
에(송도를 다녀감) 서긍은 고려의 차와 문물을 宣畵奉使高麗圖經에 자세히
남겼는데 당시 귀족들의 차 생활과 당시 차를 어떻게 끓였는가(點茶)를 짐
작 할 수 있으리라.

"대개 宴會가 있으면 朝廷 안에서 차를 끓이는데 연꽃 모양의 은 뚜껑으로
덮어서 천천히 걸어와 차를 올리며, 후찬사(진행하는 집례)가 "차를 다 올렸
습니다"라고 말하기를 기다린 뒤에야 마시니 차가 식어서 냉차가 되어 마시
게 된다.

그런데 관사 안에는 홍색의 낮은 차상(茶俎)을 두어 다구를 진열하고 붉은
비단 보자기를 덮었다. 항상 하루에 세 번 차를 베푸는데 계속해서 湯(다탕
)을 주었다. 고려인들은 탕을 藥이라고 했다.
사신이 매번 줄 때마다 다 마시는 것을 보면 몹시 기뻐했다. 어쩌다 다마
시지 못할 때면 못마땅하게 여긴다고 생각하고 언짢은 표정으로 가버렸다.
그래서 식은차가 내키지 않지만 억지로라도 마시려고 했다" 이처럼 서긍이
남긴 문헌을 살펴보면 고려의 차는 상당히 딱딱한 격식과 음다풍습을 알 수
있으며 관사(객관)에서조차 다도구를 진열에 둔 茶藏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行茶儀禮나 차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던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앞장의 여러 문헌을 토대로 일반 백성들이 차생활의 여유를 즐기
며 茶店에서 돈이나 베를 주고 차를 마셨던 생활문화사를 보더라도 차가 얼
마나 높고 고상한 격조높은 예의로써 뿌리 내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리라
.
더구나 왕이 전사한 병사의 처자에게도 차를 내렸고 여성들도 자유로이 茶
店이나 茶房에 나가 차를 마시며 대화하고 함께 즐겼던 것이다.음다 풍습
뿐만 아니라 이 시대에는 남녀가 평등하며 이혼이 자유로웠고 자유연예도
하였으며 혼인과 복장도 공경대부의 처나 기생의 복색의 차이가 없었다는
복식사 연구가들의 전적을 보면 고려文化가 남녀 구별 신분의 제약이 없었
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불교가 지닌 문화의 가치, 정신의 자유를 조선 왕조시대의 외래정
치 이념은 성리학이나 주자학으로 인해 폐쇄한 역사의 퇴보를 낳게 되었던
것이다.


자료출처 : 한국차문화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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