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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茶) 공부 방

[스크랩] 여연스님의 차와 선 (11)

작성자설옥|작성시간10.03.10|조회수27 목록 댓글 0
제목 : 여연스님의 차와선 - 고려시대의 차문화 6

"나라의 은혜에 몸 바치지 못한 늙은 서생이/차마시는 일로 세상일을 잊는
구나./눈보라 휘날리는 깊은 밤에 서실에 홀로 누워/돌솥의 솔바람소리 즐기
어 듣네"

이씨 왕조의 쿠테타를 용납하지 않고 결국 죽음의 길을 선택한 고려의 충
신 정몽주가 읊은 茶詩다. 깊은 겨울밤 나라를 잃은 서러움의 수심에 잠긴
체 돌솥에 물이 끓어 오르는 소리는 솔바람 소시로 느끼는 고적한 심사, 그
아픔이 전해온다. 이 시대는 영웅호걸 고려충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온통 나라는 백성의 함성으로 들끓고 있는 대도 민중을 위한다는 선량들은
묵묵부답 재 묻은 제 꼬리 감추기에 바쁘고 한 가닥 상처 만져줘야 할 대통
령이라는 사람 또한 독선으로 앙다문 잇빨뿐 도시 막무가내다. 한파가 추운
게 아니라 세상의 인심이 더욱 옷깃을 여미게 한다. 圃隱의 茶詩를 다시 읽
으며 쓰디 쓴 차 한잔을 들이켜 본다.

고려의 차문화 속에서 水陸齊나 祈雨祭를 절에서 지낼 때 차를 올렸다는
얘기는 앞서 누누히 얘기했고 조선 初 成肝이 쓴 "용재총화"에는 조상의 忘
魂을 기원하는 7月 보름때도 납월 팔일 성도제일 날 부처님 法身을 洗水시
키는 의식 때 또 부처님의 사리를 옮길 때 차와 떡을 올렸었다.

그런 내용으로 함허득통스님께서 진산스님께 드리는 祭文에는 "한 잔의 차
는 한 조각 마음에서 나왔고/한 조각 마음은 한 잔 차 속에 있도다/한 잔
차는 맛보고 나면/무량한 즐거움 일어나리라"하며 제사를 지냈었다.

이런 차의 의식의 여러가지 공덕제 팔관회 연등회등 하물며 기우제때 썼던
그릇들이 고려청자이고 보면 그 당시 그릇들이 얼마나 정교하고 기교높은
운치의 아름다움으로 가득했겠는가.

고려청자의 茶具들은 이웃나라에서도 다투어 수요했고 그 귀속적이고 청순
한 비취색 상감청자는 독특한 불 쬐임으로 도자기의 왕국이라고 할 수 있는
송나라에서도 모방할 수 없는 독창적이었던 것이다.

"고려도경"을 썼던 송의 서긍은 "고려인들은 차 마시기를 매우 좋아하여
다구를 더욱 세심하게 잘 만드는데 금꽃이 있는 검은잔(金花鳥盞) 翡色小甁
은화로 세발차솥(湯鼎)등은 너무나 아름다웠다"라고 적고 있다.

일본의 어느 차인은 "만약 신에게 도달하는 길을 묻는다면 지금 나는 한
마디로 "고려도기를 통하여"라고 대답하겠다"고 하는 감격어린 찬탄을 어느
글에 쓰고 있었다. 이렇게 신비스런 고려청자의 찻잔으로 신선놀이라 할 수
있는 茗戰, 다시말해 송대 명대에 성행했던 차 겨루기를 했다.

절간의 사미승(비구계 구족계를 받기 前) 즉 어린 스님들이 봄날 대숲에서
딴 어린 차잎으로 만든 차(가루차:그때에는 茶乳(다유, 雲乳, 雪乳, 乳花)등
으로 불렸는데 차의 맛을 젖(우유)에 비유했으며 빛깔도 젖이나 구름 눈의
色인 흰색으로 표현했다)를 비취색 청자에 담아 눈송이가 휘날리듯이 點茶
하며 누가 더 차를 잘 달이는 놀이가 많았다는 것을 문헌에서 볼 수 있다.

이 때 사용한 茶乳(다유) 雪乳, 雲乳들의 차는 다름아니라 고급 덩이차로
잎차를 곱게 갈아 체로 쳐서 만든 가루(未茶)차를 끓인 물에 넣어 대젓가락
으로 휘聖어 차사발에 차 거품을 일으켜 마시는 오늘날 일본에서 차례, 차
도에서 쓰여지는 차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말차의 前形인 것이다.

다시 덩이차를 곱게 체로 치고 갈아서(磨)(초의 선사의 다신전에 보이는
것처럼) 가루내어 말차를 만들어 다유로 마시는 乳團茶와 그냥 끓여 맑은
茶湯으로 마시는 餠茶(떡차)로 구분되어졌다.

대개 寒食 전 그리고 禁火前(4월5일무렵)에 움이 튼 어린 차싹을 따서 시
루에 찌고 烟磨해서 덩이로 말린 차를 말한다.이런 유단차의 품질이 고운
것은 御茶라 하여 주로 승려 귀족 궁중에서 왕이 마셨고 국가간의 예물로
쓰여졌다.

고려차(土産茶)의 品平은 우수했으며 그런 차는 腦原茶, 渚黃金主芽, 綠苔
錢 그리고 오늘날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잎차인 작설차로 불리어졌다. 또
는 元나라 예물로까지 보낸 香茶, 이차는 여러가지 약재를 갈아 멥쌀로 쑨
죽과 섞어 떡 모양으로 박아 낸 단차였는데 고려 말 1200년에서 1400년에
문헌에 기록된 차였다.

그리고 嫩芽(눈아), 靈芽, 頭綱(두강:끝물차) 등이 있었다. "솔바람소리 나
고 밤은 깊은데/차이내는 항아리(탕반)에서 봄을 떠올리는구나."이숭인의 詩
를 뒤로하며 고려의 차문화를 접는다. 연재라는 한정된 지면은늘 총체적인
차의 문화의 꽃에서 흩어진 꽃잎으로만 그늘지게 되는 안타까움이 있다.


자료출처 ; 한국차문화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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