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중국의 “당.송” 때부터 주변국가로 널리 전파되었다.
주전파의 경로는 불교이며, 시대는 중국 당. 송대 이다.
불교의 성행으로 승려들이 불교를 전할 때 차의 음용과 제조방법에 대한 지식을 함께 전파하면서 차 마시는 풍습이 급속도로 퍼지게 되었다.
또한 외국에 대한 불교전파와 통상 무역 (다마무역 /茶馬貿易) 의 시작으로 세계 각 국으로 전해지게 되었다.
[이조(李肇)의 《당국사보(唐國史補)》 “티베트에서는 찬보왕(贊普王) 때(781)에 당나라의 수주차(壽州茶), 서주차(舒州茶), 고저차(顧渚茶) 등을 마시고 있었다.”
서기 805년에는 일본의 승려 사이조우선사가 중국에 불교를 배우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차종자를 가지고 와서 일본 자가현의 고꾸다이산(國公山) 기슭에 심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보급은 1187년에서 1191년 사이에 에이자이선사가 차 종자와 더불어 차의 제조법을 전하면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는 가야시대부터 차종자가 전해졌다고 하며, 재배는 기록상에 신라 흥덕왕(興德王) 3년(828년)에 대렴(大廉)이 당나라로부터 차 종자를 가져와 지리산에 심은 이후부터 사찰을 중심으로 점차 확대되었다고 한다.
반면 중국으로부터 세계 각 국으로 차가 전파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이후 본격화되어 오늘날 약 50여개국 에서 차가 생산되고 있고, 그 효능이 과학적으로 입증되면서 수요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17세기 1백년동안 차는 전 유럽에 소개되었고, 물론 아메리카 대륙에도 상륙하였다. 기록상 유럽에 실물의 차(茶)를 최초로 싣고 간 배는 네들란드 동인도회사의 상선으로 원래는 홍차가 아닌 녹차였다.
그러나 적도를 지나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돌아가던당시의 뱃길은 태양열의 뜨거운 지대를 지나는 긴 항해로 배에 실려진 동양의 귀한 나뭇잎은 그만 자연적으로 발효되어 새카맣게 변해버린 상태였다. 이를 버리기를 아까워한 상인들은 뜨거운 물에 우려내어 마셔보니 맛은 약간 떫지만, 향기도 좋고 뒷맛의 상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이 붉은 물에 우러난 차에 '블랙티'란 이름을 붙이고 즐겨 마시기 시작했다.
또한 차로 인해 일어난 전쟁으로 유명한 아편전쟁(1840~1842)은 영국 내 차 소비가 늘어나 수입이 급증하자 기존의 은이나 모직물, 향료 등으로는 무역 적자를 감당할 수 없어 인도산 아편을 중국에 수출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처럼 차는 인간 생활의 필수적인 기호 음료로서 인류 역사에 끼친 영향이적지 않음을 시사한다. 오늘날 인류가 애용하는 기호음료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것이 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