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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茶) 공부 방

[스크랩] 다시 쓰는 다신전-1 (서론과 採茶 : 따는 일)

작성자설옥|작성시간10.03.05|조회수42 목록 댓글 0

다시 쓰는 다신전-1 (서론과 採茶 : 따는 일)
다시 쓰는 다신전-1

여연 스님/일지암 주지

시대에 따라 다법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차의 고전인 다신전을 현대에 맞게 다시 풀어보는 것은 누군가 꼭 해야 할 일이었다.
다신전의 본체를 잃지 않으면서도 현대에 맞는 차 이야기.
차로 가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 편집자 주 -

 자연에 어리는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미묘하고 미묘하여 외경스러운 일이다. 비록 지천으로 깔려있는 작은 풀잎, 잡초 한줌이라 해도 당연히 사람을 위해서 채집한다는 것을 마땅히 여기는 일은 인간 중심의 욕심이 아닐 수 없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된 생명의 획득을 이기가 아니라 화해의 사랑으로 이어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최소한 인간의 생명을 영위하기 위한 자연과의 만남이라는 하모니로써 그 존재의미를 쌓아가야 되는 것이 아닐까.

자연의 생명. 그 작은 원소 하나 하나까지 사랑으로 감싸는 부처님의 진리 속에서 사는 불가의 살림살이 가운데 으뜸으로 삼는 것이 생명의 외경이다.

실제 삶 속, 매일의 밥 먹는 일상 가운데 우리는 5공양계를 가슴에 새기며 일을 하고 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 청정한 공양물이 얻어지기(만나는 일)까지를 헤아려 감사해 하며 이 아름다운 음식물을 최소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약으로써 먹되 그냥 먹는 것이 아니고 사랑을 보듬어내기 위해 먹겠다는 서원을 갖는 것이다.

 이 얼마나 성스런 예찬인가. 농경문화를 중심으로 그 가치를 예경하며 살아온 동양민족의 사람들은 인간의 땀으로 밭을 일구어 땅에 대한 사랑을 얻어내며 자연에 대한 감사를 생활 속에 스며내며 살았었다.
 그래서 햇곡식을 얻기 위한 경작지를 갈면서부터 땅과 하늘과 물의 신 바람의 공덕까지를 노래하고 감사해 하면서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거두는 철에 농경의 신께 제사를 지냈다. 그 얻어진 생명의 덩어리들을 우리를 있게 한 조상께 올리고 살아있는 핏줄끼리 내일을 다짐하고 살았던 것이 우리의 맑고 맑은 미덕이었던 것이다.

 다 알다시피 이 아름다운 동양의 풍속들이 서구 산업사회의 폐단에 밀리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채 그야말로 마구잡이 문화가 이미 도처에 범람하여 썩어서 숨쉬기가 거북할 정도에 이르렀다.

 여기서 서구 산업사회가 몰고 온 갖가지 병폐를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대하는 마음 그 자연속에서 만나고자 하는 정신 특히 차에 있어서 어떻게 자연의 사랑 속에서 화해를 도모할 것인가를 짚어보면서 시작하려고 한다.

 필자가 차를 만난 지 벌써 스무 두 해, 강원시절에 인연을 맺어 그 후 차를 만들어 먹으면서 차를 생활의 중심으로 살아온 셈이다.

  이른 봄날 차를 만들기 위해 여러 물건들을 준비하고 생각을 가다듬으며 하는 일 가운데 가장 맨 먼저 떠올리는 것이 잇다. 다름아니라 올해는 어떻게 하여 맑고 신령스러운 자연을 만날 수 있을까? 그래서 부처님께 기도하며 차밭에 나가게 된다.

 찻잎은 단순히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랑의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송나라 황제 휘종이 쓴 "대관차론"의 첫머리에서 얘기했듯 자연의 산물로 태어나 땅에 머리를 박고 사는 생명들의 눈부심에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초의 스님께서도 동다송 첫머리에 이렇게 노래하고 있지 않던가.
"자연의 신 후황은 차나무를 귤(옛날 상 나라에서는 나무 중에 최고의 덕으로써 귤나무를 일컬었다 함)의 덕과 짝지으시니
하늘에서 이어온 생명 변치 않아 따뜻한 남녁 땅에서만 자라
그 푸르른 잎새는 모진 자연의 시련과 겨울의 추위를 이겨 상서롭고
그래서 하얀 꽃은 가을 서리 속에 더욱 빛난다" 하고 이어서 스님은
"수미산 밖 갠지스강 속에 빛나는 사금의 빛살보다 더 고운 꽃술을 맺고
아름다운 신선의 부드러운 상아빛 살빛을 닮아 그 꽃잎은 뽀얗고,
황금의 숲속에 어리는 푸른 가지는 이슬로 말끔히 세수하여 푸른 옥과 같고.
아침 안개 촉촉이 젖은 싹은 작은 새의 혀를 닮았다. 는 이 거룩한 차잎을 위해 성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세상의 사물들 어느 것 하나, 자연에 숨쉬는 생명 하나하나 소중하지 아니한 것이 있을까만 이렇듯 차의 공덕은 끝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차 잎을 다는데 어찌 함부로 할 수 있겠는가.
한때나마 맑고 깨끗한 정신과 육신으로 차를 만나야 할 것이다.
 차나무 밭의 차잎을 따면서 위산과 앙상 두 스님께서는 체와 용을 교감하녀 형상으로 볼 수 없는 자성을 차나무로 흔들어 보여주었다. 두분 큰스님의 그 바다 같은 가르침의 물살에 곤두 박혀 허우적 되지 않기 위해 맑고 고운 차 잎을 따내자 .(다인 19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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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 잎을 얻는 일(채다)은 참으로 소중하고 귀한 일이어서 정성스럽게 마음을 집중시키지 않으면 고운 차 잎을 얻기가 어렵다. 초의 스님이 쓰신 동다송이나 육우의 다경 등 수천의 세월을 흘러 내려오는 다서 속에 누누이 기록되어 있듯이 다도의 첫머리는 차 잎을 얻는 일이다.

 동다송을 눈 여겨 본 차인 이라면 알겠지만 문헌에 실린 차에 관한 전설 중 차 잎을 얻는 대목이 많은데 그 중 몇 구절을 살펴보자.

 전한(前漢)무제의 신하 동방삭이 지었다는 <신이기,神異記>에 [여요땅에 사는 차인 우흥이 산에 들어가 찻잎을 따다가 우연히 도사를 만났는데, 그는 세 마리의 푸른 소를 이끌고 있었다. 우흥을 데리고 폭포산(육우 다경에 나오는 천령泉嶺 거기서 나오는 차를 선차라 하였다)에 다달아 말하기를 나는 단구자(丹丘子)라 하네, 듣자니 그대가 차를 좋아한다 하기에 만나 보고 싶었네, 이 산중에 큰 차나무가 있으니 그대에게 주네, 부디 훗날 남은 차가 있으면 나에게도 주기를 바라네.] 하였다. 이후 제사를 올리고 산에 들어가면 항상 좋은 차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또 한 대목에는 [ 선성의 진정이라는 차인이 무창 산속에서 차를 따다가 머리털이 한 발쯤 되는 신선을 만났는데 신선이 진정을 이끌고 산 아래로 내려와 떨기진 차나무를 가르쳐 주고 떠나다가 얼마 후 다시 돌아와 주머니 속에서 귤을 꺼내어 그에게 주자 진정이 놀라서 가르쳐 준 차를 등에 지고 돌아왔다]고 한다.

 이 두 구절에서 살펴보듯 옛 차인들은 차를 채취하는 일을 그냥 단순히 노동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고 신께 제사 올리는 의식을 통하거나 신성과의 교감을 통해 얻는 신성한 일로 생각했다. 이런 의식을 치르는데 소홀한 오늘의 채다 일지라도 그 시기와 절후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신전에는 너무 빠르면 싱그런 향이 온전치 못하고 그렇다고 너무 늦으면 싱그러움이 흩어져 버린다고 적고 있다. 그래서 곡우 전 닷새를 최고로 치고 그 다음 다음으로 우수함을 얘기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물론 앞서 얘기했듯이 다신전은 청나라의 모환문이 쓴<다경채요>의 절목을 가려 뽑은 것이므로 초의 스님은 우리나라의 절후로는 입하(양력 5월 5일경) 전후를 말하고 있다.

 실제로도 그렇다. 우리나라의 차 재배 지는 대부분 남녁 지방으로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곡우 이후에 나오는 산지가 대부분이다. 설령 곡우전에 나온 차잎 일지라도 너무 어려서 차 성분이 제대로 스며들지 못하여 다시 말해 약이 덜 차서 차맛과 향이 온전치 못하다.
 왜 이렇게 차잎을 따는 시기와 절후를 얘기하는가 하면 우리나라에서 차를 대량생산하는 사람들이나 손으로 만든 이들이나 차를 사서 마시는 차인 들이 곡우 전의 차에 지나치게 집착되어 있는 현상에 대해 조심스럽게 얘기하여, 차에 관한 올바른 안목을 갖자는 것이다.

 너도나도 우전차에 매달려 제다의 넓은 세계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특품, 상품 나아가 첫물 차잎으로 만든 차, 그밖에 두물, 세물, 또는 여름차, 가을 차 등 다양한 차 종류와 등급의 차가 생산되어 음다 인구를 저변 확대시키는 커녕 도리어 그 시장을 저해하는 안타까운 실정이 우리나라의 차 현실이다.
 필자가 우전차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자는 것이 아니다. 우전만이 최고가 아니라 어느 땅 어느 골짜기 어느 산골에서 나오든 첫물 차잎은 다 우수하여 법에 맞게 만들면 아름다운 차가 되고 그것이 우전차인 것이다.

 제대로 만들지도 못하면서 곡우 전에만 차잎을 얻어 지나치게 비싼 수제차 우전이 되어 팔리게 되는(만든 자나 사는 자나 안목이 없기는 마찬가지)현실을 어찌 해야 할까 ?

 지금은 상대가 안되고 있지만 미래 차 시장에서 국제 경쟁의 파트너가 될 중국과 일본의 차 생산 현황을 한번이라도 눈여겨본다면 크게 놀랄 일이다. 그들 나라에서는 사시사철 차가 만들어지고 있지 않은가? 물론 기후, 풍도, 산지조건이 우리나라와 상이하지만 말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중국 차 시장 점유율이 얼마인지 아는가? 전통 찻집이 제일 많다는 부산은 이미 40%가 넘는다고 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차를 만든 사람이나 마시는 사람들 모두가 각성할 일이다.

 문득 고려시대, 조선시대와 같은 안타까운 상황이 재현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 시대에도 우리 땅의 좋은 차가 고통받는 서민들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호사가들은 비싼 외국 차만 마시고 우리 것은 등하니 하였다. 그래서 차가 사치품, 나아가 호사가들의 기호품이 될 뿐 일반 백성들까지는 보급되지 않았던 것이다.
아직도 우리 서민들이 마시는 차 현실은 멀고멀다. 누가 그런 문화를 만들었는가? 각성하고 각성하자. (다인 19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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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山外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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