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쓰는 다신전-1 (서론과 採茶 : 따는 일) | |||
| 다시 쓰는 다신전-1
여연 스님/일지암 주지 시대에 따라 다법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차의 고전인 다신전을 현대에 맞게 다시 풀어보는 것은 누군가 꼭 해야 할 일이었다. 자연에 어리는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미묘하고 미묘하여 외경스러운 일이다. 비록 지천으로 깔려있는 작은 풀잎, 잡초 한줌이라 해도 당연히 사람을 위해서 채집한다는 것을 마땅히 여기는 일은 인간 중심의 욕심이 아닐 수 없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된 생명의 획득을 이기가 아니라 화해의 사랑으로 이어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최소한 인간의 생명을 영위하기 위한 자연과의 만남이라는 하모니로써 그 존재의미를 쌓아가야 되는 것이 아닐까. 자연의 생명. 그 작은 원소 하나 하나까지 사랑으로 감싸는 부처님의 진리 속에서 사는 불가의 살림살이 가운데 으뜸으로 삼는 것이 생명의 외경이다. 실제 삶 속, 매일의 밥 먹는 일상 가운데 우리는 5공양계를 가슴에 새기며 일을 하고 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 청정한 공양물이 얻어지기(만나는 일)까지를 헤아려 감사해 하며 이 아름다운 음식물을 최소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약으로써 먹되 그냥 먹는 것이 아니고 사랑을 보듬어내기 위해 먹겠다는 서원을 갖는 것이다. 이 얼마나 성스런 예찬인가. 농경문화를 중심으로 그 가치를 예경하며 살아온 동양민족의 사람들은 인간의 땀으로 밭을 일구어 땅에 대한 사랑을 얻어내며 자연에 대한 감사를 생활 속에 스며내며 살았었다. 다 알다시피 이 아름다운 동양의 풍속들이 서구 산업사회의 폐단에 밀리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채 그야말로 마구잡이 문화가 이미 도처에 범람하여 썩어서 숨쉬기가 거북할 정도에 이르렀다. 여기서 서구 산업사회가 몰고 온 갖가지 병폐를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대하는 마음 그 자연속에서 만나고자 하는 정신 특히 차에 있어서 어떻게 자연의 사랑 속에서 화해를 도모할 것인가를 짚어보면서 시작하려고 한다. 필자가 차를 만난 지 벌써 스무 두 해, 강원시절에 인연을 맺어 그 후 차를 만들어 먹으면서 차를 생활의 중심으로 살아온 셈이다. 이른 봄날 차를 만들기 위해 여러 물건들을 준비하고 생각을 가다듬으며 하는 일 가운데 가장 맨 먼저 떠올리는 것이 잇다. 다름아니라 올해는 어떻게 하여 맑고 신령스러운 자연을 만날 수 있을까? 그래서 부처님께 기도하며 차밭에 나가게 된다. 찻잎은 단순히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랑의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송나라 황제 휘종이 쓴 "대관차론"의 첫머리에서 얘기했듯 자연의 산물로 태어나 땅에 머리를 박고 사는 생명들의 눈부심에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초의 스님께서도 동다송 첫머리에 이렇게 노래하고 있지 않던가. 이러한 차 잎을 다는데 어찌 함부로 할 수 있겠는가. 차 잎을 얻는 일(채다)은 참으로 소중하고 귀한 일이어서 정성스럽게 마음을 집중시키지 않으면 고운 차 잎을 얻기가 어렵다. 초의 스님이 쓰신 동다송이나 육우의 다경 등 수천의 세월을 흘러 내려오는 다서 속에 누누이 기록되어 있듯이 다도의 첫머리는 차 잎을 얻는 일이다. 동다송을 눈 여겨 본 차인 이라면 알겠지만 문헌에 실린 차에 관한 전설 중 차 잎을 얻는 대목이 많은데 그 중 몇 구절을 살펴보자. 전한(前漢)무제의 신하 동방삭이 지었다는 <신이기,神異記>에 [여요땅에 사는 차인 우흥이 산에 들어가 찻잎을 따다가 우연히 도사를 만났는데, 그는 세 마리의 푸른 소를 이끌고 있었다. 우흥을 데리고 폭포산(육우 다경에 나오는 천령泉嶺 거기서 나오는 차를 선차라 하였다)에 다달아 말하기를 나는 단구자(丹丘子)라 하네, 듣자니 그대가 차를 좋아한다 하기에 만나 보고 싶었네, 이 산중에 큰 차나무가 있으니 그대에게 주네, 부디 훗날 남은 차가 있으면 나에게도 주기를 바라네.] 하였다. 이후 제사를 올리고 산에 들어가면 항상 좋은 차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두 구절에서 살펴보듯 옛 차인들은 차를 채취하는 일을 그냥 단순히 노동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고 신께 제사 올리는 의식을 통하거나 신성과의 교감을 통해 얻는 신성한 일로 생각했다. 이런 의식을 치르는데 소홀한 오늘의 채다 일지라도 그 시기와 절후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신전에는 너무 빠르면 싱그런 향이 온전치 못하고 그렇다고 너무 늦으면 싱그러움이 흩어져 버린다고 적고 있다. 그래서 곡우 전 닷새를 최고로 치고 그 다음 다음으로 우수함을 얘기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물론 앞서 얘기했듯이 다신전은 청나라의 모환문이 쓴<다경채요>의 절목을 가려 뽑은 것이므로 초의 스님은 우리나라의 절후로는 입하(양력 5월 5일경) 전후를 말하고 있다. 실제로도 그렇다. 우리나라의 차 재배 지는 대부분 남녁 지방으로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곡우 이후에 나오는 산지가 대부분이다. 설령 곡우전에 나온 차잎 일지라도 너무 어려서 차 성분이 제대로 스며들지 못하여 다시 말해 약이 덜 차서 차맛과 향이 온전치 못하다. 너도나도 우전차에 매달려 제다의 넓은 세계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특품, 상품 나아가 첫물 차잎으로 만든 차, 그밖에 두물, 세물, 또는 여름차, 가을 차 등 다양한 차 종류와 등급의 차가 생산되어 음다 인구를 저변 확대시키는 커녕 도리어 그 시장을 저해하는 안타까운 실정이 우리나라의 차 현실이다. 제대로 만들지도 못하면서 곡우 전에만 차잎을 얻어 지나치게 비싼 수제차 우전이 되어 팔리게 되는(만든 자나 사는 자나 안목이 없기는 마찬가지)현실을 어찌 해야 할까 ? 지금은 상대가 안되고 있지만 미래 차 시장에서 국제 경쟁의 파트너가 될 중국과 일본의 차 생산 현황을 한번이라도 눈여겨본다면 크게 놀랄 일이다. 그들 나라에서는 사시사철 차가 만들어지고 있지 않은가? 물론 기후, 풍도, 산지조건이 우리나라와 상이하지만 말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중국 차 시장 점유율이 얼마인지 아는가? 전통 찻집이 제일 많다는 부산은 이미 40%가 넘는다고 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차를 만든 사람이나 마시는 사람들 모두가 각성할 일이다. 문득 고려시대, 조선시대와 같은 안타까운 상황이 재현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 시대에도 우리 땅의 좋은 차가 고통받는 서민들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호사가들은 비싼 외국 차만 마시고 우리 것은 등하니 하였다. 그래서 차가 사치품, 나아가 호사가들의 기호품이 될 뿐 일반 백성들까지는 보급되지 않았던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