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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茶) 공부 방

[스크랩] 다시쓰는 다신전-2 (採茶 : 따는 일)

작성자설옥|작성시간10.03.13|조회수21 목록 댓글 0

다시쓰는 다신전-2 (採茶 : 따는 일)
다시쓰는 다신전-2 여연스님/일지암 주지

차잎을 얻는 일(採茶 : 따는 일)

지나치게 술을 마셔 온몸이 지치고 머리가 어지러운 숙취를 깨게 하고, 비몽사몽할 때 그 잠의 혼돈에 빠지지 않게 한다는 (解醒小眠:해성소면) 신묘한 차. 더구나 좋은 차를 오래 마시면 사람에게 힘이 생기고 정신을 맑게 한다고 ‘염재’는 <식경>에 적고 있다. 그러면 이런 차들은 어떤 것일까. 그리고 무슨 정성으로 차잎을 얻었기에 선락(仙樂)의 원기를 갖게 하는 것일까.

어렵게 그리고 신비하게 만나는 차이기도 하겠지만 여러 문헌들에 의하면, 충분한 때에 다시 말해 자연의 운기가 조화되어 얻고자 하는 사물들의 기운이 왕성하며, 스스로의 기운이 가득 찬 그러한 때 얻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주의 신비를 얘기한 어느 학자가 쓴 글 가운데 이런 구절이 이 대목을 설명할 수 있을까.

우주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있는데 우주의 시간으로 표현한 것을 ‘절대의 시간’ 그리고 인간의 시간을 ‘소유의 시간’으로 그 글은 적고 있다. 그런데 인간들은 사물들의 고유한 생명(기운)의 조화. 그 리듬을 인간의 소유로 다 망가뜨린다는 것이다.

더 설명하자면 하나의 꽃이 그 꽃잎을 피우려면 그 꽃의 줄기와 잎이, 더욱 그 생명의 전체가 필요로 하는 시간만큼 절제절명의 시간의 덩어리가 존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꽃을 소유하기 위하여 온실 속에 가두고 태양의 빛과 영양을 인간의 작위로 조작하고 촉성 시켜서 그 꽃이 필요로 하는 우주의 시간(절대의 시간)을 인간의 시간(소유의 시간)으로 빼앗아 버린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큰 자연에 대한 뒤틀림인가.



너무 어린잎보다 제대로 자란 잎을

현대의 도시문명은 절대의 시간, 절대의 방에서 머물러야 할 사물들의 고유한 영혼들의 믿음을 다 망가뜨리고 있다. 모든 음식물들이 담겨 쉬어야 할 그들 방의 용기가 그렇고 공기, 기온, 풍향, 그리고 땅의 기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메주가 떠서(발효) 곰팡이가 태어나고 그 곰팡이들의 조화로운 기운들이 맛좋은 된장, 간장이 되는 것인데 그 시간들을 차단하는 도시문명의 생활구조는 우주의 시간이 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비관이며 신비주의적이 과언일까?

도시에서 나는 거의 모든 채소나 과일 등 식물들이 온실재배, 촉성 재배되어 우주의 시간을 갖지 못한 것들이다. 차잎을 얘기하면서 너무 장황하게 인용한 것 같다. 어찌됐던 좋은 차를 만들려면 고운 잎을 만나야 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우전이나 작설에 얽매여서 너무 이른 것을 채취하면 우주의 시간을 빼앗아 버리는 것이 된다. 제대로 자연스럽게 익어 살찐 부드럽고 맛난 찻잎을 얻으려면 (다신전이나 동다송에서는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다) 자빛이 아닌 것과 잎이 쭈그러지지 않고 반듯한 잎과 돌돌 말리지 않는(團葉者) 것이어야 한다고 한다.

영양분이 충분하지 않아 촉이 트자마자 피어버린 잎들이다. 자연에서 자란 부엽토가 푹 삭아서 거름이 풍요한 곳에 나는 차잎들은 살이 찌면서도 부드럽기 그지없고 윤기가 자르르 하여 그냥 생엽을 맨입에 씹어도 독특한 차향기가 입안에 가득 고이고 달디 단맛이 그야 말로 노동의 <다가茶歌>에 나오는 얘기처럼 신선이 되는 청량감을 느끼게 한다. 쭈글어 들고 잎이 말리고 하는 것들 또한 핍박한 땅에서 자란 것들이다.
차잎의 부분인 여기서 꼭 하나 짚어야 할 일이 있다.




야생차도 보호와 관리 필요

지리산 등지에서 야생차를 제다하는 분들께는 죄송스럽고 미안한 얘기지만 차 생산 시장의 올바른 터전을 위하고 오히려 미래 차 산업의 건강한 토대를 위해서도 얘기해야 할 것 같다.

지리산에 자생하고 있는 차들은 너무나 아름다운 차잎 들이다. 새삼스레 얘기하지 않아도 초의스님이나 그 밖의 많은 선인들이 칭찬을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렇게 좋은 우리의 야생 차 잎들이 수난을 당하고 있다.

무슨 얘긴가 하면 야생차가 재배 차와 달리 영양분, 다시 말해, 그 차나무가 충분히 자라야 할 거름이 부족한 상태에서 한번(첫물)만 따야 함에도 두물 세물 마구잡이로 채취하고 더구나 매년 혹독하게 훑어 벼려서 차나무의 생존 자체까지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차나무는 살아 남기 위해서 강해지고 그런 강하게 버티는 가지에서 차 잎이 나오다 보니 얼마나 독하겟는가. 생명의 자기보호에서 나오는 독한 기운인데도 야생차이기 때문에 독특한 향기 다시 말해 뽕나무 잎에서 풍기는 그런 냄새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잎을 채취하지 않은 나무, 큰 식물들도 휴식 년령이 있고 그것들을 쉬게 하기 위해서 사람의 근접을 막는데 지리산의 야생차들은 매년 몇 십 번을 훑어지고 수난 당하는 일은 정말로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아무리 지면 상태이지만 그대로 내버려두지 말고 고운 잎, 살찐 잎을 얻으려면 자연의 퇴비, 두엄을 장만하여 차나무를 살찌게 보호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야생차이기 때문에 혀끝이 아리도록 강한 것이 독특한 것이 아니고 감윤(甘潤)하여 부드럽고 달콤한 차, 좋은 차가 우전차라는 것을 명심하자, 일본차, 중국차, 어떤 명차가 우리처럼 혀가 아리도록 강한 것이 있던가.
(다인19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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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무도 휴식이 필요하다 여연스님/일지암 주지

케니지의 아름다운 섹스폰 연주를 듣고 자란 완두콩은 색깔이 더 선명하고 알이 토실토실하였다는 어느 식물학자의 얘기가 아니더라도 자연 속에서 서로 조화롭게 서식하는 생체의 리듬은 그 환경의 정서라 할까 문화의 풍토에 따라 영양소와 크기 즉 열악한 조건에서 태어난 것보다 우수하다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보고된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케니지의 음률이나 비발디의 ‘사계’를 정기적으로 듣고 자란 완두콩과 다소 혼란스럽고 시끄러운 리듬의 하드락인 헤비메탈 노래를 듣고 자란 완두콩은 크기, 모양, 색깔이 전혀 틀리다는 것이다. 완두콩의 껍질이 이상하게 뒤틀리고 들쭉날쭉하였다니 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더욱 놀라운 것은 밤새 외등이 켜져 있는 가로수 주변의 곡식들은 열 배를 맺지 않는다고 한다. 밤에도 대낮처럼 밝기 때문에 식물들이 쉬지 못하고 계속 성장하여 휴식이 없었기 때문이란다. 쉴 수 없는 식물의 고통, 그것이 현대 문명이 낳은 우주의 상처가 아닐까?

차나무도 이와 같아서 휴식과 성장이 조화로운 상태에서 자란 나무에서 채취한 차잎 이라야 아름답고 곱다. 다시 말해 가을의 쪽빛 호수 같은 색깔과 어린애 살에서 젖어나는 야릇한 향기와 신선한 과일의 달콤한 맛, 그야말로 차의 삼기(三奇)인 색, 향, 미의 신비를 누릴 수 있다.

제나라 제 땅에서 자란 산물은 어떤 것이고 다 좋다. 특히 우리 차는 초의스님이 동다송에서 기록하였듯이 색깔, 향기, 맛에 기(氣)가 더하여 모두 한가지라고 칭송하였다.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저술이라고 하는 “동다기東茶記”를 인용하였다. “어떤 이는 우리나라 차의 효능이 중국 월주에서 생산된 차에 미치지 못한다고 의심하는데 그렇지가 않다”라고 지적하면서 “다서에 중국의 육안차는 맛으로 뛰어나고 몽산차(지금의 사천성 안에 있는 아미산 근처)는 약효가 높다 하였으나, 우리 차(東茶)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겸하고 있다.”라고 했다.

어쨌든 차의 묘미는 차잎을 얻는 일이 첫 번째 일이어서 많은 얘기가 필요할 것 같다. 앞 장소에서도 초의 스님 다신전의 몇 구절을 얘기했는데 구름 기운이 밤새 화창하여 이슬이 흡족히 내린 날 차잎을 얻는 것이 좋다고 했고 햇빛이 쨍쨍한 날에 채취한 차가 그 다음이고 비 온 날에 딴 차는 될 수 있으면 만들지 말라 했다. 그런데 덧붙이고 싶은 것은 계절의 순환이라고 할 수 있는 절기는 참으로 현현(玄玄)스러운 것이어서 사람이 규정해 놓은 일반적인 견해로는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없는 것 같다.

오랜 세월 차를 만들다 보면 차잎을 따는 시기, 절기 때는 참으로 미묘하다. 이를테면 아침나절 딴 차가 낮에 딴 차보다 좋다 하였지만 습기가 많고 전날 비가 내린 날씨에는 오전보다 호후 시간이 더 좋은 차잎을 얻을 수 있다. 또는 산곡山谷에 난 차가 대나무 숲 속에서 나는 차보다 좋다 하였지만 필자의 견해로는 오히려 대나무 숲에 가려진 차잎이 훨씬 부드럽고 단 것으로 경험하고 있다. 물론 초의스님이 지칭한 산곡이 뚜렷이 어떤 곳일까? 의미하기 힘들지만 백련사(다산초당이 있는 절)의 동백나무 숲 속에서 자란 그런 것이 아닐까.

일본의 차밭 이야기 속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우지(宇治)에서 생산된 옥로차 이다. 역사의 틈새로 얘기해 보자면 ‘우지칠명원’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꾸가와 이에야스 시대에 개창되어 400년 가까이 차 생산지로서 화려한 명성을 얻었다. ‘어차아도중御茶亞道中’이라는 임금 행차시에 차를 올리는 다도의 행열도가 우지차의 일곱 차밭 이야기 속에 나온다.

여기서 얘기하려는 것은 이렇게 화려한 명성을 떨쳤던 우지 칠명원이 명치시대 이후 서양 문화 특히 서구 음료 문화에 의해 쇠퇴의 길을 걸었는데 상림가라고 하는 차상인이 옥로차를 개발 생산하여 오늘날 일본차가 다시 부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옥로가 바로 대밭 속에서 얻어진 차잎이다.

그런데 많은 차를 대밭 속에서 채취할 수 없어서 우리의 인삼밭처럼 복하(復下, 볏짚이나 초가지붕 위를 얹는 마람으로 오후의 햇빛을 가려주는 것)해 주는 것이다. 산죽 줄기와 싸리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어 복하한 옥로의 부드럽고 달콤한 차는 상림가上林家에서 개발했던 것이다. 이렇듯 산곡에서 나온 차나 죽림하에서 나온 차는 어느 것 할 것 없이 좋은 잎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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