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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茶) 공부 방

[스크랩] 다시쓰는 다신전-4 (차를 만드는 일 2, 품질 가리기(변다))

작성자설옥|작성시간10.03.05|조회수27 목록 댓글 0

 다시쓰는 다신전-4 (차를 만드는 일 2, 품질 가리기(변다))
다시쓰는 다신전-4(차를 만드는 일 2, 품질 가리기(변다))
여연스님/일지암 주지           

우리나라에서 널리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덖음차이다. 다신전의 원문은 대부분 이 덖음차 얘기뿐이다.

 새로 딴 찻잎은 쇤 잎사귀와 억센 줄기, 부스러기 그리고 병든 잎을 골라내는 작업을 해야한다. 초벌 차를 만들 때 찻잎을 골고루 가려내는 작업을 하지 않으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더구나 숙련된 솜씨가 아니면 좋은 차를 만드는 일을 그르치게 되는 것이 찻잎 고르는 것을 게으르게 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찻잎 줄기가 굵거나 쇤 찻잎, 병든 잎은 불을 지려 말릴 때 설익는다. 솥이 몹시 달구어질 때 찻잎을 떨구어 급하게 덖어야 하는데 이 때 불길을 늦추면 부드럽고 작은 찻잎도 설익는데 노쇠한 잎, 억센 줄기는 하나도 익지 않게 된다.

 차 만드는 일 가운데 가장 세심하게 정신을 모아야 되는 긴장된 순간이 이 초벌 찻잎 덖을 때이다. 이때 잘못 하면 좋은 차 얻기는 아예 기대할 수 없다. 솥에 불기운이 극열하게 퍼져 작은 잎 부드러운 잎은 타는 냄새가 나는데 얼마나 골고루 익었는지 분간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급히 서둘러 꺼내다 보면 여린 잎은 타고 두껍고 살찐 잎은 설익고 줄기는 말할 것도 없이 타게 된다.

 여기서 설익으면 두 번 덖을 때 익히면 될 것이 아닌가 하겠지만 설익은 순간부터 찻잎은 발효(뜨게 되는 것)하게 된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덖음차가 차를 우려냈을 때 녹빛 정갈한 차색이 아니고 누렇게 또는 흐리게 나오는 것은 찻잎이 부분부분 발효됐기 때문이다. 물론 찻잎을 채취하여 오래 됐거나 간수를 잘못했거나 그리고 만든 차를 잘못 보관했을 때도 황색의 차빛이 나오지만, 대개는 차를 덖는 과정에서 잘못된다. 더구나 차를 만드는 사람이 이런 발효과정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세 번 네 번 덖어내도 차색은 멀쩡한 녹빛 이므로 자칫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엄밀하게 말해서 황색 빛깔로 우려진 차는 녹차가 아니다. 황차에 속한다. 처음부터 황차를 만들려고 잎을 음건하여 시들게 하거나 일부러 덖음과정에서 습기를 배게 하여 발효시켜서 향 좋은 황차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고 녹차를 만들려다가 자기도 모르게 황차가 나왔다면 그것은 분명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찐 차가 아닌 덖음차 에서는 우리나라 거의 모든 차가 녹차빛의 맑은 비취색을 찾아볼 수가 없다. 어디 중국의 덖음 녹차가, 예를 들면 용정차나 소주의 벽라춘이 누런 빛깔이 나오던가. 하등품 용정에서 황빛이 나오기도 하나 그것은 우려내는 사람이 잘못 달여서 그렇다. 또한 일본의 덖음차(부초차, 가마하리) 우려낸 색깔이 황빛 나는 것을 보았는가? 이런 차를 생각할 때 덮어놓고 차인이나 차를 사서 마시는 사람이 많이 증가한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정말로 좋은 녹차를 만들어야 무한 경쟁의 국제 차 시장에 우리것을 내세울 수 있을 것이다. 값 비싸고 잘 팔리는 차라고 좋은 차가 아니다. 좁은 울타리 안에서 낮은 안목으로, 그것도 황차인지 녹차인지 청차인지도 구분 못하면서 차인 이라고 하다가는 망신당하기 십상이다. 세계가 우리 앞에 열려지고 있지 않은가.

 차를 만드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화력 즉 불 가늠의 높낮음임을 알아야 한다. 명나라 전예형이 지은 <자천소품煮泉小品>의 "실취失翠"라는 글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차는 비취색을 잃으면 안된다. 원나라의 시인 우백생의 차시에 "다만 들여다 보이는 표주박 속의 푸른 비취색 그림자. 청취색 차빛의 애절함이 그야말로 차의 비취색 맑은 그리움을 엿 볼 수 있다"는 구절이 있다.

 이렇듯 비취색의 차빛은 좋은 입자와 불 가늠에서 좌우된다. 유명한 명나라 차의 고전 <다소>에서도 유달리 불기운을 강조하고 있다. 화열 즉 불길이 사납거나, 불길이 느슨하면 설익어 차를 버린다고 말하고 있다. 다신전에서도 "열즉범황熱則犯黃"이라 다시 말해 불기운이 강하면 차의 빛깔이 누렇게 나오고 "생즉착흑生則着黑"이라. 설익으면 검어진다고 적고 있다. 불기운의 높낮음에 대하여 당나라의 이약은 "무릇 차는 모름지기 느린 불로 굽고 생기있는 불로 달일지어다"라고 했다.

 어찌됐든 <다소>에 분명하게 나오는 대목이 있다. "찻잎을 따낸 차례로 덖는데 한 가마에 고작 네냥(약 150g)을 넣어 먼저 약한 불에 쐬어 말려 여리게 하고, 잇달아서 센 불로 재촉한다. 손에는 나무 손가락을 끼고, 재빨리 찻잎을 움켜 올려 뒤집어 돌리듯이 섞는다. 절반 익은 것을 알맞다고 보는데 조금 기다리면 향기가 발산된다. 이것이 알맞은 때이다."

 또 다신전 <조다>편에도 알맞게 불을 다루어야 한다고 했지만 글로써 다 표현할 수는 없고 오직 오랜 경험과 숙련일 뿐이다. 그래서 현미한 것은 다 밝히지 못하니 신령스런 차 맛은 잘 덖을 때 갖춰진다고 말하고 있다.

 차를 만드는데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차솥과 차를 자연 숙성시키는 일이다. 차의 청탁은 솥과 불에 있다. 차 덖는 솥이 신철은 금물이며, 냄새나거나 잡철로 만든 것은 아니 된다. 좋은 솥일 지라도 녹이 슬거나 냄새나는 상태라면 차를 다 버려 버린다. 덖음차에 있어서 솥, 즉 불 냄새가 나는 것은 고수운 냄새가 나라고 태워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솥을 잘못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리 적은 양의 차일지라도 절대 솥 하나를 가지고 차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두 세 개는 걸어놓고 초벌 두벌 또는 마지막 선차 과정에 따라 솥을 선택해야 한다.

 또한 찻잎이 솥에 들어가는 횟수가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은 다름아니라 어리고 부드러운 찻잎이 솥에 많이 들어가 말릴수록 비취색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솥에 넣는 횟수는 적게 하여 말려야 한다. 찻잎이 쇠고 굵기 때문에 자주 넣어 수분을 증발시키는 것이지 다른 뜻이 없다.

구증구포느 어불성설!

우리 차문화에 있어서 정말로 부끄럽고 웃어넘기기에는 너무도 당혹스런 것이 차의 구증구포九蒸九泡얘기다. 더구나 차를 만드는 사람들이 자기 차를 잘 만들었다는 뜻으로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다. 더욱 한심한 것은 덖음차를 만들면서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구증구포란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삶았다는 얘기 아닌가 ? 여린 찻잎을 아홉 번 찌고 삶아 버리면 상식적으로 어떻게 되겠는가! 한약재 즉 나무 뿌리나 껍질 또는 씨앗, 무성한 잎을 말려 약을 만들 때 아홉 번 찌고 삶는 얘기를 차에도 해당되는 것처럼 버젓이 하고 있다.

 차를 그만큼 정성스럽게 만들었다는 비유법으로 얘기하면 이해가 가지만 찔증"蒸"자나 삶을 포"泡"자도 모른채 덖음차를 만들어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삶았다고 하면 그야말로 지나가는 소가 웃지 않겠는가. 차인들 뿐 아니라 경학에 밝은 스님들도 역시 구증구포한 차가 맛있다는 얘기를 하면 황당하고 황당할 수밖에 없다. 이런 무지는 어디서 왔을까? 우리는 지금 차문화의 넓은 지평을 열지 않으면 안될 세기에 와 있다.(다인 2000.3)
 
만든 차의 품질 가리기(변다)

 사실 변다 대목은 조다造茶 즉 차 만드는 일과 같이 다신전에는 똑같이 기록되어 있다. 만들어진 차의 품질 즉 겉모양새의 차가 잘 만들어졌는가 아니면 잘못됐는가의 이야기이다.

 차의 품질을 이런 겉모양새로 가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차를 욹혀(자다 煮茶)냈을 때의 색, 향, 미를 통해서 모든 것이 가려지는 것인데 이 변다장은 거의 차 만드는 일과 흡사한 내용이다.

 차의 묘리 즉 오묘함은 차를 만들 때의 정갈한 만듦새로써 정성의 지극함과 적당한 저장(간수)의 일과 찻물 끓일 때 중정의 도로써 물 다루기의 요령 즉 "시조지정 장지득법 포지득의始造之精 臟之得法 泡之得宜"에 있다고 적고 있다.

 이런 기록은 반복되는 장이 더 많다. 이미 조다과정에서 설명되어 있지만 미비한 것은 더 자세하게 보충하려는 일이기도 하겠다. 또한 장다臟茶와 탕변장湯辯章에서도 설명되어지고 있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차의 품질을 어떻게 분별 가능할 것인가인데 솔직히 겉모양새를 보고 차의 우열을 가리기는 힘들다. 고작해야 찻빛(모양)이 비취색인가 누런가 아니면 탄 것인가 차의 잎자가 굵은 것인가 여린 잎인가, 또는 찻잎이 부서져 있는가 온전하게 잎자가 살아 있는가 꼬불꼬불 말려져 있는가 똑바로 서 있는가 등의 차 모양새의 분별을 가릴 수밖에 없다.

 물론 차 잎자의 모양새로 품질을 구별할 수는 있지만 충분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한국차 일본차 중국차가 우선 산차(散茶) 즉 입차 부분에서도 모양새가 크게 다르기 때문에 그 겉모양으로 색, 향, 미를 가리기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다시 말해 우리 차(겉 모양)의 기준으로 차의 품질을 가린다고 하면 큰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우선 우리 차에서도 겉모양으로 우열을 가린다면 참새 혀 같은 작설차만을 최고로 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조다에서 몇 번이고 말했듯이 잎자가 여리다고 좋은 차가 아니다. 차는 색, 향, 미의 조화가 어루러진 그야말로 감윤甘潤하고 계절의 농염한 기운을 충분히 지니고 있는 기가 왕성한 차라야 단연 아름답고 귀한 차인 것이다.

 한국차, 일본차, 중국차의 변다는 정말로 형형색색이어서 여간 조심스럽게 전문적인, 그러면서도 수십년 차를 만들어 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이 차의 세상이다.

 여기서 우선 일본차를 모양새로써 변다하면 대부분 기계화되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바늘 침처럼 뾰죽뾰죽한 모양으로 곧게 뻗어 차잎의 길이가 고르며 색은 하나같이 비취색이다. 무엇보다 좋은 차일수록 윤기가 흐른다. 이것은 일본차 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차의 제일 기본이 차잎이 살이 통통하게 찌고 윤기가 흘러야 겉모양으로서는 최고의 차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런 차가 맛도 최상품의 우수한 차인 것이다.

 일본차는 속내용의 색, 향, 미뿐만 아니라 겉모양에서도 쉽게 변다할 수 있다고 한다면 너무 속단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중국차에 비해 수월하게 가릴 수 있다.

 일본차의 특징은 잎자의 모양새가 천편일률적이다. 그것은 차잎을 딸 때부터 기계로 채취하고 컴퓨터 시스템으로 정확한 수치에 의해서 온도, 습도 더구나 색채 선별까지 개발하여 같은 잎자의 크기, 같은 색깔의 농도로 처리하는 것이어서 가늠하기가 쉽다.

 어쩌다 깊은 산에서 나온 수제차나 많은 차의 유파에서 예식에 올린 차나 궁중에 바친 차를 만나면 그 차는 우리 차와 거의 닮은 차임을 볼 수가 있다. 그렇지만 거의 모든 차가 기계화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앞서 말했지만 시즈오카 지방의 차는 거의가 찐차이고, 나가사키 구마모토를 중심으로 하는 남쪽 지방에서는 덖음차도 많이 나오는데 덖음차, 찐차 할 것 없이 차맛은 비릿하고 차색은 그야말로 청취색이며, 차의 향기는 풋풋한 것이 일본차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모양새로도 쉽게 알 수 있다.

 거기에 비해 중국차는 그 브랜드의 종류가 수백 가지이고, 각 지방마다 많은 차가 그 사람들의 기호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그 많은 것을 일일이 말하기란 정말로 어려운 것이다.

 우선 우리 차와 거의 흡사한 절강성 지방의 항주, 소주, 호주 지방의 차와 사천성의 아미산, 몽정산 등의 차를 통해 간략하게 얘기해 보자. 절강성에서만도 여러 지방에서 수많은 차가 별별 모양으로 생산되는 것이 중국이다.

 모양새로 분별하자면 다 아는 일이겠지만 항주의 용정 중에서도 작설, 사봉 등은 잎자가 납작납작 눌러서 만들어지고 겉 색깔은 비취색이다. 등급이 낮을수록 색이 누렇다. 물론 색과 향과 맛도 이와 같다. 중국차는 살청殺靑을 우리보다 심하게 하기 때문에 우려낸 색은 청취빛의 선명도가 낮다.

 같은 절강성의 소주에서 그것도 동호, 서호를 나뉘어서 나오는 벽라춘차 마저도 그 모양새가 특이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벽라춘은 화분 같은 솜털이 많은 아주 미세한 차잎의 소라 모양의 차가 대부분인데. 이 벽라춘을 우려낸 차색은 그리 맑지가 않다. 그렇지만 잎자가 살이 찌고 우롱차 같이 큰 벽라춘은 이 지방산골에서 나오는데  맛이나 향, 특히 색이 정말로 고전에 나온 그대로의 원형 같은 벽라춘 차가 있다. 몽정의 차, 아미의 차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더 자세한 얘기는 다음 장에 하겠지만 아무튼 차는 겉모양과 속모양이 같은 것이라야 귀한 차이다. 오랜 민족문화로서의 차 전통을 지니고 있는 우리에게 비하된 말로 들리겠지만 오늘날 세계에서 제일 우수한 차잎을 차신茶神에게 얻으면서도 세계에서 제일 맛없는 차를 만든다고 하면 필자를 나무랄까 두렵다. 이것은 다시 말해 차의 전형, 기본이 없다는 것이다. 강조하자면 무엇으로 차를 분별할 것인가?

 차를 만드는 제다법의 기준이 있어야 차를 가리는 변다법도 그에 따라 기준이 서기 때문이다. 어떤 차가 좋은 차인지 기준도 없이 어찌 그 품질을 가늠할 것인가. 그래서 말인데 우리의 변차 기준은 정말 각고의 노력, 무서운 안목으로 올바른 가치를 다시 세워야 한다. 명심하고 명심하여 자기 세계의 영혼을 가꾸어야 할 때이다. (다인 2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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