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봄」
이소연
1. 주제
한 인간은 하나의 얼굴로 설명되지 않는다.
2. 작의
조선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 〈춘향전〉을 유럽에 옮긴 번역가, 그리고 김옥균을 쏜 암살자.
이 세 사람은 모두 홍종우라는 한 사람이다. 우리는 그를 어떤 사람이라고 불러야 할까.
3. 등장인물
홍종우 / 45세 / 남 / 조선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이자 김옥균을 죽이러 온 자.
김옥균 / 44세 / 남 / 갑신정변의 주역, 십 년째 일본을 떠도는 망명 정치인. 홍종우를 자기 사람으로 믿는 자.
이일직 / 50대 / 남 / 김옥균 암살을 기획하고 홍종우를 끌어들인 포섭자. 홍종우의 앞날을 미끼로 쥔 자.
윤치호 / 30세 / 남 / 김옥균과 동행한 조선 망명 지식인. 홍종우의 정체를 의심하는 자.
4. 줄거리
1894년 봄, 오사카. 몰락한 양반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과 파리를 떠돌아온 홍종우가 이일직과 함께 부두에서 김옥균을 맞이한다. 이 무렵 김옥균은 청의 실력자 이홍장을 만나, 조선과 청과 일본이 힘을 합쳐 서양에 맞설 길을 열어보려는 뜻을 품고 있다. 홍종우와 이일직은 바로 그 뜻을 미끼로 삼는다. 자신들이 이홍장에게 닿을 길을 열어주겠노라며 청으로 가는 배편과 경비까지 대주겠다 하자, 오래 기다려온 김옥균은 끝내 그 손을 잡는다.
상하이로 향하는 배 위에서, 홍종우는 손수 만든 프랑스 요리를 김옥균의 식탁에 올린다.
김옥균이 파리에서의 날들을 궁금해하자, 홍종우는 천천히 그 시절을 풀어놓는다.
파리의 홍종우는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채 거리를 걸었고, 지나는 이들은 낯선 동방의 사내를 자꾸 돌아보았다. 그는 기메 박물관에서 조선이 빼앗긴 유물을 손수 정리해 한국 전시실을 열었고, 프랑스 소설가와 마주 앉아 〈춘향전〉을 「향기로운 봄」이라는 이름으로 옮겼다. 사교 모임의 단상에서는, 제 동포들은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조차 모르며 유럽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함께 일하던 한 화가는 그를 보며, 제 나라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낼 사람이라고 적어두었다.
다시 배 위. 김옥균은 짧게 자른 머리를 쓸어넘기며 자신은 일본의 손을 잡겠다고 말한다. 홍종우는 고개를 젓는다. 일본은 조선을 도우려는 것이 아니라 끝내 삼키려는 것이며, 그 손을 잡는 일이 곧 나라를 내주는 길이라고 답한다. 같은 조선을 구하겠다는 꿈을 꾸면서도 그 끝이 서로 정반대라는 것을, 두 사람은 그제야 마주 본다. 그날 밤 김옥균은 홍종우의 잔을 채우며 십 년 망명 동안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말들을 꺼내놓는다. 고국에 두고 온 처자식, 먼저 스러져간 동지들, 그럼에도 버리지 못한 꿈. 홍종우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김옥균이라는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 김옥균은 또한 그를 더 가까이 끌어당긴다.
상하이 동화양행 호텔에 닿자, 윤치호가 김옥균을 따로 불러낸다. 홍종우는 조선이 보낸 자객이 분명하니 당장 곁에서 떼어놓으라고 경고한다. 김옥균은 끝까지 다 듣는다. 그러나 이홍장에게 닿을 길이 결국 그 사람의 손에 달려 있고, 조선이 자신을 버린 지 이미 십 년이 지났으며, 그래도 누군가는 끝까지 믿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되묻는다.
그날 밤, 홍종우는 짐에서 리볼버를 꺼내 말없이 손질한다. 곁을 지나던 어린 시종이 그 모습을 보고 만다. 홍종우는 시종에게 이튿날 아침 멀리 다녀와야 할 심부름을 만들어 쥐여준다.
다음 날 오후, 윤치호가 자리를 비우고 시종마저 떠나 방 안에는 두 사람만 남는다. 김옥균이 의자에 기대어 〈자치통감〉을 펼친다. 홍종우가 차를 내려놓는다. 품 안의 권총이 무겁다. 김옥균이 책장을 넘기며 무어라 말을 건네고, 홍종우는 잠시 손을 멈춘다. 그러나 이내 권총을 꺼내 세 발을 쏜다. 첫 발이 얼굴을, 둘째가 복부를, 셋째가 어깨를 지난다. 쓰러진 김옥균이 마지막 숨으로 어째서냐고 묻고, 홍종우가 답한다. 나는 조선의 신하요, 당신은 역적이오.
홍종우는 방을 나선다. 청의 관헌이 그를 체포하는 모양새를 갖춘 뒤, 김옥균의 시신과 함께 그를 조선으로 돌려보낸다.
한양에서는 고종이 버선발로 뛰어나와 그를 맞이하고 관직을 내린다. 같은 시각 김옥균의 시신은 능지처참되어 팔도로 돌려지고, 잘린 머리가 양화진에 내걸린다. 홍종우는 수구파의 환대를 물리치며, 사사로운 원수를 갚은 것이 아니라 나라의 적을 베었을 뿐이라고 담담히 말한다.
세월이 흐른다. 그는 끝내 제주로 밀려났다. 섬에 봄이 오고 꽃이 흐드러지면, 홍종우는 그 앞에 앉아 또 다른 봄을 떠올린다. 〈춘향전〉을 「향기로운 봄」이라 옮기던 파리의 봄과, 한 사내를 쏘아 쓰러뜨린 상하이의 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