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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일미

작성자이장노|작성시간09.12.16|조회수162 목록 댓글 18

                            어두일미

                                                         이 한 재

  점점 사라지고 있는 말 중에 어두일미(魚頭一味)란 말이 있다. 생선의 머리가 다른 부분보다 더 맛있다는 뜻이다. 또 이와 비슷한 의미의 어두육미(魚頭肉尾)란 말은 생선은 머리가, 육류는 꼬리가 더 맛있다는 뜻이다. 과연 근거가 있는 말인가? 하긴 대구탕보다 대구 머리탕이, 곰탕보다 꼬리곰탕이 더 비싸기는 하지만…….


  부산의 동쪽 끝인 기장에 살고 계시는 어머니는 내가 내려갈 때마다 그곳의 특산물인 갈치를 사 주신다. 바다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재래시장에서 크고 싱싱한 갈치를 몇 마리 사서는 토막을 내고 간을 맞춘 다음 돌아올 때 차에 실어 주신다. 머리 부분은 떼어 놓고…….

  생선값을 내가 내려고 해도, 몇 토막을 남겨 두려고 해도 막무가내이신 어머니. 당신 잡수실 것은 따로 있다며 가리키는 것이 떼어놓은 머리 부분이고, 이때 하시는 말씀이 ‘어두일미’다. 옛말에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하지만 이럴 때의 어머니는 절대로 자식에게 지지 않으신다.

  그러나 이 갈치가 내 밥상에 나올 때는 중간 부분이 달아나 버리고 꼬리 부분만 올라온다. 가만히 보면 굵고 살진 중간 토막은 손자 앞에 턱 놓여 있다. 또 이때 아내가 하는 말이 ‘어두일미(魚頭一尾)’다. 우리 집에서만 쓰이는 신조어(新造語)로 생선은 머리와 꼬리가 같이 맛있다는 다소 억지스런 해석이다. 혹시라도 어머니께서 이 사실을 -아들 먹으라고 정성으로 사 주신 생선이 다른 사람(?)의 밥상에 올라간다는 것을- 알면 가슴 아파하실까 봐 하소연도 못하고 끙끙 앓기만 한다.

  경제가 몹시 어려웠던 50~60년대에는 5일마다 돌아오는 장날이 되어야 갈치나 고등어 한두 마리를 구경할 수 있었고, 그때도 머리 부분은 어머니 차지였으니 우리 집 어두일미의 역사는 꽤 오래되는 편이다. 그러나 이제는 집안 형편도 훨씬 좋아져 갈치 한 토막은 아무 때나 드실 수 있는데도 어머니께서는 여전히 어두일미를 주장하신다.


  흔히 음식 맛을 말할 때는 5 미를 든다. 맵고, 짜고, 시고, 쓰고, 단맛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 외에도 떫거나 고소한 것을 맛으로 들기도 한다. 그러나 맵거나 떫은 것은 피부 감각이고, 고소한 것은 냄새일 뿐 맛이 아니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 어쨌든 생선의 머리 부분이 맛이 좋다고 할 때는 5 미 중 무슨 맛이 더 좋은지 궁금하다. 단맛이? 짠맛이? 아니면 신맛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머리에 별다른 맛이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또 음식의 맛이란 것이 양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니, 머리 부분이 양념을 잘 받아들이는가 생각해 보지만 특별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몸통부분이 더 잘 받아들일 것 같다.

그렇다면 왜 머리 부분을 더 맛있다고 할까?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은 그 부분의 살이 다른 부분보다 더 졸깃졸깃하다는 생각이다. 졸깃졸깃한 것을 맛이라고 한다면 머리 부분이 더 좋을 것도 같다. 거친 물살을 헤치고 앞으로 나가는 생선은 머리 쪽의 근육이 더 발달할 것이니……. 그렇다 하더라도 머리에는 먹을 수 있는 살이 거의 없지 않은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두가 일미일 까닭을 찾을 수가 없다. 수라상에 생선 머리를 올렸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할아버지나 아버지 밥상에 생선 머리가 올라가는 것을 본적도 없다. 다만, 자식에게 좋은 부분을 먹이시려는 어머니가, 그것도 가난한 집의 어머니가 별로 먹을 것도 없는 머리 부분을 차지하며 하시는 말씀이 ‘어두일미’일 뿐이다. 어머니의 뜨거운 사랑이 자식의 어설픈 효도를 누를 때 쓰이는 말이다.

어두일미라 할 때의 그 맛은 생선의 맛이 아닐 것이다. 또 짜거나 시거나 달아서 맛이 좋다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것은 사랑의 맛이 아닐까?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었다는 뿌듯함과 자식이 달게 먹는 것을 보는 기쁨의 맛이리라. 결코, 입으로는 느낄 수 없고 오직 가슴으로만 느끼는 그런 맛일 것 같다.


갈치 꼬리를 앞에 두고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을 본다.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은 새삼스레 당신의 희생을 깨닫는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 어머니뿐이겠는가? 아내가 나에게 꼬리만 주는 것도 똑같은 이치가 아닌가? 이를 두고 ‘내리사랑의 법칙’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어두일미(魚頭一味)든 아니면 어두일미(魚頭一尾)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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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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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이장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12.19 미국까지 가서 대구 머리찜을 드신다니------. 저는 뉴욕인지 LA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 곳의 SEA FOOD집에서 먹은 랍스터 밖에 생각 않납니다. 딴 것은 처다 보지도 않고 3마리를 연달아 먹었답니다.
  • 작성자이찬웅 | 작성시간 09.12.19 장노님이 그토록 흠집을 말씀하시니 제가 트집을 좀 잡아 보겠습니다. ㅎㅎ.음식맛 5가지를 적으신 문단에서 맵고 짜고... 그러나 맵고 떫은 것은 피부 감각이고..의 부분. 맵다가 양쪽에 다 들어 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어머니의 희생과 아내의 손자 사랑을 동일시 하는 부분이 좀...어쩐지 격이 좀 다른 느낌이라서요. 이상은 트집이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이장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12.20 '5미중에 들어 있는 매운 맛이나 5미에는 들지않는 떫은 맛이나 다 맛이 아니다'란 뜻이었습니다. 글은 어떻게 읽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하던데 저의 표현이 서투른 것을 인정합니다. 고맙습니다.
  • 작성자maya58 | 작성시간 09.12.21 그 날, 일찍 가시더니 이렇게 좋은 글을 쓰시려고 그랬군요!! 자식이 많은 저희 친정어머니는 머리도 못 드셨는데~~~ 자식 생각은 어머니가 최고!! 참!! 예쁜 손수건을 못 드렸습는데, 어떻게 하죠??
  • 답댓글 작성자이장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12.21 어떤 행사든 끝까지 남지 않는 사람은 선물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봅니다. 탐이 나지만 자격이 없으니 포기하겠습니다. 그날 수고하신 분에게 하나 더 주세요. 그러나 항상 칭찬 해주시는 마야님의 그 마음만은 고맙게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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