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신보
-<1964년 6월 15일(단기 4327년(음력 5월 7일)>-
(1) 발 행 인 : 최근덕(崔根德) (2) 편집인 겸 주간 : 서동요(徐垌遙)
(3) 편집 부장 : 권영미(權寧美) (4) 인 쇄 인 : 이영규(李寧珪)
(5) 발행 호수 : 제 388호
-<기사 보도 면수 : [1]면>-
* 1994년 6월 15일(단기 4327년(음력 5월 7일)
* 김윤기(金潤基) (78세, 충북 보은군 탄부면 사직리, 농업)
* 을과(乙科) 차하에 급제함,
* 교지 내용 :
진사(進士) 김윤기(金潤基) 문과(文科) 을과(乙科)
제8인(第八人) 급제출신자(及第出身者)
한성(漢城) 정도(定都) 육백년(六百年) 갑술(甲戌) 육월(六月)
* 모두 12명의 급제자가 배출되었다.
(6) 발행 및 연월일 : 단기 4327년 6월 15일(음력 5월 7일) (목)
(7) 기사 내용 주제 : 성균관(成均館)서 알성시(謁聖試) 재현(再現)
: 王이 親臨한 科擧로 百年만에 再現
: 甲科 郭慶順씨 乙科 金佑振씨 壯元 급제
(8) 기사 내용 부제 : 전국서 2백여명 응시 어가행렬(御街行列)도
(9) 교지 규격 대략 : 어림잡아 = 가로 60cm + 세로 80cm
(10)교지 지질 색상 : 닥나무껍질을 주 원료한 두꺼운 문종이에
짙은 분홍색을 바탕으로 한 그 위에
4행으로 내려씀 (붓글씨로)
(11) 의상 및 어사화 :
: ① 신발의 밑바닥 창 색깔은 붉은 밑창에
투박스러운 장화(長靴) 모양의 비단 신이다.
: ② 신발의 전체가 모두 짙은 옥색이다.
: ③ 신발의 앞부분은 마치 고무신 코처럼
오뚝하게 솟아올라 맵시를 자아내고 있으며,
: ④ 신발 밑바닥 중앙에서 발등 부분 위로는
좌우로 붉은 선을 두 줄로 드러내고 있다.
: ⑤ 신발 코에서 발등 위를 거쳐 신발 입구까지는
붉은 실선을 드러내 선의 멋을 살렷다.
: ⑥ 예복의 겉옷은 짙은 남빛으로 소맷자락이
마치 정승들의 옷소매와 꼭 같다.
: ⑦ 허리에는 교지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이라서
잘 보이지 않으니 상상해 보시기 바람.
: ⑧ 예복의 목 아래 붉은 끈은 아마도 과거급제
증서를 받은 반패:방방(頒牌:放榜)으로 보임
: ⑨ 목 아래 흰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맨 모습으로
보아 양복을 입으셨던 것이 분명함.
: ⑩ 그런데 예복 아래 흰 옷깃이 보이는 것은
아마도 흰 두루마기를 입으셨던 것 같다.
: ⑪ 머리에는 사모(紗帽)를 그 위에
어사화(御史花)가 두 줄기로 뻗어 올랐다.
: ⑫ 목련꽃 같이 커다란 꽃송이가
연분홍색과 노란 꽃으로 12송이다.
: ⑫ 사모의 가장자리마다 황금빛 실선을
드러내 보임으로 한결 고풍스럽다.
: ⑬ 사진 촬영 장소는 명륜당 앞 6계단 아래에서
외삼촌 혼자서 기념촬영을 하심.
: ⑭ 교지를 받고 며칠 안 되신 어느 날 알성급제도
모르고 사직 외삼촌댁에 갔었다.
: ⑮ 외삼촌은 신문과 사진을 특별히 너에게만
주신다며 넌지시 입가에 미소를 보이셨다.
: ⑯ 누구보다도 나를 아껴주시던 외삼촌!
그러나 말로만 축하드린다고 했을 뿐!
: 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소주 한잔이라도
축하주로 대접을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 ⑱ 그리고 외숙께서 작고했을 때는
연락을 못 받아 못 갔다.
: ⑲ 언젠가 시간이 되면 외숙 산소를
꼭 한번 찾아가 볼 작정이다.
: ⑳ 작은 외삼촌도 돌아가신 날 연락을 받지 못하여
장지에도 못 가보았기 때문 꼭 한번 찾아가 볼
예정임.(사직리 쇠실 못 위에 병마관)
(12) 교지 내용 :
* 敎旨란?- 사품 이상 벼슬의 사령(辭令)
* 사령(辭令) - 관직 임면의 공식적인 발령
진사 김윤기 문과 을과
제 8인 급제 출신자
한양정도 6백년 갑술 유월
(13) 유교 신문의 보도된 내용 원본 :
成均館서 謁聖試 재현
全國서 2百여명 응시
御街行列도
王이 親臨한 科擧로
百年만에 재현
甲科 郭慶馴氏
乙科 金佑振氏
壯元급제
서울 정도 600년을 기념해 성균관 (관장 崔根德)과 서울시가
1894년 갑오경장 때 폐지된 과거행사를 백년 만에 재현했다.
이번에 재현된 알성과거(謁聖科擧)는 임금이 친림(親臨)하여
성현을 모신 성균관에서 치루어진 친림과로
태종 14년 (1414년) 7월 7일 하륜의 건의에 의해서
처음 실시된 것이다.
1백년전 당시를 그대로 고증하여 재현된 이번 행사는
3부로 나뉘어 제1부 科前행사, 제2부 科場행사,
제3부 科後행사로 진행되었다.
먼저 科前행사는 임금의 출궁을 재현한 것으로
어가 행렬은 창경궁을 출발해 율곡도를 거쳐
成均館으로 이어져 일대 장관을 이루었다.
제2부의 고장행사는 작헌례가 끝난 후
임금의 명륜당 행차가 이루어지고
과거 제목을 판시(板示),
시험답안을 작성하는 順으로 진행되었다.
이번에 실제로 진행된 과거제의 응시자들은
전국 2백33개 향교와 서울시 漢詩협회 추천으로
선발된 당대의 한문 고수들로 총 2백 10명이 응시하였다.
제3부의 科後행사는 시관이 합격자를 발표하는
출방(出榜)과 합격 증서를 받는 의식인 방방례(放榜禮),
과거급제자를 위한 축하잔치인 은영례(恩榮禮),
급제자에게 주위의 친구들과 함께
급제의 기쁨을 만끽하도록 배려하는 시가행진인
우가행진(遊街行進) 등이 차례로 재현되었다.
이번 과거 재현에서는
옛 서울 시장인
한성 판윤을 이원종(李元鍾) 서울 시장이 맡았으며
시민들의 박수를 받으며
명륜당에 도착한 임금역은 한알유스호스텔
서울 사무소 고문인 강영준(姜英俊)씨가 맡았다.
이번의 시제(試題)는 서울 정도 6백년을 기념하는
漢城定都 6百年으로「都模衢夫途」5자에
운(韻)을 맞춰 7언 율시를 짓는 것이었다.
이번 응시생 중에서는
뇌성마비 구족화가인 최규인(崔圭仁)씨가 참가하여 눈길을 끌었고
종료시간 전에 답안지를 제출하려다 퇴장당한 응시생도 있었다.
55세 이하는 갑과(甲科),
55세 이상은 을과(乙科)로 나누어
장원을 뽑은 이번 알성 과거제에서
<급제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영예의 갑과 장원은
대구에서 참여한
곽경순(郭慶順) (53세・한문서당 운영)씨가,
을과(乙科)장원은
김우진(金佑振)
(78세・송파구 문정동・한성 문우사랑)씨가 차지했다.
갑과(甲科)
차상엔 이한우(李漢佑)
(39세・부산동래・교사),
차하 양희용(梁喜容)
(50세・경남거창・한약사),
김호경(金호경)
(52세・경북영덕・과수원)이 차지했다.
을과(乙科)
차상엔 김차석(金車錫)
(74세・중랑구 상봉동・서예학원),
김종진(金鍾珍)
(63세・대구향교),
최돈의(崔燉儀)(79세・강원 강릉・농업)
차하 권태연(權태연)
(85세・강남구 압구정동),
박승달(朴承達)
(70세・충남 논산・농업),
박재천(朴在天)
(80세・충남 논산・농업),
*김윤기(金潤基)
(78세・충북 보은・농업) 등
모두 12명의 급제자가 배출되었다.
장원 급제자인
곽경순(郭慶順)씨와
김우진(金偶振)씨는 어사화를 꽂은 채
명륜동 주변에서 유가행진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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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7언 율시의 시제(試題) 운(韻)
①「都 (도읍도)」
②「模 (법모, 본뜰 모, 모범될 모)」
③「衢 (별이름구, 네거리구」
④「夫 (지아비부, 벼슬부」
⑤「途 (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