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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중앙 강원도

[스크랩] 백두대간 33 구간 산행후기

작성자새벽이슬|작성시간07.10.10|조회수33 목록 댓글 0

백두대간 33구간(한계령의 의미를 되새기며) (편안함님)

 

토요일 11시 30분에 출발한 버스는 새벽의 어둠을 뚫고 한계령에 도착하니 새벽 3시 반 쯤 되었다
한계령 휴게소에는 이른 새벽부터 전국에서 모여든 등산객들로 붐빈다
바야흐로 단풍철이다.
4시 반에 등산을 출발하기까지 휴게소에서 우동을 먹을 사람은 우동을 먹고 황태 해장국을 먹을 사람은 해장국 집으로 향한다
대간 종주에 합류한 이래로 휴게소에서 아침을 해결해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계령에 얽힌 전설과 유래를 소개하자면
한계(寒溪)의 한자 속 뜻은 찬 물이란 뜻이다. 물이 차다고 한계라고 한 것 같은데 전설이나 유래를 봐도 이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해 놓은 곳이 보이질 않는다

한계령은 우선 첩첩산중 휴전선 근처로 배속받은 군인들 사이에서 생겨난 말이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별 근거가 없는 듯 하다
한계는 풍진 영화를 한낮 베옷 품에 감추고 세속를 떠나던 마의태자의 전설이 곳곳에 서린 곳이다. 「신라김씨대종원」의 기록에는 '태자 일행이 서울을 떠난 것은 935년 10월 하순이고, 한계에 닿은 것은 살을 에는 추위와 눈보라 몰아치는 혹독한 겨울이었다'고 한다. 고 소개되어 있다.

한계령의 또 다른 이름으로는 소동라령과 오색령으로 불리워지는데 그러나 '왜정 때'도 불렀다는 그 한계령이 좀처럼 옛 글에는 보이질 않는다.
다만 한계는 옛 이름이되 한계령은 그리 오래 묵은 옛 이름이 아닌 탓이다. 한계령의 본명으로 유력하게 들먹이는 이름이 소동라령과 오색령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양양도호부 편에는 소동라령에 대하여, "부 서쪽 60리에 있으며 산줄기가 겹치고 포개져 지세가 험하고 궁벽하다.
예전에는 서울로 통하는 길이었으나 지금은 없 어졌다" 하였고, 『증보문헌비고』「여지고」의 양양 편에는 "오색령은 인제의 영로이며 소동라령, 조침령, 구룡령은 모두 강릉으로 통하는 길"이라고 적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이 간행되는 중종 25년(1530년) 무렵은 소동라령이란 이름으로 부르던 한계령 길이 너무 험하다는 이유로 폐하고 이미 미시령 길을 새로 개척한 다음이다.
조선시대 초엽까지 한양 길로 삼았던 소동라령이 풀숲에 묻히면서 점차 그 쓰임새를 잃고 마는 것이다.
다만 같은 책에 실린 남대천의 설명으로 "강릉부 오대산에서 나오며 소동라령의 물과 합쳐 부의 남쪽으로 바다에 들어 간다"는 대목을 보면 적어도 소동라령이 지금의 한계령 길을 의미하고 있음은 뚜렷한 사실로 보인다.
훗날 『동국여지승람』의 근간이 되는 『세종실록지리지』 (1454년) 양양도호부 편 역시 소동라령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이전의 문헌이 오직 소동라령을 고집하는 반면, 조선시대 말엽에 간행되는 문헌에는 오색령의 출현이 두드러진다.
『여지도서』(1760년), 『대동여지도』(1861년), 『증보문헌비고』(1908) 같은 기록에는 모두 한계령을 오색령으로 표기하고 있다.
짐작컨대, 이는 분명 오색약수를 비롯한 명승을 탐방 하는 길과 관련된 이름일 터이다.
이미 오래 전에 흔적을 잃은 소동라령의 존재는 잊혀지고 남설악으로 통하는 고갯길에 대한 새 이름으로 오색령이 등장한 것이다.
다만 오색령과 소동라령이 더불어 쓰인 『증보문헌비고』의 기록은 얼핏 신뢰성을 잃고 있다.
왜냐하면, "소동라령, 조침령, 구룡령은 모두 강릉으로 통하 는 길"이라고 쓴 것은 틀림없이 어림에 의한 오기(誤記)이기 때문이다.

윗 글은 한계령의 유래에 대해 퍼온 글이다
누구의 글인지 모르겠으나 옛 문헌까지 비교해가며 한계령을 소개 해 준 분이 고맙다
한계령에 대한 것은 양희은이 불렀던 '한계령'만 있는 줄 알았는데 양귀자 소설 '한계령'도 있다는 것을 이번에야 알았다

한계령 노래의 가사는 아래와 같다

저 산은 네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 산중

저 산은 네게 잊으라 잊어 버리라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산 저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울며울며 산등성이를 타오르는 사람 잊어버리라고 달래는 봉우리, 지친 어깨를 떨구고 발 아래 첩첩산중을 내려다보는 그 막막함을 노래 '한계령'의 가사는 사람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산봉우리를 향해 힘겹게 올라가지만 결국 다시 내려갈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다.
고달픈 인생길을 오르고 내리는 애달픈 사람들의 한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 한계령도 고달픈 인생길을 오르고 내리는 애달픈 사람의 한을 승화시킨 밤무대 가수 미나 박에 대한 내용이다.

한계령은 유람에나 좋은 땅이지 터를 두고 살기에는 불편한 곳이다.
탈속의 나그네야 더없이 즐거운 풍경이지만 생계를 작정으로 산중에 깃든 민생들의 호구지책이야 논밭 한 뙈기가 마뜩찮은 명승을 어디에 쓰겠는가.
그렇듯 사는 일이 내내 고단하였지만 그래도 명산 그늘이라고 한껏 멋을 부린 이름이 바로 한계 마을이다

20대 초반에 그냥 노래가 좋아서 많이 불렀던 한계령을 내가 직접 발로 밟으며 노래의 가사와 얽힌 사연들을 다시 한 번 음미해 본다
망국의 한을 달래며 세상을 등졌던 마의태자의 한으로부터 이곳에 발붙여 살아왔던 민초들의 고단한 삶으로 이어지는 한(恨) 많은 사연이 얽힌 곳이다
노래 가사는 지명 한계령과 관련된 곳이 하나도 나오질 않는다
나의 짧은 소견으로는 한계령으로 제목을 정한 것은 고달픈 인생길을 오르고 내리는 애달픈 사람들이 저마다 한계(限界)에 부딪치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삶을 지명 한계와 동일음을 취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본다

그 많던 등산객들은 모두 우리 팀과는 반대 방향인 한계령에서 설악산으로 북진을 하고 우리는 한계령에서 조침령으로 남진을 한다.
처음에 조금 완만한 경사가 이어지는 듯 하더니 한 20여분을 오르니 본격적인 암릉 구간이 나온다.
밧줄도 걸려 있지 않는 암릉 구간을 남자인 나로서도 겨우 겨우 올라서는데 우리 등사대모 여자 회원들은 단숨에 올라서는 것으로 봐서는 진짜 여장부(女丈夫)들이다
설악산 국립공원에서 하지 않더라도 대간을 사랑하는 사람 중에 누군가가 이 암릉구간에 하루라도 빨리 밧줄을 달아 준다면 뒤 이은 대간 종주팀들이 보다 안전하고 쉽게 대간을 종주할 수 있을 것이다.

암릉 구간이 험해 서서히 정체되어 가고 정체된 틈을 이용해서 뒤 돌아 보니 한계령에 서 있는 전국에서 몰려든 버스의 행렬들이 마치 동해바다 오징어 잡이 배들의 불빛처럼 불을 밝히는 풍경도 볼 만 하다.
그리고 어두움 속에서도 바위들의 웅장한 모습들이 흰 빛을 발하며 달빛에 반사되는 광경도 또한 장관이다.

이렇게 약 1시간 30분 정도 암릉을 통과하면서 동해에 떠오르는 일출도 감상하려 서둘러 전망좋은 곳을 이르려 했지만 이 일은 무위로 끝나고 만다
개천절의 일출이라!
다른 날의 일출도 아니고 단군 임검이 나라를 세운 개천절에 일출을 맞는다는 것만으로도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 터인데 아쉽게도 일출을 맞이하지 못한다.
바다위로 구름이 깔려 있어 바다위로 솟아오르는 일출이 아니라 구름위에서 맞이해야 될 일출인지라 일출을 보지 못한 것을 그나마 위로로 삼는다.

일출의 아쉬움을 달래며 얼마간 올라가니 전망이 좋은 1157봉에 오른다
여기에서 서쪽인 인제 쪽을 바라보니 안개가 자욱하게 드리워진 모습에 모두들 탄성을 지른다.
마치 안개가 크나큰 호수 위에 서려 있는 모습같이 봉우리 봉우리만 빼 놓고 구름 바다를 이루고 있는 형국이다.
이 아름다운 경치를 선사해 준 자연의 배려에 감사하고 이를 감상하는 나는 참 복 많은 놈이고 가진 게 무한정 많은 놈이라는 행복이 밀려온다
안개가 융단을 깔아 놓은 듯 한 발아래 펼쳐지는 광경을 무엇으로 표현을 할 까?
아마도 당나라 때 시선(詩仙)인 이태백이 이러한 광경을 보았더라면 어떠 했을까라고 생각해 보니 아마도 저 안개 속으로 뛰어 내렸지 않았을까 싶다.
동정호에 배를 띄우고선 동정호에 어린 달빛에 매료되어 달빛을 부여 잡으려 동정호 속으로 뛰어들었다는 이태백이라면 충분히 안개 속으로 뛰어 내리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그리고 건네편인 설악산의 대청봉과 귀때기청봉까지 이어지는 능선들을 감상하는 맛도 일품이다.

서서히 망대암산으로 향한다
망대암산(望對巖山)은 설악산의 봉우리들과 한계령 주위에 있는 바위들을 조망한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인 모양이다. 한자의 뜻이 '바위산을 마주하고 바라본다'는 뜻으로 봐서는 말이다.
망대암산에 관해서는 전설이나 유래가 소개된 산행후기가 없다.

이런 명구가 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누구의 말인지 모르겠으나 참으로 지극한 말이다
내가 산행에서 지명의 유래라던지 전설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들을 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계령의 경우처럼 한계령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하나 하나 알아 갈 때 비로서 한계령에 어린 사연이나 의미들이 나에게 새롭게 다가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외국 여행을 갈 때나 어디를 간 대도 반드시 그 곳의 역사나 유래 등을 간단히 알아 보고 간다. 알고 보면 보이는 것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옛 성현들도 선지후각(先知後覺:안 뒤에 깨달음이 온다)을 중요시 여겨 한평생을 끊임없이 수신(修身)하며 앎의 지평을 넓혀나가는 삶을 살아간 것이다.

많은 산악인들이 산을 오를 때 마다 제일 먼저 산의 유래를 소개해 줬으면 하는 게 나의 개인적인 바램이다.

점봉산(點鳳山)은 토양이 기름져 예로부터 질 좋고 맛 좋은 산나물이 많이 나기로 유명하며 등병산 또는 등붕산(登朋山)이라고도 한다
점 점자에 봉황 봉자인데 봉황점이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 얽힌 사연을 소개해 놓은 곳을 찾지 못했다.
점봉산에서 단체 사진을 한 컷 찍고 단목령으로 향한다

단목령(壇木嶺)의 단 자가 박달나무 단자이다. 박달나무가 많아서 박달재라고도 부르는 모양이다.
이 곳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재밌는 유머가 오가며 휴식을 취한 뒤 북암령으로 향한다

북암령은 세계적인 희귀식물인 한계령풀의 집단 분포지로 알려진 곳이며 양양의 소금장수들이 들락거리던 길이었다 한다.
북암령의 유래도 한남대 도서관까지 찾아가 전설과 유래를 찾아 보았으나 북암령에 대한 것은 나오질 않는다

단목령에서 북암령을 거쳐 조침령까지 구간은 조금 지루한 구간이 이어진다.

조침령에 도착하여 보니 오후 2시 반 쯤 되었던 것 같다.
오늘은 좀체로 글쓰기가 되지 않는다. 이런 날은 그냥 붓을 꺽어야 하는 날이다.
다음 설악산 산행을 기다리며...

2004년 10월 3일 (일)

백두대간, 한계령~조침령 (황태자님)

 

가는길...
23시 30분 버스는 대전요금소로 진입하여 경부고속도로를 달린다. 산행 리더인 그리매님이 오늘 구간 개념도 설명과 산행시 주의 사항을 전달한다. 20분지나 남이분기점에서 중부고속도로 갈아탄다. 24시 정각 오창휴게소에서 얼떨결님을 태우기 위해 잠시 정차한다. 모두들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든다. 1시 40분 경부-중부-영동-중앙 고속도로를 질주한 버스는 홍천요금소를 빠져나와 삼거리 갈림길에서 좌회전하여 44번 국도를 타고 속초방향으로 향한다. 2시 42분 금강산과 설악산의 길목에 위치한 관광민예단지 휴게소에 정차한다. 차에서 내리니 추위가 느껴진다. 미쳐 쟈켓을 준비하지 못해 약간 걱정이다. 이곳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출발하기로 한다. 솔솔님과 길 건너 내설악광장 휴게소에서 황태해장국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차로 돌아와 산행준비를 마치고 휴식을 취한다.

3시 50분 한계령을 향해 출발한다. 4시 5분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 힘겹게 한계령을 오른다. 한계령은 양양과 인제를 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꾸불꾸불한 도로 중의 하나이다. 조선영조때의 인문지리학자이며 여행가였던 이중환은 그의 저서 '택리지'에서 백두대간 중 강원도 지역의 이름난 영(嶺) 여섯 개를 꼽았는데, 함경도와 강원도 접경 '철령', 그 아래 '추지령', 금강산의 '연수령', 설악산의 '오색령'(한계령)과 '대관령', '백봉령'이다. 이중에서 으뜸으로 알려진 한계령은 원래 이름은 오색령이었는데 1968년 44번 국도 공사를 시작하며 한계령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고 한다.

하덕규가 만들고 양희은이 불렀던 한계령이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 지금은 교회 집사로 찬양 선교를 하는 하덕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로 <시인과 촌장>듀엣으로 데뷔했으며 1984년을 전후하여 슬럼프에 빠져 방황하던 젊은 날 마음을 달래기 위해 설악산 여행을 자주 하였다. 그때 산 속에서 며칠 지내는 동안 설악산이 하덕규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젠 돌아가라, 더 이상 산에 오지 말아라. 어서 돌아가서 치열한 삶을 살아라"
그 순간 하덕규는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한다.
조성모가 리메이크하여 히트한 가시나무라는 노래도 하덕규가 작사 작곡하여 부른 노래이다.


4시 12분 한계령휴게소에서 한솔님을 태우고 내리막길을 1분 정도 내려가 오른쪽 필례약수로 갈라지는 451번 포장도로로 접어든다. 필례약수는 주변의 지형이 베 짜는 여자인 필녀(匹女)의 형국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산행...
4시 15분 입산통제소 앞에서 하차한다.

보석처럼 영롱하게 반짝이는 별들이 밤하늘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사방은 적막감이 감돈다. 자연 휴식년제 구간을 걸어가야 하기 때문에 양심이 다 망가지는 순간이다. 지체 없이 가드레일을 넘어서 입산통제소를 지나 가파른 산길을 빠르게 치고 오른다. 칠흑같은 어둠 속을 랜턴 불빛에 의지하여 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5분 정도 오르면 땅속에 파놓은 참호가 보이는 능선안부에 닿는다. 후미가 올라오는 것을 확인하고 왼쪽 대간길로 오른다. 5분 정도 오르면 평탄한길이 이어지고 5분 정도 진행하면 다시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4시 40분 만물상 바위 구간이다. 험한 암릉길을 따라 오른다. 가파른 암릉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한다. 멀리 속초 시가지 야경이 눈에 들어온다. 4시 55분 가파른 내리막길을 잠깐 내려서고 된비알을 치고 오른다. 5시 조망 좋은 1158봉 바위에 올라선다. 한계령휴게소에 정차된 차들의 전조등 불빛이 능선을 배경으로 멎진 야경을 연출한다. 자연휴식년제를 실시하면서 기존에 있던 로프가 제거돼 있어 손과 발로 몸을 지탱하고 기암들을 넘는다. 두 세군데 밧줄이 매어있지만 내려서기에 매우 험하고 위험한 구간이다.

5시 17분 안부에 도착해서 10분간 휴식을 취한다. 넓은 산죽나무 사이를 지난다. 대간길 주변 곳곳에는 "자연휴식년제구간 식생조사구"라는 작은 표찰이 보인다. 5시 42분 필례골삼거리에 도착한다. 왼쪽 길은 망대암산 2km 오른쪽 길은 필례골 3.5km 한계령 4km 이정표가 보인다. 망대암산으로 향한다. 길은 평탄하고 부드러워진다. 동녘 하늘의 옅은 홍조는 그 농도를 더하면서 해돋이를 준비하고 있다.

서서히 어둠이 물러간다. 5시 50분 랜턴을 끄고 진행한다. 넓은 산죽나무 군락지를 지나면서 점점 고도를 낮추며 내려간다. 6시 5분 공터 안부에 닿는다. 망대암산이 우람한 자태를 드러낸다. 6시 15분 출입금지 안내판이 보이는 안부에 도착한다. 왼쪽으로 십이담계곡을 거쳐 십이폭포로 내려가는 길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5분 거리에 샘터가 있는 곳이다.

10분 정도 오르고 안부에서 휴식을 취한다. 암대암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서고 붉은 해가 불쑥 나타난다. 간식을 즐기며 5분간 휴식을 취한다. 5분간 평탄한길을 걷고 가파른 길 5분간 오른 다음 평탄한길 3-4분 걷고 가파른 길을 10분 정도 치고 오르면 망대암산(1236m)에 도착한다. 점봉산이 모습을 나타낸다. 그 옛날 점봉산 도적들이 망을 보았다는 망대암산은 정상부만 바위로 이루어져 있으며 멋진 바위전망대다. 뾰족하게 솟은 바위봉에 올라서니 환상적인 운해가 펼쳐진다.

만물상 바위 능선의 기암괴석들이 한계령과 설악산을 배경으로 우뚝 솟아 남성미를 자랑하고 있다. 대청봉에서 중청을 거쳐 귀떼기청봉으로 이어지는 설악산 서북능의 거대한 능선이 마치 병풍을 펼친 것처럼 한 눈에 들어온다. 오대산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여성에 비유된다면 설악은 남성적인 웅장함을 지녔다. 5분간 조망을 감상하며 절경을 디카에 담는다.

뒤따라 올라온 일행에게 자리를 내주고 암봉을 내려서 점봉산으로 향한다. 평탄한 길을 따라 10분 정도 진행하면 완만한 오름길이 시작된다. 고사목과 구상나무(주목)가 어우러져 멎진 모습으로 나그네의 눈길을 끈다.

7시 35분 점봉산에 도착한다. 점봉산은 검봉산이라고도 하는데 흰머리의 노인이 이산에 들어오면 다시 머리가 검어져서 나간다는 전설이 있을 만큼 신령스러운 산이라고 한다. 넓은 공터에 나비 모양의 정상표지석이 웃으며 나그네들을 반긴다. 표지석과 뒤쪽에 점봉산은 제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22세기를 위해 보존해야 할 숲으로 선정된 곳입니다. 2000년 11월 23일 산림청 인제 국유림 관리소라 적혀 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사방팔방 어느 한곳 막히는 곳이 없다. 그야말로 일망무제다. 법을 어겨가면서 어렵게 올라선 점봉산은 설악산 최고의 전망대로 손색이 없다. 망대암산에서 보았던 환상적인 운해가 더 가깝게 펼쳐진다.

작은점봉산과 곰배령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고 주름잡힌 산줄기들이 꿈틀대며 다가온다. 점봉산에 올라야만 설악의 진수를 볼 수가 있다.

정상에는 돌 판에 새긴 고 임주영의 추모비가 있다. 비문이 간결하면서도 가슴에 와 닿는다.
점봉에서

산이 되는구나.
[단기 4329.6.23. 우리는혼자간다회]


표지석과 운해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간식으로 허기를 속이며 휴식을 취한다. 후미 일행이 도착하고 표지석을 배경으로 단체 기념사진을 촬영한다.

7시 55분 바람에 등떠밀려 내림길로 향한다. 오른쪽은 곰배령가는 길이고 왼쪽길이 대간길이다. 8시 10분 홍포수가 살았다는 홍포수막터가 나타난다. 천연보호림안내판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50m 내려가면 샘터라는 글씨가 희미하게 적혀있다. 조금 지나 순탄하던 길은 내리막길로 바뀌고 5분 정도 지나서 평탄한길로 들어선다. 8시 30분 넓은 안부 공터에 도착하여 10분간 휴식을 취한다. 왼쪽으로 오색약수로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900능선은 고운 빛깔의 가을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숲이 아니다. 하나의 거대한 화폭이다. 자연의 섬세한 붓질에 나그네들은 속수무책으로 감탄사를 터뜨린다.

8시 55분 안부를 지난다. 오른쪽으로 희미한 길이 보이지만 대간길은 직진한다. 잠깐씩 오르막길이 나타나며 고도를 높이지만 전반적으로 순탄한 길이다. 9시 38분 대간길 한폭판에 855.5봉 삼각점이 튀어나와 있어 위험하다. 곧이어 가파른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9시 42분 단목령(박달나무고개)에 도착한다. 오색과 진동리를 잇는 백두대간의 고갯마루이며 국내에서 원시림이 잘 보존되고 있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두 개의 목장승 백두대장군과 백두여장군이 두 눈을 부릅뜨고 서서 나그네들을 노려보고 있고 나무에 단목령(檀木嶺)이라 새겨진 멎진 이정표가 매달려있다.

왼쪽길은 오색리(3km 1시간) 내려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진동리 설피밭(1.3km)으로 하산하는 길이다. 오른쪽 길로 30m 정도 내려가면 계곡수를 식수로 구할 수 있다. 자리를 잡고 때 이른 점심식사를 위해 도시락을 펼친다.

10시 30분 점심식사를 마치고 대간길을 이어간다. 대간길은 직진하여 조침령 양수발전소 (4.8km)로 향한다.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완만한 오름길이다. 11시 고도를 높이면서 경사가 더해지고 가팔라진다. 12분간 치고 오르고 7-8분 동안 평탄한 길을 걸으면서 거치러진 숨을 고른다. 11시 20분 1020봉에 닿는다. 왼쪽으로 동해바다가 나뭇가지 사이로 조망되고 정면으로 우뚝 솟은 1136봉이 눈앞에 다가선다. 내림길로 내려선다. 11시 25분 북암령에 도착한다. 북암령은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삼거리에서 양양군 서면 북암리로 넘어가는 재다. 오른쪽으로 진동리로 내려가는 뚜렷한 길과 돌무더기 흔적이 보일 뿐 표식은 없다.

5분 정도 지나서 960봉을 지나고 잠깐 평탄한길이 이어지다가 오름길이 계속된다. 1136봉을 향해 서서히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턱밑까지 차 오르는 거친 숨을 토해내며 오른다. 11시 40분 평탄한 능선을 따라 3분 정도 진행하면 1133봉에 닿는다. 삼각점(199년 재설 속초 24)이 보이고 1분 정도 평탄한 길을 따르다 걸음을 멈추고 후미 일행을 기다리며 15분 정도 휴식을 취한다. 해머님의 음담에 한바탕 웃음꽃을 피운다. 모두들 여유로운 모습들이다.

12시 길을 재촉한다. 부드러운 능선을 타고 20분 정도 진행하고 완만한 내리막길로 들어선다. 목재로 만든 배수로가 곳곳에 눈에 띤다. 오른쪽으로 양수발전소 댐이 눈에 들어온다. 12시 25분 현위치 양수발전소 이정표를 지난다. 12시 40분 거리 표시 없는 이정표를 만난다. 직진하면 양수발전소 가는길이고 대간길은 조침령을 향해 왼쪽으로 확 꺾여서 내려섰다가 눈치채지 못하게 서서히 고도를 높이며 완만한 오름길을 오른다. 12시 50분 삼각점을 지나면서 서서히 내리막길로 들어선다. 지지목을 세우고 밧줄 가드레일이 설치되어 있다.

동해바다가 시원스럽게 조망 된다.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키작은 잡목지대를 헤집어 진행한다. 13시 15분 거리 표시 없는 이정표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비교적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선다. 밧줄 가드레일이 설치되어 있고 두 번째 밧줄 가드레일을 지나면서 평탄한길이 이어진다. 13시 30분 이정표(조침령 단목령)가 보인다. 왼쪽으로 인제군 기린면과 양양군 서면을 잇는 비포장 도로가 보이고 밧줄 가드레일이 설치되어 있다.

아주 최근에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 나무의자 쉼터가 산행에 지친 나그네를 잠시 쉬어가게 한다. 지자체에서 탐방로로 개발 중인 것으로 생각된다.

13시 35분 조침령에 도착한다. 조침령은 양양의 해산물이 인제의 내린천 물길을 향하여 넘어가던 고개로 광복 무렵까지 인근의 민초들이 넘나들던 대표적인 고개라고 한다. 새가 넘다가 하룻밤 묵고간다는 령으로 오른쪽으로 큰길을 따라 조금 걸어가니 '조침령'이라는 표지석이 보이고 연장(방동-서림)21km, 공사기간 1983년 6월 10일-1984년 11월 22일까지며 시공부대는 3군단 공병여단이라 적혀 있다. 본래 옛길을 두고 엉뚱한 곳에 새로 흙먼지 길을 닦고 표지석까지 세워두었는데 원래 이곳은 마을 사람들이 반평고개라 부르는 곳이라고 한다.

지난번 구간 날머리에 보지 못한 이정표(조침령 구룡령)가 세워져 있다. 낮게 떠서 흘러가는 구름이 손에 잡힐 것만 같다.

14시 진동리계곡 도로에 도착한다. 진동리 계곡물로 땀을 씻어내고 해머님이 준비한 도토리묵을 안주 삼아 소백산 검은콩 막걸리를 한잔씩 즐기며 산행을 마무리한다.


오는길...
14시 35분 대전을 향해 출발하여 곧바로 쇠나드리(소나 말이라야 건널 수 있을 만큼 물살이 샌 개울을 일컫는 순 우리말)다리를 건너 418번 지방도로를 달린다. 왼쪽으로 보이는 진동계곡에는 맑은 물이 흐른다. 15시 정각 두부 요리로 소문난 음식점인 고향집에 정차한다. 6시 내고향에 방영됐다는 플랑카드가 걸려있다. 두부전골을 안주 삼아 막걸리로 하산주를 겸한 때 이른 저녁식사를 한다. 소문만큼 훌륭한 맛은 아니다. 15시 50분 좌회전하여 현리교를 건너 31번 국도를 타고 상남방면으로 향한다. 길가에 가을의 전령사인 코스모스가 가느다란 허리를 흔들며 춤춘다. 17시 정각 44번 국도변 홍천 전망 좋은 휴게소에서 10분간 정차한다. 중앙 고속도로 홍천요금소로 진입하여 제천요금소로 빠져나와 국도를 탄다. 19시 음성만남의 광장에서 10분간 정차하고 36번 국도를 타고 음성방면으로 향한다. 19시 30분 갈림길에서 오른쪽 진천 방면으로 접어들어 510번 지방도로를 타고 10분 정도 진행하여 중부고속도로 진천요금소로 진입한다. 곧바로 오창휴게소에서 얼떨결님을 내려놓고 출발한다. 20시 15분 대전요금소로 빠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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