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52쪽)
日蓮소립자수량품지개결이경(所立自壽量品至開結二經)
수량품이십칠개(壽量品二十七箇)의 대사(大事)
제일(第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 제십육지사(第十六之事) 문구(文句)의 구(九)에 가로되, 여래(如來)란 시방삼세(十方三世)의 제불(諸佛)·이불(二佛)·삼불(三佛)·본불(本佛)·적불(迹佛)의 통호(通號)이며, 별(別)해서는 본지(本地) 삼불(三佛)의 별호(別號)이니라. 수량(壽量)이란 전량(詮量)이니라. 시방삼세(十方三世)·이불(二佛)·삼불(三佛)의 제불(諸佛)의 공덕(功德)을 전량(詮量)하는 고(故)로 수량품(壽量品)이라고 한다고.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품(品)의 제목(題目)은 니치렌(日蓮)자신에 해당(該當)하는 대사(大事)이며 신력품(神力品)의 부촉(付屬) 이것이니라. 여래(如來)란 석존(釋尊)·총(?)해서는 시방삼세(十方三世)의 제불(諸佛)이며 별(別)해서는 본지무작(本地無作)의 삼신(三身)이니라, 지금(至今)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의 의(意)는 총(?)해서는 여래(如來)란 일체중생(一切衆生)이요, 별(別)해서는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 단나(檀那)로다, 그러므로 무작(無作)의 삼신(三身)이란 말법(末法)의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이고, 무작(無作)의 삼신(三身)의 보호(寶號)를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하느니라. 수량품(壽量品)의 사(事)의 삼대사(三大事)란 이것이니라, 육즉(六卽)의 배립시(配立時)에는 이 품(品)의 여래(如來)는 이즉(理卽)의 범부(凡夫)이며, 머리에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를 받아서 모실 때는 명자즉(名字卽)이니라, 그 까닭은 처음으로 듣는 바의 제목(題目)이기 때문이다, 삼가 받들어 듣고 수행(修行)하는 것은 관행즉(觀行卽)이라, 이 관행즉(觀行卽)이란 사(事)의 일념삼천(一念三千)의 본존(本尊)을 관(觀)하는 것이니라, 그리하여 혹장(惑障)을 명복(冥伏)하는 것을 상사즉(相似卽)이라고 한다. 화타(化他)로 나가는 것을 분진즉(分眞卽)이라고 하며, 무작(無作)의 삼신(三身)의 부처라고 구경(究竟)한 것을 구경즉(究竟卽)의 부처라고 하느니라, 통틀어 복혹(伏惑)을 가지고 수량품(壽量品)의 극(極)으로 하지 않고 오직 범부(凡夫)의 당체본유(當體本有) 그대로를 이 품(品)의 극리(極理)라고 알아야만 한다, 무작(無作)의 삼신(三身)의 소작(所作)은 무엇인가라고 말할 때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운운(云云). 제이(第二) 여래비밀신통지력지사(如來秘密神通之力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무작삼신(無作三身)의 의문(依文)이니라, 이 문(文)에 있어서 중중(重重)의 상전(相傳)이 있다. 신통지력(神通之力)이란 아등중생(我等衆生)이 작작발발(作作發發)하게 행동(行動)하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53쪽)
는 바를 신통(神通)이라고 한다, 옥졸(獄卒)이 죄인(罪人)을 가책(苛責)하는 소리도 모두가 신통지력(神通之力)이니라, 생주이멸(生住異滅)의 삼라삼천(森羅三千)의 당체(當體) 모두가 신통지력(神通之力)의 체(體)이니라. 지금(至今)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의 의(意)는 즉신성불(卽身成佛)이라고 개각(開覺)하는 것을 여래비밀신통지력(如來秘密神通之力)이라고 하는 것이라, 성불(成佛)하는 이외(以外)에 신통(神通)과 비밀(秘密)이란 없느니라, 이 무작(無作)의 삼신(三身)을 일자(一字)를 가지고 얻었으니, 소위(所謂) 신(信)의 일자(一字)이니라, 따라서 경(經)에 가로되 「아등당신수불어(我等當信受佛語)」라고 신수(信受)의 이자(二字)에다 유의(留意)해야 하느니라.
제삼(第三) 아실성불이래(我實成佛已來) 무량무변등지사(無量無邊等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아실(我實)이란 석존(釋尊)의 구원실성도(久遠實成道)라는 것을 설(說)하셨다. 그러나 당품(當品)의 뜻은 아(我)란 법계(法界)의 중생(衆生)이며 십계(十界) 각각(各各)을 가리켜서 아(我)라고 하느니라, 실(實)이란 무작삼신(無作三身)의 부처라고 정(定)하고 이것을 실(實)이라고 한다, 성(成)이란 능성(能成) 소성(所成)이며 성(成)이란 연다는 의의(意義)이고, 법계(法界) 무작(無作)의 삼신(三身)의 부처라고 연 것이니라, 부처란 이것을 각지(覺知)함을 말하고, 이(已)란 과거(過去)이며 내(來)란 미래(未來)이니라, 이래(已來)의 말 속에 현재(現在)는 있느니라. 아실(我實)이라고 여신(成) 불(佛)로서 이(已)도 내(來)도 무량(無量)이며 무변(無邊)이니라. 백계천여(百界千如) 일념삼천(一念三千)이라고 설(說)했느니라. 백천(百千)의 이자(二字)는 백(百)은 백계(百界) 천(千)은 천여(千如)이며 이는 즉(卽) 사(事)의 일념삼천(一念三千)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수량품(壽量品)의 본주(本主)이니라, 통틀어서 적화(迹化)의 보살(菩薩)은 이 품(品)에 손을 대어 취급(取扱)할 수 없는 자(者)이니라. 그는 적표본리(迹表本裏)·이는 본면적리(本面迹裏)·그렇다고 하더라도 더욱이 당품(當品)은 말법(末法)의 요법(要法)이 아니로다. 그 까닭은 이 품(品)은 재세(在世)의 탈익(脫益)이요, 제목(題目)의 오자(五字)만이 당금(當今)의 하종(下種)이니라, 그러므로 재세(在世)는 탈익(脫益) 멸후(滅後)는 하종(下種)이며 따라서 하종(下種)을 가지고 말법(末法)의 근본(根本)으로 하느니라 운운(云云).
제사(第四) 여래여실지견(如來如實知見) 삼계지상(三界之相) 무유생사지사(無有生死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여래(如來)란 삼계(三界)의 중생(衆生)이며, 이 중생(衆生)을 수량품(壽量品)의 눈을 뜨고 보면 십계본유(十界本有)라고 여실(如實)히 지견(知見)했느니라, 삼계지상(三界之相)이란 생로병사(生老病死)이며 본유(本有)의 생사(生死)라고 보면 무유생사(無有生死)이다, 생사(生死)가 없으면 퇴출(退出)도 없고 다만 생사(生死)가 없음이 아니니라. 생사(生死)를 보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54쪽)
고 염리(厭離)함을 미(迷)라 하며 시각(始覺)이라 한다, 그리고 본유(本有)의 생사(生死)라고 지견(知見)함을 오(悟)라고 하며 본각(本覺)이라고 하느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할 때 본유(本有)의 생사(生死) 본유(本有)의 퇴출(退出)이라고 개각(開覺)하느니라. 또 가로되, 무(無)도 유(有)도 생(生)도 사(死)도 약퇴(若退)도 약출(若出)도 재세(在世)도 멸후(滅後)도 모두가 본유상주(本有常住)의 거동(擧動)이니라. 무(無)란 법계동시(法界同時)에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거동(擧動) 이외(以外)는 없느니라. 유(有)란 지옥(地獄)은 지옥(地獄)이 있는 그대로 십계본유(十界本有)의 묘법(妙法)의 전체(全體)이니라. 생(生)이란 묘법(妙法)의 생(生)이므로 수연(隨緣)이요, 사(死)란 수량(壽量)의 사(死)이므로 법계동시(法界同時)에 진여(眞如)이고, 약퇴(若退)인 고(故)로 멸후(滅後)이며 약출(若出)인 고(故)로 재세(在世)이니라, 그러므로 무사퇴멸(無死退滅)은 공(空)이고 유생출재(有生出在)는 가(假)이며 여래여실(如來如實)은 중도(中道)이니라. 무사퇴멸(無死退滅)은 무작(無作)의 보신(報身)이요, 유생출재(有生出在)는 무작(無作)의 응신(應身)이요, 여래여실(如來如實)은 무작(無作)의 법신(法身)이니라. 이 삼신(三身)은 나의 일신(一身)이며, 일신즉삼신명위비(一身卽三身名爲秘)란 이것이니라. 삼신즉일신(三身卽一身) 명위밀(名爲密)도 이 의(意)이니라, 그러므로 무작(無作)의 삼신(三身)의 당체(當體)의 연화(蓮華)의 부처란 니치렌(日蓮)의 제자단나(弟子檀那) 등(等)이니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보호(寶號)를 수지(受持)해 받들기 때문이니라 운운(云云).
제오(第五) 약불구주어세(若佛久住於世) 박덕지인(薄德之人) 부종선근(不種善根) 빈궁하천(貧窮下賤) 탐착오욕(貪著五欲) 입어억상(入於憶想) 망견망중지사(妄見網中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경문(經文)은 부처가 세상(世上)에 구주(久住)하신다면 박덕(薄德)한 사람은 선근(善根)을 심지 않는다, 그러하므로 망견망중(妄見網中)이라고 설(說)했느니라, 결국 이 박덕(薄德)이란 재세(在世)에 누락(漏落)된 중생(衆生)이 지금 멸후(滅後) 일본국(日本國)에 태어났는데, 소위(所謂) 염불(念佛) 선(禪) 진언(眞言) 등(等)의 방법(謗法)이니라, 부종선근(不種善根)이란 선근(善根)은 제목(題目)이며 부종(不種)이란 아직 갖지 않은 자(者)이다. 억상(憶想)이란, 사폐각포(捨閉閣抛) 제삼(第三)의 열등(劣等) 이와 같은 억상(憶想)이다. 망(妄)이란, 권교망어(權敎妄語)의 경교(經敎)이며 견(見)은 사견(邪見)이고 법화최제일(法華最第一)의 일(一)을 제삼(第三)으로 보는 것이 사견(邪見)이니라. 망중(網中)이란 방법불신(謗法不信)의 가(家)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이와 같은 망견(妄見)의 경(經)·망중(網中)의 가(家)를 떠난 자이니라 운운(云云).
제육(第六) 음타독약(飮他毒藥) 약발민란(藥發悶亂) 완전우지지사(宛轉于地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타(他)란 염불(念佛)·선(禪)·진언(眞言)의 방법(謗法)의 비구(比丘)이니라. 독약(毒藥)이란, 권교(權敎) 방편(方便)이고 법화(法華)의 양약(良藥)이 아닌 고(故)로 민란(悶亂)하는 것이며 민(悶)이란 숨이 끊어지는 것이니라. 수량품(壽量品)의 명(命)이 없는 고(故)로 민란(悶亂)하는 것이며, 완전우지(宛轉于地)란 아비지옥(阿鼻地獄)에 들어감이니라 운운(云云). 제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55쪽)
자음독(諸子飮毒)이란 석(釋)에 가로되 「사사(邪師)의 법(法)을 신수(信受)함을 이름하여 음독(飮毒)이라고 한다」라고. 제자(諸子)란 방법(謗法)이며 음독(飮毒)이란 미타(彌陀)·대일(大日) 등(等)의 권법(權法)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함은 독(毒)을 마시지 않음이니라.
제칠(第七) 혹실본심(或失本心) 혹불실자지사(或不失者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본심(本心)을 잃는다란 방법(謗法)이니라, 본심(本心)이란 하종(下種)이고 불실(不失)이란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이니라, 실(失)이란 본시(本是) 있는 것을 잃는다는 것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함은 본심(本心)을 잃지 않음이니라 운운(云云).
제팔(第八) 도사화합여자영복지사(??和合與子令服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경문(經文)은 공가중(空假中)의 삼제(三諦) 계정혜(戒定慧)의 삼학(三學)이니라. 색향미미(色香美味)의 양약(良藥)이다. 도(?)는 공제(空諦)이며 사(?)는 가제(假諦)이고, 화합(和合)은 중도(中道)이다, 여(與)는 수여(授與)이며 자(子)는 법화(法華)의 행자(行者)이고, 복용(服用)한다고 하는 것은 수지(受持)의 의(義)이니라. 이것을 차대양약색향미미개실구족(此大良藥色香美味皆悉具足)이라고 설(說)하였느니라. 개실(皆悉)의 이자(二字)는 만행만선(萬行萬善)·제바라밀(諸波羅蜜)을 구족(具足)한 대양약(大良藥)인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색향(色香) 등(等)이란 일색일향(一色一香)·무비중도(無非中道)로서 초목성불(草木成佛)이니라. 그러므로 제목(題目)의 오자(五字)에 일법(一法)도 구족(具足)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없으니 만약 복용(服用)하는 자(者)는 속제고뇌(速除苦惱)이니라. 그러므로 묘법(妙法)의 대양약(大良藥)을 복용(服用)함은 탐진치(貪瞋癡)의 삼독(三毒)의 번뇌(煩惱)의 병환(病患)을 제거(除去)하느니라. 법화(法華)의 행자(行者)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가 방법(謗法)의 공양(供養)을 받지 않음은 탐욕(貪欲)의 병(病)을 제거(除去)하느니라. 법화(法華)의 행자(行者)가 매리(罵?)를 당(當)한다 해도 인욕(忍辱)을 행(行)함은 진에(瞋?)의 병(病)을 제거(除去)하느니라.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는 시인어불도결정무유의(是人於佛道決定無有疑)라고 성불(成佛)을 각지(覺知)함은 우치(愚癡)의 번뇌(煩惱)를 치유(治癒)하느니라. 그러므로 대양약(大良藥)은 말법(末法)의 성불(成佛)의 감로(甘露)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함은 대양약(大良藥)의 본주(本主)이니라.
제구(第九) 독기심입실본심고지사(毒氣深入失本心故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독기심입(毒氣深入)이란 권교방법(權敎謗法)의 집정(執情)이 깊이 들어간 자(者)이니라. 이 때문에 법화(法華)의 대양약(大良藥)을 신수(信受)하지 않느니라. 복용(服用)시킨다 해도 토(吐)해 내는 것은 이위불미(而謂不美)라고 하여 맛이 없다고 하는 자(者)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함은 이위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56쪽)
)불미(而謂不美)의 자(者)가 아니니라.
제십(第十) 시호양약(是好良藥) 금류재차(今留在此) 여가취복(汝可取服) 물우불차지사(勿憂不差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시호양약(是好良藥)이란 혹(或)은 경교(經敎) 혹(或)은 사리(舍利)이니라, 그런데 말법(末法)에 있어서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호(好)란 삼세제불(三世諸佛)이 좋아하는 것은 제목(題目)의 오자(五字)이니라. 금류(今留)란 말법(末法)이며 차(此)란 일염부제중(一閻浮提中)에는 일본국(日本國)이니라. 여(汝)란 말법(末法)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이요, 취(取)란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할 때의 의식(儀式)이니라. 복용(服用)한다는 것은 봉창(奉唱)하는 것이니라, 복용(服用)함으로써 무작(無作)의 삼신(三身)이며, 시성정각(始成正覺)의 병환(病患)이 치유(治癒)되느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것이 이것이니라.
제십일(第十一) 자아득불래지사(自我得佛來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일구삼신(一句三身)을 전수(傳受)한 문(文)이라고 하느니라. 자(自)란 구계(九界)요 아(我)란 불계(佛界)이니라, 이 십계(十界)는 본유무작(本有無作)의 삼신(三身)으로서 출현(出現)하신 부처라고 하느니라. 자(自)도 아(我)도 득(得)하신 불(佛)이 출현(出現)하심은 십계본유(十界本有)의 명문(明文)이니라. 아(我)는 법신(法身)·불(佛)은 보신(報身)·내(來)는 응신(應身)이며 이 삼신(三身)·무시무종(無始無終)의 고불(古佛)로서 자득(自得)이니라. 무상보취불구자득(無上寶聚不求自得) 이를 생각할지어다. 따라서 즉(卽) 현본원수(顯本遠壽)의 설(說)은 길이 제교(諸敎)에는 없느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함은 자아득불래(自我得佛來)의 행자(行者)이니라 운운(云云).
제십이(第十二) 위도중생고(爲度衆生故) 방편현열반지사(方便現涅槃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 에 가로되, 열반경(涅槃經)은 법화경(法華經)에서 나왔다고 하는 경문(經文)이니라. 이미 방편(方便)이라고 설(說)해졌느니라 운운(云云).
제십삼(第十三) 상주차설법지사(常住此說法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상주(常住)란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의 주처(住處)이니라. 차(此)란 사바세계(娑婆世界)이며 산곡광야(山谷曠野)를 가리켜 차(此)라고 설(說)하시었다. 설법(說法)이란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언어(言語)의 음성(音聲)이 본유(本有)의 자수용지(自受用智)의 설법(說法)이니라. 말법(末法)에 들어와서 설법(說法)이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며,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의 설법(說法)이 이것이니라.
제십사(第十四) 시아급중승(時我及衆僧) 구출영추산지사(俱出靈鷲山之事)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57쪽)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영산일회(靈山一會) 엄연미산(儼然未散)의 문(文)이니라. 시(時)란 감응말법(感應末法)의 시(時)이고, 아(我)란 석존(釋尊)·급(及)이란 보살(菩薩)·성중(聖衆)을 중승(衆僧)이라고 설(說)하였으며, 구(俱)란 십계(十界)이고 영추산(靈鷲山)이란 적광토(寂光土)이니라. 시(時)에 아(我)도 급(及)도 중승(衆僧)도 다 같이 영추산(靈鷲山)에 나아가는 것이니라, 비밀(秘密)로 할지어다 비밀(秘密)로 할지어다. 본문(本門) 사(事)의 일념삼천(一念三千)의 명문(明文)이며, 어본존(御本尊)은 이 문(文)을 나타내셨느니라, 그러므로 구(俱)란 불변진여(不變眞如)의 이(理)이며 출(出)이란 수연진여(隨緣眞如)의 지(智)이고, 구(俱)란 일념(一念)이요 출(出)이란 삼천(三千)이니라 운운(云云). 또 가로되, 시(時)란 본시(本時) 사바세계(娑婆世界)의 시(時)이다, 하(下)는 십계완연(十界宛然)의 만다라(曼陀羅)를 나타내는 문(文)이니라. 그 까닭은 시(時)란 말법(末法) 제오시(第五時)의 시(時)이니라, 아(我)란 석존(釋尊)·급(及)은 보살(菩薩)·중승(衆僧)은 이승(二乘)·구(俱)란 육도(六道)이니라·출(出)이란 영산정토(靈山淨土)에 열출(列出)함이고 영산(靈山)이란 어본존(御本尊) 및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의 주소(住所)를 설(說)하느니라, 운운(云云).
제십오(第十五) 중생견겁진(衆生見劫盡)○이중견소진지사(而衆見燒盡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본문수량(本門壽量)의 일념삼천(一念三千)을 칭송(稱頌)하는 문(文)이니라, 대화소소시(大火所燒時)란 실의(實義)로는 번뇌(煩惱)의 대화(大火)이니라, 아차토안온(我此土安穩)이란 국토세간(國土世間)이며 중생소유락(衆生所遊樂)이란 중생세간(衆生世間)이고 보수다화과(寶樹多華菓)란 오음세간(五陰世間)이니라, 이는 즉(卽) 일념삼천(一念三千)을 분명(分明)하게 설(說)했느니라. 또 가로되 위에 말한 문(文)은 십계(十界)이고, 대화(大火)란 지옥계(地獄界)이며 천고(天鼓)란 축생(畜生)이고, 인(人)과 천(天)이란 인천(人天)의 이계(二界)이니라. 천(天)과 인(人)이 항상(恒常) 충만(充滿)하느니라. 우만다라화(雨曼陀羅華)란 성문계(聲聞界)이고, 원림(園林)이란 연각계(緣覺界)이며 보살계(菩薩界)란 급(及)의 일자(一字)이고, 불계(佛界)란 산불(散佛)이며, 수라(修羅)와 아귀계(餓鬼界)란 우포제고뇌(憂怖諸苦惱) 여시실충만(如是悉充滿)의 어귀(語句)에 섭(攝)하느니라, 이러한 것을 시제죄중생(是諸罪衆生)이라고 설(說)하시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수량품(壽量品)의 설(說)이 나타나고나면 즉개견아신(則皆見我身)이라 하여 일념삼천(一念三千)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이것이니라 운운(云云).
제십육(第十六) 아역위세부지사(我亦爲世父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아(我)란 석존(釋尊), 일체중생(一切衆生)의 부(父)이며, 주사친(主師親)에 있어서 부처에 입각(立脚)하고 경(經)에 입각(立脚)함. 부처의 입장에서란 적문(迹門)의 부처의 삼덕(三德)은 금차삼계(今此三界)의 문(文)이 이것이니라, 본문(本門)의 부처의 주(主)·사(師)·친(親)의 삼덕(三德)은 주(主)의 덕(德)은 아차토안온(我此土安穩)의 문(文)이며 사(師)의 덕(德)은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58쪽)
상설법교화(常說法敎化)의 문(文)이고 친(親)의 덕(德)은 이 아역위세부(我亦爲世父)의 문(文)이 이것이니라. 묘락대사(妙樂大師)는 수량품(壽量品)의 문(文)을 알지 못하는 자(者)는 부지은(不知恩)의 축생(畜生)이라고 석(釋)하시었다, 경(經)의 입장에서는 제경중(諸經中) 왕(王)은 주(主)의 덕(德)이고 능구일체중생(能救一切衆生)은 사(師)의 덕(德)이며, 또 여대범천왕(如大梵天王) 일체중생지부(一切衆生之父)의 문(文)은 부(父)의 덕(德)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일체중생(一切衆生)의 부(父)이니, 무간지옥(無間地獄)의 고(苦)를 구제(救濟)하는 까닭이니라 운운(云云), 열반경(涅槃經)에 가로되 「일체중생(一切衆生)이 이(異)의 고(苦)를 받음은 모두가 이는 여래일인(如來一人)의 고」라고 운운(云云). 니치렌(日蓮)이 말하되 일체중생(一切衆生)이 이(異)의 고(苦)를 받음은 모두가 이는 니치렌(日蓮) 일인(一人)의 고(苦)가 되느니라.
제십칠(第十七) 방일착오욕(放逸著五欲) 타어악도중지사(墮於惡道中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방일(放逸)이란 방법(謗法)의 이름이며, 입아비옥(入阿鼻獄)은 의심(疑心)없는 자(者)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이 경문(經文)을 면리(免離)했느니라 운운(云云).
제십팔(第十八) 행도불행도지사(行道不行道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십계(十界)의 중생(衆生)의 일을 설(說)한 것이며 행도(行道)는 사성(四聖)·불행도(不行道)는 육도(六道)이니라, 또 가로되, 행도(行道)는 수라(修羅) 인천(人天)·불행도(不行道)는 삼악도(三惡道)이니라, 결국 말법(末法)에 들어와서는 법화(法華)의 행자(行者)는 행도(行道)이며 방법(謗法)의 자(者)는 불행도(不行道)이니라. 도(道)란 법화경(法華經)이다. 천태(天台) 가로되 「불도(佛道)란 별(別)해서 지금의 경(經)을 가리킴」이라고,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함은 행도(行道)이며 부르지 않음은 불행도(不行道)이니라 운운(云云). 제십구(第十九) 매자작시념지사(每自作是念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매(每)란 삼세(三世)이고, 자(自)란 별(別)해서는 석존(釋尊) 총(?)해서는 십계(十界)이니라, 시념(是念)이란 무작본유(無作本有)의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일념(一念)이니라. 작(作)이란 이 작(作)은 유작(有作)의 작(作)이 아니며 무작본유(無作本有)의 작(作)이니라 운운(云云). 널리 십계본유(十界本有)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자(自)란 만법(萬法) 각기(各其)의 당체(當體)이니라. 시념(是念)이란 지옥(地獄)의 가책(呵責)의 소리·그 외(外)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염념(念念)·모두 이는 자수용보신(自受用報身)의 지(智)이며, 이를 염(念)이라고 말하느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염(念)은 대자비(大慈悲)의 염(念)이니라 운운(云云).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59쪽)
제이십(第二十) 득입무상도등지사(得入無上道等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무상도(無上道)란 수량품(壽量品)의 무작(無作)의 삼신(三身)이며, 이 외(外)에 성취불신(成就佛身)은 없느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성취불신(成就佛身)은 의심(疑心) 없느니라 운운(云云).
제이십일(第二十一) 자아게지사(自我偈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자(自)란 구계(九界)이며 아(我)란 불신(佛身)이고, 게(偈)란 도리법리(道理法理)이며 본유(本有)라고 도리(道理)를 밝힌 게송(偈頌)이니 깊이 이것을 사색(思索)할지니라. 도리(道理)의 실체(實體)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운운(云云).
제이십이(第二十二) 자아게시종지사(自我偈始終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자(自)란 시(始)이고 속성취불신(速成就佛身)의 신(身)은 종(終)이며, 시종(始終) 자신(自身)이고 중간(中間)의 문자(文字)는 수용(受用)이니라. 따라서 자아게(自我偈)는 자수용신(自受用身)이니 법계(法界)를 자신(自身)이라고 열고 법계자수용신(法界自受用身)이므로 자아게(自我偈)가 아니라 함은 없다. 원하는 대로 받아 쓰는 몸 자수용신(自受用身)이란 일념삼천(一念三千)이니라. 전교(傳敎) 가로되 「일념삼천즉(一念三千卽) 자수용신(自受用身)·자수용신(自受用身)이란 존형(尊形)을 초출(超出)한 부처라고·출존형불(出尊形佛)이란 무작(無作)의 삼신(三身)이라고 하는 것이니라」 운운(云云).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가 이것이니라 운운(云云).
제이십삼(第二十三) 구원지사(久遠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품(品)의 구극(究極)은 구원실성(久遠實成)이며 구원(久遠)이란 작용(作用)하지 않고 꾸며 갖추지 않고 본래 있는 그대로라는 의(義)이니라. 무작(無作)의 삼신(三身)이므로 처음으로 생긴 것이 아니니 이는 작용(作用)하지 않음이니라, 삼십이상(三十二相) 팔십종호(八十種好)를 구족(具足)하지 않았으니 이는 꾸며 갖추지 않은 것이고 본유상주(本有常住)의 부처이므로 본래(本來) 그대로이며 이것을 구원(久遠)이라고 하느니라. 구원(久遠)이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며 실로 열렸노라 실성무작(實成無作)이라고 열렸느니라 운운(云云).
제이십사(第二十四) 이 수량품(壽量品)의 소화(所化)의 국토(國土)와 수행지사(修行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당품(當品) 유포(流布)의 국토(國土)란 일본국(日本國)이며 통틀어서는 남염부제(南閻浮提)이니라. 소화(所化)란 일본국(日本國)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이고, 수행(修行)이란 무의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60쪽)
왈신(無疑曰信)의 신심(信心)을 말하며 수여(授與)의 인(人)이란 본화지용(本化地涌)의 보살(菩薩)이니라 운운(云云).
제이십오(第二十五) 건립어본존등지사(建立御本尊等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본존(本尊)의 의문(依文)이란 여래비밀신통지력(如來秘密神通之力)의 문(文)이니라. 계정혜(戒定慧)의 삼학(三學)은 수량품(壽量品)의 사(事)의 삼대비법(三大秘法) 이것이니라. 니치렌(日蓮)은 틀림없이 영산(靈山)에 있어서 면수구결(面授口決)하였느니라. 본존(本尊)이란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의 일신(一身)의 당체(當體)이니라 운운(云云).
제이십육(第二十六) 수량품(壽量品)의 대고중지사(對告衆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경문(經文)은 미륵보살(彌勒菩薩)이니라, 그렇다 하더라도 멸후(滅後)를 본(本)으로 하는 고(故)로 일본국(日本國)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이니라. 그 중에서도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가 이것이니라. 미륵(彌勒)이란 말법(末法) 법화(法華)의 행자(行者)를 말하는 것이니라, 미륵(彌勒)을 자씨(慈氏)라고 하며 법화(法華)의 행자(行者)를 가리킴이니라, 장안대사(章安大師) 가로되 「위피제악즉시피친(爲彼除惡卽是彼親)」이라고, 이 어찌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아닐소냐 운운(云云).
제이십칠(第二十七) 무작삼신지사(無作三身之事) 종자존형삼마야(種子尊形三摩耶)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존형(尊形)이란 십계본유(十界本有)의 형상(形像)이고 삼마야(三摩耶)란 십계(十界)가 소지(所持)한 물(物)이며, 종자(種子)란 신(信)의 일자(一字)이니라.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그대로를 말하는 것이며 삼마야(三摩耶)란 합장(合掌)이니라, 비밀(秘密)로 할지어다 비밀(秘密)로 할지어다 운운(云云). 분별공덕품(分別功德品) 삼개(三箇)의 대사(大事)
제일(第一) 기유중생(其有衆生) 문불수명(聞佛壽命) 장원여시(長遠如是) 내지능생(乃至能生) 일념신해(一念信解) 소득공덕(所得功德) 무유한량지사(無有限量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일념신해(一念信解)의 신(信)의 일자(一字)는 일체지혜(一切智慧)를 수득(受得)하는 바의 인종(因種)이니라. 신(信)의 일자(一字)는 명자즉(名字卽)의 위(位)이다, 따라서 신(信)의 일자(一字)는 최후품(最後品)의 무명(無明)을 자르는 이검(利劍)이니라. 신(信)의 일자(一字)는 수량품(壽量品)의 이(理) 현본(顯本)을 믿는 것이며, 해(解)란 사(事) 현본(顯本)을 해득(解得)하는 것이고,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61쪽)
이 사리(事理)의 현본(顯本)을 일념(一念)에 신해(信解)함이라. 일념(一念)이란 무작본유(無作本有)의 일념(一念)이니라. 이와 같이 신해(信解)하는 사람의 공덕(功德)은 한량(限量)이 있을 수 없느니라, 신(信)이 있는 곳에 해(解)가 있으며 해(解)가 있는 곳에 신(信)이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신(信)을 가지고 성불(成佛)을 결정(決定)하느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가 이것이니라 운운(云云). 제이(第二) 시즉능신수(是則能信受) 여시제인등(如是諸人等) 정수차경전지사(頂受此經典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법화경(法華經)을 머리에 받는다고 하는 명문(明文)이니라, 여시제인(如是諸人) 등(等)의 문(文)은 널리 일체중생(一切衆生)에 걸치느니라. 따라서 삼세시방(三世十方)의 제불(諸佛)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를 받아서 수지하여 성불(成佛)하시느니라. 따라서 앞의 수량품(壽量品)의 제목(題目)을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 제호(題號)를 쓰고 다음에 여래(如來)라고 표제(表題)를 썼느니라, 비밀(秘密)로 할지어다 운운(云云).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것은 이 까닭이니라 운운(云云).
제삼(第三) 불자주차지즉시불수용지사(佛子住此地則是佛受用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문(文)을 자수용(自受用)의 명문(明文)이라고 했느니라. 차지(此地)란 무작(無作)의 삼신(三身)의 의지(依地)이고, 불자(佛子)란 법화(法華)의 행자(行者)이며, 불자(佛子)는 보살(菩薩)이고 법화(法華)의 행자(行者)는 보살(菩薩)이며, 주(住)란 신해(信解)의 의(義)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묘법(妙法)의 지(地)에 주(住)하는 것이며, 부처의 수용(受用)의 신(身)이니라, 깊이 이것을 사색(思索)할지어다 운운(云云).
수희품(隨喜品) 이개(二箇)의 대사(大事)
제일(第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 수희공덕지사(隨喜功德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수(隨)란 사리(事理)에 수순(隨順)함을 말하고, 희(喜)란 자타(自他) 공(共)히 기뻐하는 것이니라. 사(事)란 오백진점(五百塵點)의 사(事) 현본(顯本)에 수순(隨順)함이고 이(理)란 이(理) 현본(顯本)에 따르는 것이며, 결국 수량품(壽量品)의 내증(內證)에 수순(隨順)함을 수(隨)라고 하느니라. 그리고 자타(自他) 공(共)히 지혜(智慧)와 자비(慈悲)가 있음을 희(喜)라고 한다, 결국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할 때 반드시 무작삼신(無作三身)의 부처로 되는 것을 희(喜)라고 하느니라. 그러하므로 수(隨)란 법(法)의 입장이고 희(喜)란 인(人)의 입장이니라, 인(人)이란 오백진점(五百塵點)의 고불(古佛)인 석존(釋尊)이며 법(法)이란 수량품(壽量品)의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62쪽)
라, 이에 따르고 기뻐함을 수희(隨喜)라고 하며, 통틀어서 수(隨)란 신(信)의 이명(異名)이니라 운운(云云). 오직 신심(信心)을 가리켜 수(隨)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권(二卷)에는 수순차경비기지분(隨順此經非己智分)이라고 설(說)하셨느니라 운운(云云).
제이(第二) 구기무취예(口氣無?穢) 우발화지향(優鉢華之香) 상종기구출지사(常從其口出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구기(口氣)란 제목(題目)이니라, 무취예(無?穢)란 미타(彌陀) 등(等)의 권교(權敎) 방편(方便) 무득도(無得道)의 교(敎)를 섞지 않음이니라, 우발화지향(優鉢華之香)이란 법화경(法華經)이며 말법(末法)인 지금은 제목(題目)이니라, 방편품(方便品)에 여우담발화(如優曇鉢華)를 가리켜 일념삼천(一念三千)이라고 했으니 이를 사색(思索)할지어다. 상(常)이란 삼세상주(三世常住)이며 기구(其口)란 법화(法華)의 행자(行者)의 입이고 출(出)이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함은 상종기구출(常從其口出)이니라 운운(云云).
법사공덕품(法師功德品) 사개(四箇)의 대사(大事)
제일(第一) 법사공덕지사(法師功德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법사(法師)란 오종법사(五種法師)이고 공덕(功德)이란 육근청정(六根淸淨)의 과보(果報)이니라, 결국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육근청정(六根淸淨)이니라, 그러므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법(法)의 스승으로 되어, 큰 덕(德)이 있느니라, 공(功)이란 행(幸)이라는 것이며 또한 악(惡)을 멸(滅)함을 공(功)이라 하고 선(善)을 생(生)함을 덕(德)이라고 하느니라, 공덕(功德)이란 즉신성불(卽身成佛)이고 또 육근청정(六根淸淨)이니라, 법화경(法華經)의 설문(說問)과 같이 수행(修行)함을 육근청정(六根淸淨)이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운운(云云).
제이(第二) 육근청정지사(六根淸淨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눈의 공덕(功德)이란 법화불신(法華不信)의 자(者)는 무간(無間)에 타재(墮在)하고 믿는 자(者)는 성불(成佛)한다고 보는 것을 가지고 눈의 공덕(功德)이라고 하느니라, 법화경(法華經)을 봉지(奉持)하는 곳에 눈의 팔백(八百)의 공덕(功德)을 얻느니라, 눈이란 법화경(法華經)이며 이 대승경전(大乘經典)은 제불(諸佛)의 안목(眼目)이라고.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눈의 공덕(功德)을 얻느니라 운운(云云). 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운운(云云).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63쪽)
제삼(第三) 우여정명경지사(又如淨明鏡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법화경(法華經)에 거울의 비유(譬喩)를 설(說)함은 이 명문(明文)이니라, 육근청정(六根淸淨)의 사람은 유리명경(瑠璃明鏡)과 같이 삼천세계(三千世界)를 본다는 경문(經文)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명경(明鏡)에 만상(萬像)을 비추는 것과 같이 지견(知見)하느니라, 이 명경(明鏡)이란 법화경(法華經)이고 별(別)해서는 보탑품(寶塔品)이니라, 또는 나의 일심(一心)의 명경(明鏡)이니라, 결국 유리(瑠璃)와 명경(明鏡)과의 두 가지의 비유(譬喩)를 설(說)하셨으니 신근청정(身根淸淨)의 하(下)이니라, 색심불이(色心不二)이므로 어느 것이나 청정(淸淨)의 덕분(德分)이라, 정(淨)이란 부정(不淨)에 대(對)하여 정(淨)이라고 하며 명(明)이란 무명(無明)에 대(對)하여 명(明)이라고 설(說)하느니라, 경(鏡)이란 일심(一心)이며 정(淨)은 가제(假諦)·명(明)은 공제(空諦)·경(鏡)은 중도(中道)이고, 실견제색상(悉見諸色像)의 실(悉)은 십계(十界)이니라. 결국 정명경(淨明鏡)이란 색심(色心)의 이법(二法),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체(體)이며, 정명경(淨明鏡)이란 신심(信心)이니라 운운(云云). 또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지견(知見)한다 함은 삼세간(三世間)을 말하느니라.
제사(第四) 시인지차경안주희유지지사(是人持此經安住希有地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시인(是人)이란 일본국(日本國)의 일체중생(一切衆生) 안에서는 법화(法華)의 행자(行者)이며, 희유지(希有地)란 수량품(壽量品)의 사리(事理)의 현본(顯本)을 가리키느니라. 이것을 또 분별품(分別品)에는 「불설희유법(佛說希有法)」이라고 설(說)하였으며 별(別)해서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의 희유(希有)의 지(地)란 말법홍통(末法弘通)의 명경(明鏡)인 본존(本尊)이니라. 총(總)해서는 이 품(品)의 육근청정(六根淸淨)의 공덕(功德)은 십신상사즉(十信相似卽)이고, 대고중(對告衆)의 상정진보살(常精進菩薩)은 십신(十信)의 제삼신(第三信)이라고 했느니라, 그렇지만 말법(末法)에 있어서는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가리켜 상정진보살(常精進菩薩)이라고 알아야 하며, 이 경(經)의 지자(持者)는 시즉정진(是則精進)인 까닭이니라.
상불경품(常不輕品) 삼십개(三十箇)의 대사(大事)
제일(第一) 상불경지사(常不輕之事)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64쪽)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상(常)의 자(字)는 삼세(三世)의 불경(不輕)의 일이니라. 불경(不輕)이란 일체중생(一切衆生)의 내증소구(內證所具)의 삼인불성(三因佛性)을 가리키며 불성(佛性)이란 법성(法性)이고 법성(法性)이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이니라 운운(云云).
제이(第二) 득대세보살지사(得大勢菩薩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 가로되, 득(得)이란 응신(應身)이고 대(大)란 법신(法身)이며 세(勢)란 보신(報身)이니라. 또 득(得)이란 가제(假諦)이고 대(大)란 중도(中道)이며 세(勢)란 공제(空諦)이고 원융(圓融)의 삼제삼신(三諦三身)이니라.
제삼(第三) 위음왕지사(威音王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위(威)란 색법(色法)이고 음(音)이란 심법(心法)이며, 왕(王)이란 색심불이(色心佛二)를 왕(王)이라고 하느니라. 말법(末法)에 들어와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이것이 곧 위음왕(威音王)이니라 운운(云云). 그 까닭은 음(音)이란 일체(一切) 권교(權敎)의 제목(題目) 등(等)이고, 위(威)란 수제(首題)의 오자(五字)이며 왕(王)이란 법화(法華)의 행자(行者)이니라 운운(云云). 법화(法華)의 제목(題目)은 사자(獅子)가 짖는 것과 같고 여경(餘經)은 여수(餘獸)의 소리와 같으며, 제경중(諸經中) 왕(王)인 고(故)로 왕(王)이라고 하느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함은 위음왕불(威音王佛)이니라 운운(云云).
제사(第四) 범유소견지사(凡有所見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지금 일본국(日本國)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을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의 기(機)라고 지견(知見)하느니라 운운(云云).
제오(第五) 아심경여등(我深敬汝等) 불감경만(不敢輕慢) 소이자하(所以者何) 여등개행보살도(汝等皆行菩薩道) 당득작불지사(當得作佛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이십사자(二十四字)와 묘법(妙法)의 오자(五字)는 다르지만 그 의(意)는 같은 것이며 이십사자(二十四字)는 약법화경(略法華經)이니라.
제육(第六) 단행예배지사(但行禮拜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예배(禮拜)란 합장(合掌)이고, 합장(合掌)이란 법화경(法華經)이며 이는 즉(卽) 일념삼천(一念三千)이니라, 그러하므로 부전독송경전단행예배(不專讀誦經典但行禮拜)라고 하느니라.
제칠(第七) 내지원견지사(乃至遠見之事)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65쪽)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위의 범유소견(凡有所見)의 견(見)은 내증소구(內證所具)의 불성(佛性)을 본다는 것이니라, 이것은 이(理)이며 원견(遠見)의 견(見)은 사중(四衆)이라고 하는 것이므로 사(事)이니라, 따라서 상(上)은 심법(心法)을 보며 지금은 색법(色法)을 본다, 색법(色法)은 본문(本門)의 개오(開悟) 사일개회(四一開會)이니라. 심법(心法)을 본다면 적문(迹門)의 의(意)이며 또 사일개회(四一開會)이니라, 원(遠)의 일자(一字)는 수량품(壽量品)의 구원(久遠)인 고(故)로 고왕예배(故王禮拜)라고 했느니라 운운(云云).
제팔(第八) 심부정자지사(心不淨者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방법(謗法)하는 자(者)는 색심이법(色心二法) 공(共)히 부정(不淨)이니라, 먼저 심법부정(心法不淨)이란 문(文)은 지금 이 심부정자(心不淨者)니라, 또 신부정(身不淨)이란 문(文)은 비유품(譬喩品)에「신상취처구예부정(身常臭處垢穢不淨)」이라고 했느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 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색심(色心) 공(共)히 청정(淸淨)하니라, 신정(身淨)은 법사공덕품(法師功德品)에 가로되 「약지법화경기신심청정(若持法華經其身甚淸淨)」의 문(文)이니라, 심정(心淨)이란 제바품(提婆品)에 가로되 「정심신경(淨心信敬)」이라고 운운(云云). 정(淨)이란 법화경(法華經)의 신심(信心)이며 부정(不淨)이란 방법(謗法)이니라 운운(云云).
제구(第九) 언시무지비구지사(言是無智比丘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문(文)은 법화경(法華經)의 명문(明文)이니라, 상만(上慢)의 사중(四衆)은 불경보살(不輕菩薩)을 무지(無智)의 비구(比丘)라고 매리(罵?)하였다. 범유소견(凡有所見)의 보살(菩薩)을 무지(無智)라고 하는 것은 제육천(第六天)의 마왕(魔王)의 소위(所爲)이니라. 말법(末法)에 들어와서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무지(無智)의 비구(比丘)라고 비방(誹謗)당한다는 것은 경문(經文)의 명경(明鏡)이니라, 무지(無智)를 가지고 법화경(法華經)의 기(機)로 정(定)하였느니라.
제십(第十) 문기소설개신복수종지사(聞其所說皆信伏隨從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문(聞)이란 명자즉(名字卽)이며 결국(結局)은 이강독지(而强毒之)의 제목(題目)이니라. 개(皆)란 상만(上慢)의 사중(四衆) 등(等)이며 신(信)이란 무의왈신(無疑曰信)이고 복(伏)이란 법화(法華)에 귀복(歸伏)하는 것이며, 수(隨)란 마음을 법화경(法華經)에 옮기는 것이고 종(從)이란 몸을 이 경(經)에 옮기는 것이니라. 결국(結局)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행자(行者)는 말법(末法)의 불경보살(不輕菩薩)이니라.
제십일(第十一) 어사중중설법심무소외지사(於四衆中說法心無所畏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사중(四衆)이란 일본국중(日本國中)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이고 설법(說法)이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심무소외(心無所畏)란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66쪽)
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는 바의 절복(折伏)이니라 운운(云云).
제십이(第十二) 상불경보살기이인호즉아신시지사(常不輕菩薩豈異人乎則我身是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과거(過去)의 불경보살(不輕菩薩)은 금일(今日)의 석존(釋尊)이니라, 석존(釋尊)은 수량품(壽量品)의 교주(敎主)이고 수량품(壽量品)의 교주(敎主)란 우리들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들의 일이며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는 불경(不輕)이니라 운운(云云).
제십삼(第十三) 상불치불불문법불견승지사(常不値佛不聞法不見僧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문(文)은 불경보살(不輕菩薩)을 경천(輕賤)하는 고(故)로 삼보(三寶)를 배견(拜見)하지 못함이 이백억겁(二百億劫) 지옥(地獄)에 떨어져서 대고뇌(大苦惱)를 받는다고 했느니라. 지금 말법(末法)에 들어와서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를 경천(輕賤)하는 것은 그보다 더함이니라. 그는 천겁(千劫) 이는 무수겁(無數劫)에 이르며, 말법(末法)의 부처란 범부(凡夫)이고 범부승(凡夫僧)이니라, 법(法)이란 제목(題目)이며 승(僧)이란 우리들 행자(行者)이니라, 부처라고도 하며 또 범부승(凡夫僧)이라고도 하느니라, 심각원리명지위불(深覺圓理名之爲佛)이기 때문이며 원리(圓理)란 법화경(法華經)이니라 운운(云云).
제십사(第十四) 필시죄이부우상불경보살지사(畢是罪已復遇常不輕菩薩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만약(萬若) 법화(法華) 비방(誹謗)의 죄과(罪過)를 고치고 신복수종(信伏隨從)한다 해도 얕은 상태로는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느니라. 선방(先謗)이 강(强)하기 때문에 천겁(千劫)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져서 후(後)에 나올 때가 되어 또 니치렌(日蓮)을 만나게 될 것이니, 부우(復遇) 니치렌(日蓮)으로 되느니라.
제십오(第十五) 어여래멸후등지사(於如來滅後等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불경보살(不輕菩薩)의 수행(修行)은 이와 같으며 부처의 멸후(滅後)에 오종(五種)으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를 수행(修行)하라고 쓰여 있느니라. 틀림없이 시고(是故)로부터 아래 이십오자(二十五字)는 말법(末法)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의 일이니라. 이미 시고(是故)라고 다짐해 놓고 어여래멸후(於如來滅後)라고 설(說)하시었는데 유통(流通)의 품(品)이기 때문이니라, 총(?)해서는 유통(流通)이란 미래당금(未來當今)을 위함이니라. 법화경일부(法華經一部)는 일왕(一往)은 재세(在世)를 위함이요 재왕(再往)은 말법당금(末法當今)을 위함이라, 그 까닭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는 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이 공(共)히 허락하여 미래멸후(未來滅後)의 자(者)를 위(爲)함이니라. 품품(品品)의 법문(法門)은 제목(題目)의 용(用)이며 체(體)의 묘법(妙法)·말법(末法)의 용(用)이라면 어찌 용(用)의 품품(品品)이 다르겠느뇨. 이 법문(法門)은 비밀(秘密)로 할지어다 비밀(秘密)로 할지어다. 천태(天台)의 「강유(綱維)를 끌어당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67쪽)
기는데 어찌 망목(網目)이 움직이지 않을 리 없는 것과 같다」등(等)이라고 석(釋)함은 이 의(意)이니라. 묘락대사(妙樂大師)는「약(略)하여 경제(經題)를 들면 현(玄)에 일부(一部)를 포함한다」라고, 이런 것을 모르는 자(者)는 말법(末法)의 홍통(弘通)에 부족(不足)한 자(者)이니라.
제십육(第十六) 차품(此品)의 시(時)의 불경보살(不輕菩薩)의 체지사(體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불경보살(不輕菩薩)이란 십계(十界)의 중생(衆生)이니라, 삼세상주(三世常住)의 예배(禮拜)의 행(行)을 세우는 것이며 말하는 바의 언어(言語)는 묘법(妙法)의 음성(音聲)이니라. 옥졸(獄卒)이 장(杖)을 들고 죄인(罪人)을 가책(呵責)함이 체(體)의 예배(禮拜)이고 감(敢)히 경만(輕慢)하지 않느니라, 죄인(罪人)이 나를 책한다고 생각한다면 불경보살(不輕菩薩)을 가책(呵責)하는 것이며 절복(折伏)의 행(行)이 이것이니라.
제십칠(第十七) 불경보살(不輕菩薩)의 예배주처지사(禮拜住處之事)
이에 대하여 십사개소(十四箇所)의 예배주처(禮拜住處)의 일이 있음.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예배(禮拜)의 주처(住處)란 다보탑중(多寶塔中)의 예배(禮拜)이니라, 그 까닭은 탑파(塔婆)란 오대(五大)의 소성(所成)이고 오대(五大)란 지수화풍공(地水火風空)이며 이것을 다보(多寶)의 탑(塔)이라고도 하느니라. 법계(法界)가 넓다 하지만 이 오대(五大)에 불과(不過)한 것이로다. 그러므로 탑중(塔中)의 예배(禮拜)라고 상전(相傳)하느니라, 비밀(秘密)로 할지어다 비밀(秘密)로 할지어다 운운(云云).
제십팔(第十八) 개시오입(開示悟入) 예배주처지사(禮拜住處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개시오입(開示悟入)의 사불지견(四佛知見)을 주처(住處)로 하느니라, 그러므로 방편품(方便品)의 이 문(文)을 예배(禮拜)의 주처(住處)라고 하며, 이것은 내(內)에 불경(不輕)의 해(解)를 품는다고 석(釋)했느니라, 해(解)란 정인불성(正因佛性)을 구족(具足)한다고 석(釋)함이며 개불지견(開佛知見)이란 이 불성(佛性)을 열게 하기 위해서 부처는 출현(出現)하시느니라.
제십구(第十九) 매자작시념(每自作是念)의 문(文) 예배주처지사(禮拜住處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매(每)의 자(字)는 삼세(三世)이며 염(念)이란 일체중생(一切衆生)의 불성(佛性)을 염(念)하셨느니라. 따라서 속성취불신(速成就佛身)과 개당작불(皆當作佛)과는 같은 일이며 따라서 이 일문(一文)을 상전(相傳)했느니라, 천태대사(天台大師)는 「개삼현일(開三顯一)○개근현원(開近顯遠)」이라고 석(釋)하셨다. 비밀(秘密)로 할지니라 비밀(秘密)로 할지니라 운운(云云).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68쪽)
제이십(第二十) 아본행보살도(我本行菩薩道)의 문(文) 예배주처지사(禮拜住處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아(我)란 본인묘(本因妙)의 시(時)를 가리키느니라, 본행보살도(本行菩薩道)의 문(文)은 불경보살(不輕菩薩)이며, 이것을 예배(禮拜)의 주처(住處)라고 가리키느니라.
제이십일(第二十一) 생로병사(生老病死) 예배주처지사(禮拜住處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일체중생(一切衆生)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염리(厭離)하지 않고 무상천멸(無常遷滅)의 당체(當體)에 미혹(迷惑)함으로써 후세보리(後世菩提)를 각지(覺知)하지 못함이라. 이를 나타낼 때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이라고 가르치는 당체(當體)를 예배(禮拜)라고 하느니라. 좌우(左右)의 양수(兩手)를 벌릴 때는 번뇌생사(煩惱生死) 상만불경(上慢不輕) 각별(各別)이니라, 예배(禮拜)할 때 양수(兩手)를 합(合)하는 것은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이니라. 상만(上慢)의 사중(四衆)의 소구(所具)의 불성(佛性)도 불경소구(不輕所具)의 불성(佛性)도 동일종(同一種)의 묘법(妙法)이라고 예배(禮拜)하느니라 운운(云云).
제이십이(第二十二) 법성예배주처지사(法性禮拜住處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불경보살(不輕菩薩)·법성진여(法性眞如)의 삼인불성(三因佛性)·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이십사자(二十四字)를 근본(根本)으로 하여 무명(無明)의 상만(上慢)의 사중(四衆)을 예배(禮拜)하는 것은 온재중생(?在衆生)의 불성(佛性)을 예배(禮拜)하는 것이니라 운운(云云).
제이십삼(第二十三) 무명예배주처지사(無明禮拜住處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자타(自他)의 격의(隔意)를 세워 그는 상만(上慢)의 사중(四衆)·나는 불경(不輕)이라고 한다, 불경(不輕)은 선인(善人)·상만(上慢)은 악인(惡人)이라고 선악(善惡)을 세우는 것은 무명(無明)이니라. 여기에 입각(立脚)해서 예배(禮拜)의 행(行)을 할 때 선악불이(善惡不二)·사정일여(邪正一如)의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예배(禮拜)하느니라 운운(云云).
제이십사(第二十四) 연화(蓮華)의 이자(二字) 예배주처지사(禮拜住處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연화(蓮華)란 인과(因果)의 이법(二法)이니라, 악인(惡因)이 있으면 악과(惡果)를 느끼고 선인(善因)이 있으면 선과(善果)를 느끼며, 내증(內證)에는 여등(汝等) 삼인불성(三因佛性)의 선인(善因)이 있느니라. 사(事)로 현현(顯現)할 때는 선과(善果)로 되어 개당작불(皆當作佛)하리라고 예배(禮拜)하시느니라 운운(云云).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69쪽)
제이십오(第二十五) 실보토(實報土) 예배주처지사(禮拜住處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실보토(實報土)는 종(縱)의 시(時)는 보살(菩薩)의 주처(住處)이니라, 따라서 불경보살(不輕菩薩)의 주처(住處)를 실보토(實報土)로 정(定)하여 여기에 예배행(禮拜行)을 세웠으므로 실보토(實報土)는 예배(禮拜)의 주처(住處)이니라 운운(云云).
제이십육(第二十六) 자비(慈悲)의 이자(二字) 예배주처지사(禮拜住處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불경예배(不輕禮拜)의 행(行)은 개당작불(皆當作佛)이라고 가르치는 고(故)로 자비(慈悲)이니라. 이미 장목와석(杖木瓦石)을 가지고 타척(打擲)하여도 이강독지(而强毒之)함은 자비(慈悲)로부터 일어났느니라. 불심(佛心)이란 대자비심(大慈悲心) 이것이라고 설(說)해 있으므로 예배(禮拜)의 주처(住處)는 자비(慈悲)이니라 운운(云云).
제이십칠(第二十七) 예배주처(禮拜住處) 분진즉지사(分眞卽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보살(菩薩)은 분진즉(分眞卽)의 위(位)라고 정(定)하느니라. 이 위(位)에 서서 이즉(理卽)의 범부(凡夫)를 예배(禮拜)했으니 이에 의하여 이즉(理卽)의 범부(凡夫)이므로 이 수기(授記)를 받지 아니하고 무지(無智)의 비구(比丘)라고 비방(誹謗)했느니라 운운(云云).
제이십팔(第二十八) 구경즉(究竟卽) 예배주처지사(禮拜住處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범유소견(凡有所見)의 견(見)은 불지견(佛知見)이니라. 불지견(佛知見)을 가지고 상만(上慢)의 사중(四衆)을 예배(禮拜)하므로 구경즉(究竟卽)을 예배(禮拜)의 주처(住處)로 정(定)하는 것이니라 운운(云云).
제이십구(第二十九) 법계예배주처지사(法界禮拜住處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법계(法界)에 서서 예배(禮拜)함이라 법계(法界)란 넓은 것도 아니고 좁은 것도 아니로다. 대체로 법(法)이란 제법(諸法)이고 계(界)란 경계(境界)이니라. 지옥계내지(地獄界乃至) 불계(佛界) 각각(各各) 계(界)에 합치(合致)하므로 불경보살(不輕菩薩)은 불경보살(不輕菩薩)의 계(界)에 합치(合致)하고 상만(上慢)의 사중(四衆)은 사중(四衆)의 계(界)에 합치(合致)하느니라, 따라서 법계(法界)가 법계(法界)를 예배(禮拜)하는 것이며 자타불이(自他不二)의 예배(禮拜)이니라. 그 까닭은 불경보살(不輕菩薩)이 사중(四衆)을 예배(禮拜)하면 상만(上慢)의 사중소구(四衆所具)의 불성(佛性) 또한 불경보살(不輕菩薩)을 예배(禮拜)하느니라. 거울을 보고 예배(禮拜)할 때 떠오른 그림자 또한 나를 예배(禮拜)하느니라 운운(云云).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70쪽)
제삼십(第三十) 예배주처(禮拜住處) 인욕지지사(忍辱地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미 상만(上慢)의 사중(四衆)이 매리(罵?) 진에(瞋?)를 하며 허망(虛妄)의 수기(授記)라고 비방(誹謗)했지만 불생진에(不生瞋?)라고 설(說)하므로 인욕지(忍辱地)에 주(住)하여 예배(禮拜)의 행(行)을 세우느니라 운운(云云). 처음의 一의 주처(住處)는 세간일반(世間一般)의 학자(學者)도 알고 있으나 후(後)의 십삼개소(十三箇所)는 당세(當世)의 학자(學者)는 알지 못하는 일이니라 운운(云云). 이상(已上) 십사개조(十四箇條)의 예배(禮拜)의 주처(住處)이니라 운운(云云).
신력품팔개(神力品八箇)의 대사(大事)
제일(第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 여래신력지사(如來信力之事)
문구(文句)의 十에 가로되, 신(神)은 불측(不測)에 이름하고 역(力)은 간용(幹用)에 이름하며 불측(不測)은 즉(卽) 천연(天然)의 체(體)가 깊고 간용(幹用)은 즉(卽) 전변(轉變)의 힘이 크니라, 차중(此中)·심법(深法)을 부촉(付屬)하기 위(爲)하여 십종(十種)의 대력(大力)을 나타내는 고(故)로 신력품(神力品)이라 이름한다고.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는 석존(釋尊)의 묘법(妙法)이 아니니라. 이미 이 품(品)의 시(時) 상행보살(上行菩薩)에게 부촉(付屬)하셨기 때문이니라. 대체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를 상행보살(上行菩薩)에게 부촉(付屬)하시는 것은 보탑품시(寶塔品時)에 일이 일어나서·수량품시(壽量品時)에 일이 나타나고·신력촉루(神力屬累)의 시(時)에 일이 끝났느니라. 여래(如來)란 위의 수량품(壽量品)의 여래(如來)이며, 신력(神力)이란 십종(十種)의 신력(神力)이니, 결국(結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는 신(神)과 역(力)이니라, 신력(神力)이란 위의 수량품시(壽量品時)의 여래비밀신통지력(如來秘密神通之力)의 문(文)과 같은 것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제목(題目)이며 이 십종(十種)의 신력(神力)은 재세멸후(在世滅後)에 걸치느니라, 그렇지만 십종(十種) 다같이 멸후(滅後)에 한(限)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니라. 또 가로되,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여래(如來)와 신(神)과 역(力)의 품(品)이라고 알지어다 운운(云云). 여래(如來)란 일체중생(一切衆生)이며 수량품(壽量品)과 같다. 따라서 석(釋)에도 여래(如來)란 위에 석(釋)했노라고 말하였으며, 이 신(神)이란 산왕칠사(山王七社) 등(等)이니 이 요지(要旨)를 깊이 사색(思索)할지니라 운운(云云).
제이(第二) 출광장설지사(出廣長舌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광(廣)이란 적문(迹門)·장(長)이란 본문(本門)·설(舌)이란 중도법성(中道法性)이고, 십법계(十法界) 묘법(妙法)의 공덕(功德)이므로 광(廣)이라 하며 종(縱)으로 높기 때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71쪽)
문에 장(長)이라고 하느니라, 광(廣)이란 삼천진점(三千塵點)부터 이래(已來)의 묘법(妙法)·장(長)이란 오백진점이래(五百塵點已來)의 묘법(妙法)·다같이 광장설(廣長舌)이니라 운운(云云).
제삼(第三) 시방세계(十方世界) 중보수하(衆寶樹下) 사자좌상지사(師子座上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시방(十方)이란 십계(十界)이고, 이 하(下)에 있어서 초목성불(草木成佛) 분명(分明)하니라, 사자(師子)란 사(師)는 사장(師匠) 자(子)는 제자(弟子)이며 좌상(座上)이란 적광토(寂光土)이고 십계즉(十界卽) 본유(本有)의 적광(寂光)인 국토(國土)이니라 운운(云云).
제사(第四) 만백천세지사(滿百千歲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만(滿)이란 법계(法界)이고 백(百)은 백계(百界)이며 천(千)은 천여(千如)이고 일념삼천(一念三千)을 만백천세(滿百千歲)라고 설(說)하느니라 운운(云云). 일시(一時)도 일념(一念)도 만백천세(滿百千歲)로서 십종(十種)의 신력(神力)을 나타내는 것이며, 십종(十種)의 신력(神力)이란 십계(十界)의 신력(神力)이니라, 십계각각(十界各各)의 신력(神力)은 일종(一種)의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운운(云云).
제오(第五) 지개육종진동기중중생(地皆六種震動其中衆生) ○중보수하지사(衆寶樹下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지(地)란 국토세간(國土世間)이고 기중중생(其中衆生)이란 중생세간(衆生世間)이며 중보수하(衆寶樹下)란 오음세간(五陰世間)이니 일념삼천(一念三千)이 분명(分明)하니라 운운(云云).
제육(第六) 사바시중(裟婆是中) 유불명(有佛名) 석가모니불지사(釋迦牟尼佛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본화(本化)가 홍통(弘通)하는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대인욕(大忍辱)의 힘을 가지고 홍통(弘通)하는 것을 사바(裟婆)라고 하느니라. 인욕(忍辱)은 적광토(寂光土)이고, 이 인욕(忍辱)의 마음을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라 하였고 사바(裟婆)란 감인세계(堪忍世界)라고 하느니라 운운(云云).
제칠(第七) 사인행세간(斯人行世間) 능멸중생암지사(能滅衆生闇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사인(斯人)이란 상행보살(上行菩薩)이며 세간(世間)이란 대일본국(大日本國)이고, 중생암(衆生闇)이란 방법(謗法)의 대중병(大重病)이니라, 능멸(能滅)의 체(體)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며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가 이것이니라 운운(云云).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72쪽)
제팔(第八) 필경주일승(畢竟住一乘)○시인어불도(是人於佛道) 결정무유의지사(決定無有疑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필경(畢竟)이란 광선유포(廣宣流布)이니라, 주일승(住一乘)이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일법(一法)에 주(住)해야 한다는 것이고 시인(是人)이란 명자즉(名字卽)의 범부(凡夫)이며 불도(佛道)란 구경즉(究竟卽)이고 의(疑)란 근본의혹(根本疑惑)의 무명(無明)을 가리키느니라. 말법당금(末法當今)은 이 경(經)을 수지(受持)하는 일행(一行)만으로써 성불(成佛)한다고 정(定)하느니라 운운(云云).
촉루품삼개(囑累品三箇)의 대사(大事)
제일(第一) 종법좌기지사(從法座起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기(起)란 탑중(塔中)의 좌(座)에서 일어나 탑외(塔外)의 의식(儀式)이며 삼마(三摩)의 부촉(付囑)이 있느니라, 삼마(三摩)의 부촉(付囑)이란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 삼제(三諦) 삼관(三觀)이라고 부촉(付囑)하신 것이니라 운운(云云).
제이(第二) 여래시(如來是) 일체중생지(一切衆生之) 대시주지사(大施主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여래(如來)란 본법불가사의(本法不可思議)의 여래(如來)이므로 이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가리키느니라, 대시주(大施主)의 시(施)란 말법당금(末法當今) 유포(流布)하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주(主)란 상행보살(上行菩薩)의 일이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그렇지만 당품(當品)은 적문부촉(迹門付囑)의 품(品)이며, 상행보살(上行菩薩)을 상수(上首)로 하여 부촉(付囑)하시는 고로 상행보살(上行菩薩)의 본의(本意)이시라고 보았느니라 운운(云云).
제삼(第三) 여세존(如世尊) 칙당구봉행지사(勅當具奉行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제보살(諸菩薩) 등(等)의 서언(誓言)의 문(文)이니라, 제천선신(諸天善神) 보살(菩薩) 등(等)을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가 간효(諫曉)함은 이 문(文)에 의(依)함이니라 운운(云云).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73쪽)
약왕품육개(藥王品六箇)의 대사(大事)
제일(第一) 불여수지(不如受持) 차법화경(此法華經) 내지일사구게지사(乃至一四句偈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법화경(法華經)이란 일경(一經) 이십팔품(二十八品)이며, 일사구게(一四句偈)란 제목(題目)의 오자(五字)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니라 운운(云云).
제이(第二) 십유지사(十喩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십유(十喩)란 십계(十界)이니라, 이 산(山)밑에 지옥계(地獄界)를 포함(包含)하였다, 천류(川流) 강하(江河) 아귀(餓鬼) 축생(畜生)을 섭(攝)하였고·일월(日月)밑에 수라(修羅)를 포함하였으며 제석(帝釋) 범천(梵天)은 천계(天界)이고·범부인(凡夫人)이란 인간(人間)이니라. 성문(聲聞)이란 사향(四向) 사과(四果)의 아라한(阿羅漢)이고·연각(緣覺)이란 벽지불중(?支佛中)이라고 설(說)해졌느니라, 보살(菩薩)은 보살위(菩薩爲) 제일(第一)이라고 했으며 불계(佛界)는 여불위제법왕(如佛爲諸法王)이라고 쓰였느니라, 이 십계(十界)를 십유(十喩)라고 열거(列擧)해서 교상(敎相)을 분별(分別)하여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어일불승(於一佛乘)에서 분별설삼(分別說三)할 때 이와 같이 열거(列擧)하였느니라, 따라서 일념삼천(一念三千)의 법문(法門)이며 일념삼천(一念三千)은 발고여락(拔苦與樂)이니라.
제삼(第三) 이일체고(離一切苦) 일체병통(一切病痛) 능해일체(能解一切) 생사지박지사(生死之縛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법화(法華)의 심(心)은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이니라, 이해(離解)의 이자(二字)는 이 설상(說相)에 위배(違背)됨이니, 따라서 이(離)의 자(字)를 명(明)이라고 읽느니라. 본문수량(本門壽量)의 혜안(慧眼)이 열리고 보면 본래본유(本來本有)의 병통고뇌(病痛苦惱)라고 분명(分明)해지니 따라서 자수용보신(自受用報身)의 지혜(智慧)이니라, 해(解)란 우리들의 생사(生死)는 지금 시작(始作)된 생사(生死)가 아니라, 본래본유(本來本有)의 생사(生死)이니라, 시각(始覺)의 사박(思縛)을 푸느니라 운운(云云). 이해(離解)의 이자(二字)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운운(云云).
제사(第四) 화불능소(火不能燒) 수불능표지사(水不能漂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화(火)란 아비(阿鼻)의 화염(火炎)이고, 수(水)란 홍련(紅蓮)의 얼음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이와 같이 되느니라 운운(云云).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74쪽)
제오(第五) 제여원적(諸餘怨敵) 개실최멸지사(皆悉?滅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원적(怨敵)이란 염불(念佛)·선(禪)·진언(眞言) 등(等)의 방법(謗法)의 사람이고, 최멸(?滅)이란 법화절복(法華折伏) 파권문리(破權門理)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함이 이것이니라 운운(云云).
제육(第六) 약인유병(若人有病) 득문시경(得聞是經) 병즉소멸(病卽消滅) 불로불사지사(不老不死之事)
문구(文句)의 십(十)에 가로되, 여기에 관해(觀解)를 사용(使用)할 것이니라고.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약인(若人)이란 상(上)·불과(佛果)로부터 하(下)·지옥(地獄)의 죄인(罪人)까지 이것을 포함(包含)해야 하느니라. 병(病)이란 삼독(三毒)의 번뇌(煩惱)·불보살(佛菩薩)에 있어서도 이것은 있느니라. 불로(不老)는 석존(釋尊) 불사(不死)는 지용(地涌)의 유(類)이니라, 이것은 멸후(滅後) 당금(當今)의 중생(衆生)을 위해서 설(說)해진 것이로다. 따라서 병(病)이란 방법(謗法)이니라. 이 경(經)을 수지(受持)해 받드는 자(者)는 병즉소멸(病卽消滅) 의심(疑心) 없느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가 이것이니라 운운(云云).
묘음품삼개(妙音品三箇)의 대사(大事)
제일(第一) 묘음보살지사(妙音菩薩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묘음보살(妙音菩薩)이란 십계(十界)의 중생(衆生)이니라. 묘(妙)란 불가사의(不可思議)이고 음(音)이란 일체중생(一切衆生)이 발(發)하는 바의 언어음성(言語音聲)이 묘법(妙法)의 음성(音聲)이고 삼세상주(三世常住)의 묘음(妙音)이니라. 소용(所用)에 따라서 제사(諸事)를 설법(說法)함은 자비(慈悲)이며 이것을 보살(菩薩)이라고 하느니라. 또 가로되, 묘음(妙音)이란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것은 말법당금(末法當今)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음성(音聲)이니라, 그 까닭은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의 묘음(妙音)이니라 운운(云云).
제이(第二) 육계백호지사(肉?白毫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두 개의 상호(相好)는 효순(孝順) 사장(師長)으로부터 일어났으며, 법화경(法華經)을 봉지(奉持)함을 가지고 일체(一切)의 효양(孝養)의 최정(最頂)으로 하였다.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75쪽)
또 가로되, 이 백호(白毫)란 부(父)의 음(?)이요, 육계(肉?)란 모(母)의 음(?)이며, 적백이제(赤白二?)·금경(今經)에 와서 육계(肉?)·백호(白毫)의 이상(二相)으로 나타났느니라, 또 가로되, 육계(肉?)는 수연진여(隨緣眞如)의 지(智)이고 백호(白毫)는 불변진여(不變眞如)의 이(理)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함은 이들의 상호(相好)를 구족(具足)하느니라. 우리들의 생(生)의 시작(始作)은 적색육계(赤色肉?)이며 사후(死後)의 백골(白骨)은 백호상(白毫相)이니라. 생(生)의 시작(始作)의 적색(赤色)은 수연진여(隨緣眞如)의 지(智), 사후백골(死後白骨)은 불변진여(不變眞如)의 이(理)니라, 비밀(秘密)로 할지어다 비밀(秘密)로 할지어다 운운(云云).
제삼(第三) 팔만사천칠보발지사(八萬四千七寶鉢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문(文)은 묘음보살운뢰음왕불(妙音菩薩雲雷音王佛)에게 바치는 바의 공양(供養)의 발(鉢)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팔만사천(八萬四千)의 발(鉢)을 삼세(三世)의 제불(諸佛)에게 공양(供養)해 드림이니라. 팔만사천(八萬四千)이란 우리들의 팔만사천(八萬四千)의 진로(塵勞)이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곳에서 팔만사천(八萬四千)의 법문(法門)으로 나타나느니라. 법화경(法華經)의 문자(文字)는 개(開)·결(結)·이경(二經)을 합(合)하여 팔만사천(八萬四千)이니라, 또 가로되 팔(八)이란 팔고(八苦)이며 사(四)란 생로병사(生老病死)이고, 칠보(七寶)란 두상(頭上)의 칠혈(七穴)이며 발(鉢)이란 지기(智器)이고, 묘법(妙法)의 지수(智水)를 수지(受持)함을 가지고 발(鉢)이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운운(云云).
보문품오개(普門品五箇)의 대사(大事)
제일(第一) 무진의보살지사(無盡意菩薩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무진의(無盡意)란 원융(圓融)의 삼제(三諦)이니라, 무(無)란 공제(空諦)·진(盡)이란 가제(假諦)·의(意)란 중도(中道)이니라. 관세음(觀世音)이란 관(觀)은 공제(空諦)·세(世)는 가제(假諦)·음(音)은 중도(中道)이니라.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란 묘(妙)는 공제(空諦)·호렌게(法蓮華)는 가제(假諦)·쿄(經)는 중도(中道)이니라. 삼제법성(三諦法性)의 묘리(妙理)를 삼제(三諦)의 관세음(觀世音)과 삼제(三諦)의 무진의(無盡意)에 대(對)하여 설(說)하셨느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무진의(無盡意)이니라. 결국(結局) 무(無)란 우리들의 사(死)의 상(相)이고, 진(盡)이란 우리들의 생(生)의 상(相)이며, 의(意)란 우리들의 명근(命根)이니라. 그러므로 일체(一切)의 법문(法門)·경지명합(境智冥合) 등(等)의 법문(法門)은 의(意)의 일자(一字)에 이를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76쪽)
섭입(攝入)하며, 이 의(意)란 중도법성(中道法性)이고, 법성(法性)이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따라서 의(意)의 오자(五字)이며, 우리들의 태내(胎內)의 오위중(五位中)에는 제오번(第五番)의 모습이니라. 그 까닭은 제오번(第五番)의 모습은 오륜(五輪)이며 오륜(五輪) 즉(卽) 묘법(妙法) 등(等)의 오자(五字)이니라. 이 오자(五字)·또 의(意)의 자(字)요 불의(佛意)란 묘법(妙法)의 오자(五字)이며 이것은 따로 없느니라. 불(佛)의 의(意)란 법화경(法華經)이며 이것을 수량품(壽量品)에서는 시호양약(是好良藥)이라고 하여 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이 좋아하는 양약(良藥)이라고 설(說)해졌으며, 삼라삼천(森羅三千)의 제법(諸法)은 의(意)의 일자(一字) 이상은 없느니라, 이 부처의 의(意)를 믿음을 신심(信心)이라고 한다. 따라서 심(心)은 유분별(有分別)이며 다같이 묘법(妙法)의 전체(全體)이니라 운운(云云).
제이(第二) 관음묘지사(觀音妙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묘법(妙法)의 범어(梵語)는 살달마(薩達磨)라고 하느니라. 살(薩)이란 묘(妙)라고 번역(飜譯)하며, 이 살자(薩字)는 관음(觀音)의 종자(種子)이고, 따라서 관음법화(觀音法華)·안목이명(眼目異名)이라고 석(釋)했느니라. 지금 말법(末法)에 들어와서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것은 관음(觀音)의 이익(利益)보다 천지운니(天地雲泥)와 같이 많으니라. 결국(結局) 관(觀)이란 원관(圓觀)이며 세(世)란 불가사의(不可思議)이고, 음(音)이란 불기(佛機)이며 관(觀)이란 법계(法界)의 이명(異名)인데, 이미 원관(圓觀)인 까닭이니라. 제법실상(諸法實相)의 관세음(觀世音)이므로 지옥(地獄)·아귀(餓鬼)·축생등(畜生等)의 각계(各界)를 불가사의세계(不可思議世界)라고 지견(知見)하느니라. 음(音)이란 제법실상(諸法實相)이므로 중생(衆生)으로서 실상(實相)의 부처가 아니라고 함이 없다. 수량품(壽量品)의 시(時)는 십계본유(十界本有)라고 설(說)하여 무작(無作)의 삼신(三身)이니라, 관음(觀音) 이미 법화경(法華經)을 정수(頂受)하였으니 그러므로 이 경(經)을 수지(受持)한 행자(行者)는 관세음(觀世音)의 이익(利益)보다 뛰어났느니라 운운(云云).
제삼(第三) 염념물생의지사(念念勿生疑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염념(念念)이란 일(一)의 염(念)은 육범(六凡)이고 일(一)의 염(念)은 사성(四聖)이며, 육범사성(六凡四聖)의 이익(利益)을 베푸는 것이니, 의심(疑心)을 일으키지 말라 운운(云云). 또 가로되, 염념(念念)이란 전념후념(前念後念)이니라. 또 가로되, 묘법(妙法)을 염(念)함에 의심(疑心)을 일으키지 말지니라 운운(云云). 또 삼세상주(三世常住)의 염념(念念)이니 이에 의(依)해서 위의 문(文)에 시고중생념(是故衆生念)이라고,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여 염념물생의(念念勿生疑)의 신심(信心)에 주(住)해야 하며,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은 의심(疑心)이 있을 수 없느니라 운운(云云).
제사(第四) 이구양원지사(二求兩願之事)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77쪽)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구(二求)란 구남구녀(求男求女)이니라, 구녀(求女)란 세간(世間)의 과보(果報)·구남(求男)이란 출세(出世)의 과보(果報)·따라서 현세안온(現世安穩)은 구녀(求女)의 덕(德)이고 후생선처(後生善處)는 구남(求男)의 덕(德)이니라, 구녀(求女)는 용녀(龍女)의 성불(成佛)·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을 나타내고, 구남(求男)은 제바(提婆)의 성불(成佛)·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를 나타냄이며, 우리들의 즉신성불(卽身成佛)을 나타내느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행자(行者)는 구남구녀(求男求女)를 만족(滿足)하여 부모(父母)의 성불(成佛)이 결정(決定)되느니라 운운(云云).
제오(第五) 삼십삼신이익지사(三十三身利益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삼십(三十)이란 삼천(三千)의 법문(法門)이니라. 삼신(三身)이란 삼제(三諦)의 법문(法門)이니라 운운(云云). 또 가로되, 삼십삼신(三十三身)이란 십계(十界)에 각각(各各) 삼신(三身)을 구족(具足)하므로 십계(十界)에는 삼십(三十)·본(本)의 삼신(三身)을 더하면 삼십삼신(三十三身)이니라. 결국(結局) 삼(三)이란 삼업(三業)이며 십(十)이란 십계(十界)이고 삼(三)이란 삼독(三毒)이며 신(身)이란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신(身)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삼십삼신(三十三身)의 이익(利益)이니라 운운(云云).
다라니품육개(陀羅尼品六箇)의 대사(大事)
제일(第一) 다라니지사(陀羅尼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다라니(陀羅尼)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그 까닭은 다라니(陀羅尼)는 제불(諸佛)의 밀어(密語)이고 제목(題目)의 오자(五字)·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의 비밀(秘密)의 밀어(密語)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것은 다라니(陀羅尼)를 홍통(弘通)하는 것인데 사악지선(捨惡持善)인 까닭이니라 운운(云云).
제이(第二) 안이만이지사(安爾曼爾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안이(安爾)란 지(止)이며·만이(曼爾)란 관(觀)이니라. 이 안이(安爾)·만이(曼爾)로부터 지관(止觀)의 이법(二法)을 석(釋)해 냈느니라, 따라서 이 주(?)는 약왕보살(藥王菩薩)의 주(?)이며 약왕보살(藥王菩薩)은 천태(天台)의 본지(本地)이니라. 안이(安爾)는 우리들의 심법(心法)이며 묘(妙)이고, 만이(曼爾)는 우리들의 색법(色法)이며 법(法)이고, 색심묘법(色心妙法)이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78쪽)
라고 주(呪)할 때는 즉신성불(卽身成佛)이니라 운운(云云).
제삼(第三) 귀자모신지사(鬼子母神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귀(鬼)란 부(父)이고 자(子)는 십나찰녀(十羅刹女)이며 모(母)란 가리제모(伽利帝母)이니라. 순서를 역차(逆次)로 하면 신(神)이란 구식(九識)이고, 모(母)란 팔식(八識)으로 나가는 무명(無明)이며 자(子)란 칠식(七識) 육식(六識)이고 귀(鬼)란 오식(五識)이니라. 유전문(流轉門)의 때는 악귀(惡鬼)이고 환멸문(還滅門)의 때는 선귀(善鬼)이니라. 따라서 십계호구(十界互具) 백계천여(百界千如) 일념삼천(一念三千)을 귀자모신(鬼子母神) 십나찰녀(十羅刹女)라고 하느니라. 삼보황신(三寶荒神)이란 십나찰녀(十羅刹女)를 말하는 것이니 소위(所謂) 기갈신(飢渴神)·탐욕신(貪欲神)·장애신(障碍神)이니라, 지금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는 삼독즉삼덕(三毒卽三德)으로 전(轉)하는 고(故)로 삼보황신(三寶荒神)이 아니며, 황신(荒神)이란 법화불신(法華不信)의 사람이고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앞에서 수호신(守護神)이니라 운운(云云).
제사(第四) 수지법화명자복불가량지사(受持法華名者福不可量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법화(法華)의 명(名)이라 함은 제목(題目)이니라, 자(者)라고 함은 일본국(日本國)의 일체중생중(一切衆生中)에서는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이니라. 또 가로되, 자(者)의 자(字)는 남녀(男女) 중에서는 특(特)히 여인(女人)을 칭찬(稱讚)하였으며 여인(女人)을 가리켜서 자(者)라고 하느니라, 십나찰녀(十羅刹女)는 특(特)히 여인(女人)을 본(本)으로 하였으니 예(例)컨대 용녀(龍女)가 도탈고중생(度脫苦衆生)이라 하여 여인(女人)을 고(苦)의 중생(衆生)이라고 한 것과 같다. 약왕품(藥王品)의 시경전자(是經典者)의 자(者)와 같은 것이니라 운운(云云).
제오(第五) 고제녀지사(皐諦女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고제녀(皐諦女)는 본지(本地)는 문수보살(文殊菩薩)이니라. 산해(山海) 어떠한 곳에서도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수호(守護)하리라고 하는 경문(經文)이니라. 구악일선(九惡一善)이라고 하여 고제녀(皐諦女)를 일선(一善)이라고 정(定)하였느니라. 십악(十惡)의 번뇌시(煩惱時)는 고제녀(皐諦女)는 투도(偸盜)에 해당(該當)되며, 순서(順序)가 반대(反對)로 되느니라 운운(云云).
제육(第六) 오번신주지사(五番神呪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오번신주(五番神呪)란 우리들의 일신(一身)이니라. 묘(妙)란 십나찰녀(十羅刹女)이며 법(法)이란 지국천왕(持國天王)이고 연(蓮)이란 증장천왕(增長天王)이며 화(華)란 광목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79쪽)
천왕(廣目天王)이고 경(經)이란 비사문천왕(毘沙門天王)이니라. 이 묘법(妙法)의 오자(五字)는 오번신주(五番神呪)이니라, 오번신주(五番神呪)는 우리들의 일신(一身)이니라. 십나찰녀(十羅刹女)의 주(呪)는 묘(妙)의 일자(一字)를 십구구(十九句)로 나란히 한 것이며, 경문(經文)에는 영상아두상(寧上我頭上)의 문(文)이 이것이니라, 지국천(持國天)은 법(法)의 일자(一字)를 구구(九句)로 나란히 했으며 경문(經文)에는 사십이억(四十二億)이라고 했느니라, 사(四)란 생로병사(生老病死)·십(十)이란 십계(十界)·이(二)란 미오(迷悟)이니라. 지국(持國)은 의보(依報)의 명(名)이니 법(法)은 십계(十界)이니라. 증장천(增長天)은 연(蓮)의 일자(一字)를 십삼구(十三句)로 나란히 했으며 경문(經文)에는 「역개수희(亦皆隨喜)」라고 했는데, 수희(隨喜)란 말은 불계(佛界)의 입장이니라. 광목천(廣目天)은 화(華)의 일자(一字)를 사십삼구(四十三句)로 나란히 했으며 경문(經文)에는 「어제중생다소요익(於諸衆生多所饒益)」이라고 했느니라. 비사문천(毘沙門天)은 경(經)의 일자(一字)를 육구(六句)로 나란히 했으며, 경문(經文)에는 「지시경자(持是經者)」 등(等)의 문(文)이 이것이니라 운운(云云).
엄왕품삼개(嚴王品三箇)의 대사(大事)
제일(第一) 묘장엄왕지사(妙莊嚴王之事) 문구(文句)의 십(十)에 가로되, 묘장엄(妙莊嚴)이란 묘법공덕(妙法功德)을 가지고 제근(諸根)을 장엄(莊嚴)하게 하느니라고.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묘(妙)란 묘법(妙法)의 공덕(功德)이니라. 제근(諸根)이란 육근(六根)이고, 이 묘법(妙法)의 공덕(功德)을 가지고 육근(六根)을 장엄(莊嚴)하게 하는 이름이니라. 결국 묘(妙)란 공제(空諦)이며 장엄(莊嚴)이란 가제(假諦)이고 왕(王)이란 중도(中道)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하나 같이 모두 묘장엄왕(妙莊嚴王)이니라 운운(云云).
제이(第二) 부목공지사(浮木孔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공(孔)이란 소공(小孔) 대공(大孔)의 두 가지가 있느니라. 소공(小孔)이란 사십여년(四十餘年)의 경교(經敎)이고, 대공(大孔)이란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것은 대공(大孔)이니라. 일체중생(一切衆生)은 일안(一眼)의 거북이요, 전단(?檀)의 부목(浮木)이란 법화경(法華經)이니라. 생사(生死)의 대해(大海)에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대공(大孔)이 있는 부목(浮木)은 법화경(法華經)에 있느니라 운운(云云).
제삼(第三) 당품사견즉정지사(當品邪見卽正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엄왕(嚴王)의 사견(邪見)은 이인(二人)의 교화(敎化)에 의(依)하여 공덕(功德)을 얻고 사(邪)를 고쳐 정(正)으로 하였느니라. 지(止)의 일(一)에 변사개중정(邊邪皆中正)이란 이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80쪽)
것이니라. 지금 일본국(日本國)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은 사견(邪見)으로서 엄왕(嚴王)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이인(二人)과 같으니 종말(終末)에는 필경주일승(畢竟住一乘)하여 사견즉정(邪見卽正)이 되느니라 운운(云云).
보현품육개(普賢品六箇)의 대사(大事)
제일(第一) 보현보살지사(普賢菩薩之事) 문구(文句)의 십(十)에 가로되, 권발(勸發)이란 연법(戀法)이란 말이니라고.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권발(勸發)이란 권(勸)은 화타(化他)이고 발(發)은 자행(自行)이니라, 보(普)란 제법실상(諸法實相)·적문(迹門)의 불변진여(不變眞如)의 이(理)이니라, 현(賢)이란 지혜(智慧)의 의(義)이며 본문(本門)의 수연진여(隨緣眞如)의 지(智)이니라, 그러므로 경말(經末)에 와서 본적이문(本迹二門)을 연법(戀法)하셨느니라. 결국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보현보살(普賢菩薩)의 수호(守護)이니라 운운(云云).
제이(第二) 약법화경행염부제지사(若法華經行閻浮提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법화경(法華經)을 염부제(閻浮提)에 행(行)한다고 하는 것은 보현보살(普賢菩薩)의 위신(威神)의 힘에 의(依)하느니라. 이 경(經)을 광선유포(廣宣流布)하는 것은 보현보살(普賢菩薩)의 수호(守護)인 것이니라 운운(云云). 제삼(第三) 팔만사천천녀지사(八萬四千天女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팔만사천(八萬四千)의 진로문(塵勞門)이니라. 이것은 즉(卽)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이며, 칠보(七寶)의 관(冠)이란 두상(頭上)의 칠혈(七穴)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가 이것이니라 운운(云云).
제사(第四) 시인명종위천불수수지사(是人命終爲千佛授手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법화불신(法華不信)의 사람은 명종시(命終時)에 지옥(地獄)에 타재(墮在)하리라, 경(經)에 가로되 「약인불신훼방차경즉(若人不信毁謗此經卽) 단일체세간불종(斷一切世間佛種) 기인명종입아비옥(其人命終入阿鼻獄)」이라고.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는 명종(命終)하여 성불(成佛)할 것이니 시인명종위천불수수(是人命終爲千佛授手)의 문(文)이 이것이니라. 천불(千佛)이란 천여(千如)의 법문(法門)이고, 방법(謗法)의 사람은 옥졸(獄卒)이 내영(來迎)하며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는 천불(千佛)이 내영(來迎)하시리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자(者)는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81쪽)
천불(千佛)의 내영(來迎)이 의심(疑心)없는 자(者)이니라 운운(云云).
제오(第五) 염부제내(閻浮提內) 광령유포지사(廣令流布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내(內)라는 자(字)는 동서북(東西北)의 삼방(三方)을 제외(除外)한 문(文)이니라. 광령유포(廣令流布)란 법화경(法華經)은 남염부제(南閻浮提)에만 유포(流布)할 것이라는 경문(經文)이니라. 이 내(內)란 자(字)를 사색(思索)할지어다.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깊이 이것을 생각해야 하느니라 운운(云云).
제육(第六) 차인불구당예도량지사(此人不久當詣道場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차인(此人)이란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이니라, 법화경(法華經)을 봉지(奉持)하는 곳을 당예도량(當詣道場)이라고 하며, 이 곳을 떠나서 저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니라. 도량(道場)이란 십계(十界)의 중생(衆生)의 주처(住處)를 말하느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의 주처(住處)는 산곡광야개적광토(山谷曠野皆寂光土)이며, 이것을 도량(道場)이라고 하느니라, 차인무역고운직지(此人無易故云直至)란 석(釋)을 잘 생각하여라, 이 품(品)의 때 최상(最上) 제일(第一)의 상전(相傳)이 있다. 석존팔개년(釋尊八箇年)의 법화경(法華經)을 팔자(八字)에 담아서 말대(末代)의 중생(衆生)에게 물려 주시었으니, 팔자(八字)란 당기원영당여경불(當起遠迎當如敬佛)이란 문(文)이니라. 이 문(文)까지로써 경(經)은 끝나는데 당(當)의 자(字)는 미래(未來)이며 당기원영(當起遠迎)이란 반드시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부처와 같이 공경(恭敬)할지어다라고 하는 경문(經文)이니라. 법사품(法師品)에는 어차경권경시여불(於此經卷敬視如佛)이라고 설(說)했느니라. 팔년(八年)의 설법(說法)의 시작(始作)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방편품(方便品)의 제불지혜(諸佛智慧)이고 끝은 당기원영(當起遠迎) 당여경불(當如敬佛)의 팔자(八字)이니라. 오직 이 팔자(八字)를 가지고 법화일부(法華一部)의 요로(要路)로 하였으니, 그러므로 문구(文句)의 십(十)에 가로되 「당기원영(當起遠迎) 당여경불(當如敬佛)부터는 그 신자(信者)의 공덕(功德)을 결(結)한다는 것을 말함」이라고, 법화일부(法華一部)는 신(信)의 일자(一字)를 가지고 본(本)으로 했느니라 운운(云云). 물어 가로되, 지금의 법화경(法華經)에 있어서 서품(序品)에는 처음에 여자(如字)를 놓고 끝의 보현품(普賢品)에는 거(去)의 자(字)를 놓았는데, 나습삼장(羅什三藏)의 심지(心地)는 어떠한 것을 나타내는 법문(法門)인가. 답(答)하여 가로되, 지금의 경(經)의 법체(法體)는 실상(實相)과 구원(久遠)의 이의(二義)를 가지고 정체(正體)로 하였으며, 처음의 여(如)의 자(字)는 실상(實相)을 나타내고 끝의 거(去)란 자(字)는 구원(久遠)을 나타내느니라. 그 까닭은 실상(實相)은 이(理)요 구원(久遠)은 사(事)이고, 이(理)는 공(空)의 의(義)요 공(空)은 여(如)의 의(義)이니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82쪽)
이에 의해 여(如)를 이공(理空)으로 상배(相配)하느니라. 석(釋)에 가로되「여(如)는 불이(不異)에 이름하니 즉 공(空)의 의(義)이니라」라고. 구원(久遠)은 사(事)이니라, 그 까닭은 본문수량(本門壽量)의 심(心)은 사원(事圓)의 삼천(三千)을 가지고 정의(正意)로 함이니라. 거(去)는 구원(久遠)에 해당(該當)되며, 거(去)는 개(開)의 의(義)이고 여(如)는 합(合)의 의(義)이며, 개(開)는 분별(分別)을 뜻하고 합(合)은 무분별(無分別)이란 뜻이니라. 이 개합(開合)을 생불(生佛)에 배당(配當)할 때는 합(合)은 불계(佛界) 개(開)는 중생(衆生)이니라. 서품(序品)의 처음에 여(如)란 자(字)를 나타낸 것은 생불불이(生佛不二)의 의(義)이니라, 적문(迹門)은 불이(不二)의 분(分)이니 불변진여(不變眞如)인 까닭이니라. 이 여시아문(如是我聞)의 여(如)는 불변진여(不變眞如)의 여(如)라고 읽느니라. 공가중(空假中)의 삼제(三諦)에는 여(如)는 공(空) 시(是)는 중(中) 아문(我聞)은 가제(假諦)이며, 적문(迹門)은 공(空)을 표면(表面)으로 하는 고(故)로 불이(不二)의 위의 이이(而二)이니라. 따라서 이이(而二)의 의(義)를 나타낼 때 동문중(同聞衆)을 별도(別途)로 열거(列擧)하였느니라. 그리고 본문(本門)의 끝의 거(去)는 수연진여(隨緣眞如)로서 이이(而二)의 분(分)이며 따라서 거(去)의 자(字)를 놓았느니라. 작례이거(作禮而去)의 거(去)는 수연진여(隨緣眞如)라고 약속(約束)하느니라. 본문(本門)은 이이상(而二上)의 불이(不二)이며, 이이불이(而二不二)·상동상별(常同常別)·고금법이(古今法爾)의 석(釋)을 생각할지니라. 이 거(去)란 자(字) 오천기거(五千起去)의 거(去)라고 읽느니라. 그 까닭은 오천(五千)이란 오주(五住)의 번뇌(煩惱)라고 상전(相傳)하므로 오주(五住)의 번뇌(煩惱)가 기심(己心)의 부처를 예배(禮拜)하고 떠난다는 의(義)이니라, 여거(如去)의 이자(二字)는 생사(生死)의 이법(二法)이니 전교(傳敎) 가로되 「거(去)는 무래지여래무거지원거(無來之如來無去之圓去)」 등(等)이라고 운운(云云). 여(如)란 자(字)는 일체법시심(一切法是心)의 의(義)이며, 거(去)의 자(字)는 심시일체법(心是一切法)의 의(義)이니라, 일체법시심(一切法是心)은 적문(迹門)의 불변진여(不變眞如)이며 심시일체법(心是一切法)은 본문(本門)의 수연진여(隨緣眞如)이니라. 그러므로 법계(法界)를 일심(一心)에 포함(包含)시키는 것은 여(如)의 의(義)이며 법계(法界)에 여는 것은 거(去)의 의(義)이고, 삼제(三諦) 삼관(三觀)의 구결상승(口決相承)과 같은 뜻이니라 운운(云云). 일의(一義)에 가로되, 여(如)는 실(實)이고 거(去)는 상(相)이며, 실(實)은 심왕(心王)이고 상(相)은 심수(心數)이니라. 또 제법(諸法)은 거(去)이고 실상(實相)은 여(如)이며 금경(今經) 일부(一部)의 시종(始終)을 제법실상(諸法實相)의 사자(四字)로 읽는다는 것은 이것이니라. 석(釋)에 가로되 「금경(今經)은 무엇을 가지고 체(體)로 하느뇨. 제법실상(諸法實相)을 가지고 체(體)로 한다」라고, 이제 한층 더 깊이 들어가서 니치렌(日蓮)의 수행(修行)에 배당(配當)하며 여(如)란 여설수행(如說修行)의 여(如)이니라·그 까닭은 결요오자(結要五字)의 부촉(付屬)을 말씀하실 때·보탑품(寶塔品)에서 일이 비롯되어 성철하방(聲徹下方)하여 근령유재(近令有在)·원령유재(遠令有在)라고 해서 유재(有在)의 이자(二字)를 가지고 본화(本化)·적화(迹化)의 부촉(付屬)을 말하였으므로 따라서 본문(本門)의 밀서(密序)로 하느니라. 그리하여 이불병좌(二佛?座)·분신(分身)의 제불(諸佛)이 모여서 시호양약(是好良藥)의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를 설(說)해 나타내고 석존(釋尊)은 십종(十種)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83쪽)
의 신력(神力)을 나타내어 사구(四句)로 묶어서 상행보살(上行菩薩)에게 부촉(付屬)하시니 그 부촉(付屬)이란 묘법(妙法)의 수제(首題)인데 총별(?別)의 부촉(付屬) 탑중(塔中) 탑외(塔外) 이를 생각할지니라. 이로 인해서 용출수량(涌出壽量)에 일이 나타나고 신력(神力)·촉루(屬累)에 일이 끝나느니라. 이 묘법(妙法) 등(等)의 오자(五字)를 말법(末法)·백법은몰(白法隱沒)의 시(時) 상행보살(上行菩薩)·출세(出世)하시어 오종(五種)의 수행중(修行中)에는 사종(四種)을 약(略)하고 오직 수지(受持)의 일행(一行)으로써 성불(成佛)하리라고 경문(經文)에 엄연(嚴然)히 있느니라. 그러므로 신력품(神力品)에 가로되「어아멸도후(於我滅度後)·응수지사경(應受持斯經)·시인어불도(是人於佛道)·결정무유의(決定無有疑)」운운(云云), 이 문(文) 명백(明白)하니라. 따라서 이 문(文)을 부처의 회향(廻向)의 문(文)이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그러므로 이 경(經)을 수지(受持)하여 받드는 심지(心地)는 여설수행(如說修行)의 여(如)이며, 이 여(如)의 심지(心地)에 묘법(妙法) 등(等)의 오자(五字)를 수지(受持)하여 받들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면 곧 무명번뇌(無明煩惱)의 병(病)을 모조리 버리고 묘각극과(妙覺極果)의 성불(成佛)의 경애(境涯)를 빛내는 것을 나타내므로 거자(去字)로써 끝을 맺었느니라. 따라서 그 위에 수지불어(受持佛語)라고 설(說)하였으니 번뇌악각(煩惱惡覺)의 마왕(魔王)도 제법실상(諸法實相)의 빛에 비추어져서 일심일념편어법계(一心一念遍於法界)라고 관달(觀達)되느니라. 그러므로 오히려 기심(己心)의 부처를 예배(禮拜)하는 고(故)로 작례이거(作禮而去)라고 설(說)하셨느니라, 피피삼천호편역이(彼彼三千互遍亦爾)의 석(釋) 이를 생각할지어다, 비밀(秘密)로 할지어다 비밀(秘密)로 할지어다. 유수일인(唯受一人)의 상승(相承)이니라, 함부로 말하지 말지어다. 따라서 이 거(去)의 자(字)는 불거이거(不去而去)의 거(去)라고 상전(相傳)함을 가지고 지극(至極)으로 하느니라 운운(云云).
무량의경육개(無量義經六箇)의 대사(大事)
제일(第一) 무량의경(無量義經) 덕행품(德行品) 제일지사(第一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무량의(無量義)의 삼자(三字)를 본적관심(本迹觀心)으로 배당(配當)하는 일. 처음의 무(無)의 자(字)는 적문(迹門)인데 그 까닭은 이원(理圓)을 면(面)으로 하고 불변진여(不變眞如)의 뜻을 말한다. 적문(迹門)은 무상(無常)의 섭속(攝屬)이며 상주(常住)를 밝히지 않았다, 단(但)「시법주법위세간상상주(是法住法位世間相常住)」라고 밝혔지만 이것은 이상주(理常住)로서 사상주(事常住)가 아니며 이상주(理常住)의 상(相)을 설(說)함이니라. 공(空)은 무(無)의 의(義)인데 단(但) 이 무(無)는 단무(斷無)의 무(無)가 아니고 상즉(相卽)의 위의 공(空)인것을 무(無)라 하고 공(空)이라고 하느니라. 원(圓)의 위에서 이를 논(論)한 것이니라, 본문(本門)의 사상주무작(事常住無作)의 삼신(三身)에 대(對)하여 적문(迹門)을 무상(無常)이라고 하느니라. 수호장(守護章)에는 유위(有爲)의 보불(報佛)은 몽중(夢中)의 권과(權果) 무작(無作)의 삼신(三身)은 각전(覺前)의 실불(實佛)이라고 운운(云云).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84쪽)
는 자(者)는 무작(無作)의 삼신(三身) 각전(覺前)의 실불(實佛)이니라 운운(云云).
제이(第二) 양(量)의 자지사(字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양(量)의 자(字)를 본문(本門)에 배당(配當)하는 것은 양(量)이란 권섭(權攝)의 의(義)이니라, 본문(本門)의 심(心)은 무작삼신(無作三身)을 말한 것이며, 이 무작삼신(無作三身)이란 부처의 입장(立場)에서 만이 아니고, 삼라만법(森羅萬法)을 자수용신(自受用身)의 자체현조(自體顯照)라고 말하는 고(故)로 적문(迹門)에서 불변진여(不變眞如)의 이원(理圓)을 밝히는 것을 그대로 바꾸지 않고 각기당체(各其當體)가 무작삼신(無作三身)이라고 논(論)한 것이 본문사원삼천(本門事圓三千)의 의(意)이니라. 이는 즉(卽) 앵매도리(櫻梅桃李)의 각기(各其)의 당체(當體)를 고치지 아니하고 무작삼신(無作三身)이라고 개견(開見)하면 이것이 즉(卽) 양(量)의 의(義)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무작삼신(無作三身)의 본주(本主)이니라 운운(云云).
제삼(第三) 의(義)의 자지사(字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의(義)란 관심(觀心)이니라. 그 까닭은 문(文)은 교상(敎相)이고, 의(義)는 관심(觀心)이며, 소설(所說)의 문자(文字)를 심지(心地)에 관(觀)함을 의(義)라고 하느니라. 그 중에서도 무량의(無量義)는 일법(一法)으로 부터 무량(無量)의 의(義)를 출생(出生)한다고 설(說)함이라. 능생(能生)은 의(義)·소생(所生)은 무량(無量)이며 이것은 무량의경(無量義經)의 능(能)생(生)·소생(所生)이니라. 법화경(法華經)과 무량의경(無量義經)을 상대(相對)하는 능소(能所)가 아니라 무상불상명위실상(無相不相名爲實相)의 이(理)로부터 만법(萬法)을 개출(開出)한다고 하며, 원(源)이 실상(實相)인 고(故)로 관심(觀心)이라고 하느니라. 이와 같이 무량의(無量義)의 삼자(三字)를 적문(迹門)·본문(本門)·관심(觀心)에 배당(配當)하는 것은 법화(法華)의 묘법(妙法) 등(等)의 제호(題號)와 지금의 무량의(無量義)의 제호(題號)와 일체불이(一體不二)의 서정(序正)이라고 상승(相承)의 심(心)을 상전(相傳)케 하기 위(爲)함이라.
제사(第四) 처(處)의 일자지사(一字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처(處)의 一자(字)는 법화경(法華經)이다. 삼장교(三藏敎)와 통교(通敎)는 무(無)의 자(字)에 포함(包含)되며 별교(別敎)는 양(量)의 자(字)에 포함(包含)되고 원교(圓敎)는 의(義)의 자(字)에 포함(包含)되느니라, 이 이전(爾前)의 사교(四敎)를 소생(所生)이라고 정(定)하고 서분(序分)인 이 경(經)을 능생(能生)이라고 정(定)했느니라. 능생(能生)을 잠시 처(處)라 하며 소생(所生)을 무량의(無量義)라고 정(定)했느니라, 따라서 권교(權敎)에 상대(相對)해서 무량의처(無量義處)를 논(論)하는 것이니라 운운(云云).
제오(第五) 무량의처지사(無量義處之事)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85쪽)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법화경(法華經) 팔권(八卷)은 처(處)이고 무량의경(無量義經)은 무량의(無量義)이니라, 무량의(無量義)는 삼제(三諦)·삼관(三觀)·삼신(三身)·삼승(三乘)·삼업(三業)이며, 법화경(法華經)에 어일불승(於一佛乘)·분별설삼(分別說三)이라고 설(說)하여 법화(法華)를 위(爲)한 서분(序分)으로 되는 것이니라. 이것을 가지고 격별(隔別)의 삼제(三諦)는 무득도(無得道)·원융(圓融)의 삼제(三諦)는 득도(得道)라고 정(定)하는 고(故)로 사십여 년(四十餘年) 미현진실(未顯眞實)이라고 파절(破折)하셨느니라 운운(云云).
제육(第六) 무량의처지사(無量義處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무량의처(無量義處)란 일념삼천(一念三千)이니라, 십계각각(十界各各) 무량(無量)의 의처(義處)이니라. 이 당체(當體) 그대로의 실상(實相)의 일리(一理) 이외(以外)에는 없다는 것을 제법실상(諸法實相)이라고 설(說)했느니라, 그러기 위(爲)한 서(序)인 고(故)로 일념삼천(一念三千)의 서(序)로 하여 무량의처(無量義處)라고 하느니라, 처(處)는 일념(一念) 무량의(無量義)는 삼천(三千)이니라, 우리들 중생(衆生)이 조석(朝夕)으로 말하는 언어(言語)도 의정이법(依正二法) 다 같이 무량(無量)의 의처(義處)이니라. 이것을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하며, 따라서 법화(法華)를 위(爲)한 서분(序分)이며 개경(開經)이니라 운운(云云).
보현경(普賢經) 오개(五箇)의 대사(大事)
제일(第一) 보현경지사(普賢經之事) 제호(題號)에 가로되 불설관보현보살행법경(佛說觀普賢菩薩行法經)이라고 운운(云云)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법화경(法華經)은 십계호구(十界互具)·삼천구족(三千具足)의 법체(法體)이므로 삼천십계(三千十界)가 남김없이 보현(普賢)이니라, 법계(法界)의 일법(一法)도 빠지는 의(義)가 없는 고(故)로 보현(普賢)이니라. 묘법(妙法)의 십계(十界)는 연화(蓮華)의 십계(十界)이므로 의정(依正)의 이법(二法) 모두가 법화경(法華經)이라고 매듭지어 포함(包含)시킨 경(經)이므로 이 보현경(普賢經)을 결경(結經)이라고 하느니라. 따라서 십계(十界)를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와 결합(結合)시켰느니라 운운(云云).
제이(第二) 부단번뇌(不斷煩惱) 불리오욕지사(不離五欲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문(文)은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을 설(說)했느니라. 법화(法華)의 행자(行者)는 탐욕(貪欲)은 탐욕(貪欲) 그대로 진에(瞋瞋)는 진에(瞋?) 그대로 우치(愚癡)는 우치(愚癡) 그대로 보현보살(普賢菩薩)의 행법(行法)이라고 알아야 할 것이니라 운운(云云).
제삼(第三) 육념지사(六念之事) 염불(念佛) 염법(念法) 염승(念僧) 염계(念戒) 염시(念施) 염천(念天)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86쪽)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염불(念佛)이란 유아일인(唯我一人)의 도사(導師)이니라. 염법(念法)이란 멸후(滅後)는 제목(題目)의 오자(五字)이고 염승(念僧)이란 말법(末法)에서는 범부승(凡夫僧)이며, 염계(念戒)란 시명지계(是名持戒)이고 염시(念施)란 일체중생(一切衆生)에게 제목(題目)을 수여(授與)함이니라, 염천(念天)이란 제천주야상위법고이위호지(諸天晝夜常爲法故而衛護之)의 의(意)이니라, 말법당금(末法當今)의 행자(行者)의 일이니 이것을 생각할지니라 운운(云云).
제사(第四) 일체업장해(一切業障海) 개종망상생(皆從妄想生) 약욕참회자(若欲懺悔者) 단좌사실상(端坐思實相) 중죄여상로(衆罪如霜露) 혜일능소제지사(慧日能消除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중죄(衆罪)란 육근(六根)에 있어서 업장(業障)이 내려옴이 상로(霜露)와 같은데, 그러나 혜일(慧日)을 가지고 능(能)히 소제(消除)한다고 했느니라. 혜일(慧日)이란 말법당금(末法當今)·니치렌(日蓮) 소홍(所弘)의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혜일(慧日)이란 부처의 입장과 법(法)의 입장에서이니라, 석존(釋尊)을 혜일대성존(慧日大聖尊)이라 말하고, 법화경(法華經)을 우여일천자능제제암(又如日天子能除諸闇)이라고 설(說)하시었다, 말법(末法)의 도사(導師)를 여일월광명(如日月光明) 등(等)이라고 설(說)하셨느니라.
제오(第五) 정법치국불사왕인민지사(正法治國不邪枉人民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말법(末法)의 정법(正法)이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이 오자(五字)는 일체중생(一切衆生)을 속이지 않는 비법(秘法)이니라. 정법(正法)을 천하일동(天下一同)으로 신앙(信仰)한다면 이 나라는 안온(安穩)할 것이로다, 그러므로 현의(玄義)에 가로되 「만약 이 법(法)에 의(依)하면 즉(卽) 천하태평(天下泰平)」이라고. 이 법(法)이란 법화경(法華經)이니 법화경(法華經)을 신앙(信仰)하면 천하안전(天下安全)하다는 것은 의심(疑心)할 바 없느니라.
이상(已上) 이백삼십일개조(二百三十一箇條)의 대사(大事)
이십팔품(二十八品)에 일문(一文)씩의 대사(大事) 합(合)하여 이십팔개조(二十八箇條)의 대사(大事) 비장(秘藏)할지니라 운운(云云)
서품(序品)
어무(於無) 루(漏) 실(實) 상(相) 십계야(十界也) 시각(始覺) 심(心)에 이(已) 득(得)했노라 통달(通達)함을
묘법(妙法) 불변(不變) 수연(隨緣)
이 문(文)은 나의 마음이 본래(本來)부터 각(覺)이니라고 처음으로 깨달음을 성불(成佛)이라고 한다,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비로소 깨닫는 제목(題目)이니라.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87쪽)
방편품(方便品)
진제(眞諦) 주(住) 법위(法位)하여 속제(俗諦) 세간(世間)의 상상주(相常住)니라.
적문(迹門) 하면 도 본문(本門)
이 문(文)은 중생(衆生)의 마음은 본래(本來) 부처라고 설(說)함을 상주(常住)라고 하며, 만법(萬法)이 원래(元來)부터 각(覺)의 체(體)이니라.
비유품(譬喩品)
수지인(受持人) 대백우거(大白牛車) 범부즉극(凡夫卽極)
승차(乘此) 보승(寶乘)하여 직지도량(直至道場)함이라 제목(題目) 극과(極果)의 처야(處也)
이 문(文)은 자신(自身)의 불승(佛乘)을 깨닫고 자신(自身)의 궁전(宮殿)에 들어감이라,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함은 자신(自身)의 궁전(宮殿)에 들어가는 것이니라. 신해품(信解品) 일념삼천(一念三千) 무상(無上)의 보주(寶珠) 불구자득(不求自得)했느니라. 제목(題目) 마음대로 얻었노라 이 문(文)은 무시색심본시이성묘경묘지(無始色心本是理性妙境妙智)이므로 기심(己心) 이외에 실상(實相)을 구(求)하지 말지어다,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불구자득(不求自得)이니라.
약초유품(藥草喩品)
삼세(三世) 제목(題目) 일체중생(一切衆生)
우제불자(又諸佛子) 전심불도(專心佛道)하고 상행(常行) 자비(慈悲)하여 자지(自知) 작불(作佛)함이라고 마음대로 함 항상 스스로의 지혜를 만들어 부처로 함
이 문(文)은 당래(當來)의 성불(成佛)이 현연(顯然)하며,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88쪽)
수기품(授記品)
십계실상불(十界實相佛) 삼세상주(三世常住) 번뇌즉보리생사즉열반(煩惱卽菩提生死卽涅槃)
어제불소상수범행(於諸佛所常修梵行)하고 어(於) 무량겁(無量劫) 봉지불법(奉持佛法)함이라
일체업장(一切業障)
이 문(文)은 상(常)이라 하고 무량겁(無量劫)이라 함은 즉(卽) 본유소구(本有所具)의 묘법(妙法)이며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화성유품(化城喩品)
삼천진점(三千塵點)
관피구원(觀彼久遠)하니 유여금일(猶如今日)이라
재세(在世)
이 문(文)은 원초(元初)의 일념(一念) 일법계(一法界) 이외(以外)에 결코 육도사성(六道四聖)이란 있을 수 없느니라,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삼세일념(三世一念)이며 금일(今日)이란 말법(末法)을 가리켜서 금일(今日)이라고 하느니라.
오백품(五百品)
일본국일체중생(日本國一切衆生) 제목어본존(題目御本尊) 심법색법(心法色法) 번뇌즉보리생사즉열반(煩惱卽菩提生死卽涅槃)
빈(貧) 인(人) 견(見) 차(此) 주(珠)하고 기(其) 심대환희(心大歡喜)함이라 신심(信心)의 모습
이 문(文)은 처음으로 나의 마음이 본래(本來)의 부처라고(신심(信心)의 모습) 아는 것을 즉(卽) 대환희(大歡喜)라고 이름한다,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환희중(歡喜中)의 대환희(大歡喜)이니라.
인기품(人記品)
안주(安住) 어불도(於佛道)(일부(一部))하여 이구무상도(以求無上道)(제목(題目))라
광략(廣略) 요(要)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89쪽)
이 문(文)은 본래상즉(本來相卽)의 삼신(三身)의 묘리(妙理)를 처음으로 각지(覺知)하는 것을 구무상도(求無上道)라고 하며,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법사품(法師品)
당지여시인(當知如是人)은 자재(自在) 적광(寂光) 소욕생(所欲生)이라
이 문(文)은 우리들의 일념(一念)의 망심외(妄心外)에 불심(佛心)은 없다, 구계(九界)의 생사(生死)가 진여(眞如)이므로 즉(卽) 자재(自在)이니라,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함은 즉(卽) 자재(自在)이니라.
보탑품(寶塔品)
칙위질득(則爲疾得) 무상불도수지야(無上佛道受持也)했느니라고 범부즉극야(凡夫卽極也)
이 문(文)은 지자즉(持者卽) 원돈(圓頓)의 묘계(妙戒)이므로 등묘이각(等妙二覺) 일념개오(一念開悟)이기에 질득(疾得)이라고 하느니라,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함은 질득(疾得)이니라.
제바품(提婆品)
홀연지간(忽然之間) 변성남자(變成男子)함이라
이 문(文)의 뜻은 삼혹(三惑)의 전체(全體)가 삼제(三諦)라고 깨달음을 변(變)이라고 설(說)하며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함은 삼혹즉(三惑卽) 삼덕(三德)이니라.
권지품(勸持品)
아불애(我不愛) 신명(身命)하고 색법심법(色法心法) 단석무상도(但惜無上道)라 아끼지마저도
이 문(文)은 색심환화사대오음(色心幻化四大五陰) 원래(元來) 악습(惡習)이라, 그런데 본각진여(本覺眞如)는 상주(常住)이고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90쪽)
안락행품(安樂行品)
일체제법(一切諸法)은 공(空)이고 무소유(無所有)이며 무유(無有) 상주(常住)이고 역무(亦無) 기별(起滅)이니라.
이 문(文)은 원래(元來) 상주(常住)의 묘법(妙法)인 고(故)로 육도(六道)의 생멸(生滅)은 본래(本來) 불생(不生)이라고 설(說)함이라, 고(故)로 기멸(起滅)이 없다.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본래(本來) 무기멸(無起滅)이니라 운운(云云).
용출품(涌出品) 주야상정진(晝夜常精進)함이라 위구(爲求) 불도고(佛道故)로
이 문(文)은 일념(一念)에 억겁(億劫)의 신로(辛勞)를 다하면 본래(本來) 무작(無作)의 삼신(三身)이 염념(念念)에 일어나느니라,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정진행(精進行)이니라.
수량품(壽量品)
여래여실지견(如來如實知見) 삼계지상(三界之相)하시며 무유생사(無有生死)니라
이 문(文)은 만법(萬法)을 무작(無作)의 삼신(三身)이라고 보는 것을 여실지견(如實知見)이라고 하며 무작(無作)의 각체(覺體)이므로 무엇에 의하여 생사(生死)가 있다고 할 것이뇨.
분별공덕품(分別功德品)
지차일심복(持此一心福)하여 원구무상도(願求無上道)했느니라 이 문(文)은 일체(一切)의 만행만선(萬行萬善)은 단일심본각(但一心本覺)의 삼신(三身)을 현현(顯現)하기 위(爲)함이니라, 선악일여(善惡一如)이므로 일심복(一心福)이라고 하며,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일심복(一心福)이니라.
수희공덕품(隨喜功德品)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91쪽)
언차경심묘(言此經深妙)하여 천만겁난우(千萬劫難遇)이니라
이 문(文)은 일체즉묘법(一切卽妙法)이므로 일심(一心)의 원저(源底)를 나타내는 일이 심묘무외(深妙無畏)이며,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이니라.
법사공덕품(法師功德品)
정산(靜散) 입선출선자(入禪出禪者) 문향실승지(聞香悉能知)함이라
불변사(不變死) 수연생(隨緣生) 십계(十界)
이 문(文)은 일심(一心) 안정시(安靜時)는 입선(入禪), 일심(一心) 산란시(散亂時)는 출선(出禪), 정산즉본각(靜散卽本覺)이라고 아는 것을 실지(悉知)라고 하느니라,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입선출선(入禪出禪)이니라 운운(云云).
불경품(不輕品)
응당일심광설(應當一心廣說) 차경(此經)할지어다 세세치불질성불도(世世値佛疾成佛道)하리라
이 문(文)은 법계(法界)가 모두 본래(本來) 삼제일심(三諦一心)에 구족(具足)하는 것을 나타내면 기심(己心)의 염념(念念)에 부처를 만나는 것을 즉(卽) 세세치불(世世値佛)이라고 하느니라,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가 이것이니라.
신력품(神力品)
시인어불도(是人於佛道) 결정(決定) 단파원품무명(斷破元品無明) 무유의(無有疑)니라 십여시(十如是)
이 문(文)은 십계각각(十界各各) 본유본각(本有本覺)의 십여시(十如是)이므로 지옥(地獄)도 불계(佛界)도 일여(一如)이므로 성불결정(成佛決定)하느니라.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수지(受持)이니라 운운(云云).
촉루품(囑累品)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92쪽)
신여래지혜자(信如來知慧者)에게는 당연설차법화경(當演說此法華經)하라
이 문(文)은 석가여래(釋迦如來)의 오달(悟達)과 같으며 일체중생(一切衆生)의 깨달음과 부동(不同)이 있을 수가 없다. 고(故)로 여래(如來)의 지혜(智慧)를 믿음은 즉(卽) 묘법(妙法)이며,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지혜(智慧)이니라 운운(云云).
약왕품(藥王品)
시진정진(是眞精進)이니라 시명진법(是名眞法) 공양여래(供養如來)라 함이라
이 문(文)은 색향중도(色香中道)의 관념(觀念) 해태(懈怠) 없음을 즉(卽) 진법공양여래(眞法供養如來)라고 이름하느니라,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유유일승(唯有一乘)인 고(故)로 진법(眞法)이고 세간(世間)도 출세(出世)도 순일실상(純一實相)이니라 운운(云云).
묘음품(妙音品)
신부(身不) 구원(久遠) 동요(動搖)하여 적광토(寂光土) 이입삼매(而入三昧)니라
이 문(文)은 즉(卽) 구원(久遠)을 깨달음을 신부동요(身不動搖)라고 하느니라. 혹장(惑障)을 단진(斷盡)하지 않고 적광(寂光)에 들어가는 것을 삼매(三昧)라고 하며,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삼매(三昧)이니라 운운(云云).
보문품(普門品)
자안시중생(慈眼視衆生)하시니 복취(福聚) 복지(福智) 해무량(海無量)이니라.
이 문(文)은 법계(法界)의 의정(依正)이 묘법(妙法)인 고(故)로 평등일자(平等一子)의 자비(慈悲)이니라, 의정(依正) 복지(福智)가 공(共)히 무량(無量)이며,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복지(福智)의 이법(二法)이니라 운운(云云).
다라니품(陀羅尼品)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93쪽)
수행시경자(修行是經者)는 미래현(未來顯) 영득안온(令得安穩)이니라 현재현(現在顯)
이 문(文)은 오종묘행(五種妙行)을 수행(修行)하면 오달(悟達)의 도(道)에 들어가 험로(?路)에 들어가지 않으니, 이것은 안온(安穩)이라고 함이라.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즉안온(南無妙法蓮華經卽安穩)이니라 운운(云云).
엄왕품(嚴王品)
순복심후(宿福深厚)하여 생치불법(生値佛法)했느니라
이 문(文)은 일구(一句) 묘법(妙法)에 결연(結緣)하면 억겁(億劫)에도 소실(消失)되지 않고, 대승무가(大乘無價)의 보주(寶珠)를 연마(硏磨)하여 나타냄을 생치불법(生値佛法)이라고 하며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불법(佛法)이니라.
권발품(勸發品)
시인명종(是人命終)하여 위천불수수(爲千佛授手)하고 영불공포(令不恐怖) 불타악취(不墮惡趣)라
이 문(文)은 묘법(妙法)을 개오(開悟)하면 분단(分段)의 신(身) 즉(卽) 상적광(常寂光)으로 나타남을 명종(命終)이라고 하며, 천불(千佛)이란 천여(千如), 어수(御手)란 천여구족(千如具足)이니라. 고(故)로 불타악취(不墮惡趣)이고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어수(御手)이니라.
이상품품별전필(已上品品別傳畢)
一 이십팔품(二十八品) 실남묘호렌게쿄지사(悉南無妙法蓮華經之事)
소(疏)의 십(十)에 가로되, 통틀어 일경(一經)을 결(結)함에 오직 네 가지뿐이며 그 추병(樞柄)을 촬(撮)하여 이를 수여(授與)한다고.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94쪽)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일경(一經)이란 본적이십팔품(本迹二十八品)이고 유사(唯四)란 명용체종(名用體宗)의 사(四)이며, 추병(樞柄)이란 오직 제목(題目)의 오자(五字)이고 수여(授與)란 상행보살(上行菩薩)에게 수여(授與)하는 것이며, 이것이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이니라 운운(云云). 이 석(釋) 분명(分明)하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이 홍통(弘通)하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체(體)이고 심(心)이니라, 이십팔품(二十八品)은 용(用)이고 이십팔품(二十八品)은 조행(助行)이며 제목(題目)은 정행(正行)이니라. 정행(正行)에다 조행(助行)을 포함(包含)시켜야 하느니라 운운(云云).
一 무량의경지사(無量義經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묘법(妙法)의 서분(序分)이 무량의경(無量義經)이므로 십계(十界)가 모두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서분(序分)이니라. 一 서품(序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여시아문(如是我聞)의 사자(四字)를 깊이 터득한다면 일경(一經) 무량(無量)의 의(義)는 알기 쉬운 것이니라. 십계호구(十界互具) 삼천구족(三千具足)의 묘(妙)라고 듣는 것이며, 이 소문(所聞)은 묘법연화(妙法蓮華)라고 듣는 고(故)로 묘법(妙法)의 법계호구(法界互具)하여 삼천청정(三千淸淨)이니라. 이 사자(四字)는 일경(一經)의 시종(始終)에 걸치며, 이십팔품(二十八品)의 문문구구(文文句句)의 의리(義理)가 나의 신상(身上)의 법문(法門)이라고 들음을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고 하느니라. 그 듣는 것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므로 개성불도(皆成佛道)라고 하느니라, 이 개성(皆成)의 이자(二字)는 십계삼천(十界三千)에 걸쳐야 하는데, 묘법(妙法)의 개성(皆成)이기 때문이니라. 또 부처란 나의 일심(一心)이며 이것이 또한 십계삼천(十界三千)의 심심(心心)이니라. 도(道)란 능통(能通)에 이름하는 고(故)로 십계(十界)의 심심(心心)에 통(通)하는 것이며 이 때에 개성불도(皆成佛道)로 나타나는데, 개성불도(皆成佛道)의 법(法)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一 방편품(方便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품(品)에는 십여시(十如是)를 설(說)함이라. 이 십여시(十如是)란 십계(十界)이며 이 방편(方便)이란 십계삼천(十界三千)이니라. 이미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를 봉수(奉受)하는 고(故)로 시방불토중(十方佛土中) 유유일승법(唯有一乘法)이며, 묘법(妙法)의 방편(方便) 연화(蓮華)의 방편(方便)이므로 비묘(秘妙)이고 청정(淸淨)이니라. 묘법(妙法)의 오자(五字)는 구식(九識)·방편(方便)은 팔식(八識) 이하(已下)이고, 구식(九識)은 오(悟)이며 팔식이하(八識已下)는 미(迷)이니라,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 방편품(方便品)이라고 부제(附題)하였으므로 미오불이(迷悟不二)이고 삼라삼천(森羅三千)의 제법(諸法)이 이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 방편(方便)이 아니라고 함이 없으며 품(品)은 의류동(義類同)이니라. 의(義)란 삼천(三千)이며 유(類)란 호구(互具)이고 동(同)이란 일념(一念)이니라. 이 일념삼천(一念三千)을 가리켜 품(品)이라고 하느니라. 이 일념삼천(一念三千)을 삼불(三佛)이 합의(合意)하셨으니 따라서 품품(品品)에다 부제(附題)했느니라,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신(信)의 일념(一念)으로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95쪽)
부터 삼천구족(三千具足)이라고 들렸느니라 운운(云云).
비유품(譬喩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품(品)의 대백우거(大白牛車)란 「무명치혹본시법성(無明癡惑本是法性)」의 명암일체(明闇一體)의 의(義)이니라, 즉(卽) 삼천구족(三千具足)의 일승(一乘)을 내건 수레이므로 명암일체(明闇一體)로서 삼천구족(三千具足)의 의(義)를 나타내느니라. 법계(法界)에 편만(遍滿)하였어도 일법(一法)임을 일승(一乘)이라고 하느니라. 이 일승(一乘)이란 제승구족(諸乘具足)의 일승(一乘)이며 제법구족(諸法具足)의 일법(一法)인 고(故)로 일(一)의 백우(白牛)이니라. 또 백우(白牛)는 一이라 할지라도 무량(無量)의 백우(白牛)이니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체(體)가 대백우거(大白牛車)이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묘법(妙法)의 대백우거(大白牛車)에 묘법(妙法)의 십계삼천(十界三千)의 중생(衆生)이 탔느니라, 연화(蓮華)의 대백우거(大白牛車)이므로 십계삼천(十界三千)의 중생(衆生)도 연화(蓮華)로서 청정(淸淨)함이니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법체(法體)는 이와 같으니라.
一 신해품(信解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신해(信解)는 중근(中根)의 사대성문(四大聲聞)의 영해(領解)에 한(限)하지 않고, 묘법(妙法)의 신해(信解)인 고(故)로 십계삼천(十界三千)의 신해(信解)이니라. 연화(蓮華)의 신해(信解)인 고(故)로 십계삼천(十界三千)의 청정(淸淨)한 신해(信解)이며 이 신해(信解)의 체(體)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이것이니라 운운(云云).
一 약초유품(藥草喩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묘법(妙法)의 약초(藥草)이므로 십계삼천(十界三千)의 독초(毒草)·연화(蓮華)의 약초(藥草)이므로 본래(本來) 청정(淸淨)이니라, 청정(淸淨)하므로 부처이고, 이 부처의 설법(說法)이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운운(云云). 그러므로 이 품(品)에는 종상체성(種相體性)의 종(種)의 자(字)에 종류종(種類種)·상대종(相對種)의 두 가지의 개회(開會)가 있는데 상대종(相對種)이란 삼독즉삼덕(三毒卽三德)이며 종류종(種類種)이란 처음의 종(種)의 자(字)는 십계삼천(十界三千)이니라, 유(類)란 호구(互具)이고 하(下)의 종(種)의 자(字)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며 종류종(種類種)이니라. 십계삼천(十界三千)의 초목(草木) 각각(各各)이지만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일종(一種)이니라, 독초(毒草)의 독(毒)도 없고 청정(淸淨)한 초목(草木)으로서 약초(藥草)이니라 운운(云云).
一 수기품(授記品)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96쪽)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십계(十界) 각각(各各)의 당체(當體)의 언어(言語)는 묘법연화(妙法蓮華)의 수기(授記)이므로 청정(淸淨)한 수기(授記)이니라, 청정(淸淨)한 수기(授記)이므로 십계삼천(十界三千)의 부처로다, 이로써 부처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수기(授記)하느라 운운(云云).
一 화성유품(化城喩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묘법(妙法)의 화성(化城)이므로 십계(十界) 동시(同時)의 무상(無常)이니라. 연화(蓮華)의 화성(化城)이므로 십계(十界) 삼천(三千)의 개락(開落)이니라. 상주(常住)·무상(無常) 다같이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전체(全體)이니라. 화성보처(化城寶處)는 생사본유(生死本有)이며 생사본유(生死本有)의 체(體)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석(釋)에 가로되 「기(起)는 이는 법성(法性)의 기(起)요 멸(滅)은 이는 법성(法性)의 멸(滅)」이라고.
一 오백품(五百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품(品)에는 오백제자수기작불(五百弟子授記作佛)한다고 현문(現文)에 쓰여 있느니라. 그러나 묘법(妙法)의 오백(五百)이므로 십계삼천(十界三千) 모두가 오백(五百)의 제자(弟子)이니라. 연화(蓮華)의 제자(弟子)이므로 또한 청정(淸淨)이니라. 결국(結局) 십계삼천(十界三千)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제자(弟子)가 아님이 없으며, 이 경(經)의 수기(授記)가 바로 이것이니라 운운(云云).
一 인기품(人記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품(品)에는 학(學)·무학(無學)의 성자(聖者)가 와서 성불(成佛)하느니라. 이미 묘법(妙法)을 봉수(奉受)한 학(學)·무학(無學)이므로 십계호구(十界互具)·삼천구족(三千具足)의 학(學)·무학(無學)이니라. 묘법(妙法)의 학(學)·무학(無學)이므로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십계(十界)에 번뇌(煩惱)를 아직 다 없애지 않았으며, 연화(蓮華)의 학(學)·무학(無學)이므로 십계삼천(十界三千) 청정(淸淨)의 개락(開落)이니라. 이 학(學)·무학(無學)은 무엇이뇨, 학(學)이란 법(法)이고 무학(無學)이란 묘(妙)이며,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운운(云云).
一 법사품(法師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묘법(妙法)의 법사(法師)이므로 십계(十界) 모두 묘법(妙法)을 수지(受持)한 일구일게(一句一偈)의 법사(法師)로다. 연화(蓮華)의 법사(法師)이므로 십계삼천(十界三千)이 청정(淸淨)한 법사(法師)니라. 십계중생(十界衆生)의 색법(色法)은 능지(能持)의 사람이며 십계(十界)의 심성(心性)은 소지(所持)한 법(法)이니라. 따라서 색심(色心) 다같이 법사(法師)로서 자행화타(自行化他)를 나타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97쪽)
냄이니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법사(法師)이기 때문이니라 운운(云云).
一 보탑품(寶塔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보탑(寶塔)은 보정세계(寶淨世界)로부터 용현(涌現)하느니라. 그 보정세계(寶淨世界)의 부처란 사상(事相)의 의(義)는 차치(且置)하고, 증도관심(證道觀心)의 때는 모(母)의 태내(胎內)가 이것이로다. 그러므로 부모(父母)는 보탑조작(寶塔造作)의 목수(木手)이니라. 보탑(寶塔)이란 우리들의 오륜(五輪)·오대(五大)이니라, 그런데 탁태(?胎)의 태(胎)를 보정세계(寶淨世界)라고 하는 고(故)로 출태(出胎)하는 곳은 용현(涌現)이라고 하느니라. 대체로 중생(衆生)의 용현(涌現)은 지륜(地輪)으로부터 출현(出現)하는 고(故)로 종지용출(從地涌出)이라고 하느니라. 묘법(妙法)의 보정세계(寶淨世界)이므로 십계(十界)의 중생(衆生)의 태내(胎內)는 모두 이는 보정세계(寶淨世界)이니라. 연화(蓮華)의 보정(寶淨)이므로 십계(十界)의 태내(胎內)는 남김없이 무구청정(無垢淸淨)한 세계(世界)이니라. 묘법(妙法)의 지륜(地輪)이므로 십계(十界)에 걸치는 것이며 연화(蓮華)의 지(地)이므로 청정지(淸淨地)이니라. 묘법(妙法)의 보정(寶淨)이므로 우리들의 신체(身體)는 청정(淸淨)한 보탑(寶塔)이며 묘법연화(妙法蓮華)의 용출(涌出)이므로 십계(十界)의 출태(出胎)의 산문(産門)은 본래(本來) 청정(淸淨)한 보탑(寶塔)이니라. 법계(法界)의 탑파(塔婆)로서 십법계즉탑파(十法界卽塔婆)이며 묘법(妙法)의 이불(二佛)이므로 십계삼천(十界三千)·모두 경지(境智)의 이불(二佛)이니라. 묘법(妙法)의 일좌(一座)에는 삼천(三千)의 심성(心性) 모두가 이존(二尊)의 소좌(所座)이며 묘법연화(妙法蓮華)의 이불(二佛) 일좌(一座)이므로 불가사의(不可思議)이고 청정(淸淨)이니라. 묘법연화(妙法蓮華)의 견(見)이므로 십계(十界)의 중생(衆生)·삼천(三千)의 군류(群類)·모두가 자신(自身)의 탑파(塔婆)를 보느니라, 십계(十界)가 부동(不同)이라 해도 나의 몸을 봄은 삼천구족(三千具足)의 탑(塔)을 보는 것이고 나의 마음을 보는 것은 삼천구족(三千具足)의 부처를 보는 것이니라. 분신(分身)이란 부모(父母)로 부터 상속(相續)하는 분신(分身)의 의(意)이니라, 미혹(迷惑)할 때는 유전(流轉)의 분신(分身)이고, 깨달을 때는 과중(果中)의 분신(分身)이로다. 그런데 분신(分身)이 일어나는 곳을 배우자면 지옥(地獄)을 배워야 하느니라. 이와 같은 보탑(寶塔)도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 이외(以外)에는 없느니라,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를 보면 보탑즉일체중생(寶塔卽一切衆生)·일체중생즉(一切衆生卽)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전체(全體)이니라 운운(云云).
一 제바품(提婆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품(品)에는 석존(釋尊)의 본사(本師)·제바달다(提婆達多)의 성불(成佛)과 문수사리(文殊師利)가 교화(敎化)한 용녀성불(龍女成佛)을 설(說)하느니라. 이는 또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제바(提婆) 용녀(龍女)이므로 십계삼천(十界三千) 모두가 조달(調達) 용녀(龍女)이니라. 법계(法界)의 중생(衆生)의 역(逆)의 쪽은 조달(調達)이며 법계(法界)의 탐욕(貪欲)·진에(瞋?)·우치(愚癡)의 쪽은 모두가 용녀(龍女)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98쪽)
이니라. 조달(調達)은 수덕(修德)의 역죄(逆罪)·일체중생(一切衆生)은 성덕(性德)의 역죄(逆罪)이며, 일체중생(一切衆生)은 성덕(性德)의 천왕여래(天王如來)이고 조달(調達)은 수덕(修德)의 천왕여래(天王如來)이니라. 용녀(龍女)는 수덕(修德)의 용녀(龍女)·일체중생(一切衆生)은 성덕(性德)의 용녀(龍女)이니라. 결국(結局) 석존(釋尊)도 문수(文殊)도 제바(提婆)도 용녀(龍女)도 하나의 종자(種子)인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공능(功能)이므로 본래(本來) 성불(成佛)이니라. 따라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涇)라고 봉창(奉唱)할 때는 십계(十界) 동시(同時)에 성불(成佛)하느니라 이것을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제바달다(提婆達多)라고 하느니라. 십계삼천(十界三千) 용녀(龍女)이므로 무구세계(無垢世界)가 아님이 없으며, 용녀(龍女)의 일신(一身)도 본래성불(本來成佛)로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당체(當體)이니라 운운(云云).
一 권지품(勸持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품(品)의 이모(姨母)·야수(耶輸)의 기별(記?)은 십계동시(十界同時)의 수기(授記)이니, 묘법(妙法)의 이모(姨母)·묘법(妙法)의 야수(耶輸)이기 때문이니라. 십계(十界)의 중생(衆生)의 심성(心性)은 소지(所持)한 경(經)의 체(體)이며 이는 즉(卽) 권지(勸持)의 유통(流通)이니라. 심성(心性)에 소지(所持)한 경(經)을 권지(勸持)하여 자행화타(自行化他)로 향(向)해 가는 것이니라. 이모(姨母) 야수(耶輸)는 여인(女人)의 성불(成佛)이고 이만(二萬)의 대사(大士)는 남자(男子)의 유통(流通)이며 이 문(文)은 음양일체(陰陽一體)로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당체(當體)이니라 운운(云云). 一 안락행품(安樂行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묘법(妙法)의 안락행(安樂行)이므로 십계삼천(十界三千) 남김없이 안락행(安樂行)이니라. 자수용(自受用)의 당체(當體)이며 신구의(身口意) 서원(誓願) 모두가 안락행(安樂行)이니라. 연화(蓮華)의 안락행(安樂行)이므로 삼천십계(三千十界)가 청정(淸淨)한 수행(修行)이고 제법실상(諸法實相)이므로 안락행(安樂行) 아닌 것이 없다. 본문(本門)의 의(意)는 십계(十界)의 색심(色心)이 본래본유(本來本有)로서 진실(眞實)한 안락행(安樂行)이니라, 안락행(安樂行)의 체(體)란 소위(所謂) 상행소전(上行所傳)의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이것이니라 운운(云云). 영산정토(靈山淨土)에 안락(安樂)하게 행예(行詣)해야 할 것이니라 운운(云云).
一 용출품(涌出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품(品)은 적문유통(迹門流通)의 후(後)·본문개현(本門開顯)의 서분(序分)이니라. 고(故)로 우선 본지(本地) 무작(無作)의 삼신(三身)을 현현(顯現)하기 위(爲)해 석존(釋尊)·소구(所具)의 보살(菩薩)인 고(故)로 본지본화(本地本化)의 제자(弟子)를 부르느니라. 이는 또한 묘법(妙法)의 종지(從地)이므로 십계(十界)의 대지(大地)이며 묘법(妙法)의 용출(涌出)이므로 십계(十界) 모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799쪽)
두 용출(涌出)이니라. 십계(十界) 묘법(妙法)의 보살(菩薩)이므로 개요익유정계(皆饒益有情界)의 자비심중(慈悲深重)한 대사(大士)이고 연화(蓮華)의 대지(大地)이므로 십계(十界)의 대지(大地)도 십계용출(十界涌出)의 보살(菩薩)도 본래(本來) 청정(淸淨)이니라. 결국(結局) 오도(悟道)의 입장에서 종지(從地)란 십계(十界)의 중생(衆生)의 대종(大種)의 소생(所生)이고, 용출(涌出)이란 십계(十界)의 중생(衆生)의 출태(出胎)의 상(相)이며, 보살(菩薩)이란 십계(十界)의 중생(衆生)의 본유(本有)의 자비(慈悲)이니라. 이 보살(菩薩)에게 본법(本法)인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을 부촉(付屬)하기 위(爲)해서 종지용출(從地涌出)함이니라.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종지용출(從地涌出)의 보살(菩薩)이니, 이 밖에서 구(求)하는 일 없을지어다 운운(云云).
一 수량품(壽量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수량품(壽量品)이란 십계(十界)의 중생(衆生)의 본명(本命)이니라. 이 품(品)을 본문(本門)이라고 하는 것은 본(本)에 들어가는 문(門)이라고 하는 것이니라, 범부(凡夫)의 혈육(血肉)의 색심(色心)을 본유(本有)라고 말하는 고(故)로 본문(本門)이라고 하느니라, 이 중(重)에 이르지 않음을 시각(始覺)이라 하며 적문(迹門)이라고 하느니라. 이것을 깨달음을 본각(本覺)이라고 하며 본문(本門)이라고 하느니라.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일체중생(一切衆生)의 본유(本有)의 재처(在處)이니 이를 가지고 경(經)에 아실성불이래(我實成佛已來)라고 하느니라 운운(云云).
一 분별품(分別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품(品)은 상(上)의 품(品)의 때 본지무작(本地無作)의 삼신여래(三身如來)의 수(壽)를 듣는 고(故)로 이 품(品)에서는 위의 무작(無作)의 삼신(三身)을 신해(信解)하느니라. 그 공덕(功德)을 분별(分別)함이며, 공덕(功德)이란 십계(十界) 각각(各各)의 당체(當體)의 삼독(三毒)의 번뇌(煩惱)를 이 품(品)에서 그대로 묘법(妙法)의 공덕(功德)이라고 분별(分別)하느니라, 그 공덕(功德)이란 본유(本有)의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운운(云云).
一 수희품(隨喜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묘법(妙法)의 공덕(功德)을 수희(隨喜)하는 것을 설(說)하느니라. 오십전전(五十展轉)이란 오(五)는 묘법(妙法)의 오자(五字)이며 십(十)이란 십계(十界)의 중생(衆生)이고 전전(展轉)이란 일념삼천(一念三千)이니라. 교상(敎相)의 때는 제오십인(第五十人)의 수희(隨喜)의 공덕(功德)을 교량(校量)했으며 오십인(五十人)이란 일체중생(一切衆生)을 말함이니라. 묘법(妙法)의 五十인(人)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를 전전(展轉)하기 때문이로다.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를 전전(展轉)하느니라 운운(云云).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800쪽)
一 법사공덕품(法師功德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무작(無作)의 삼신(三身)도 여래(如來)의 수(壽)도 분별공덕(分別功德)도 수희(隨喜)도 자기 신상(身上)의 일이니라. 그러므로 부모소생(父母所生)의 육근(六根)은 청정(淸淨)하며 자재무애(自在無碍)이고, 묘법(妙法)의 육근(六根)이므로 십계삼천(十界三千)의 육근(六根)이 모두 청정(淸淨)하니라. 연화소구(蓮華所具)의 육근(六根)이므로 전연(全然) 부정(不淨)이 아니로다, 이 육근(六根)으로써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견문각지(見聞覺知)할 때는 본래본유(本來本有)의 육근청정(六根淸淨)이니라 운운(云云).
一 불경품(不輕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보살(菩薩)의 예배(禮拜)의 행(行)이란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일이니라. 자타일념(自他一念)의 예배(禮拜)이고, 부모과박(父母果縛)의 육신(肉身)을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예배(禮拜)하느니라. 불성(佛性)도 불신(佛身)도 중생(衆生)의 당체(當體)의 색심(色心)이므로 바로 예배(禮拜)를 행(行)하느니라. 따라서 개당작불(皆當作佛)의 사자(四字)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종자(種子)에 의(依)하느니라.
一 신력품(神力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십종(十種)의 신력(神力)을 나타내서 상행보살(上行菩薩)에게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를 부촉(付屬)하심이니 이 신력(神力)이란 십계삼천(十界三千)의 중생(衆生)의 신력(神力)이니라. 범부(凡夫)는 체(體)의 신력(神力)·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은 용(用)의 신력(神力)이고 신(神)이란 심법(心法) 역(力)이란 색법(色法)이며 역(力)은 법(法) 신(神)은 묘(妙)이니라. 묘법(妙法)의 신력(神力)이므로 십계(十界)가 모두 신력(神力)이니라. 연화(蓮華)의 신력(神力)이므로 십계청정(十界淸淨)의 신력(神力)이니라, 통틀어 삼세제불(三世諸佛)의 신력(神力)은 이 품(品)에 다하였으며 석존출세(釋尊出世)의 신력(神力)의 본의(本意)도 이 품(品)의 신력(神力)이로다. 소위(所謂)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신력(神力)이며, 십계개성(十界皆成)이라고 말하는 이외(以外)에 제불(諸佛)의 신력(神力)이란 없으며 일체(一切)의 법문(法門)이 신력(神力)이 아님이 없느니라 운운(云云).
一 촉루품(囑累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품(品)에는 마정부촉(摩頂付囑)을 설(說)하여 이 묘법(妙法)을 멸후(滅後)에 남기셨느니라, 이 또한 묘법(妙法)의 부촉(付囑)이므로 십계삼천(十界三千)이 모두 부촉(付屬)된 보살(菩薩)이니라 또한 삼마(三摩)하는 것은 능화소구(能化所具)의 삼관(三觀) 삼신(三身)의 어수(御手)로써 소화(所化)의 정상(頂上)에 명주(明珠)를 물려 주셨다는 뜻이니라, 대저 정상(頂上)의 명주(明珠)는 각오지견(覺悟知見)이며, 정상(頂上)의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가 이것이니라 운운(云云).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801쪽)
一 약왕품(藥王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품(品)은 약왕보살(藥王菩薩)이 부처의 멸후(滅後)에 있어서 법화(法華)를 홍통(弘通)함이니라, 결국(結局) 소신소비(燒身燒臂)란 소(燒)는 조(照)의 의(義)이며 조(照)는 지혜(智慧)의 의(義)이고 지(智)는 능(能)히 번뇌(煩惱)의 몸 생사(生死)의 팔꿈치를 태움이니라, 천태대사(天台大師)도 본지(本地)는 약왕보살(藥王菩薩)이로다. 능설(能說)의 입장에서는 석가(釋迦)이며 중생(衆生)의 중병(重病)을 소제(消除)하는 면(面)에서는 약왕(藥王) 약사여래(藥師如來)이고 또 이물(利物)의 면(面)에서는 약왕(藥王)이라고 하며, 자오(自悟)의 면(面)에서는 약사(藥師)라고 하느니라. 이 약왕(藥王) 약사(藥師)가 출세(出世)할 때는 천태대사(天台大師)이며, 약왕(藥王)도 멸후(滅後)에 홍통(弘通)하고 약사여래(藥師如來)도 상법(像法) 잠시(暫時)의 이익(利益) 유정(有情)이로다, 시(時)를 가지고 신체(身體)를 나타내고 이름을 가지고 의(義)를 나타내는 일을 부처가 나타내셨느니라, 약왕보살(藥王菩薩)은 지관(止觀)의 일념삼천(一念三千)의 법문(法門)을 홍통(弘通)하셨는데 그 일념삼천(一念三千)이란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이것이니라 운운(云云).
一 묘음품(妙音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보살(菩薩)은 법화홍통(法華弘通)의 보살(菩薩)이니라, 고(故)로 삼십사신(三十四身)을 현현(顯現)하고 십계호구(十界互具)를 나타내시어 이익설법(利益說法)하느니라. 이는 또한 묘법(妙法)의 묘음(妙音)이므로 십계(十界)의 음성(音聲)은 모두 묘음(妙音)이니라, 또 십계(十界)가 남김없이 삼십사신(三十四身)의 소현(所現)의 묘음(妙音)이니라, 또 연화(蓮華)의 묘음(妙音)이므로 십계삼천(十界三千)의 음성(音聲)은 모두 무염청정(無染淸淨)하니라, 그러므로 지카쿠대사(慈覺大師)를 묘음(妙音)의 출세(出世)라고 하며 이에 의(依)해 당결(唐決)의 시(時)·인성묘음(引聲妙音)을 전(傳)해 받았는데, 무슨 까닭으로 법화(法華)를 비방(誹謗)하여 대일경등(大日經等)보다 열등(劣等)하다고 하였는가 운운(云云). 소위(所謂) 법계(法界)의 음성(音聲)·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음성(音聲)이 아님이 없느니라 운운(云云).
一 관음품(觀音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품(品)은 심심(甚深)한 비품(秘品)이고, 식재연명(息災延命)의 품(品)이며 당도왕경(當途王經)이라고 이름한다. 그러므로 이 품(品)에 있어서 직위법문(職位法門)을 계승(繼承)한다고 배우느니라. 천태(天台)도 삼대부외(三大部外)에 관음현(觀音玄)이라는 소(疏)를 만들고 장안대사(章安大師)는 양권(兩卷)의 소(疏)를 만드셨는데 깊고 깊은 비품(秘品)이로다. 관음(觀音)·법화(法華)·안목이명(眼目異名)이라 하여 관음즉(觀音卽) 법화(法華)의 체(體)이고,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체(體)이니라 운운(云云).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802쪽)
一 다라니품(陀羅尼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품(品)은 이성(二聖)·이천왕(二天王)·십나찰녀(十羅刹女)·다라니(陀羅尼)를 설(說)하여 지경자(持經者)를 옹호(擁護)하시느니라, 결국(結局) 묘법다라니(妙法陀羅尼)의 진언(眞言)이므로 십계(十界)의 어언(語言)·음성(音聲) 모두가 다라니(陀羅尼)이니라. 그러므로 전교대사(傳敎大師) 가로되, 「묘법(妙法)의 진언(眞言)은 타경(他經)에는 설(說)하지 않았고 보현상호(普賢常護)는 타경(他經)에 설(說)하지 않았느니라」 다라니(陀羅尼)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용(用)이니라, 이 오자(五字)속에는 묘(妙)의 일자(一字)로부터 다라니(陀羅尼)를 설(說)해 내느니라 운운(云云).
一 엄왕품(嚴王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품(品)은 이자(二子)의 교화(敎化)에 의(依)해서 부(父)인 묘장엄왕(妙莊嚴王)이 사견(邪見)을 바꾸고 정견(正見)에 주(住)하여 사라수왕불(沙羅樹王佛)이 되었느니라. 사라수왕(沙羅樹王)이란 범어(梵語)이며 여기서는 치성광(熾盛光)이라고 한다, 일체중생(一切衆生)은 모두 이는 치성광(熾盛光)으로부터 출생(出生)한 일체중생(一切衆生)이니라, 그런 고(故)로 십계중생(十界衆生)의 부(父)이니라, 법화(法華)의 심(心)으로서는 자수용지(自受用智)이며, 홀연화기범소사택(忽然火起焚燒舍宅)이란 이것이니라, 번뇌(煩惱)의 일념(一念)의 불이 일어나서 미오불이(迷悟不二)의 사택(舍宅)을 불태움이니, 사견(邪見)이란 이것이로다, 이 사견(邪見)을 사견즉정(邪見卽正)이라고 조명(照明)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지혜(智慧)이니라. 소위(所謂) 육범(六凡)은 부(父)이고 사성(四聖)은 자(子)이며, 사성(四聖)은 정견(正見)·육범(六凡)은 사견(邪見)인 고(故)로 육도(六道)의 중생(衆生)은 모두 나의 부모(父母)라고 함은 이것이니라 운운(云云).
一 권발품(勸發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품(品)은 재연(再演) 법화(法華)이고, 본적이문(本迹二門)의 극리(極理)는 이 품(品)에 지극(至極)하느니라. 지카쿠대사(慈覺大師) 가로되, 십계(十界)의 중생(衆生)은 발심수행(發心修行)이라고 석(釋)하신 것은 이 품(品)을 말하느니라, 결국(結局) 이 품(品)과 서품(序品)은 생사(生死)의 이법(二法)이며 서품(序品)은 우리들 중생(衆生)의 생(生)이고, 이 품(品)은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사(死)이며 생사일념(生死一念)임을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하느니라. 품품(品品)에 있어서 처음의 제호(題號)는 생(生)의 쪽이요, 끝의 면(面)은 사(死)의 쪽이로다, 이 법화경(法華經)은 생사생사(生死生死)로 유전(流轉)하느니라. 생(生)인 고(故)로 시초(始初)에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 썼는데 여(如)는 생(生)의 의(義)이며 사(死)인 고(故)로 끝에다 작례이거(作禮而去)라고 결(結)했느니라, 거(去)는 사(死)의 의(義)이며 작례(作禮)의 언(言)은 생사간(生死間)에 이루는 바의 모든 아등중생(我等衆生)의 소작(所作)이로다, 이 소작(所作)이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이
어의구전-하(御義口傳卷下)(어서 803쪽)
니라. 예(禮)란 불란(不亂)이란 의(義)이며 법계(法界) 묘법(妙法)이므로 불란(不亂)이니라, 천태대사(天台大師) 가로되 「체(體)의 자(字)는 예(禮)라 읽으며, 예(禮)란 법(法)이니라, 각각(各各) 그 어버이를 어버이로 하며 그 자식(子息)을 자식(子息)으로 하듯이 출세(出世)의 법체(法體)도 또한 이와 같다」고. 체(體)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를 가리키며 우선 체현의(體玄義)를 석(釋)하느니라, 체(體)란 십계(十界)의 이체(異體)이고, 이것을 법화경(法華經)의 체(體)로 했는데 이런 것을 작례이거(作禮而去)라고 설(說)했느니라. 법계(法界)의 천초만목(千草萬木) 지옥아귀(地獄餓鬼) 등(等) 어느 계(界)도 제법실상(諸法實相)의 작례(作禮)가 아님이 없으며 이는 즉(卽) 보현보살(普賢菩薩)이니라, 보(普)란 법계(法界) 현(賢)이란 작례이거(作禮而去)이며 이는 즉(卽)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이니라, 이로써 품품(品品)의 처음에도 오자(五字)의 제목(題目)을 붙이고 끝에도 오자(五字)를 가지고 결론(結論)했으며 전후(前後)·중간(中間)·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칠자(七字)이니라, 말법(末法) 홍통(弘通)의 요법(要法)은 오직 이 일단(一段)에 있느니라, 이러한 뜻을 잊고 요법(要法)에 결(結)하지 않는다면 말법홍통(末法弘通)의 법(法)으로는 부족(不足)한 것이며, 더구나 니치렌(日蓮)의 본의(本意)를 잃는 것이니라. 니치렌(日蓮)의 제자단나(弟子檀那)는 이외(以外)의 재각무익(才覺無益)하니라, 묘락(妙樂)의 석(釋)에 가로되 「자(子)가 부(父)의 법(法)을 홍통(弘通)하면 세계(世界)에 이익(利益)이 있다」라고. 자(子)란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이고 부(父)란 석존(釋尊)이며 세계(世界)란 일본국(日本國)이고 익(益)이란 성불(成佛)이며 법(法)이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지금 또한 이와 같으니, 부(父)란 니치렌(日蓮)이며, 자(子)란 니치렌(日蓮)의 제자단나(弟子檀那)이고 세계(世界)란 일본국(日本國)이며 익(益)이란 수지성불(受持成佛)이고 법(法)이란 상행소전(上行所傳)의 제목(題目)이니라.
어의구전권하(御義口傳卷下) 홍안원년무인정월일일(弘安元年戊寅正月一日) 집필닛코(執筆日興)
어의구전(御義口傳) 종(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