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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전집

토롱어서에서 묘이치뇨답서까지 다수어서(어서1213~1261쪽)

작성자박정원|작성시간14.12.12|조회수355 목록 댓글 0

토롱어서(土籠御書)(어서 1213쪽)
토롱어서(土籠御書)
文永八年 十月 五十歲御作
與日朗 於相模依智
니치렌(日蓮)은 명일(明日)·사도지방(佐渡地方)으로 가느니라. 오늘 밤 날씨가 추우니·옥중(獄中)의 상황(狀況)이 염려되어 안스럽기만 하도다. 장하도다, 귀하(貴下)는 법화경(法華經) 일부(一部)를 색심이법(色心二法)에 걸쳐서 행(行)한 몸이고 보면, 부모(父母)·육친(六親)·일체중생(一切衆生)마저도 구제(救濟)하실 몸이니라. 법화경(法華經)을 다른 사람이 읽는 것은 입만으로 말만으로는 읽지만 마음으로는 읽지 아니하고, 마음으로는 읽지만 몸으로 읽지 아니하니, 색심이법(色心二法) 다같이

행(行)하시는 것이야말로 존귀(尊貴)하도다.
천제동자(天諸童子)·이위급사(以爲給使)·도장불가독불능해(刀杖不加毒不能害)라고 설(說)해져 있으므로 별(別)다른 일은 없을 것이니라. 옥(獄)을 나오시면 서둘러 찾아오시라. 만나 보고 만나뵈리라. 공공근언(恐恐謹言).
문영팔년(文永八年) 신미(辛未)十月 九日 日蓮花押
지쿠고전(筑後殿)

니치묘성인어서(日妙聖人御書)
文永九年 五月 五十一歲御作
과거(過去)에 요법범지(樂法梵志)라고 하는 자(者)가 있었느니라. 십이년간(十二年間)·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여래(如來)의 교법(敎法)을 구(求)했으나, 당시(當時)는 전연 불법승(佛法僧)의 삼보(三寶) 하나도 없었느니라. 이 범지(梵志)의 뜻은 목말라 물을 구(求)하고 굶주려서 먹을 것을 구(求)함과 같이 불법(佛法)을 찾으셨다. 그때 바라문(婆羅門)이 있어 자청(自請)해서 말하되, 나는 성교(聖敎)의 일게(一偈)를 가졌노라. 만약 참으로 불법(佛法)을 원(願)한다면 마땅히 주리라. 범지(梵志) 답(答)하여 말하되, 그러하니라. 바라문(婆羅門)이 말하되, 참으로 뜻이 있으면, 살가죽을 벗겨 종이로 하고·뼈를 부수어 붓으로 하고·골수(骨髓)를 부수어


니치묘성인어서(日妙聖人御書)(어서 1214쪽)
먹으로 하고·피를 내어 물로 해서 쓰겠다고 한다면 부처의 게(偈)를 설(說)하리라. 그 때 이 범지(梵志)는 기뻐하며 그가 말한 대로 살가죽을 벗겨 말려서 종이로 하고 내지(乃至) 일언(一言)도 틀리지 않게 썼다. 그때 바라문(婆羅門)은 홀연(忽然)히 사라졌다. 이 범지(梵志)는 하늘을 바라보며 땅에 엎드렸다. 불타(佛陀) 이를 감득(感得)하고 하방(下方)으로부터 용출(涌出)해서 설(說)하여 가로되 「여법(如法)은 마땅히 수행(修行)하되 비법(非法)은 행(行)하지 말지어다. 금세(今世) 혹은 후세(後世)에 법(法)을 행(行)하는 자(者)는 안온(安穩)하니라」 등(等) 운운(云云). 이 범지(梵志)·수유(須臾)에 부처가 되었는데 이는 이십자(二十字)이니라. 옛날 석가보살(釋迦菩薩)이 전륜왕(轉輪王)이었을 때 「부생첩사(夫生?死) 차멸위락(此滅爲樂)」의 팔자(八字)를 존경(尊敬)하신 고(故)로, 몸을 바꾸어 천등(千燈)을 밝혀서 이 팔자(八字)를 공양(供養)하시고 남에게 권(勸)하여, 석벽(石壁)·요로(要路)에 써 놓으니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보리심(菩提心)을 일으키게 하였다. 이 광명(光明)이 도리천(?利天)에 이르러 하늘의 제석(帝釋) 및 제천(諸天)의 등(燈)불이 되셨느니라.

옛날 석가보살(釋迦菩薩)이 불법(佛法)을 구(求)하셨다. 어느 나인(癩人)이 이 사람을 향(向)하여 내가 정법(正法)을 가졌는데 그 자(字)가 이십(二十)이니라, 내 나병(癩病)을 문지르고 껴안고 핥으며, 하루에 양삼근(兩三斤)의 고기를 준다고 설(說)하리라 하고 말하였다. 그가 말한 대로 해서 이십자(二十字)를 얻고 부처가 되시었다. 소위(所謂) 「여래(如來)는 열반(涅槃)을 증득(證得)하여 영구(永久)히 생사(生死)를 단절(斷切)하셨으니, 만약 지심(至心)으로 들으면 마땅히 무량(無量)의 낙(樂)을 얻으리라」 등(等) 운운(云云).

옛날 설산동자(雪山童子)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설산(雪山)이라고 하는 산(山)에서 외도(外道)의 법(法)을 통달(通達)했으나·아직 불법(佛法)을 듣지 못하였다. 그때에 대귀신(大鬼神)이 있어 설(說)하여 가로되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 등(等) 운운(云云). 다만 팔자(八字)만을 설(說)하고 뒤를 설(說)하지 않음이라. 그 때 설산동자(雪山童子)·이 팔자(八字)를 듣고 한(限)없이 기뻤으나, 반(半)의 여의주(如意珠)를 얻음과 같고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지 않음과 같으므로 나머지 팔자(八字)를 듣겠다고 하였다. 그 때에 대귀신(大鬼神)이 말하되, 나는 수일간(數日間) 굶어서 정념(正念)이 흩어졌기 때문에 뒤의 팔자(八字)를 설(說)하기 어려우니 먹을 것을 주라고 하였다. 동자(童子) 물어 말하되, 무엇을 먹느뇨. 귀신(鬼神) 대답하여 말하되, 나는 사람의 따뜻한 혈육(血肉)을 먹느니라. 나는 비행자재(飛行自在)하여 수유(須臾)의 사이에 사천하(四天下)를 돌면서 찾았으나, 따뜻한 혈육(血肉)은 얻지 못했노라. 사람을 하늘이 수호(守護)하는 고(故)로 죄(罪)가 없으면 살해(殺害)하기 어렵다 등(等) 운운(云云). 동자(童子) 말하되, 내 몸을 보시(布施)하여 그 팔자(八字)를 배워 전(傳)하리라고 운운(云云). 귀신(鬼神) 말하되, 지혜(智慧)가 매우 현명(賢明)하구나, 나를 속이려 드는고. 동자(童子) 대답하여 말하되, 와력(瓦礫)을 금은(金銀)으로 바꾸려는데 이를 바꾸지 않겠느뇨. 나 헛되이 이 산(山)에서 죽으면 치효(?梟) 호랑(虎狼)에게 먹히어 일분(一分)의 공덕(功德)도 없을터인데, 뒤의 팔자(八字)와 바꾼다면 분(糞)을 반(飯)으로 바꾸는 것과 같으리라. 귀신(鬼神)이 말하되, 나는 아직도 믿지 않노라. 동자(童子) 말하되, 증인(證人)이 있노라. 과거(過去)의 부


니치묘성인어서(日妙聖人御書)(어서 1215쪽)
처도 세우셨던 대범천왕(大梵天王)·석제환인(釋提桓因)·일월(日月)·사천(四天)도 증인(證人)으로 서주시리라. 이 귀신(鬼神)이 뒤의 게(偈)를 설(說)하겠다고 말하였다. 동자(童子)가 몸에 입었던 녹피(鹿皮)를 벗어 자리에 깔고 거궤합장(踞?合掌)하며 그 자리에 앉으시라 하고 청(請)하였다. 대귀신(大鬼神) 이 자리에 앉아 설(說)하여 말하되 「생멸멸이(生滅滅已)·적멸위락(寂滅爲樂)」 등(等) 운운(云云). 이 게(偈)를 습학(習學)하여 혹은 나무, 혹은 돌 등(等)에 써 붙이고 몸을 대귀신(大鬼神)의 입 속으로 던져 넣으시었다. 그 동자(童子)는 지금의 석존(釋尊)·그 귀신(鬼神)은 지금의 제석(帝釋)이니라.

약왕보살(藥王菩薩)은 법화경(法華經)의 어전(御前)에 팔꿈치를 칠만이천세(七萬二千歲) 동안 불태우셨다. 불경보살(不輕菩薩)은 다년간(多年間) 이십사자(二十四字) 때문에 무량무변(無量無邊)의 사중(四衆)에게 매리(罵?)·훼욕(毁辱)·장목(杖木)·와석(瓦石)으로 타척(打擲)당하셨느니라. 소위(所謂) 이십사문자(二十四文字)라고 함은 「나는 깊이 그대들을 존경(尊敬)하며 감히 경만(輕慢)하지 않노라. 소이(所以)는 무엇인고 하면 그대들은 모두 보살(菩薩)의 도(道)를 행(行)하여 마땅히 작불(作佛)함을 득(得)할 것이니라」 등(等) 운운(云云). 그 불경보살(不輕菩薩)은 지금의 교주석존(敎主釋尊)이니라. 옛날의 수두단왕(須頭檀王)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를 위해서 천세(千歲) 동안 아사선인(阿私仙人)에게 혹사(酷使)당하고, 몸을 상(床)으로 하시어 지금의 석존(釋尊)이 되셨느니라.

그런데 妙法蓮華經은 팔권(八卷)이니라. 팔권(八卷)을 읽으면 십육권(十六卷)을 읽는 것이 되리라. 석가(釋迦)·다보(多寶)의 이불(二佛)의 경(經)인 고(故)로, 십육권(十六卷)은 무량무변(無量無邊)의 권축(卷軸)이니라, 시방(十方)의 제불(諸佛)의 증명(證明)이 있는 고(故)로·일자(一字)는 이자(二字)이니라, 석가(釋迦)·다보(多寶)의 이불(二佛)의 자(字)인 고(故)로·일자(一字)는 무량(無量)의 자(字)이니라 시방(十方)의 제불(諸佛)이 증명(證明)한 경(經)이신 고(故)로. 비유컨대 여의보주(如意寶珠)의 옥(玉)은 일주(一珠)이지만 이주(二珠) 내지(乃至) 무량주(無量珠)의 재보(財寶)를 내리는 것과 같으니라. 법화경(法華經)의 문자(文字)는 일자(一字)는 일(一)의 보(寶)·무량(無量)의 자(字)는 무량(無量)의 보주(寶珠)이니라. 묘(妙)의 일자(一字)에는 둘의 혀가 있으시니 석가(釋迦)·다보(多寶)의 혀이니라. 이 이불(二佛)의 혀는 팔엽(八葉)의 연화(蓮華)이니라, 이 겹친 연화(蓮華) 위에 보주(寶珠)가 있으니 묘(妙)의 일자(一字)이니라.

이 묘(妙)의 주(珠)는 옛날 석가여래(釋迦如來)가 단바라밀(檀波羅蜜)이라고 하여 몸을 굶주린 호랑이에게 먹여 준 공덕(功德)·비둘기와 바꾼 공덕(功德), 시라바라밀(尸羅波羅蜜)이라고 하여 수타마왕(須陀摩王)으로서 허언(虛言)을 하지 않은 공덕(功德) 등(等), 인욕선인(人辱仙人)으로서·가리왕(歌梨王)에게 몸을 맡긴 공덕(功德), 능시태자(能施太子)·상사리선인(尙?梨仙人) 등(等)의 육도(六度)의 공덕(功德)을 묘(妙)의 일자(一字)에 담으시어, 말대악세(末代惡世)의 우리들 중생(衆生)에게 일선(一善)도 수행(修行)하지 않아도 육도만행(六度萬行)을 만족(滿足)하는 공덕(功德)을 주시었다. 금차삼계(今此三界)·개시아유(皆是我有)·기중중생(其中衆生)·실시오자(悉是吾子)가 바로 이것이니라. 우리들 구박(具縛)의 범부(凡夫)가 당장에 교주석존(敎主釋尊)과 공덕(功德)이 같으니, 그 공덕(功德) 전체(全體)를


니치묘성인어서(日妙聖人御書)(어서 1216쪽)
받아서 갖기 때문이니라. 경(經)에 가로되 「여아등무이(如我等無二)」 등(等) 운운(云云). 법화경(法華經)을 깨닫는 자(者)는 석존(釋尊)과 제등(齊等)하다고 하는 글월이니라. 비유하면 부모(父母) 화합(和合)하여 자식을 낳으니 자식의 몸은 전체(全體)가 부모(父母)의 몸이라 누가 이를 부정하리오. 우왕(牛王)의 자식은 우왕(牛王)이지 아직껏 사자왕(師子王)으로 되지 않으며, 사자왕(師子王)의 자식은 사자왕(師子王)이 되지, 아직껏 인왕(人王)·천왕(天王) 등(等)으로 되지 않는다. 지금 법화경(法華經) 행자(行者)는 기중중생(其中衆生) 실시오자(悉是吾子)라고 하여 교주석존(敎主釋尊)의 자식이니라. 교주석존(敎主釋尊)과 같이 법왕(法王)이 되는 것은 어렵지가 않다. 그러나 불효(不孝)한 자(者)는 부모(父母)의 뒤를 잇지 못함이니, 요왕(堯王)에게는 단주(丹朱)라는 태자(太子)가 있고, 순왕(舜王)에게는 상균(商均)이라는 왕자(王子)가 있었는데, 두 사람 모두 불효(不孝)한 자(者)인지라 부왕(父王)에게 버림받아 현신(現身)으로 백성(百姓)이 되었다. 중화(重華)와 우(禹)는 모두 백성(百姓)의 자식이니라, 효양(孝養)의 마음이 깊었으므로 요순(堯舜)의 이왕(二王)이 불러서 왕위(王位)를 물리시니 백성(百姓)의 몸이 당장에 옥체(玉體)가 되시었다. 백성(百姓)이 현신(現身)으로 왕(王)이 되고 범부(凡夫)가 당장에 부처가 됨은 같은 일이며, 일념삼천(一念三千)의 간심(肝心)이라고 함은 이것이니라. 그러면 어떻게 하여 이 공덕(功德)을 얻겠느뇨. 요법범지(樂法梵志)·설산동자(雪山童子) 등(等)과 같이 살가죽을 벗겨야 하느뇨·몸을 던져야 하느뇨·팔꿈치를 불태워야 하느뇨 등(等) 운운(云云). 장안대사(章安大師) 가로되 「취사(取捨)를 적절(適切)히 하여 일향(一向)으로 하지 말지어다」 등(等) 이것이니라. 정법(正法)을 수행(修行)하여 부처가 되는 행(行)은 때에 따를지어다. 일본국(日本國)에 종이가 없으면 살가죽을 벗겨야 하고, 일본국(日本國)에 법화경(法華經)이 없는데 아는 귀신(鬼神)이 일인(一人)이 출래(出來)하면 몸을 던져야 하고, 일본국(日本國)에 기름이 없으면 팔꿈치라도 태워야 하느니라. 두꺼운 종이가 나라에 충만(充滿)한데 살가죽을 벗겨 무엇하랴. 그러나 현장(玄?)은 서천(西天)에 법(法)을 구(求)하여 십칠년(十七年)·십만리(十萬里)에 이르렀으며, 전교(傳敎) 입당(入唐)은 단지 二年인데 파도(波濤) 삼천리(三千里)를 넘었느니라.

이들은 남자(男子)이니라·상고(上古)이니라·현인(賢人)이니라·성인(聖人)이니라·아직 듣지 못했노라·여인(女人)이 불법(佛法)을 구(求)하여 천리(千里)의 길을 헤쳐 갔다는 것을, 용녀(龍女)의 즉신성불(卽身成佛)도 마하파사파제비구니(摩訶波?波提比丘尼)가 기별(記)을 받은 것도, 알 수 없노라 권화(權化)가 아니었는지, 또한 재세(在世)의 일이니라. 남자(男子)·여인(女人) 그 성(性)이 본시(本是)부터 다르니라. 불은 따뜻하며 물은 차갑다. 어부는 물고기를 잡는 데에 교묘(巧妙)하고·엽사(獵師)는 사슴을 잡는 데에 뛰어났으며, 여인(女人)은 사물(事物)을 시샘하는데 뛰어나다고 경문(經文)에는 밝혀졌나이다, 아직 듣지 못했노라 불법(佛法)에·현명(賢明)하다고는. 여인(女人)의 마음을 청풍(淸風)에 비유했으니 바람은 잡아맬 수는 있어도, 잡을 수 없는 것은 여인(女人)의 마음이니라. 여인(女人)의 마음을 물 위에 그림 그리는 것에 비유했으니, 수면(水面)에는 문자(文字)가 남지 않기 때문이니라. 여인(女人)을 광인(?人)에 비유했으니, 혹시(或時)는 실(實)이며 혹시(或時)는 허(虛)이니라. 여인(女人)을 하천(河川)


니치묘성인어서(日妙聖人御書)(어서 1217쪽)
에 비유했으니·일체(一切) 구부러졌기 때문이니라. 그러나 법화경(法華經)은 정직사방편(正直捨方便) 등(等)·개시진실(皆是眞實) 등(等)·질직의유연(質直意柔?) 등(等)·유화질직자(柔和質直者) 등(等)이라고 하여 정직(正直)하기가·팽팽한 궁현(弓絃)과 같고·먹줄을 친 것과 같은 자(者)가 신봉(信奉)하는 경(經)이니라. 분(糞)을 전단(?檀)이라고 말해도 전단(?檀)의 향(香)은 없다, 망어(妄語)의 자(者)를 불망어(不妄語)라고 말해도 불망어(不妄語)는 아니로다, 일체경(一切經)은 모두 부처의 금구(金口)의 설(說)·불망어(不妄語)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법화경(法華經)에 비교(比較)한다면 망어(妄語)와 같도다·기어(綺語)와 같으며·악구(惡口)와 같으며·양설(兩舌)과 같은 것이다, 이 경(經)이야말로 실어(實語) 중(中)의 실어(實語)이외다. 실어(實語)의 경(經)은 정직(正直)한 자(者)가 심득(心得)하신다. 지금 당신은 실어(實語)의 여인(女人)이신가. 마땅히 알지어다, 수미산(須彌山)을 이고 대해(大海)를 건너는 사람은 볼 수 있을지라도 이 여인(女人)은 볼 수 없느니라. 모래를 쪄서 밥으로 만드는 사람은 볼 수 있을지라도, 이 여인(女人)은 볼 수 없느니라. 마땅히 알지어다, 석가불(釋迦佛)·다보불(多寶佛)·시방분신(十方分身)의 제불(諸佛)·상행(上行)·무변행(無邊行) 등(等)의 대보살(大菩薩)·대범천왕(大梵天王)·제석(帝釋)·사왕(四王) 등(等)·이 여인(女人)을 그림자가 몸을 따르듯이 수호(守護)하시리라. 일본(日本) 제일(第一)의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인 여인(女人)이로다. 그러므로 이름을 하나 붙여 드려서 불경보살(不輕菩薩)의 의(義)에 비유하리라·니치묘성인(日妙聖人) 등(等) 운운(云云).

소슈(相州) 가마쿠라(鎌倉)로부터 북국(北國) 사도(佐渡)의 지방(地方)·그 중간(中間)이 일천여리(一千餘里)나 됩니다. 산해(山海)는 아득하니 떨어지고 산(山)은 아아(峨峨)·바다는 도도(濤濤)·풍우(風雨)는 때를 따르는 일이 없다. 산적(山賊)·해적(海賊)이 충만(充滿)하고, 숙박(宿泊)하는 곳마다 민심(民心)은 호랑이와 같고 개와 같다. 현신(現身)으로 삼악도(三惡道)의 고(苦)를 겪음일까. 게다가 당세(當世)는 세상(世上)이 어지러워, 거년(去年)부터 모반자(謀叛者)가 나라에 충만(充滿)해서 금년(今年) 二月 十一日 합전(合戰), 그로부터 금오월(今五月) 말(末)·아직 세간(世間)은 안온(安穩)하지가 않다. 그러나 한 유아(幼兒)가 있는데 맡겨 둘 아버지도 믿음직스럽지 아니하며·이별(離別)한지 이미 오래이니라.

여러가지로 붓으로도 다할 수 없거니와, 마음도 스산하기 때문에 이만 그치나이다.

문영구년(文永九年) 태세(太歲) 임신(壬申)五月 二十五日 日蓮花押
니치묘성인(日妙聖人)


오토님어소식(乙님御消息)(어서 1218쪽)
오토님어소식(乙님御消息)

建治元年 八月 五十四歲御作

한토(漢土)에 아직 불법(佛法)이 전래(傳來)되지 않았을 때는, 삼황(三皇)·오제(五帝)·삼왕(三王)·내지(乃至) 대공망(大公望)·주공단(周公旦)·노자(老子)·공자(孔子)가 지으신 글월을, 혹은 경(經)이라 이름하고 혹은 전(典) 등(等)이라고 이름하였다. 이 글월을 펴서 사람에게 예의(禮儀)를 가르치고·부모(父母)를 알게 하고·왕신(王臣)을 정(定)하여 세상(世上)을 다스렸더니, 사람도 따르고 천(天)도 납수(納受)하셨느니라. 이를 어긴 자식을 불효자(不孝者)라 하고 신하(臣下)는 역신(逆臣)이라 하여 벌을 주었었는데, 월지(月氏)로부터 불경(佛經)이 건너갔을 때·어느 일류(一類)는 받아들이지 말자 하고, 어느 일류(一類)는 받아들이자고 하니, 다툼이 일어나자 불러 대결(對決)시킨 바 외전(外典)의 자(者)가 지고 불제자(佛弟子)가 이겼다. 그 후(後)는 외전(外典)의 자(者)와 불제자(佛弟子)를 대결(對決)시킨 바·얼음이 햇볕에 녹듯이·불이 물에 꺼져 버리듯이·패(敗)할 뿐만 아니라·아무런 힘도 없는 자(者)로 되었느니라. 또한 불경(佛經)이 점차로 도래(渡來)하게 되자, 불경(佛經) 중(中)에 또한 승렬(勝劣)·천심(淺深)이 있었으니 소위(所謂) 소승경(小乘經)·대승경(大乘經)·현경(顯經)·밀경(密經)·권경(權經)·실경(實經)이니라. 비유컨대 일체(一切)의 돌은 금(金)에 대(對)하면 일체(一切)의 금(金)에 뒤지지만·또 금(金) 중에도 가지 가지가 있느니라, 일체(一切)의 인간(人間)의 금(金)은 염부단금(閻浮檀金)에는 미치지 못하며, 염부단금(閻浮檀金)은 범천(梵天)의 금(金)에는 미치지 못함과 같이·일체경(一切經)은 금(金)과 같지만, 또한 승렬(勝劣)·천심(淺深)이 있느니라. 소승경(小乘經)이라고 하는 경(經)은 세간(世間)의 소선(小船)과 같아, 불과 사람을 이인(二人)·삼인(三人) 등은 태울 수 있지만, 백천인(百千人)은 태울 수가 없다. 설령 이인(二人)·삼인(三人) 등은 태운다 하여도 차안(此岸)에 머물 뿐이며 피안(彼岸)에는 가기 어렵다. 또한 작은 것은 넣지만 큰 것은 넣기 어렵다. 대승(大乘)이라고 함은 대선(大船)인데, 사람도 십(十)·이십인(二十人)도 타는데다가·큰 물건도 싣고 가마쿠라(鎌倉)로부터 쓰쿠시(筑紫) 미치(陸奧)의 지방(地方)에까지도 가느니라.

실경(實經)이라고 함은 또한 그 대선(大船)인 대승경(大乘經)과는 전혀 비교도 되지 않느니라. 대량(大量)의 진보(珍寶)도 싣고, 백천인(百千人)이 타고·고려(高麗) 같은 나라에 까지도 건너가니 일승(一乘) 법화경(法華經)이라고 하는 경(經)도 또한 이와 같도다. 제바달다(提婆達多)라고 함은 염부제일(閻浮第一)의 대악인(大惡人)이었지만 법화경(法華經)에 와서 천왕여래(天王如來)가 되었다. 또 아사세왕(阿?世王)이라고 하는 왕(王)은 아버지를 죽인 악왕(惡王)이었지만 법화경(法華經)의 회좌(會座)에 열석(列席)하여 일게일구(一偈一句)의 결연중(結緣衆)이 되었다. 용녀(龍女)


오토님어소식(乙님御消息)(어서 1219쪽)
라고 하는 사체(蛇體)의 여인(女人)은 법화경(法華經)을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이 설(說)하시자 부처가 되었다. 게다가 불설(佛說)에는 악세말법(惡世末法)이라고 때를 가리키시어 말대(末代)의 남녀(男女)에게 보내주시었다. 이야말로 당선(唐船)과도 같은 일승경(一乘經)이시니라. 그러므로 일체경(一切經)은 외전(外典)에 대(對)하면 돌과 금(金)과 같고, 또한 일체(一切)의 대승경(大乘經)·소위(所謂) 화엄경(華嚴經)·대일경(大日經)·관경(觀經)·아미타경(阿彌陀經)·반야경(般若經) 등(等)의 모든 경(經)들을 법화경(法華經)에 대(對)하면 형화(螢火)와 일월(日月), 화산(華山)과 의총(蟻塚)과 같으니라. 경(經)에 승렬(勝劣)이 있을 뿐더러, 대일경(大日經)의 일체(一切)의 진언사(眞言師)와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와 합(合)친다면, 물에 불을 합(合)치고, 이슬과 바람이 합(合)치는 것과 같다. 개는 사자(師子)를 보고 짖으면 창자가 썩고·수라(修羅)는 일륜(日輪)을 쏘았던 바 머리가 칠분(七分)으로 깨어졌다. 일체(一切)의 진언사(眞言師)는 개와 수라(修羅)와 같고·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는 일륜(日輪)과 사자(師子)와 같으니라. 얼음은 일륜(日輪)이 나오지 않을 때는 단단함이 금(金)과 같고, 불은 물이 없을 때는 뜨거웁기가 철(鐵)을 달군 것 같다. 그러나 여름의 해를 만나면 단단한 얼음이 녹기 쉽고·뜨거운 불은 물을 만나면 꺼지기 쉬우니라, 일체(一切)의 진언사(眞言師)는 기색(氣色)이 존귀(尊貴)하고·지혜(智慧)가 현명(賢明)한듯 한데·일륜(日輪)을 보지 못한 자(者)가 단단한 얼음을 믿고, 물을 보지 못한 자(者)가 불을 믿는 것과 같으니라.

당세(當世)의 사람들이 몽고국(蒙古國)을 보지 못했을 때의 교만(?慢)은 보신 바와 같이 한(限)이 없었느니라. 거년(去年)의 十月부터는·한 사람도 교만(?慢)한 자(者)가 없느니라. 들으신 바와 같이, 니치렌(日蓮) 한 사람만이 말하였으나·정작 밀어닥쳐 온다면 정면(正面)으로 대결(對決)을 할 사람도·없으리라. 다만 원숭이가 개를 두려워하고, 개구리가 뱀을 두려워함과 같이 될 것이라. 이는 오로지 석가불(釋迦佛)의 사자(使者)인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일체(一切)의 진언사(眞言師)·염불자(念佛者)·율승(律僧) 등(等)에게 미워하게 하여서 스스로 손상(損傷)하고 특히 천(天)의 미움을 받은 나라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겁쟁장이가 되었느니라. 비유하자면 불이 물을 두려워하고·나무는 쇠붙이를 겁내고·꿩이 매를 보고 혼(魂)을 잃고·쥐가 고양이에게 쫓기는 것과 같으니라. 한 사람도 살아남을 자(者)가 없게 되리니, 그 때는 어떻게 하시겠느뇨. 싸움에는 대장군(大將軍)을 혼(魂)으로 하며, 대장군(大將軍)이 겁먹으면 병졸(兵卒)은 겁쟁이가 되느니라.

여인(女人)은 남편(男便)을 혼(魂)으로 삼으니·남편(男便)이 없으면 여인(女人)은 혼(魂)이 없다. 이 세상(世上)에 남편(男便)이 있는 여인(女人)조차 세상(世上)을 살아 나가기가 어렵다고 보이는데 혼(魂)도 없이 세상(世上)을 살아 나가시는 분이 혼(魂)이 있는 여인(女人)보다도 뛰어나서, 심중(心中)이 씩씩하신 데다가·신(神)에게도 정성(精誠)을 드리고, 부처


오토님어소식(乙님御消息)(어서 1220쪽)
도 존숭(尊崇)하시니, 남보다 뛰어나신 여인(女人)이외다. 가마쿠라(鎌倉)에 있을 때는, 염불자(念佛者) 등(等)은 제쳐놓고, 법화경(法華經)을 믿는 사람들의 신심(信心)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있었으나·감죄(勘罪)를 받고 사도(佐渡)의 섬까지 유배(流配)당하고 보니, 방문(訪問)하는 사람도 없었는데·여인(女人)의 몸으로서 가지가지로 마음 쓰시는데다가·스스로 찾아오신 것은 현실(現實)이 아닌 듯 불가사의(不可思議)하도다. 게다가 금반(今般) 찾아주심은 또 말할 나위 없도다. 필시 신(神)도 수호(守護)하시며 십나찰(十羅刹)도 훌륭하다 생각하시리라. 법화경(法華經)은 여인(女人)을 위해서는, 어두움에 등(燈)불이고·바다에는 배이며·두려운 곳에서는 수호(守護)가 된다는 것을 맹서(盟誓)하셨느니라. 나습삼장(羅什三藏)이 법화경(法華經)을 전래(傳來)하실 때에 비사문천왕(毘沙門天王)은 무량(無量)의 병사(兵士)들로하여금 총령(?嶺)에서 호송(護送)하였으며, 도소법사(道昭法師)가들 가운데에서 법화경(法華經)을 읽었더니 무량(無量)의 호랑이가 와서 수호(守護)했는데 당신도 또한 그들과 다름이 없도다. 지(地)에는 삼십육기(三十六祇)·천(天)에는 이십팔수(二十八宿)가 수호(守護)하시는데다가·사람에게는 반드시 두 가지의 천(天)이 그림자처럼 따르느니라. 소위(所謂) 一을 동생천(同生天)이라고 하며, 二를 동명천(同名天)이라고 하는데, 좌우(左右)의 어깨에 붙어 있으면서 사람을 수호(守護)하므로 죄(罪) 없는 자(者)는 천(天)도 벌(罰)하는 일이 없으니·하물며 선인(善人)에 있어서랴. 그러므로 묘락대사(妙樂大師) 가로되 「반드시 마음의 견고(堅固)함에 따라서 신(神)의 수호(守護) 즉 강(强)함이라」 등 운운(云云). 사람의 마음이 견고(堅固)하면 신(神)의 가호(加護)도 반드시 강(强)하다 함이라. 이는 당신을 위해서 말하느니라. 옛날의 신심(信心)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그보다도 지금 한층 강성(强盛)히 신심(信心)을 가지시라. 그 때는 더욱더 십나찰녀(十羅刹女)의 수호(守護)도 강(强)해지리라고 생각하시라. 예(例)를 타(他)에서 인용(引用)치 말지어다. 니치렌(日蓮)을 일본국(日本國)의 상일인(上一人)으로부터 하만민(下萬民)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해(害)치려고 하였으나·지금까지 이토록 살아 있는 것은 혼자이지만 마음이 강(强)한 때문이다 라고 생각하시라. 같은 배를 타면 선장(船長)의 기술(技術)이 졸렬(拙劣)하면 함께 선중(船中)의 제인(諸人)도 손상(損傷)당하고·또한 몸이 튼튼한 사람도 마음이 약(弱)하면 많은 능력(能力)도 무용(無用)이니라. 일본국(日本國)에는·현명(賢明)한 사람들은 있는 듯하지만, 대장(大將)의 지모(智謀)가 졸렬(拙劣)하므로 허사(虛事)이니라. 이키(壹岐)·쓰시마(對馬)·구개지방(九個地方)의 병사(兵士) 및 남녀(男女)들이 많이 혹은 살해(殺害)당하고 혹은 포로(捕虜)가 되었으며, 혹은 바다에 빠지고 혹은 절벽(絶壁)에서 떨어진 자(者)가 기천만(幾千萬)인지 헤아릴 수도 없느니라. 또한 이번에 침공(侵攻)하면 이전(以前) 정도(程度)가 아니리라. 교(京)와 가마쿠라(鎌倉)는 오직 이키(壹岐)·쓰시마(對馬)와 같이 되리라. 미리 채비를 하여 아무데에라도 도망(逃亡)치시라. 그 때는 옛날에는 니치렌(日蓮)을 보지 않겠노라 듣지 않겠노라고 말하던 사람들도 합장(合掌)하고 법화경(法華經)을 믿으리라, 염불자(念佛者)·선종(禪宗)까지도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리라. 대저 법화경(法華經)을 착실히 믿


오토님어소식(乙님御消息)(어서 1221쪽)
는 남녀(男女)를 어깨에·메고 등에·업으리라고 경문(經文)에 쓰여 있을 뿐더러·구마라염삼장(鳩摩羅琰三藏)이라고 하는 사람을 목상(木像)의 석가(釋迦)가 업으셨느니라. 니치렌(日蓮)의 참수(斬首)는 대각세존(大覺世尊)이 대신하였으니 옛날과 지금과 동일(同一)하니라. 당신들은 니치렌(日蓮)의 단나(檀那)니라, 어찌하여 부처가 되시지않을소냐.

어떠한 남자(男子)를 지아비로 삼으실지라도, 법화경(法華經)의 적(敵)이라면 따르지 말지어다. 더욱더 강성(强盛)한 신심(信心)을 가지시라. 얼음은 물에서 나왔지만 물보다도 차갑고, 청(靑)은 남(藍)에서 나왔지만·거듭하면 남(藍)보다도 색(色)이 짙어진다. 같은 법화경(法華經)이라고 해도·신심(信心)을 거듭하면·타인(他人)보다도 색(色)도 더하고 이생(利生)도 있을 것이니라. 나무는 불에 타 버리지만, 전단(?檀)의 나무는 타지 않으며, 불은 물에 꺼져 버리지만, 부처의 열반(涅槃)의 불은 꺼지지 않느니라. 꽃을 바람에 져 버리지만 정거(淨居)의 꽃은 시들지 않으며·물은 대한발(大旱魃)에 없어지지만 황하(黃河)에 들어가면 없어지지 않느니라. 단미라왕(檀彌羅王)이라고 하는 악왕(惡王)은 월지(月氏)의 승(僧)의 목을 잘랐는데·벌(罰)을 받지 않았으나·사자존자(師子尊者)의 목을 잘랐을 때·칼과 손이 함께 일시(一時)에 떨어졌느니라. 불사밀다라왕(弗沙密多羅王)은 계두마사(鷄頭摩寺)를 태웠을 때·십이신(十二神)의 몽둥이에 머리가 깨어졌었다. 지금 일본국(日本國) 사람들은 법화경(法華經)의 적(敵)이 되어서 몸을 망(亡)치고 나라를 망(亡)하게 하느니라. 이렇게 말하면 니치렌(日蓮)의 자찬(自讚)이라고 알지 못하는 사람은 말하겠지만 그렇지가 않도다. 이를 말하지 않으면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가 아니로다. 또한 말한 것이 훗날 들어맞아야만 남도 믿으리라. 이렇게 써 두어야만 미래(未來)의 사람들은 지혜(智慧)가 있었다라고 알 수 있으리라. 또한 신경법중(身輕法重)·사신홍법(死身弘法)이라고 설(說)해져 있으니, 몸은 경(輕)하여서 남이 때리고 미워할지라도 법(法)은 중(重)하므로 반드시 홍통(弘通)되리라. 법화경(法華經)이 홍통되면, 시체(屍體)는 오히려 무거워질 것이며, 시체(屍體)가 무거워지면 이 시체(屍體)는 이생(利生)이 있으리라. 이생(利生)이 있다면 지금의 팔번대보살(八幡大菩薩)을 제사(齋祀) 지내듯이 모시리라. 그때는 니치렌(日蓮)을 공양(供養)한 남녀(男女)는 다케노우치(武內)·와카미야(若宮) 등(等)과 같이 존숭(尊崇)받게 되리라고 생각하시라. 대저 한 사람의 맹목(盲目)을 뜨게 하는 공덕(功德)조차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는데, 하물며 일본국(日本國)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의 눈을뜨게 하는 공덕(功德)에 있어서랴. 황차(況且) 일염부제(一閻浮提)·사천하(四天下)의 사람의 눈이 먼 것을 뜨게 함에 있어서랴. 법화경(法華經)의 제사(第四)에 가로되 「불멸도(佛滅度)의 후(後)에 능(能)히 그 의(義)를 해(解)함은 이는 모든 천인세간지안(天人世間之眼)이니라」 등(等) 운운(云云).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하는 사람은 일체세간(一切世間)의 천인(天人)의 눈이라고 설(說)해졌느니라. 일본국(日本國)의 사람이 니치렌(日蓮)을


오토님모어서(乙님母御書)(어서 1222쪽)
박해(迫害)함은, 일체세간(一切世間)의 천인(天人)의 눈을 후벼내는 사람이니라. 그러므로 천(天)도 노(怒)하여 나날이 천변(天變)이 있으며, 지(地)도 노(怒)하여 다달이 지요(地夭)가 겹치느니라. 천(天)의 제석(帝釋)은 야간(野干)을 존경(尊敬)하여 법(法)을 배웠으므로 지금의 교주석존(敎主釋尊)이 되셨으며·설산동자(雪山童子)는 귀신(鬼神)을 스승으로 했으므로 지금의 삼계(三界)의 주(主)가 되었으니, 대성(大聖)·상인(上人)은 모습을 천(賤)히 여겨 법(法)을 버리지 않았느니라. 지금 니치렌(日蓮)은 어리석지만 야간(野干)과 귀신(鬼神)보다 뒤지지 않으며, 당세(當世)의 사람은 훌륭하다 해도 제석(帝釋)·설산동자(雪山童子)보다 뛰어나지 못하리라. 니치렌(日蓮)의 몸이 천(賤)하다고 하여 교언(巧言)을 버리는 고(故)로 나라가 이미 망(亡)하려고 하니 슬프도다, 또한 니치렌(日蓮)을 안타깝다고 말한 제자(弟子)들도 구제(救濟)하기 어려운 것을 한탄(恨歎)스럽게 여기나이다.

어떠한 일이라도 일어나면 이곳으로 오실지어다, 맞이하겠노라·산중(山中)에서 함께 아사(餓死)합시다. 또 오토(乙)님은 필시 성장(成長)했겠지요. 얼마나 총명(聰明)할까요. 다시 또 말씀드리오리다.
八月 四日 日蓮花押
오토(乙)님에게

오토님모어서(乙님母御書)
오토(乙)님의 어머니

지금은 법화경(法華經)을 아시게 되어 부처가 되실 여인(女人)이니라. 참으로 편지(便紙) 쓰기 싫어하는 자(者)이지만·자주 말씀드리느니라. 또한 승려(僧侶)들도 따뜻하게 대해 주신다고 들었으며, 고마움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나이다.

무엇보다도 여인(女人)의 신분(身分)으로서·여기까지 찾아온 일·여기까지·유배(流配)된 것은 그렇다손치고·신심(信心)이 나타나기 위함이었는가 하고 고맙다고만 여겨집니다. 석가여래(釋迦如來)의 제자(弟子)는 수없이 있었지만·그 중에 십대제자(十大弟子)라고 하여 십인(十人)이 계셨는데·또 그 중(中)에 목건련존자(目?連尊者)


벤전어소식(辦殿御消息)(어서 1223쪽)
라고 하는 사람은 신통제일(神通第一)이셨느니라. 사천하(四天下)라고 하여 일월(日月)이 회전(回轉)하는 곳을 머리카락 한 가닥 자르기도 전에 도셨느니라. 이것은 어떠한 까닭인가 하고 찾아보면·전생(前生)에 천리(千里)나 되는 곳을 다니면서 불법(佛法)을 청문(聽聞)했기 때문이니라. 또한 천태대사(天台大師)의 제자(弟子)로서 장안(章安)이라고 하는 사람은 만리(萬里)를 헤치고 가서 법화경(法華經)을 들으시었다. 전교대사(傳敎大師)는 이천리(二千里)를 가서 지관(止觀)을 배웠고·현장삼장(玄?三藏)은 이십만리(二十萬里)를 가서 반야경(般若經)을 얻으시었다. 길이 먼 것에 뜻이 나타나는 것일까. 그들은 모두 남자(男子)이며, 권화(權化)의 사람들의 행위(行爲)이니라. 지금 그대는 여인(女人)이며 권실(權實)도 알기 어려운데·어떠한 숙선(宿善)이 있으실까. 옛날 여인(女人)은 사랑하는 지아비를 그리워하여, 혹은 천리(千里)도 찾아가고·둘이 되고·나무가 되고·새가 되고, 뱀이 된 일도 있었느니라.
十一月 三日 日蓮재어판(在御判)
오토(乙)님의 어머니
오토(乙)님은 훌륭한 이(尼)가 되셨겠지요. 법화경(法華經)을 받들어 섬기고 봉사(奉事)하셨기에·오토(乙)님 이(尼)는 내내 행복(幸福)해질것이라○○○.

벤전어소식(辦殿御消息)
文永九年 七月 五十一歲御作

불심(不審)이 있으면 쟁론(諍論)하지 말고 기록(記錄)하여 一日 보내도록 하시라. 이 글은 대단한 비서(秘書)이니라. 이전(已前)에 학문(學文)할 때도 아직껏 아시지 못한 것을·대강 기재(記載)했노라. 타인(他人)이 청문(聽聞)하기 이


벤전니부인어서(辦殿尼夫人御書)(어서 1224쪽)
전(已前)에 알고 있으시라. 총(總)해서는 이쪽에서 가지고 가는 사람에 의(依)하여 법문(法門)을 청문(聽聞)하시라. 서로 사제(師弟)가 되리로다. 공공근언(恐恐謹言).
七月 二十六日 日蓮花押
벤전(辦殿)·다이신아사리(大進阿?梨)스님·산미전(三位殿)

벤전니부인어서(辦殿尼夫人御書)
文永十年 九月 五十二歲御作
與日昭母妙一

번거로워서 그만 두노라. 벤전(辦殿)에게 말씀드리리다, 대사강(大師講)을 행(行)하시라·대사(大師)의 상(像)을 꺼내서 보내노라. 사부로자에몬노조전(三郞左衛門尉殿)에게 있는 서책(書冊) 속에 열반경(涅槃經)의 후분(後分) 이권(二卷)·문구(文句)五의 본말(本末)·수결집초(授決集抄)의 상권(上卷) 등(等)·지참(持參)하도록 하시라.

사다토(貞當)는 십이년(十二年) 만에 패(敗)하였고·마사카도(將門)는 팔년(八年)만에 멸망하였다. 제육천(第六天)의 마왕(魔王)은 십군(十軍)의 싸움을 일으켜서·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와 생사해(生死海)의 해중(海中)에서, 동거예토(同居穢土)를 빼앗기지 않으려고·빼앗으려고 다투고있다. 니치렌(日蓮)은 그 당사자(當事者)가 되어 대병(大兵)을 일으킨지 이십여년(二十餘年)인데, 니치렌(日蓮)은 한 번도 물러설 마음이 없었노라. 그러나 제자(弟子) 등(等)·단나(檀那) 등(等) 중(中)에 겁쟁이인 자(者)는 대체로, 혹은 떨어지고 혹은 퇴전(退轉)할 마음이 있다. 이부인(尼夫人)은 일문불통(一文不通)의 소심(小心)인데·여지껏 물러서시지 않은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노라. 게다가 자신(自身)이 부려야 할 하인(下人)을 한 사람 딸려 준 일은 필시 석가(釋迦)·다보(多寶)·시방분신(十方分身)의 제불(諸佛)도 지견(知見)하시고 있으리라. 공공근언(恐恐謹言).
九月 十九日 日蓮花押
벤전니부인(辦殿尼夫人)에게 말씀 전(傳)하시라.


벤전어소식(辦殿御消息)(어서 1225쪽)
벤전어소식(辦殿御消息)
建治二年七月 五十五歲御作
與日昭

다키오(瀧王)는 지붕을 이어야 한다면서 돌아가고 싶다기에 보냅니다. 에몬노다유전(衛門大夫殿)이 개심(改心)한 일은 다이신아사리(大進阿?梨)의 글월에 있을것 입니다.

一, 주로입도전(十郞入道殿)의 가사(袈裟), 정말 기뻐하고 있다는 뜻을 전(傳)하시라.

一, 사부로자에몬전(三郞左衛門殿)이 얼마전 사람을 보내셨으나, 말씀하신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나 불명확(不明確)하니, 일부러 찾아가시어 얘기를 듣고 서면(書面)으로 보내시라. 또한 자에몬전(左衛門殿)에게도 이렇게 전(傳)하시라. 가와노베전(河邊殿) 등(等)의 사인(四人)의 일은 오랫동안 소식(消息) 듣지 못하여 걱정이 됩니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일일(一一)이 적어 보내시라. 자주 이 사람들의 일은 유독히 일대사(一大事)라고, 천(天)을 책망(責望)하고 있나이다. 필시 후생(後生)은 그만 두고라도·금생(今生)에 증험(證驗)이 있으리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고 강(强)하게 말씀하시라. 이토(伊東)의 하치로자에몬(八郞左衛門), 지금의 시나노노카미(信濃守)는 실제로 죽은 것을·기원(祈願)하여 살려서 염불자(念佛者) 등(等)으로는 되지 않겠다는 것을 묘쇼보(明性房)에게 전갈을 보내 왔었으나·오히려 염불자(念佛者)·진언사(眞言師)가 되어 무간지옥(無間地獄)으로 떨어졌느니라. 노토보(能登房)는 실제로 한편이었는데·세간(世間)의 두려움이라든가·욕심(慾心)으로 해서·니치렌(日蓮)을 버릴 뿐더러·적(敵)이 되었으며, 쇼우보(少轉房)도 이와 같으니라.

당신들은 소중한 니치렌(日蓮)의 편이니라. 그러나 노심(勞心)하여 애써서 기원(祈願)했는데·지금껏 증험(證驗)이 없음은 이 중(中)에 마음이 변(變)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나이다. 생각이 맞지 않는 사람들을 기원(祈願)함은 물 위에 불을 지피고, 허공에 집을 짓는 것이니라. 이러한 뜻을 사인(四人)에게 들려 주시라. 몽고국(蒙古國)의 일이 맞은 것으로 보아 생각하시라. 니치렌(日蓮)의 잘못은 아니로다. 지쿠고보(筑後房)·산미(三位)·소쓰(帥) 등(等)은 여가(餘暇)가 있으면 서둘러 오도록 하라·중대(重大)한 법문(法門)을 얘기하겠노라고 전(傳)하시라. 십주비바사(十住毘婆沙) 등(等)의 요문(要文)을 대첩(大帖)으


야겐타전답서(彌源太殿答書)(어서 1226쪽)
로 한 것과·진언(眞言)의 표(表)를 소식(消息)의 이면(裏面)에 사도보(佐渡房)가 쓴 것과·모두 상세히 기록(記錄)한 것의 가벼운 것부터 지참(持參)하시라. 종이가 없어서 한 장에 많은 요사(要事)를 적었노라.
七月 二十一日 日蓮花押
벤전(辨殿)

야겐타전답서(彌源太殿答書)

대저 니치렌(日蓮)은 일본제일(日本第一)의 벽인(僻人)이니라. 그 까닭은 모든 사람이 부모(父母)보다도 높고, 주군(主君)보다도 소중(所重)히 여기시고 있는 바의 아미타불(阿彌陀佛)·대일여래(大日如來)·약사(藥師) 등(等)을 신용(信用)하는 고(故)로, 삼재(三災)·칠난(七難)이 선대(先代)보다 더하고, 천변(天變)·지요(地夭) 등(等)이 옛날보다도 지나치다고 말하는 고(故)로·결국(結局) 금생(今生)에는 몸을 망(亡)치고, 나라를 손상(損傷)하고·후생(後生)에는 대아비지옥(大阿鼻地獄)에 떨어지시리라고, 일일(一日)·편시(片時)도 게을리 함이 없이 외친 까닭에·이러한 대난(大難)을 만났노라. 비유컨대 여름 벌레가 불에 뛰어들고·쥐가 고양이 앞에 나선 것과 같으니, 이 어찌 자기 분수를 알고 조심하지 않는 축생(畜生)과 같음이 아니겠느뇨. 신명(身命)을 잃는 일이 오로지 마음에서 나온다면 벽인(僻人)이로다. 그러나 돌은 옥(玉)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깨뜨려지고·사슴은 피육(皮肉) 때문에 죽음을 당하고·물고기는 맛이 있기 때문에 잡히며·물총새는 날개가 있기 때문에 죽음을 당하고·여인(女人)은 용모(容貌)가 아름다우면 반드시 시샘 당한다고 함은 이런 뜻이니라. 니치렌(日蓮)은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인 고(故)로 삼종(三種)의 강적(强敵)이 있어, 종종(種種)의 대난(大難)을 당했노라. 그런데 이러한 자(者)의 제자단나(弟子檀那)가 되신 일은 불가사의(不可思議)하도다. 필시 곡절이 있으리니 명심(銘心)하여 착실히 신심(信心)하여 영산정토(靈山淨土)에 가시라.

또 기도(祈禱)를 위하여 장도(長刀)와 함께 단도(短刀)를, 도합 두 자루 보내셨구려. 이 장도(長刀)는 이름있는 도공(刀工)이 만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마쿠니(天國) 혹은 오니키리 (鬼切)혹은 야쓰루기(八劍)·타국(他國)의 것으로는·간장막야(干將莫耶)의 검(劍)과 어찌 다를손가·이것을 법화경(法華經)에게 공양(供養)하


야겐타전답서(彌源太殿答書)(어서 1227쪽)
셨으니 당신이 가졌을 때는 악도(惡刀)·지금 불전(佛前)에 진상(進上)하였으므로 선도(善刀)가 되느니라. 비유하자면 악귀(惡鬼)가 도심(道心)을 일으킨 것과 같으니 아아, 불가사의(不可思議)로다 불가사의(不可思議)로다. 후생(後生)에는 이 칼을 지팡이로서 의지하시라. 법화경(法華經)은 삼세제불(三世諸佛)의 발심(發心)의 지팡이로다. 다만 니치렌(日蓮)을 지팡이와 기둥이라고 의지(依持)하시라. 험준(?峻)한 산(山)·나쁜 길도 지팡이를 짚으면 넘어지지 않으며, 특히 손을 잡아 끌면 넘어지는 일이 없지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사출(死出)의 산(山)에서는 지팡이와 기둥으로 되시느니라. 석가불(釋迦佛)·다보불(多寶佛)·상행(上行) 등(等)의 사보살(四菩薩)은 손을 잡으시리라. 니치렌(日蓮)이 먼저 떠나면 마중을 나가는 일도 있으리라. 또한 먼저 가시면 니치렌(日蓮)이 반드시 염마법왕(閻魔法王)에게도 상세(詳細)히 말씀드리겠소. 이것은 조금도 허사(虛事)가 아니로다. 니치렌(日蓮)은 법화경(法華經)의 문(文)과 같다면 통색(通塞)의 안내자(案內者)이니라. 오직 일심(一心)으로 신심(信心)을 하셔서 영산(靈山)을 기(期)하시라. 돈이라고 하는 것은 소용(所用)에 따라서 변(變)하느니라. 법화경(法華經)도 역시 이와 같아서, 어두움에는 등(燈)불이 되고·나룻터에서는 배가 되고·혹은 물로도 되고·혹은 불로도 되시느니라. 만약 그렇다면 법화경(法華經)은 현세안온(現世安穩)·후생선처(後生善處)의 경(經)이시니라.

게다가 니치렌(日蓮)은 일본국(日本國) 중(中)에는 안슈(安州)의 사람이니라. 대체로 그 지방(地方)은 천조태신(天照太神)이 살기 시작하신 지방이라고 해 왔는데 그 곳에서 일본국(日本國)을 찾아내시니 아와지방(安房地方)의 신령(神領)이니라·게다가 이 나라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자부비모(慈父悲母)이니라. 이러한 존귀(尊貴)한 지방(地方)이기에 필시 연유(緣由)가 있으리라. 어떠한 숙습(宿習)때문인지 니치렌(日蓮) 또한 그 지방(地方)에 태어났으니 제일(第一)의 과보(果報)로다. 이 소식(消息)의 요점(要點)이 아니므로 상세(詳細)히는 쓰지 않겠으니 다만 추량(推量)하시라.

깊이 깊이 제천(諸天)에게 기원(祈願)하시라, 신심(信心)을 게을리 하지 말고 소원(所願)을 성취(成就)하시라. 부인(婦人)에게도 잘 말씀하시라. 공공근언(恐恐謹言).

二月 二十日 日蓮花押

야겐타전답서(彌源太殿答書)


야겐타입도전답서(彌源太入道殿答書)(어서 1228쪽)
야겐타입도전답서(彌源太入道殿答書)

별(別)다른 일은 없사오나 신봉(信奉)하는 이상(以上)은 최후(最後)에는 그리 된다고 생각하시라. 가와노베입도전(河野邊入道殿)을 그리워하고 있었는데·돌아가셨으니 귀하(貴下)를 그 유영(遺影)이라고 뵈옵겠나이다. 그러하다면 어찌 허무하다 하겠소. 분명 그렇게 생각하나이다.

단(但) 당세(當世)는 나도 법화경(法華經)을 알았노라고 사람마다 말하느니라. 당시(當時)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는 허다하게 많지요. 단(但) 법화경(法華經)이라고 하는 경(經)은 전자병(轉子病)이라는 병(病)과 같소이다. 전자(轉子)라고 함은 어버이와 같은 자식은 적지만 이 병(病)은 반드시 전(傳)해집니다. 예컨대 개의 새끼는 어미가 짖는 것을 이어받고, 고양이 새끼는 어미의 작용(作用)을 이어받아 쥐를 잡지요. 일본국(日本國)은 육십육개지방 (六十六箇地方)과 섬 둘, 그 중(中)에 부처를 모신 절은 일만일천삼십칠개소(一萬一千三十七個所)·그 안에 승니(僧尼)는 혹은 삼천(三千)·혹은 일만(一萬)·혹은 일천일백(一千一百)·혹은 십인(十人)·혹은 일인(一人)이지만·그 근원(根源)은 고보대사(弘法大師)·지카쿠대사(慈覺大師)·지쇼대사(智證大師)·이 삼대사(三大師)의 제자(弟子)이외다. 산(山)의 좌주(座主)·도사(東寺)·오무로(御室)·칠대사(七大寺)의 검교(檢校), 온조사(園城寺)의 장리(長吏)·이즈(伊豆)·하코네(箱根)·닛코(日光)·지코(慈光) 등(等)의 각사(各寺)의 별당(別堂) 등(等)도 모두 이 삼대사(三大師)의 적적(嫡嫡)이니라. 이러한 사람들은 삼대사(三大師)와 같이 읽느니라. 바로 이 삼대사(三大師)가 법화경(法華經)과 일체경(一切經)과의 승렬(勝劣)을 읽는데 있어서는·고보대사(弘法大師)는 법화경(法華經) 최제삼(最第三)이라고·지카쿠(慈覺)·지쇼(智證)는 법화경(法華經) 최제이(最第二)·혹은 희론(戱論)이니 뭐니 하고 읽었는데 지금 또한 이와 같소이다.

단(但) 니치렌(日蓮)의 눈은 잘못 본 것일까. 법화경(法華經) 최제일(最第一)·개시진실(皆是眞實)이라고 석가불(釋迦佛)·다보불(多寶佛) 시방(十方)의 제불(諸佛)은 설(說)하고 증명(證明)하시었다·이 삼대사(三大師)와는 수화(水火)의 상위(相違)이외다. 그 말류(末流)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그의 뒤를 이어서 그의 소령(所領)인 전답(田畓)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렸으니·아무리 논쟁(論諍)을 하신다 해도 삼대사(三大師)의 벽사(僻事)이므로 이 죄과(罪科)는 벗어나기 어려우리라고 보이지만·니치렌(日蓮)은 겁약(怯弱)한 자(者)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도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금 일본국(日本國) 사람들이 너도 나도 경(經)을 읽는다 해도·말하는 것을 받아들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소이다.


야겐타입도전어소식(彌源太入道殿御消息)(어서 1229쪽)
이것은 차치(且置)하고·음신(音信)도 없기 때문에 어떻게 지내시나 하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사자(使者)를 보내어 기쁩니다. 병환(病患)이 평유(平愈)되었다 하니 기쁘도다 기쁘도다, 다시 소식(消息)을 듣고자 하나이다·공공근언(恐恐謹言).
九月 十七日 日蓮花押
야겐타입도전답서(彌源太入道殿答書)

야겐타입도전어소식(彌源太入道殿御消息)

일일(一日)의 귀로(歸路)를 걱정하고 있던 차에 사자(使者)를 보내주어 기뻐하고 있소이다. 용건(用件) 등(等)에 대해서는 호키전(伯耆殿)의 서신(書信)에 쓰여져 있소이다. 그런데 도류(道隆)가 죽어서 몸이 사리(舍利)로 되었다는 것은 이는 아무튼 남은 분명(分明)히 모르고 믿지 않을 터이니, 시비(是非)를 해도 소용은 없나이다. 그러나 부처의 이전(以前)에 구십오종(九十五種)의 외도(外道)가 있었는데, 각각(各各) 이를 믿으면 부처가 된다고 했으며, 또한 모든 사람들도 동일(同一)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부처가 세상(世上)에 출현(出現)하셔서 구십오종(九十五種)은 모두 지옥(地獄)에 떨어졌다고 설(說)했더니·오천축(五天竺)의 국왕(國王)·대신(大臣)들은 부처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또 외도(外道)의 제자(弟子)들도 자기 스승에 관한 말인지라 악심(惡心)을 품었지요. 죽장외도(竹杖外道)라는 외도(外道)가 목련존자(目連尊者)를 죽인 것은 이 때문이니라. 고득외도(苦得外道)라고 하는 자(者)를 부처가 기술(記述)하여 가로되, 칠일(七日) 내(內)에 죽어서 식토귀(食吐鬼)가 되리라고 설(說)했더니 외도(外道)가 분노하였다. 칠일(七日) 내(內)에 식토귀(食吐鬼)가 되어 버렸던 바 그것을 덮어 숨기고 득도(得道)한 사람의 사리(舍利)를 사가라고 하였다. 그밖에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일은 헤아릴 수가 없다.

그러나 도류(道隆)의 일은 보지 못한 일이기에 과연 어떤 모양이었을까. 그러나 홍통(弘通)하는 바의 설법(說法)은 다같이 본래(本來) 권교(權敎)로부터 일어났음을, 지금은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 하니 광기(狂氣)되어 스스로 외도(外道)의 법(法)이라고 하느니라. 게다가 겐초사(建長寺)는 현실(現實)로 눈 앞에 보이나이다. 일본국(日本國)의 산사(山寺)의 적(敵)이라고도 해야 할 꼴이지만 일을 어위(御威)에 빗대므로, 모든 사람이 두려워서 말하지 않는다. 이는 금생(今生)을 중(重)히 하고 후생(後生)


야겐타입도전어소식(彌源太入道殿御消息)(어서 1230쪽)
을 경(輕)히 하는 까닭이니라, 그러므로 현신(現身)으로 그 절 때문에 망국(亡國)하리라는 것이 적중(的中)하였다. 니치렌(日蓮)은 이를 알고 자주 일본국(日本國) 도속(道俗)의 죄과(罪科)를 말했으니 이는 금생(今生)의 화(禍)·후생(後生)의 복(福)이로다. 그러나 도류(道隆)의 행동(行動)은 일본국(日本國)의 도속(道俗)은 알면서도 상부(上部)가 두려워 존경(尊敬)하는 척하나, 역시 내심(內心)은 모두 꺼리고 있으리라. 불법(佛法)의 사정(邪正)은 우인(愚人)이기에 알지 못하지만 세간(世間)의 일은 안전(眼前)이므로 알 수 있느니라. 또한 하나는 믿지 않아도 인골(人骨)이 사리(舍利)가 되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외다. 부처의 사리(舍利)는 불에 타지 않고·물에 젖지 않고·금강(金剛)의 쇠망치로 쳐도 부숴지지 않느니라. 한번 부숴 보려무나·참으로 쉽구나. 겐초사(建長寺)는 소령(所領)을 몰수(沒收)당하여 갈팡질팡하던 사내들이 입도(入道)가 되어, 사십(四十)·오십(五十)·육십세(六十歲)쯤 되어 도망와 있었으나 하는 일도 없이 도류(道隆)의 그늘에서 살아 왔었다. 말할 수 없이 허망하게 죽었으니, 불가사의(不可思議)했던 것을 숨긴 채 얼마동안 지냈느니라.

또한 니치렌보(日蓮房)가 존지(存知)하는 법문(法門)을 사람들로 하여금 멀리하게 하려고 꾀하고 있었으므로, 지나친 짓들인지라 광혹(?惑)이 드러나려고 하니, 그대로 잠시 참고 보시라. 뿌리가 노출(露出)하면 가지가 마르고·수원(水源)이 고갈(枯渴)하면 유수(流水)가 마른다는 말이 있지요. 공공근언(恐恐謹言).

홍안원년(弘安元年) 무인(戊寅)八月 十一日 日蓮花押

야겐타입도전(彌源太入道殿)


사지키부인답서(棧敷夫人答書)(어서 1231쪽)
사지키부인답서(棧敷夫人答書)
建治元年五月 五十四歲御作
여인(女人)은 물과 같아서 기물(器物)에 따르며·여인(女人)은 화살과 같아서 활에 메겨지고·여인(女人)은 배와 같아서 노젓는대로 가느니라. 그러므로 여인(女人)은 남편(男便)이 도둑이라면 여인(女人)도 도둑이 되고·남편(男便)이 왕(王)이라면 여인(女人)은 왕후(王后)가 되며·남편(男便)이 선인(善人)이라면 여인(女人)은·부처가 된다. 금생(今生) 뿐만이 아니라, 후생(後生)도 남편(男便)에게 달렸느니라, 그러한데 효에노사에몬전(兵衛左衛門殿)은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니라. 설령 어떠한 일이 있다 해도 남편(男便)의 아내이고 보면 법화경(法華經)의 여인(女人)이라고 부처는 아시고 계실터인데·또한 스스로 신심(信心)을 일으키어 법화경(法華經)을 위하여 단삼(單衫)을 보내시어 받았소이다.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에 이인(二人)이 있는데·성인(聖人)은 살가죽을 벗겨서 문자(文字)를 옮겨 쓰고·범부(凡夫)는 다만 한 벌의 입고 있는 단삼(單衫) 등을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에게 공양(供養)하면, 살가죽을 벗기는 것과 부처는 받아들이신다. 이 사람의 단삼(單衫)은 법화경(法華經)의 육만구천삼백팔십사(六萬九千三百八十四)의 문자(文字)의 부처에게 바치시는 것이므로·육만구천삼백팔십사(六萬九千三百八十四)의 단삼(單衫)이니라. 또 육만구천삼백팔십사(六萬九千三百八十四)의 부처는 하나 하나가·육만구천삼백팔십사(六萬九千三百八十四)의 문자(文字)이므로·이 단삼(單衫)도 역시 그와 같다. 비유하노라면 봄철에 천리(千里)나 되는 들판에 풀이 가득한데·조그마한 콩알 만한 불을 하나의 풀에 지르게 되면 일시(一時)에 무량무변(無量無邊)의 불이 된다. 이 단삼(單衫)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한 벌의 단삼(單衫)이기는 하지만 법화경(法華經)의 일체(一切)의 문자(文字)의 부처에게 바치는 것이니라.
이 공덕(功德)은 부모(父母)·조부모(祖父母)·내지(乃至) 무변(無邊)의 중생(衆生)에게도 미치게 되리라, 하물며 당신이 가장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남편(男便)은 말할 나위도 없다고 생각하시라 생각하시라.
五月 二十五日 日蓮花押
사지키부인답서(棧敷夫人答書)


사지키부인답서(棧敷夫人答書)(어서 1232쪽)
사지키부인답서(棧敷夫人答書)
建治四年 二月 五十七歲御作

백색(白色) 단의(單衣) 포목(布木) 하나 잘 받았소. 법화경(法華經)을 공양(供養)하시는 데에 십종공양(十種供養)이라고 하는 열 가지가 있사온데, 그 중(中)에 의복(衣服)이라고 함은 것은, 무엇이건 승려(僧侶)가 입는 것을 공양(供養)하는 것이외다. 그 인연(因緣)을 설(說)하시기로는 과거(過去)에 십만억(十萬億)의 부처를 공양(供養)한 사람은 법화경(法華經)에 가까워지게 된다고 설(說)해져 있소이다. 법문(法門)을 대략(大略) 말씀드려야 옳겠으나 몸에 불편한 일이 있기 때문에 상세(詳細)하게 쓰지 못하였나이다. 공공근언(恐恐謹言).
二月 十七日 日蓮花押
사지키부인답서(棧敷夫人答書)
선무외초(善無畏抄)
建治元年 五十四歲御作

선무외삼장(善無畏三藏)은 월지(月氏)·오장나국(烏?奈國)의 불종왕(佛種王)의 태자(太子)니라. 칠세(七歲)때에 즉위(卽位)하시고 십삼(十三)이 되어 나라를 형(兄)에게 양위(讓位)하고 출가둔세(出家遁世)하여 오천축(五天竺)을 수행(修行)하며 오승(五乘)의 도(道)를 다하고 삼학(三學)을 겸(兼)하셨는데, 달마국다(達磨?多)라고 하는 성인(聖人)을 만나뵙고, 진언(眞言)의 제인계(諸印契)를 일시(一時)에 돈수(頓受)하여 즉일(卽日)에 관정(灌頂)을 받고, 인천(人天)의 스승으로 정(定)해지셨다. 계족산(?足山)에 들어가서는 가섭존자(迦葉尊者)의 머리를 깎고, 왕성(王城)에서 비를 기원(祈願)하셨던 바, 관음(觀音)이 일륜(日輪) 속에서 나와 물병을 가지고 물을 뿌리고, 북천축(北天竺)의 금속왕(金粟王)의 탑(塔) 아래에서 불법(佛法)을 기청(祈請)하였더니,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이 대일경(大日經)의 태장(胎藏)의 만다라(曼茶羅)를 타나내어 수여(授與)하시었다. 그 후(後) 개원사년(開元四年) 병진(丙辰)에 한토(漢土)에 건너가니 현종황제(玄宗皇帝)가 그를 존경(尊敬)함이 일월(日月)과 같았다. 또한 대한발(大旱魃)이 있어 황제(皇帝)가 칙선(勅宣)을 내리심에 삼장(三藏)이 일발(一鉢)에 물을 넣어 잠시(暫時) 가지(加持)하셨더니, 물 속에 손가락만한 물건이 있


선무외초(善無畏抄)(어서 1233쪽)
어 변(變)하여 용(龍)이 되고 그 색(色)이 적색(赤色)이었다. 백기(白氣)가 서려 오르며 발(鉢)에서 용(龍)이 나와 허공(虛空)에 올라가 당장에 비를 내리게 하였다. 이와 같이 존귀(尊貴)한 사람이었지만 일시(一時)에 돈사(頓死)한 적이 있었는데, 소생(蘇生)하여 말하기를, 내가 죽었을 때 옥졸(獄卒)이 와서 철승(鐵繩) 일곱 가닥으로 묶고 철장(鐵杖)으로 몹시 괴롭히며 염마궁(閻魔宮)에 이르렀다. 팔만성교(八萬聖敎) 일자일구(一字一句)도 기억하지 못하고, 다만 법화경(法華經)의 제명(題名)만 잊지 않아서 제명(題名)을 생각했더니, 철승(鐵繩)이 약간 늦춰져 숨을 쉬고 고성(高聲)으로 불러 가로되, 금차삼계개시아유(今此三界皆是我有)·기중중생실시오자(其中衆生悉是吾子)·이금차처다제환난(而今此處多諸患難)·유아일인능위구호등(唯我一人能爲救護等) 운운(云云). 일곱 가닥의 철승(鐵繩)이 끊어져 시방(十方)으로 흩어지자, 염마(閻魔)는 관(冠)을 숙이고 남(南)쪽 뜰에 내리어 마주하시고, 이번은 명(命)이 다하지 않았다고 하며 돌려보내졌느니라고 말씀하시었다. 지금 니치렌(日蓮)이 불심(不審)하여 가로되, 선무외삼장(善無畏三藏)은 선생(先生)에 십선(十善)의 계력(戒力)이 있고 오백(五百)의 불타(佛陀)에게 봉사(奉事)하였다. 금생(今生)에는 버리기 어려운 왕위(王位)를 침을 뱉듯이 이를 버리고, 유소(幼少)한 십삼세(十三歲) 때에 출가(出家)하시어 월지국(月支國)을 다니면서 제종(諸宗)을 다 배워 천(天)의 감(感)을 받고 화도(化道)의 마음이 깊어져, 진단국(震旦國)으로 건너가 진언(眞言)의 대법(大法)을 넓히었다. 일인(一印) 일진언(一眞言)을 맺고 외우면, 과거(過去) 현재(現在)의 무량(無量)의 죄(罪)가 멸(滅)해 버릴 터인데, 무슨 죄과(罪科)에 의(依)하여 염마(閻魔)의 책(責)을 받았는지 의심 스럽기 그지 없도다. 선무외삼장(善無畏三藏)이 진언(眞言)의 힘으로써 염마(閻魔)의 책(責)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천축(天竺)·진단(震旦)·일본(日本) 등(等)의 제국(諸國)의 진언사(眞言師)가 지옥(地獄)의 고(苦)를 벗어날 수 있겠느뇨. 자세(仔細)히 이 사실(事實)을 생각하건대, 이 삼장(三藏)은 세간(世間)의 경죄(輕罪)는 몸에 없었으니 제종(諸宗) 및 진언(眞言)의 힘으로 소멸(消滅)되었으리라. 이 책(責)은 다른 까닭이 아니라, 법화경(法華經) 비방(誹謗)의 죄(罪)이니라. 대일경(大日經)의 의석(義釋)을 보아하니, 이 경(經)은 바로 법왕(法王)의 비보(秘寶)로서, 함부로 비천(卑賤)한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다. 석가(釋迦) 출세(出世)의 사십여년(四十餘年)에 사리불(舍利弗)의 은근(慇懃)한 삼청(三請)에 의(依)하여 바로 그를 위해 약(略)해서 妙法蓮華의 의(義)를 설(說)한것과 같다. 지금 이 본지(本地)의 몸 또한 이는 妙法蓮華 최심비처(最深秘處)이니라, 고(故)로 수량품(壽量品)에 가로되 「항상 영추산(靈鷲山) 및 다른 여러 주처(住處)에 있노라, 내지(乃至) 나의 정토(淨土)는 회괴(毁壞)되지 않았는데도 중생(衆生)은 다 불타 버렸다고 봄」이라고. 즉 이 종(宗)은 유가(瑜伽)의 의(意)이니라, 또 「보처(補處)의 보살(菩薩)의 은근(慇懃)한 삼청(三請)에 의(依)해서 바로 그를 위하여 이를 설(說)함」 등(等) 운운(云云). 이 석(釋)의 뜻은 대일경(大日經)에 본적이문(本迹二門)·개삼현일(開三顯一)·개근현원(開近顯遠)의 법문(法門)이 있으니 법화경(法華經)의 본적이문(本迹二門)과 같다. 이 법문(法門)은 법화경(法華經)과 같지만, 이 대일경(大日經)에 인(印)과 진언(眞言)이 가(加)해져서 삼밀상응(三密相應)하였다. 법화경(法華經)은 다만 의밀(意密)뿐이며 신구(身口)의 이밀(二密)이 궐(闕)했으므로 법화경(法華經)을 약설(略說)이라 하고, 대일경(大日經)을 광설(廣說)이라 해야 한다고 쓰여져 있다. 이 법문(法門) 제일(第一)의 과오(過?)·방법(謗法)의 근


선무외초(善無畏抄)(어서 1234쪽)
본(根本)이니라. 이 글월에 두 가지의 잘못이 있느니라. 또한 의석(義釋)에 가로되 「이 경(經)은 횡(橫)으로 일체(一切)의 불교(佛敎)를 통섭(統攝)함」 등(等) 운운(云云). 대일경(大日經)은 당분(當分) 수타의(隨他意)의 경(經)인데 잘못하여 수자의(隨自意)의 과절(跨節)의 경(經)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런 저런 그릇됨을 실의(實義)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염마(閻魔)의 책(責)을 받았었지만 지자(智者)이시기 때문에 이 방법(謗法)을 뉘우치고, 법화경(法華經)으로 바꾸었으므로 이 책(責)을 면(免)했는가. 천태대사(天台大師)가 석(釋)하여 가로되 「법화(法華)는 중경(衆經)을 총괄(總括)하며 내지 경만(輕慢)함을 그치지 않으므로 혀가 입 안에서 헐음」 등(等) 운운(云云). 묘락대사(妙樂大師) 가로되 「이금당(已今當)의 묘(妙) 이에 있어서 단단히 미혹(迷惑)하였다, 설란(舌爛)이 그치지 않음은 아직 화보(華報)로 함, 방법(謗法)의 죄고(罪苦)는 장겁(長劫)에 흐름」 등(等) 운운(云云). 천태(天台)·묘락(妙樂)의 심(心)은 법화경(法華經)보다 뛰어난 경(經)이 있다고 하는 사람은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진다고 쓰셨는데 선무외삼장(善無畏三藏)은 법화경(法華經)과 대일경(大日經)은 이(理)는 같으나 사(事)의 인(印) 진언(眞言)은 뛰어나다고 쓰셨다. 그러므로 두 사람 중(中)에 한 사람은 반드시 악도(惡道)에 떨어지리라고 생각되는데 천태(天台)의 석(釋)은 경문(經文)에 분명(分明)하니라. 선무외(善無畏)의 석(釋)은 경문(經文)에 그 증거(證據)가 보이지 않으며, 게다가 염마왕(閻魔王)이 책(責)할 때, 나의 내증(內證)의 간심(肝心)이라고 여기는 대일경등(大日經等)의 삼부경내(三部經內)의 문(文)을 외우지 않고, 법화경(法華經)의 문(文)을 외우고 이 책(責)을 면(免)하였음은 의심(疑心)없이 법화경(法華經)보다 진언(眞言)이 뛰어났다고 생각하는 잘못을 번의(飜意)한 것이다. 게다가 선무외삼장(善無畏三藏)의 제자(弟子)인 불공삼장(不空三藏)의 법화경(法華經) 의궤(儀軌)에는 대일경(大日經) 금강정경(金剛頂經)의 양부(兩部)의 대일(大日)을 좌우(左右)에 세우고, 법화경(法華經) 다보불(多寶佛)은 불이(不二)의 대일(大日)로 정(定)하고 양부(兩部)의 대일(大日)은 좌우(左右)의 신하(臣下)와 같이 하였느니라.

전교대사(傳敎大師)는 연력이십삼년(延曆二十三年)에 입당(入唐)·영감사(靈感寺)의 순효화상(順曉和尙)에게 진언삼부(眞言三部)의 비법(秘法)을 전수(傳授)받고, 불롱사(佛?寺)의 행만좌주(行滿座主)로부터 천태지관(天台止觀) 보주(寶珠)를 받아, 현밀이도(顯密二道)의 오지(奧旨)를 구명(究明)하신 사람으로, 화엄(華嚴)·삼론(三論)·법상(法相)·율종(律宗)의 사람들이 자종아만(自宗我慢)의 변집(邊執)을 쓰러뜨리고 천태대사(天台大師)에게 귀입(歸入)했다는 것을 쓰셨소이다. 의빙집(依憑集)·수호장(守護章)·수구(秀句) 등(等)이라고 하는 서(書) 중(中)에, 선무외(善無畏)·금강지(金剛智)·불공(不空) 등(等)은 천태종(天台宗)에 귀입(歸入)하여, 지자대사(智者大師)를 본사(本師)로 숭앙하였다는 것이 실려 있다. 각각(各各) 생각하기를 종(宗)을 세우는 법(法)은 자종(自宗)을 칭찬(稱讚)하고 타종(他宗)을 퇴박함은 상습(常習)이라고 생각하였다. 호넨(法然) 등은 또 이 예(例)를 인용(引用)하여 담란(曇鸞)의 난이(難易)·도작(道綽)의 성도정토(聖道淨土)·선도(善導)의 정잡이행(正雜二行)의 명목(名目)을 인용(引用)해서 천태(天台) 진언(眞言) 등(等)의 대법(大法)을 염불(念佛)의 방편(方便)으로 삼았으니, 이들은 소발자국에 대해(大海)를 넣고, 현(縣)의 현판(縣版)을 주(州)에 거는 자(者)이니라. 세간(世間)의 법(法)에는 하극상(下剋上)·배상향하(背上向下)는 국토망란(國土亡亂)의 인연(因緣)이니라. 불법(佛法)에서는 권소(權小)의 경(經)들을 본(本)으로 하여 실경(實經)을 멸시(蔑視)하는게 대방법(大謗法)의 인연(因緣)이니 두려워하고


선무외초(善無畏抄)(어서 1235쪽)
두려워할지어다.

가상사(嘉祥寺)의 길장대사(吉藏大師)는 삼론종(三論宗)의 원조(元祖)·혹시(或時)는 일대성교(一代聖敎)를 오시(五時)로 나누고 혹시(或時)는 이장(二藏)으로 교판(敎判)하였다, 그렇기는 해도 용수보살(龍樹菩薩)이 만든 백론(百論)·중론(中論)·십이문론(十二門論)·대론(大論)을 존중(尊重)하고 반야경(般若經)을 의빙(依憑)으로 정(定)하여, 천태대사(天台大師)를 변집(邊執)하고 지내셨기에 지자대사(智者大師)의 범망등(梵網等)의 소(疏)를 보고 조금 마음이 풀리어 점차로 가까워져서, 법문(法門)을 청문(聽聞)해 오다가 결국(結局)은 일백여인(一百餘人)의 제자(弟子)를 버리고, 반야경(般若經) 및 법화경(法華經)도 강설(講說)하지 않고, 칠년(七年)동안이나 천태대사(天台大師)에게 봉사(奉事)하시었다. 고승전(高僧傳)에는 「중(衆)을 해산(解散)시키고 신(身)을 육교(肉橋)로 함」이라고 쓰여졌으며, 천태대사(天台大師)가 고좌(高坐)에 오르시면 다가가서 어깨로 발을 받쳐 드리고, 길을 가시면 업어 드리어 도랑을 건너셨다. 길장대사(吉藏大師)만한 사람조차도 방법(謗法)을 두려워하여 이렇게 봉사(奉事)하시었다. 그런데 진언(眞言) 삼론(三論) 법상(法相) 등(等)의 종(宗)들의 사람들은 지금 말말(末末)이 되어서 변집(邊執)하심은 자업자득과(自業自得果)가 될 것이니라.

지금의 세상(世上)에 정토종(淨土宗) 선종(禪宗) 등이라고 하는 종(宗)들은 천태종(天台宗)에게 꺾여버린 진언(眞言) 화엄(華嚴) 등에 미치지 못하며, 의경(依經)은 모두 능가경(楞伽經)·관경(觀經) 등이라, 이러한 경(經)들은 부처의 출세(出世)의 본의(本意)도 아니고, 일시일회(一時一會)의 소경(小經)이니 일대성교(一代聖敎)를 판별(判別)하기에는 부족한 것이며, 더구나 그 경(經)들을 의경(依經)으로하여, 일대(一代)의 성교(聖敎)를 성도정토(聖道淨土)·난행이행(難行易行)·잡행정행(雜行正行)으로 나누어 교외별전(敎外別傳) 등이라고 매도(罵倒)하였다. 비유컨대 백성(百姓)이 왕(王)을 학대(虐待)하고 소하(小河)가 대해(大海)를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이러한 방법(謗法)의 인사(人師)들을 믿고 후생(後生)을 바라는 사람들이 무간지옥(無間地獄)을 벗어날 수 있겠느뇨. 그러므로 당세(當世)의 우자(愚者)는 부처로는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본존(本尊)으로 정(定)했기에 자연(自然)히 불효(不孝)의 죄(罪)를 벗어나고 법화경(法華經)을 믿었기 때문에 뜻밖에 방법(謗法)의 죄과(罪科)를 벗어났느니라.

게다가 여인(女人)은 오장삼종(五障三從)이라고 하여 세간출세(世間出世)에 타박당하고 일대(一代)의 성교(聖敎)에 버림을 받아 버렸는데, 다만 법화경(法華經)에서 만이 용녀(龍女)가 부처가 되고 모든 비구니(比丘尼)에게 기별(記?)이 주어졌기 때문에, 일체(一切)의 여인(女人)은 이 경(經)을 버리시고서 그 어느 경(經)을 수지(受持)하실 것인가. 천태대사(天台大師)는 진단국(震旦國)의 사람으로, 불멸후(佛滅後) 일천오백여년(一千五百餘年)에 부처의 사자(使者)로서 세상(世上)에 나오시었다. 법화경(法華經)에 삼십권(三十卷)의 문(文)을 주석(注釋)하셨는데 문구(文句)라고 하는 문(文)의 제칠(第七)의 권(卷)에는 「타경(他經)에는 다만 남자(男子)에게 기(記)하고 여자(女子)에게 기(記)하지 않음이라」 등(等) 운운(云云). 남자(男子)도 여경(餘經)으로는 부처가 되지


선무외초(善無畏抄)(어서 1236쪽)
못했으나, 잠시 양보해서 이를 허용(許容)해 보자면, 여인(女人)에 대해서는 일향(一向) 제경(諸經)에 있어서는 불가능(不可能)하다고 쓰여져 있소이다. 설령 천만(千萬)의 경(經)들에 여인(女人)이 성불(成佛)한다고 허용(許容)되었다 해도, 법화경(法華經)에서 타박당한다면 무슨 보람이 있겠느뇨.

교주석존(敎主釋尊)은 나의 제경(諸經) 사십여년(四十餘年)의 경(經)들을 미현진실(未顯眞實)이라고 뉘우쳐 뒤엎고 열반경등(涅槃經等)은 당설(當說)이라 해서 물리치시고, 무량의경(無量義經)을 금설(今說)이라고 정(定)해 두고, 삼설(三說)보다 뛰어난 법화경(法華經)에 「정직(正直)하게 방편(方便)을 버리고 오직 무상도(無上道)를 설(說)함, 세존(世尊)의 법(法)은 오래인 후(後)에 반드시 응당(應當) 진실(眞實)을 설(說)하리라」고 석존(釋尊)이 말씀하셨더니 보정세계(寶淨世界)의 다보불(多寶佛)은 대지(大地)에서 나오시어, 진실(眞實)이라는 취지(趣旨)의 증명(證明)을 가(加)하고 시방분신(十方分身)의 제불(諸佛)은 광장설(廣長說)을 범천(梵天)에 대셨으며, 시방세계(十方世界) 미진수(微塵數)의 제불(諸佛)의 설상(舌相)은 불망어계(不妄語戒)의 힘의 과보(果報)로서 팔엽(八葉)의 적연화(赤蓮華)로 나타나셨느니라. 일불(一佛) 이불(二佛) 삼불(三佛) 내지(乃至) 십불(十佛) 백불(百佛) 천만억불(千萬億佛)의 사백만억나유타(四百萬億那由?)의 세계(世界)에 충만(充滿)한 부처의 혀를 가지고 정(定)해 놓으신 여인성불(女人成佛)의 의(義)니라. 방법(謗法)이 없이 이 경(經)을 수지(受持)하는 여인(女人)은 시방허공(十方虛空)에 충만(充滿)해 있는 간탐(?貪)·질투(嫉妬)·진에(瞋?)·십악(十惡)·오역(五逆)이라 할지라도, 초목(草木)의 이슬이 대풍(大風)을 만난 것 같이 되리라. 삼동(三冬)의 얼음이 여름의 햇볕에 멸(滅)하는 것과 같으나, 다만 멸(滅)하기 어려운 것은 법화경(法華經) 방법(謗法)의 죄(罪)이니라, 비유컨대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의 초목(草木)을 장작으로 할지라도 수미산(須彌山)은 일분(一分)도 손상(損傷)키 어려우며, 가령 일곱 개의 해가 나와서 백천일(百千日) 비추어도 대해(大海) 속은 말리기가 어렵다. 설령 팔만성교(八萬聖敎)를 읽고 대지(大地) 미진(微塵)의 탑파(塔婆)를 세워 대소승(大小乘)의 계행(戒行)을 다하고, 시방세계(十方世界)의 중생(衆生)을 일자(一子)와 같이 여긴다 해도 법화경(法華經) 방법(謗法)의 죄(罪)는 소멸되지 않느니라, 우리들 과거(過去)·현재(現在)·미래(未來)의 삼세(三世) 동안에 부처가 되지 않고 육도(六道)의 고(苦)를 받음은 오로지 법화경(法華經) 비방(誹謗)의 죄(罪) 때문이니라. 여인(女人)으로 태어나서 백악(百惡)이 몸에 갖춰짐도 근본(根本)은 이 경(經)의 비방(誹謗)의 죄(罪)에서 일어났느니라.

그러므로 이 경(經)을 만나뵈옵는 여인(女人)은 살가죽을 베껴서 종이로 하고, 피를 내어서 먹으로 하고, 뼈를 부러뜨려 붓으로 하고, 피눈물을 벼룻 물로 하여 봉서(奉書)한다고 해도 만족(滿足)하지 않는다. 하물며 의복(衣服)·금은(金銀)·우마(牛馬)·전답(田畓) 등(等)의 보시(布施)로써 공양(供養)함은 대단한 것 같지만 보잘 것 없느니라.


묘미쓰상인어소식(妙密上人御消息)(어서 1237쪽)
묘미쓰상인어소식(妙密上人御消息)
建治二年 三月 五十五歲御作
與?谷妙密

엽전(葉錢) 오관문(五貫文) 받았소이다. 대저 오계(五戒)의 처음은 불살생계(不殺生戒)·육바라밀(六波羅蜜)의 처음은 단바라밀(檀波羅蜜)이니라. 십선계(十善戒)·이백오십계(二百五十戒)·십중금계(十重禁戒) 등(等)의 일체(一切)의 제계(諸戒)의 처음은 모두 불살생계(不殺生戒)이니라. 위는 대성(大聖)으로부터 아래는 문망(蚊?)에 이르기까지 목숨을 재보(財寶)로 하지 않음이 없으니 이것을 빼앗으면 또 제일(第一)의 중죄(重罪)이니라. 여래(如來)가 세상(世上)에 나오셔서는 생(生)을 자애(慈愛)함을 근본(根本)으로 했으며, 생(生)을 자애(慈愛)하는 표시(標示)로는 목숨을 빼앗지 않고 시식(施食)을 행(行)함이 제일(第一)의 계(戒)이외다. 남에게 식(食)을 베품에 三의 공덕(功德)이 있으니·一에는 명(命)을 잇고·二에는 색(色)을 더하고·三에는 힘을 준다. 명(命)을 이음은 인중(人中)·천상(天上)에 태어나서는 장명(長命)의 과보(果報)를 얻고, 부처가 되어서는 법신여래(法身如來)로 나타나서 그 몸이 허공(虛空)과 같으며, 힘을 주는 고(故)로 인중(人中)·천상(天上)에 태어나서는 위덕의 사람으로 되어서 권속(眷屬)이 많고, 부처가 되어서는 보신여래(報身如來)로 나타나서 연화대(蓮華臺)에 살고 팔월(八月) 십오야(十五夜)의 달이 청천(晴天)에 나온것과 같다, 색(色)을 더하기 때문에 인중(人中)·천상(天上)에 태어나서는 삼십이상(三十二相)을 구족(具足)하여 단정(端正)하기가 꽃과 같고, 부처가 되시어서는 응신여래(應身如來)로 나타나서 석가불(釋迦佛)과 같아지리라. 대저 수미산(須彌山)의 시초(始初)를 찾아보면 일진(一塵)이고·대해(大海)의 시초(始初)는 일로(一露)이니라·一을 거듭하면 二가 되고·二를 거듭하면 三·내지(乃至) 十·백(百)·천(千)·만(萬)·억(億)·아승기(阿僧祇)의 모(母)는 오직 일(一)이니라.

그러한데 일본국(日本國)에서 불법(佛法)이 시작(始作)된 것은 천신(天神) 칠대(七代)·지신(地神) 오대(五代)의 후(後)·인왕(人王) 백대(百代)·그 초(初)의 왕(王)을 진무천황(神武天皇)이라고 한다. 진무(神武)로부터 제삼십대(第三十代)가 되는 긴메이천황(欽明天皇)의 어우(御宇)에 백제국(百濟國)에서 경(經) 및 교주석존(敎主釋尊)의 어영(御影)과 승니(僧尼) 등(等)을 건네주었으며, 요메이천황(用明天皇)의 태자(太子)인 조구(上宮)라고 하는 사람이 불법(佛法)을 읽기 시작(始作)하여, 법화경(法華經)을 한토(漢土)로부터 가지고 오게 하시어 소(疏)를 작성(作成)하여 홍통(弘通)하시었다. 그로부터 후(後)·인왕(人王) 삼십칠대(三十七代)·고토쿠천황(孝德天皇)의 어우(御宇)에 관륵승정(觀勒僧正)이라고 하는 사람이 신라국(新羅國)에서 삼론종(三論宗)·성실종(成實宗)을 건네 주었으며, 같은 대(代)에 도쇼(道昭)라고 하는 승(僧)이 한토(漢土)에서 법상종(法相宗)·구사종(俱舍宗)을 가져 왔고, 같은 대(代)에 심상대덕(審祥大德)이 화엄종(華嚴宗)을 건네 주었다. 제사십사대(第四十四代)·겐쇼천황(元正天皇)의 어우(御宇)에 천축(天竺)의 상인(上人)이 대일경(大日經)을 건네주었고, 제사십오대(第四十五代)·쇼무천황(聖武天皇)의 어우(御宇)에 감진화상(鑑眞和尙)이라는 사람이 한토(漢土)에서 일본국(日本國)에 율종(律宗)을 건네주면


묘미쓰상인어소식(妙密上人御消息)(어서 1238쪽)
서, 곁들여 천태종(天台宗)의 현의(玄義)·문구(文句)·원돈지관(圓頓止觀)·정명소(淨名疏) 등(等)을 건네 주었는데, 그러나 진언종(眞言宗)과 법화종(法華宗)의 이종(二宗)은 아직 홍통(弘通)하지 않았느니라, 인왕(人王) 제오십대(第五十代)·간무천황(桓武天皇)의 대(代)에 사이초(最澄)라고 하는 소승(小僧)이 있었는데, 후(後)에는 전교대사(傳敎大師)라고 호칭(號稱)하였다. 이사람이 입당(入唐) 이전(已前)에 진언종(眞言宗)과 천태종(天台宗)의 이종(二宗)의 장소(章疏)를 십오년(十五年) 동안 오직 혼자서만 보아 두시었다. 후(後)에 연력이십삼년(延曆二十三年) 칠월(七月)에 한토(漢土)로 건너가 이듬 해의 유월(六月)에 본국(本國)에 돌아오시어서, 천태(天台)·진언(眞言)의 이종(二宗)을 칠대사(七大寺)의 석학(碩學) 수십인(數十人)에게 수여(授與)하셨고, 그 후(後)로부터 우금사백년(于今四百年)이니라. 대체로 일본국(日本國)에 불법(佛法)이 건너온지 우금(于今) 칠백여년(七百餘年)이니라. 혹(或)은 미타(彌陀)의 명호(名號) 혹(或)은 대일(大日)의 명호(名號)·혹(或)은 석가(釋迦)의 명호(名號) 등(等)을 일체중생(一切衆生)에게 권(勸)하신 사람들은 계셨지만, 아직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라고 권(勸)한 사람은 없었다. 일본국(日本國)에 한(限)하지 않고 월지등(月氏等)에도 불멸후(佛滅後) 일천년(一千年) 동안·가섭(迦葉)·아난(阿難)·마명(馬鳴)·용수(龍樹)·무착(無著)·천친(天親) 등(等)의 대논사(大論師)가 불법(佛法)을 오천축(五天竺)에 홍통(弘通)하였지만, 한토(漢土)에 불법(佛法)이 건너간지 수백년(數百年) 동안 마등가(摩騰迦)·축법란(竺法蘭)·나습삼장(羅什三藏)·남악(南岳)·천태(天台)·묘락(妙樂) 등(等)·혹(或)은 소(疏)를 저작(著作)하고 혹(或)은 경(經)을 석(釋)하셨으나, 아직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은 미타(彌陀)의 명호(名號)처럼 권(勸)하지 않았으며, 다만 자신(自身) 한 사람만이 부르고·혹(或)은 경(經)을 강설(講說)할 때·강사(講師)만이 부르는 일이 있었다. 그런데 팔종(八宗)·구종(九宗)·등(等)은 그 의(義)가 각각이지만, 다분(多分)은 미타(彌陀)의 명호(名號)·다음에는 관음(觀音)의 명호(名號)·다음에는 석가불(釋迦佛)의 명호(名號)·다음에는 대일(大日)·약사(藥師) 등(等)의 명호(名號)를 부르시는 고조(高祖)·선덕(先德) 등(等)은 계셨으나, 어떠한 까닭이 있었는지 일대(一代) 제교(諸敎)의 간심(肝心)인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은 부르지 않았었다. 그 까닭은 소상(昭詳)히 추구(追求)하여 배울지어다. 비유하면 대의(大醫)가 일체(一切)의 병(病)의 근원(根源)과 약(藥)의 천심(淺深)은 알고 있었으나 까닭없이 중요(重要)한 약(藥)을 쓰는 일 없이 병(病)에 따르는 것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부처의 멸후(滅後) 정상이천년(正像二千年) 동안은 번뇌(煩惱)의 병(病)이 가벼웠기에 일대제일(一代第一)의 양약(良藥)인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는 권(勸)하지 않았느니라, 지금 말법(末法)에 들어와 사람마다 중병(重病)이 있는데 아미타(阿彌陀)·대일(大日)·석가(釋迦) 등(等)의 경약(輕藥)으로써는 고치기가 어렵다. 또 달은 매우 밝지만 가을이 아니면 빛을 아끼고·꽃은 몹시 아름답지만 봄이 아니면 피지 않으니, 일체(一切)가 때에 따르는 것이니라, 그러한데 정상이천년(正像二千年) 동안은 제목(題目)의 유포(流布)의 때에 해당하지 않는다. 또한 불교(佛敎)를 넓히는 것은 부처의 사자(使者)니라. 따라서 부처의 제자(弟子)가 양여(讓與)를 받는 것은 각별(各別)이니라. 정법천년(正法千年)에 나온 논사(論師)·상법천년(像法千年)에 나온 인사(人師) 등(等)은·대부분은 소승(小乘)·권대승(權大乘)·법화경(法華經)의 혹(或)은 적문(迹門)·혹(或)은 지엽(枝葉)을 양여(讓與)받은 사람들이니라.


묘미쓰상인어소식(妙密上人御消息)(어서 1239쪽)
아직 본문(本門)의 간심(肝心)인 제목(題目)을 양여(讓與)받은 상행보살(上行菩薩)이 세상(世上)에 출현(出現)하시지 않았는데, 이 사람은 말법(末法)에 출현(出現)하여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를 일염부제(一閻浮提) 중(中)의 모든 나라 모든 사람에게 홍통(弘通)하리라. 예(例)컨대 당시(當時) 일본국(日本國)에 미타(彌陀)의 명호(名號)가 유포(流布)된 것과 같이 되느니라.

그런데 니치렌(日蓮)은 그 어느 종(宗)의 원조(元祖)도 아니고·또한 말엽(末葉)도 아니며·지계파계(持戒破戒)에도 들지않는 무계(無戒)의 승(僧)·유지무지(有智無智)에서도 벗어난 우양(牛羊)과도 같은 자(者)이니라. 어찌하여 말하기 시작(始作)했는지, 상행보살(上行菩薩)이 출현(出現)하여 홍통(弘通)하셔야 할 묘호렌게교(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를, 앞서서·잠꼬대와도 같이·마음에도 없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말하기 시작(始作)하여 그동안 부르고 있느니라. 결국 좋은 일인지, 아니면 나쁜 일인지, 나도 모르고 남도 알기 어려우니라. 그러나 법화경(法華經)을 펼쳐서 배독(拜讀)하니, 이 경(經)은 등각(等覺)의 보살(菩薩)·문수(文殊)·미륵(彌勒)·관음(觀音)·보현(普賢)조차도 손쉽게 일구일게(一句一偈)도 수지(受持)하는 사람이 없으며, 「유불여불(唯佛與佛)」이라고 설(說)하시었다. 그러므로 화엄경(華嚴經)은 최초(最初)의 돈설(頓說)·원만(圓滿)한 경(經)이지만, 법혜등(法慧等)의 사보살(四菩薩)에게 설(說)하게 하셨고, 반야경(般若經)은 또한 화엄경(華嚴經) 정도(程度)는 아니지만 당분(當分)은 최상(最上)의 경(經)이로다. 그러나 수보리(須菩提)가 이를 설(說)하였다, 오직 법화경(法華經)만이 삼신(三身) 원만(圓滿)의 석가(釋迦)의 금구(金口)의 묘설(妙說)이니라. 그러므로 보현(普賢)·문수(文殊)일지라도 손쉽게 일구일게(一句一偈)라도 설(說)하시지 못했느니라, 하물며 말대(末代)의 범부(凡夫)인 우리들 중생(衆生)은 일자(一字) 이자(二字)일지라도 자신(自身)에게는 수지(受持)하기 어렵다. 제종(諸宗)의 원조(元祖) 등(等)이 법화경(法華經)을 봉독(奉讀)하면 각각(各各) 그 제자(弟子)들은, 나의 스승은 법화경(法華經)의 심(心)을 터득하셨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근본(根本)을 말하자면, 자은대사(慈恩大師)는 심밀경(深密經)·유식론(唯識論)을 스승으로 하여 법화경(法華經)을 읽고, 가상대사(嘉祥大師)는 반야경(般若經)·중론(中論)을 스승으로 하여 법화경(法華經)을 읽고, 두순(杜順)·법장(法藏) 등(等)은 화엄경(華嚴經)·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을 스승으로 하여 법화경(法華經)을 읽고, 선무외(善無畏)·금강지(金剛智)·불공(不空) 등(等)은 대일경(大日經)을 스승으로 하여 법화경(法華經)을 읽었으니, 이러한 사람들은 각기(各其) 법화경(法華經)을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일구일게(一句一偈)도 읽은 사람이 아니니라. 근본(根本)을 말하자면 전교대사(傳敎大師)는 석(釋)하여 가로되 「법화경(法華經)을 찬(讚)한다고 해도 오히려 법화(法華)의 심(心)을 죽임」 운운(云云). 예(例)컨대 외도(外道)는 불경(佛經)을 읽어도 외도(外道)와 같고, 박쥐가 낮을 밤으로 보는 것고 같고, 또 붉은 얼굴을 한 자(者)는 흰 거울도 붉다고 생각하며, 장도(長刀)에 얼굴을 비춘 자(者)가 둥근 얼굴을 갸름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흡사하다.

지금 니치렌(日蓮)은 그렇지가 않다, 이금당(已今當)의 경문(經文)을 깊게 지키고·일경(一經)의 간심(肝心)인 제목(題目)을 나도 부르고 남에게도 권(勸)하니, 삼 밭 속의 쑥·


묘미쓰상인어소식(妙密上人御消息)(어서 1240쪽)
먹줄친 나무가 자체(自體)는 곧지 않더라도, 자연(自然)히 곧아지는것과 같다. 경(經)과 여(如)히 부르므로 구부러진 마음이 없으니, 마땅히 알지니라, 부처의 마음이 우리들의 몸에 들어오시지 않으면 부르기 어려우니라, 또 타인(他人)이 넓히시는 불법(佛法)은 모두 스승에게서 배워 전(傳)한 것이라, 예(例)컨대 가마쿠라(鎌倉)의 가신(家臣) 등의 영지(領地)·소령(所領)의 지두(地頭)·혹(或)은 일정(一町)·이정(二町)이라해도 모두 고대장가(故大將家)의 은덕(恩德)이니라. 하물며 백정(百町)·천정(千町)·일국(一國)·이국(二國)을 다스리는 사람들에 있어서랴. 현인(賢人)이라고 함은 훌륭한 스승으로부터 전수(傳授)받은 사람이고·성인(聖人)이라 함은 스승 없이 스스로 깨달은 사람이니라. 불멸후(佛滅後)·월지(月氏)·한토(漢土)·일본국(日本國)에 두 사람의 성인(聖人)이 있으니 소위(所謂) 천태(天台)·전교(傳敎)의 두 사람이니라. 이 二인(人)을 성인(聖人)이라고 하며 또 현인(賢人)이라고도 하느니라. 천태대사(天台大師)는 남악(南岳)에게서 전수(傳授)받았으니 이는 현인(賢人)이니라, 도량(道場)에서 자해불승(自解佛乘)하시니 또한 성인(聖人)이니라. 전교대사(傳敎大師)는 도수(道邃)·행만(行滿)에게서 지관(止觀)과 원돈(圓頓)의 대계(大戒)를 전수(傳授)받았으니 이는 현인(賢人)이니라, 입당(入唐) 이전(已前)에 일본국(日本國)에 있어서 진언(眞言)·지관(止觀)의 이종(二宗)을 스승 없이 다 깨닫고, 천태종(天台宗)의 지혜(智慧)로써 육종(六宗)·칠종(七宗)보다 뛰어났다고 심득(心得)하심은 이는 성인(聖人)이로다. 그러므로 외전(外典)에 가로되 「태어나면서부터 이를 아는 자(者)는 상(上)이니라 상(上)이란 성인(聖人)의 이름이니라 배워서 이를 아는 자는 차(次)이니라 차(次)란 현인(賢人)의 이름이니라」 내전(內典)에 가로되 「나의 행(行)·스승의 도움이 없음」 등(等) 운운(云云). 대저 교주석존(敎主釋尊)은 사바세계(娑婆世界) 제일(第一)의 성인(聖人)이로다. 천태(天台)·전교(傳敎)의 이인(二人)은 성현(聖賢)에 통(通)하느니라. 마명(馬鳴)·용수(龍樹)·무착(無著)·천친(天親) 등(等)·노자(老子)·공자(孔子) 등(等)은 혹(或)은 소승(小乘)·혹(或)은 권대승(權大乘)·혹(或)은 외전(外典)의 성현(聖賢)이며, 법화경(法華經)의 성현(聖賢)은 아니로다.

지금 니치렌(日蓮)은 성(聖)도 현(賢)도 아니며, 지계(持戒)에도 무계(無戒)에도 유지(有智)에도 무지(無智)에도 해당(該當)하지 않는다. 그러나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이 유포(流布)되어야 할 후오백세(後五百歲)·이천이백이십여년(二千二百二十餘年)의 때에 태어나서·가까이는 일본국(日本國)·멀리는 월지(月氏)·한토(漢土)의 제종(諸宗)의 사람들이 부르기 시작(始作)하기 전(前)에·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고성(高聲)으로 부르기 이십여년(二十餘年)을 지나는 동안·혹(或)은 매리(罵?)당하고 타척(打擲)당하고, 혹(或)은 상처(傷處)를 입고 혹(或)은 유죄(流罪)에 이차(二次) 사죄(死罪)에 일차(一次) 정(定)하여 졌었다. 그 외(外)의 대난(大難)은 헤아릴 수 없으니, 비유컨대 대탕(大湯)에 대두(大豆)를 담그고 소수(小水)에 대어(大魚)가 있는 것과 같다. 경(經)에 가로되 「더구나 이 경(經)은 여래(如來)의 현재(現在)에조차 역시 원질(怨嫉)이 많은데 하물며 멸도(滅度)의 후(後)에 있어서랴」 또 가로되 「일체세간(一切世間)에 원(怨)이 많아서 믿기 어렵다 」또 가로되 「여러 무지(無智)한 사람이 있어서 악구매리(惡口罵?)함」 혹은 가로되 「도장와석(刀杖瓦石)을 가(加)하고 혹(或)은 삭삭빈출(數數?出)당함」 등(等) 운운(云云). 이들 경문(經文)은 니치렌(日蓮)이 일본국(日本國)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다만 부처의 말씀만 있고 그 의(義)가 허망(虛妄)하게 되리라. 비유컨대 꽃은 피고 열매는 맺지 않으며 천둥이


묘미쓰상인어소식(妙密上人御消息)(어서 1241쪽)
쳐도 비가 오지 않는 것과 같으니, 부처의 금언(金言)은 헛되어서 정직(正直)한 경(經)에 대망어(大妄語)를 섞는 것이 되리라. 이러한 것들로써 생각하건대, 아마도 천태(天台) 전교(傳敎)의 성인(聖人)에게도 미치고 또한 노자(老子) 공자(孔子)도 내려다 보리라. 일본국(日本國) 안에 오직 한 사람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불렀노라, 이는 수미산(須彌山)의 처음의 일진(一塵)이요, 대해(大海)의 처음의 일로(一露)이니라. 이인(二人)·삼인(三人)·십인(十人)·백인(百人)·일(一)·이지방(二地方)·육십육개지방(六十六箇地方)·이미 섬 둘에도 미쳤으리라, 지금은 비방(誹謗)하던 사람들도 부르시리라. 또 상일인(上一人)으로부터 하만민(下萬民)에 이르기까지 법화경(法華經)의 신력품(神力品)과 같이 일동(一同)으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시는 일도 있으리라. 나무는 조용히 있으려 해도 바람이 멎지 않고, 봄을 멈추게 하려고 생각해도 여름이 되느니라, 일본국(日本國)의 사람들은 법화경(法華經)은 존귀(尊貴)하지만 니치렌보(日蓮房)가 밉기 때문에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는 부르지 않겠노라고 거절(拒絶)한다 해도 이제 한 번이나 두 번이나 대몽고국(大蒙古國)에서 밀어닥쳐서 이키(壹岐)·쓰시마(對馬)와 같이, 남자(男子)는 때려 죽이고 여자(女子)는 사로잡고, 교(京)·가마쿠라(鎌倉)에 침입(侵入)하여 국주(國主) 및 대신(大臣)과 백관(百官)들을 잡아 묶어서 우마(牛馬) 앞에 몰아 세우고, 강(强)하게 책(責)할 때는 어찌하여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지 않겠느뇨. 법화경(法華經)의 제오(第五)의 권(卷)을 가지고 니치렌(日蓮)의 얼굴을 수차 구타(毆打)한 것을 니치렌(日蓮)은 아무렇게도 생각하지 않고 기쁘기만 하였다. 불경품(不輕品)과 같이 몸을 책(責)하고 권지품(勸持品)과 같이 자신(自身)에게 해당하니 귀(貴)하고 귀(貴)하도다.

그러나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악인(惡人)에게 타척(打擲)당하지 않게 하겠다고 불전(佛前)에서 기청(起請)을 썼던 범왕(梵王)·제석(帝釋)·일월(日月)·사천(四天) 등(等)은 얼마나 억울하겠느뇨. 현신(現身)으로 천벌(天罰)을 받지 않은 것은 소사(小事)가 아니므로 시중종(始中終)을 한데 묶어서 그 몸을 망(亡)칠 뿐만 아니라, 논의(論議)될 것이로다. 결코 니치렌(日蓮)의 잘못이 아니며, 방법(謗法)의 법사(法師) 등(等)을 돕기 위하여 그들의 대화(大禍)를 자신(自身)에게 초래(招來)하신 것이라.

이러한 일로써 생각하건대, 인편(人便)마다의 엽전(葉錢) 오련(五連)의 후지(厚志)는 일본국(日本國)에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을 홍통(弘通)하시는 사람에 해당(該當)함이라. 나라 안의 제인(諸人)·일인(一人)·이인(二人) 내지(乃至) 천만억(千萬億)의 사람이 제목(題目)을 부른다면, 의외(意外)로 공덕(功德)이 몸에 모이게 되시리라. 그 공덕(功德)은 대해(大海)가 이슬을 모으고, 수미산(須彌山)이 미진(微塵)을 쌓는 것과 같다. 특히 십나찰녀(十羅刹女)는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을 수호(守護)하겠다고 서약(誓約)하셨으니, 이것으로 미루어보아 묘미쓰상인(妙密上人) 및 부인(夫人)을 어머니가 외아들을 생각하듯이, 모우(?牛)가 꼬리를 사랑하듯이 주야(晝夜)로 수호(守護)하실 것이니라. 믿음직스럽고 믿음직스럽도다. 할 말은 많으나 자세(仔細)하게 말할 여가(餘暇)가 없다. 부인(夫人)에게도 상세(詳細)히 말씀하시라, 이것은 아첨하는 말이 아니니라. 금(金)은 구으면 더욱


도묘젠몬어서(道妙禪門御書)(어서 1242쪽)
색(色)이 더하고, 검(劍)은 갈면 더욱 예리(銳利)하게 되며 법화경(法華經)의 공덕(功德)은 칭찬(稱讚)하면 더욱 공덕(功德)이 더하느니라, 이십팔품(二十八品)은 법리(法理)에 관(關)한 것은 근소(僅少)하고 찬탄(讚嘆)한 말만이 많다고 생각하시라.
윤(閏)三月 五日 日蓮花押
구와가야쓰(?谷) 묘미쓰상인답서(妙密上人答書)

도묘젠몬어서(道妙禪門御書)
建治二年 八月 五十五歲御作

부친(父親) 기도(祈禱)의 일은 잘 알았으니 불전(佛前)에서 기념(祈念)하겠소이다. 기도(祈禱)에 있어서는 현기현응(顯祈顯應)·현기명응(顯祈冥應)·명기명응(冥祈冥應)·명기현응(冥祈顯應)의 기도(祈禱)가 있기는 하나, 다만 간요(肝要)는 이 경(經)의 신심(信心)을 하신다면 현당(現當)의 소원만족(所願滿足)이 있으리라. 법화경(法華經) 제(第)三에 가로되 「마(魔)와 마민(魔民)이 있다고 해도 모두 불법(佛法)을 수호(守護)함」 제칠(第七)에 가로되 「병(病)이 즉(卽) 소멸(消滅)하여 불로불사(不老不死)하리라」라는 금언(金言)을 의심(疑心)하지 말지어다. 묘이치니부인(妙一尼夫人)께서 당산(當山)에 참예(參詣)한 것은 송구스럽소. 두루마리 일권(一卷)을 진정(進呈)하니 피견(披見)하시라,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건치이년(建治二年) 병자(丙子)八月 十日 日蓮花押
도묘젠몬(道妙禪門)


니치뇨부인답서(日女夫人答書)(어서 1243쪽)
니치뇨부인답서(日女夫人答書)

建治三年 八月 五十六歲御作

어본존(御本尊) 공양(供養)을 위(爲)하여 엽전(葉錢) 오관(五貫)·백미(白米) 한바리·과자(菓子) 보내주신 그 수량(數量)대로 받았소이다. 대저 이 어본존(御本尊)은 재세(在世) 오십년 중(五十年中)에는 팔년(八年)·팔년간(八年間)에도 용출품(涌出品)에서 촉루품(囑累品)까지 팔품(八品)에 나타나셨느니라. 그런데 멸후(滅後)에는 정법(正法)·상법(像法)·말법(末法) 중(中)에서 정상이천년(正像二千年)에는 아직 본문(本門)의 본존(本尊)이라고 하는 이름조차도 없었으니, 하물며 나타나셨을리가 있으리오. 또한 나타낼 수 있는 사람도 없었으며, 천태(天台) 묘락(妙樂) 전교(傳敎) 등(等)은 내심(內心)에는 깨달아서 알고 있었지만 까닭이 있었는지 말로 나타내지는 않았느니라. 저 안연(顔淵)이 들은 것을 의중(意中)에는 깨달았다 할지라도 말로는 나타내지 않은 것과 같다. 그런데 불멸후이천년(佛滅後二千年)이 지나서 말법(末法)의 초(初)의 오백년(五百年)에 출현(出現)하시게 된다는 것은 경문(經文)에 혁혁(赫赫)하고 명명(明明)하며, 천태(天台) 묘락등(妙樂等)의 해석(解釋)에도 분명(分明)하니라.

이에 니치렌(日蓮)이 어떠한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일인지 용수(龍樹) 천친등(天親等)·천태(天台) 묘락등(妙樂等)조차도 나타내시지 않았던 대만다라(大曼茶羅)를 말법(末法) 이백여년경(二百餘年頃)에 비로소 법화홍통(法華弘通)의 기치(旗幟)로서 나타내 드리느니라. 이것은 결코 니치렌(日蓮)의 자작(自作)이 아니로다, 다보탑중(多寶塔中)의 대모니세존(大牟尼世尊)·분신(分身)의 제불(諸佛)을 판목(版木)으로 한 본존(本尊)이니라. 그러므로 수제(首題)의 오자(五字)는 중앙(中央)에 걸리고 사대천왕(四大天王)은 보탑(寶塔)의 사방(四方)에 좌정(坐定)하고 석가(釋迦)·다보(多寶)·본화(本化)의 사보살(四菩薩)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보현(普賢)·문수등(文殊等)·사리불(舍利弗)·목련등(目連等)이 무릎을 꿇고·일천(日天)·월천(月天)·제육천(第六天)의 마왕(魔王)·용왕(龍王)·아수라(阿修羅)·그 외(外)에 부동(不動)·애염(愛染)은 남북(南北)의 이방(二方)에 진(陣)을 치고·악역(惡逆)의 달다(達多)·우치(愚癡)의 용녀(龍女)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삼천세계(三千世界)의 사람의 수명(壽命)을 빼앗는 악귀(惡鬼)인 귀자모신(鬼子母神)·십나찰녀(十羅刹女) 등(等)·뿐만 아니라, 일본국(日本國)의 수호신(守護神)인 천조태신(天照太神)·팔번대보살(八幡大菩薩)·천신칠대(天神七代)·지신오대(地神五代)의 신(神)들·통틀어 대소(大小)의 신기등(神祇等)·체(體)의 신(神)이 줄지어 있으니 여타(餘他)의 용(用)의 신(神)이야 어찌 빠질소냐, 보탑품(寶塔品)에 가로되 「여러 대중(大衆)을 접(接)하여 모두 허공(虛空)에 있음」 운운(云云). 이들의 불(佛) 보살(菩薩)·대성(大聖) 등(等)·통틀어 서품(序品) 열좌(列座)의 이계팔번(二界八番)의 잡중등(雜衆等)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 어본존(御本尊) 속에 주(住)하시어 묘법(妙法) 오자(五字)의 광명(光明)에 비추어져서 본유(本有)의 존형(尊形)으로 되니 이를 본존(本尊)이라고 하느니라.


니치뇨부인답서(日女夫人答書)(어서 1244쪽)
경(經)에 가로되 「제법실상(諸法實相)」 이것이니라. 묘락(妙樂)가로되 「실상(實相)은 반드시 제법(諸法)·제법(諸法)은 반드시 십여(十如) 내지(乃至) 십계(十界)는 반드시 신토(身土)」 운운(云云). 또 가로되 「실상(實相)의 심리(深理) 본유(本有)의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 등(等)이라고 운운(云云). 전교대사(傳敎大師)가 가로되 「일념삼천(一念三千) 즉(卽) 자수용신(自受用身)·자수용신(自受用身)이란 출존형(出尊形)의 불(佛)」 문(文). 그런 고(故)로 미증유(未曾有)의 대만다라(大曼茶羅)라고 삼가 이름하였느니라. 불멸후(佛滅後)·이천이백이십여년(二千二百二十餘年)에는 이 어본존(御本尊)은 아직 출현(出現)하시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니라.

이러한 어본존(御本尊)을 공양(供養)해 드리시는 여인(女人)은 현재(現在)에는 행운(幸運)을 초래(招來)하고 후생(後生)에는 이 어본존(御本尊)이 좌우(左右) 전후(前後)에 다가서서 어둠에 등불과 같고 험난(險難)한 곳에서 강력(强力)한 종복(從僕)을 얻은 것과 같이 저쪽으로 돌고, 이쪽으로 다가와서 니치뇨부인(日女夫人)을 둘러싸고 지켜 주시리라. 결단코 명심하여 유녀(遊女)가 나의 집에 접근하는 것을 꺼리듯이 방법자(謗法者)를 방지(防止)하시라, 악지식(惡知識)을 버리고 선우(善友)에게 친근(親近)하라 함은 이것이니라.

이 어본존(御本尊)을 결코 타처(他處)에서 구(求)하지 말지어다. 다만 우리들 중생(衆生)이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하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흉중(胸中)의 육단(肉團)에 계시느니라. 이것을 구식심왕진여(九識心王眞如)의 도(都)라고 하느니라. 십계구족(十界具足)이라 함은 십계(十界)가 일계(一界)도 빠짐없이 일계(一界)에 있음이라, 이에 의(依)해서 만다라(曼陀羅)라고 하며 만다라(曼陀羅)라고 함은 천축(天竺)의 이름으로서 여기서는 윤원구족(輪圓具足)이라고도 공덕취(功德聚)라고도 이름하느니라. 이 어본존(御本尊)도 다만 신심(信心)의 이자(二字)에 들어 있으니 이신득입(以信得入)이란 이것이니라.

니치렌(日蓮)의 제자단나등(弟子檀那等)·정직사방편(正直捨方便)·불수여경일게(不受余經一偈)라고 무이(無二)로 믿음으로써·이 어본존(御本尊)의 보탑(寶塔) 안에 들어 갈 수 있느니라·미덥고 미덥도다. 어떻게든 후생(後生)을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시라, 결단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만 봉창(奉唱)하여 부처가 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라, 신심(信心)의 후박(厚薄)에 달려 있으며, 불법(佛法)의 근본(根本)은 신(信)으로써 근원(根源)으로 하느니라. 그러므로 지관(止觀)의 四에 가로되 「불법(佛法)은 바다와 같다. 오직 신(信)만이 능(能)히 들어감」이라고, 홍결(弘決)의 四에 가로되 「불법(佛法)은 바다와 같다, 오직 신(信)만이 능(能)히 들어 감이란 공구(孔丘)의 말씀도 역시 신(信)을 첫째로 했느니라, 하물며 불법(佛法)의 심리(深理)에 있어서랴. 신(信)이 없이 어찌 들어 가겠느뇨. 고(故)로 화엄(華嚴)에 신(信)을 도(道)의 근원(根源) 공덕(功德)의 모(母)로 하느니라」 등(等), 또 지(止)의 一에 가로되 「어떻게 원(圓)의 법(法)을 듣고 원(圓)의 신(信)을 일으키며 원(圓)의 행(行)을 세워서 원(圓)의 위(位)에 주(住)하리오」 홍(弘)의 一에 가로되 「원신(圓信)이라고 함은 이(理)에 의(依)하여 신(信)을 일으키고 신(信)을 행(行)의 본(本)으로 함」 운운(云云). 외전(外典)에 가로되 「한왕(漢王)이 신하(臣下)의 말을


니치뇨부인답서(日女夫人答書)(어서 1245쪽)
믿었으므로 하상(河上)의 물결이 갑자기 얼었으며, 이광(二廣)이 아버지의 원수(怨讐)라고 생각하였기에 풀속의 돌이 화살을 삼키었다」라고 했느니라. 결국(結局) 천태(天台) 묘락(妙樂)의 석(釋)은 분명(分明)히 신(信)으로써 본(本)으로 삼았으며, 저 한왕(漢王)도 의심(疑心)하지 않고 대신(大臣)의 말을 믿었기에 물결치던 강(江)물이 얼어서 건너갔느니라. 돌에 화살이 박힌 것은 이것도 역시 아버지의 원수라고 생각한 지신(至信)때문이었으니 하물며 불법(佛法)에 있어서랴.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하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면 즉(卽) 오종(五種)의 수행(修行)을 구족(具足)하느니라. 이 사실(事實)은 전교대사(傳敎大師)가 입당(入唐)하여 도수화상(道邃和尙)을 만나 뵙고 오종돈수(五種頓修)의 묘행(妙行)이라고 하는 것을 상전(相傳)받으셨느니라. 니치렌(日蓮)의 제자단나(弟子檀那)의 간요(肝要)는 이 이외(以外)에 구(求)하지 말지어다. 신력품(神力品)에 설(說)함. 상세(詳細)하게는 또 다시 말하겠나이다. 공공근언(恐恐謹言).
건치삼년(建治三年) 八月 二十三日 日蓮花押
니치뇨부인답서(日女夫人答書)

니치뇨부인답서(日女夫人答書)
弘安元年 六月 五十七歲御作

보시(布施) 칠관문(七貫文)을 보내시어 받았소이다. 촉루품(囑累品)의 뜻은 부처가 허공(虛空)에 서시어 사백만억나유타(四百萬億那由?)의 세계(世界)에 무사시노(武藏野)의 억새풀과 같고·후지산(富士山)의 나무와 같이·빽빽하게 무릎을 마주 대고·머리를 땅에 대고 몸을 굽혀·합장(合掌)하고, 땀을 흘리고 눈물에 젖어 있던 상행보살등(上行菩薩等)·문수등(文殊等)·대범천왕(大梵天王)·제석(帝釋)·일월(日月)·사천왕(四天王)·용왕(龍王)·십나찰녀(十羅刹女) 등(等)에게 법화경(法華經)을 양여(讓與)하기 위하여, 세 번이나 머리를 어루만지시니, 비유컨대 비모(悲母)가 일자(一子)의 머리를 어루만지는 것과 같도다. 그 때에 상행(上行) 내지(乃至)·일월(日月) 등(等)은 황송(惶悚)스러운 분부(分付)를 듣고, 법화경(法華經)을 말대(末代)에 홍통(弘通)하겠다고 맹서(盟誓)하시었다. 약왕품(藥王品)이라고 하는 것은, 옛날 희견보살(喜見菩薩)이라고 하는 보살(菩薩)이 일월정명덕불(日月淨明德佛)에게 법화경(法華經)을 배우시어, 그 스승의 은혜(恩惠)라고 할지 법화경(法華經)의 존귀(尊貴)함이라고 할지, 감동(感動)을 억누를 수가 없어서 만(萬)의 중보(重寶)를 다하였으나, 그래도 만족(滿足)하지 못하여, 몸에 기름을 바르고 천이백세(千二百歲) 동안·오늘날 기름에다 심지를 넣어서 태우듯이 하여 몸을 태워서 부처를


니치뇨부인답서(日女夫人答書)(어서 1246쪽)
공양(供養)하고, 후(後)에 칠만이천세(七萬二千歲) 동안 팔꿈치를 등(燈)불로 하여 다 태워서 법화경(法華經)을 공양(供養)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지금 법화경(法華經)을 후오백세(後五百歲)의 여인(女人)이 공양(供養)하면 그 공덕(功德)을 일분(一分)도 남기지 아니하고 물려주느니라. 비유컨대 장자(長者)가 독자(獨子)에게 일체(一切)의 재보(財寶)를 물려주는 것과 같다. 묘음품(妙音品)이라 함은 동방(東方)의 정화숙왕지불(淨華宿王智佛)의 나라에 묘음보살(妙音菩薩)이라는 보살(菩薩)이 있었는데, 옛날 운뢰음왕불(雲雷音王佛)의 치세(治世)에 묘장엄왕(妙莊嚴王)의 왕후(王后)인 정덕부인(淨德夫人)이니라. 옛날 법화경(法華經)을 공양(供養)하여 지금 묘음보살(妙音菩薩)이 되었는데, 석가여래(釋迦如來)가 사바세계(娑婆世界)에서 법화경(法華經)을 설(說)하실 때 오셔서 약속(約束)하시되, 말대(末代)의 여인(女人)이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함을 수호(守護)하리라고 운운(云云). 관음품(觀音品)이라고 함은 또한 보문품(普門品)이라고 부르며, 처음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수지(受持)하는 사람의 공덕(功德)을 설(說)했느니라, 이를 관음품(觀音品)이라고 부르며, 후(後)에는 관음(觀音)이 수지(受持)하시는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하는 사람의 공덕(功德)을 설(說)하였는데 이를 보문품(普門品)이라고 이름하느니라. 다라니품(陀羅尼品)이라고 함은, 이성(二聖)·이천(二天)·십나찰녀(十羅刹女)가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수호(守護)하는 양상(樣相)을 설(說)하였는데 이성(二聖)이라고 함은 약왕(藥王)과 용시(勇施)이며·이천(二天)이라고 함은 비사문(毗沙門)과 지국천(持國天)이고·십나찰녀(十羅刹女)라고 함은 십인(十人)의 대귀신녀(大鬼神女)인데, 사천하(四天下)의 일체(一切)의 귀신(鬼神)의 모(母)이니라. 또한 십나찰녀(十羅刹女)의 모(母)가 있으니 귀자모신(鬼子母神)이 이것이니라. 귀(鬼)의 습성(習性)이란 사람을 먹느니라. 사람에게 삼십육물(三十六物)이 있는데 소위(所謂) 분(糞)과 요(尿)와 타(唾)와 육(肉)과 혈(血)과 피(皮)와 골(骨)과 오장(五藏)과 육부(六腑)와 발(髮)과 모(毛)와 기(氣)와 명(命) 등(等)이니라. 그런데 하품(下品)의 귀신(鬼神)은 분(糞) 등(等)을 먹고·중품(中品)의 귀신(鬼神)은 골(骨) 등(等)을 먹고·상품(上品)의 귀신(鬼神)은 정기(精氣)를 먹는데, 이 십나찰녀(十羅刹女)는 상품(上品)의 귀신(鬼神)으로서 정기(精氣)를 먹으니, 역병(疫病)의 대귀신(大鬼神)이로다. 귀신(鬼神)에 두 가지가 있는데 一에는 선귀(善鬼), 二에는 악귀(惡鬼)니라. 선귀(善鬼)는 법화경(法華經)의 적(敵)을 먹고, 악귀(惡鬼)는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먹는다. 지금 일본국(日本國)의 거년(去年) 금년(今年)의 대역병(大疫病)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이것에 대답(對答)하기로는 一에는 선귀(善鬼)인데 범왕(梵王)·제석(帝釋)·일월(日月)·사천(四天)이 허락(許諾)하시어서 법화경(法華經)의 적(敵)을 먹는다, 二에는 악귀(惡鬼)가 제육천(第六天)의 마왕(魔王)의 권고(勸告)에 의해서 법화경(法華經)을 수행(修行)하는 사람을 먹는다. 선귀(善鬼)가 법화경(法華經)의 적(敵)을 먹는 것은 관병(官兵)이 조적(朝敵)을 벌(罰)하는 것과 같으며, 악귀(惡鬼)가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먹는 것은 강도(强盜) 야습(夜襲) 등이 관병(官兵)을 죽이는 것과 같다. 예(例)컨대 일본국(日本國)에 불법(佛法)이 건너왔을 때, 불법(佛法)의 적(敵)이었던 모노노베(物部)의 오무라지(大連)·모리야(守屋) 등(等)도 역병(疫病)을 앓았으며, 소가(蘇我) 스쿠네(宿?)의 우마코(馬子) 등(等)도 앓았느니라. 긴메이(欽明)·비타쓰(敏達)·요메이(用明)의 삼대(三代)의 국왕(國王)은 마음 속으로는 불법(佛法)과 석가여래(釋迦如來)를 믿고 계셨지만·겉으로는 나라의 예(禮)에 따라서 천조태신(天照太神)·구마노산(熊野山) 등(等)을 숭앙(崇仰)하셨으나·부처와 법(法)에 대한 믿음은 얕고 신(神)에 대한 믿음은 두터웠기 때문에


니치뇨부인답서(日女夫人答書)(어서 1247쪽)
강(强)한 것에 이끌려서 삼대(三代)의 국왕(國王)이 역병(疫病) 포창(疱瘡)으로 붕어(崩御) 하시었다. 이로써 위의 이귀(二鬼)에 대해서도 지금의 시대(時代)에 세간(世間)의 사람들의 역병(疫病)에 대해서도 니치렌(日蓮)의 편의 사람들의 병사(病死)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느니라, 그러므로 몸을 바쳐서 믿는 사람들은·병(病)들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 또 병(病)들어도 구조(救助)되는 경우도 있느니라, 또 대악귀(大惡鬼)를 만나면 목숨을 빼앗기는 사람도 있으리라, 예(例)컨대 하타케야마시게타다(?山重忠)는 일본(日本) 제일(第一)의 대력(大力)의 대장(大將)이었지만 다세(多勢)에는 끝내 멸망(滅亡)하였다.

또 일본국(日本國)의 일체(一切)의 진언사(眞言師)가 악령(惡靈)이 된것과·더불어 선종(禪宗)·염불자(念佛者) 등(等)이 니치렌(日蓮)을 적대(敵對)하기 위하여 국중(國中)에 난입(亂入)하였으며, 또한 범석(梵釋)·일월(日月)·십나찰(十羅刹)의 권속(眷屬)·일본국(日本國)에 난입(亂入)하여, 양방(兩方)이 서로 공격(攻擊)하여 쓰러뜨리려고 힘쓰느니라. 그런데 십나찰녀(十羅刹女)는 모두가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수호(守護)하겠다고 서약(誓約)하였으므로·일체(一切)의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하는 사람들을 수호(守護)하시리라고 생각했는데·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한 사람들도 혹은 대일경(大日經)이 뛰어났다고들 말하며, 진언사(眞言師)와 같이 법화경(法華經)을 독송(讀誦)하는 것은·오히려 헐뜯는 것이니라, 또 나머지 제종(諸宗)도 이것으로써 미루어 짐작할지어다. 또 법화경(法華經)을 경(經)과 같이 수지(受持)하는 사람들도·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탐진치(貪瞋癡)에 의하여 혹은 세간(世間)의 일에 의하여 혹은·가지가지의 거동(擧動)에 의하여 미워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법화경(法華經)을 믿어도, 믿는 공덕(功德)은 없고 오히려 벌(罰)을 받느니라, 예(例)컨대 부모(父母) 등(等)에게는 모반(謀反) 등(等) 이외(以外)는 자식(子息)들의 몸으로서 이에 배반(背反)하면 불효(不孝)이니라, 아버지가 나의 사랑하는 아내를 빼앗고 어머니가 나의 사랑하는 남편(男便)을 빼앗아도 자식(子息)의 몸으로서 일분(一分)이라도 어기면 현세(現世)에는 제천(諸天)에게 버림받고 후생(後生)에는 반드시 아비지옥(阿鼻地獄)에 떨어지는 업(業)이니, 하물며 부모(父母)보다 뛰어난 현왕(賢王)에게 배반(背反)함에 있어서랴, 하물며 부모(父母) 국왕(國王)보다 백천만억배(百千萬億培) 뛰어난 세간(世間)의 스승에 있어서랴, 하물며 출세간(出世間)의 스승에 있어서랴, 하물며 법화경(法華經)의 스승에 있어서랴.

황하(黃河)는 천년(千年)에 한 번 맑아진다고 하며·성인(聖人)은 천년(千年)에 한 번 출세(出世)한다. 부처는 무량겁(無量劫)에 한 번 출세(出世)하시느니라, 그를 만난다 해도 법화경(法華經)은 만나기가 어렵다, 설령 법화경(法華經)을 만난다 해도 말대(末代)의 범부(凡夫)가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는 만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말대(末代)의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는 법화경(法華經)을 설(說)하지 않은 화엄(華嚴)·아함(阿含)·방등(方等)·반야(般若)·대일경(大日經) 등(等)의 천이백여존(千二百餘尊)보다도 말대(末代)에 법화경(法華經)을 설(說)하는 행자(行者)는 뛰어났음을, 묘락대사(妙樂大師)가 석(釋)하여 가로되 「공양(供養)하는 일이 있는 자(者)는 복(福)이 십호(十號)보다 더하고 만약 뇌란(惱亂)하는 자(者)는 머리가 칠분(七分)으로 깨


니치뇨부인답서(日女夫人答書)(어서 1248쪽)
어지리라」운운(云云), 지금 일본국(日本國) 사람에게 거년(去年) 금년(今年)의 역병(疫病)과 지난 정가(正嘉)의 역병(疫病)은 인왕(人王)이 시작(始作)되어 구십여대(九十餘代)에 유(類)가 없는 역병(疫病)이로다, 성인(聖人)이 나라에 있음을·미워하기 때문이라고 보임이라. 사자(師子)를 보고 짖는 개는 장(腸)이 끊어지고 일월(日月)을 삼키는 수라(修羅)는 머리가 깨어진다 함은 이것이니라, 일본국(日本國)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은 이미 삼분(三分)의 이(二)는 병(病)들고 또한 반(半)은 죽었으며, 지금 일분(一分)은 몸은 병(病)들지 않았지만 마음은 병(病)들고 또 머리도 현(顯)에 있어서나 명(冥)에 있어서나 깨졌으리라. 벌(罰)에 네 가지가 있으니, 총벌(總罰)·별벌(別罰)·명벌(冥罰)·현벌(顯罰)이니라. 성인(聖人)을 적시(敵視)하면 총벌(總罰)이 일국(一國)에 미치고 또 사천하(四天下) 또한 육욕(六欲)·사선(四禪)에 미치며, 현인(賢人)을 미워하면 다만 적인(敵人) 등(等)이니라, 지금 일본국(日本國)의 역병(疫病)은 총벌(總罰)이니 필시(必是) 성인(聖人)이 나라에 있음을 적시(敵視)함이로다. 산(山)은 옥(玉)을 간직하면 초목(草木)이 마르지 않고 나라에 성인(聖人)이 있으면 그 나라는 망(亡)하지 않는다, 산(山)의 초목(草木)이 마르지 않음은 옥(玉)이 있기 때문임을 우자(愚者)는 모르며, 나라가 망(亡)함은 성인(聖人)을 적시(敵視)하기 때문임을 우인(愚人)은 알지 못하느니라.

설령 일월(日月)의 빛이 있다 해도 맹인(盲人)에게는 소용(所用)이 없고 설령 음성(音聲)이 있다 해도 귀머거리에게는 무슨 소용(所用)이 있겠느뇨, 일본국(日本國)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은 맹인(盲人)과 귀머거리와 같다, 이 일체(一切)의 눈과 귀를 후벼서 일체(一切)의 눈을 뜨게 하고 일체(一切)의 귀에 소리를 듣게 함은·얼마만큼의 공덕(功德)이 있겠느뇨, 어느 누가 이 공덕(功德)을 헤아릴 수 있겠느뇨, 설령 부모(父母)가 자식(子息)을 낳아서 이목(耳目)이 있다 해도 사물(事物)을 가르치는 스승이 없다면 축생(畜生)의 이목(耳目)이 아니겠는가, 일본국(日本國)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은 시방(十方) 중(中)에는 서방(西方)의 일방(一方)·일체(一切)의 부처 중(中)에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일체(一切)의 행(行) 중(中)에는 미타(彌陀)의 명호(名號)·이 셋을 근본(根本)으로 하여 여행(餘行)을 겸(兼)한 사람도 있으며·일향(一向)인 사람도 있었는데, 나는 지난 건장(建長) 오년(五年)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십여년(二十餘年) 동안·멀리는 일대성교(一代聖敎)의 승렬(勝劣)·선후(先後)·천심(淺深)을 세우고·가까이는 미타염불(彌陀念佛)과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과의 고하(高下)를 세워서 말하였으나 상일인(上一人)으로부터 하만민(下萬民)에 이르기까지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혹은 스승들에게 묻고·혹은 주군(主君)들에게 호소(呼訴)하고·혹은 동료(同僚)에게 말하고·혹은 자신(自身)의 처자권속(妻子眷屬)에게 말하기 때문에 각지방(各地方)·각군(各郡)·각향(各鄕)·각촌(各村)·각사(各寺)·각사(各社)에 알려져서·사람마다 니치렌(日蓮)의 이름을 알고 법화경(法華經)을 염불(念佛)에 비(比)해 염불(念佛)이 훌륭한 이유(理由)·법화경(法華經)은 이루지 못한다는 것·제인(諸人)이 훌륭하다는 이유(理由)· 니치렌(日蓮)이 나쁘다는 이유(理由)를 말하므로 상(上)에서도 적시(敵視)하고 하(下)도 미워하니 일본일동(日本一同)이 법화경(法華經)과 행자(行者)의 대원적(大怨敵)으로 되었다. 이렇게 말하면 일본국(日本國)·사람들 및 니치렌(日蓮)의 편 중(中)에서도 도리(道理)를 모르는 자(者)는 남에게 신용(信用)을 얻고자 당치도 않은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었다. 이는 불법(佛法)의


니치뇨부인답서(日女夫人答書)(어서 1249쪽)
도리(道理)를 믿는 남녀(男女)에게 알리려는 생각에서 말함이니, 각자(各者)의 마음에 맡기겠노라.
묘장엄왕품(妙莊嚴王品)이라고 함은 특(特)히 여인(女人)을 위하여 소용(所用)되며, 처(妻)가 남편(男便)에게 권유(勸誘)한 품(品)이니라. 말대(末代)에 이르러서도 아내가 남편(男便)에게 권유(勸誘)함은 이름은 다를지라도 공덕(功德)은 오직 정덕부인(淨德夫人)과 같으니라, 하물며 당신들은 아내도 남편(男便)도 함께 신용(信用)하시므로·새에 두 개의 날개가 달리고, 수레에 두 개의 바퀴가 달렸으니·무슨 일인들 이루지 못할소냐. 하늘이 있고 땅이 있고 해가 있고 달이 있고, 해가 빛나고 비가 오니, 공덕(功德)의 초목(草木)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으리라.
다음에 권발품(勸發品)이라고 함은, 석가불(釋迦佛)의 제자(弟子) 중(中)에 승(僧)은 많이 있었으나, 가섭(迦葉) 아난(阿難)이 좌우(左右)에 있었으며, 왕(王)의 좌우(左右)의 신하(臣下)와 같다. 이는 소승경(小乘經)의 부처로다. 또 보현(普賢)·문수(文殊)라고 함은, 일체(一切)의 보살(菩薩)이 많다고 해도 교주석존(敎主釋尊)의 좌우(左右)의 신하(臣下)이니라. 그런데 일대초과(一代超過)의 법화경(法華經) 팔개년(八箇年) 동안에·시방(十方)에 제불(諸佛)과 보살(菩薩) 등(等)이 대지(大地)의 미진(微塵)보다도 많이 모였는데·좌우(左右)의 신하(臣下)인 보현보살(普賢菩薩)이 계시지 않는것은 불가사의(不可思議)했던 일이로다. 그러나 묘장엄왕품(妙莊嚴王品)을 설(說)하시어·이제는 법화경(法華經)의 설법(說法)도 끝나려고 하는데·동방(東方)의 보위덕정왕불(寶威德淨王佛)의 나라로부터 만억(萬億)의 기악(伎樂)을 연주(演奏)하면서 무수(無數)한 팔부중(八部衆)을 인솔(引率)하고·뒤늦게 달려와서·참석(參席)을 하셨으므로, 부처의 기색(氣色)이 나쁘시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정색(正色)하여 말대(末代)에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수호(守護)하겠다는 것을 정중하게 말씀 드리니, 부처도 법화경(法華經)을 염부(閻浮)에 유포(流布)하겠다는 것을 유독히 간곡(懇曲)하게 말하는 것을 기특하게 여기셨음인지, 오히려 상(上)의 상위(上位) 보다도 유별나게 정중(丁重)히 부처는 칭찬(稱讚)하셨느니라.
이러한 법화경(法華經)을 말대(末代)의 여인(女人)이 이십팔품(二十八品)을 각품(各品)마다 공양(供養)하시겠다고 생각하심은 예삿일이 아니로다. 보탑품(寶塔品)을 설(說)할 때는 다보여래(多寶如來)와 석가여래(釋迦如來) 그리고 시방(十方)의 제불(諸佛)과 일체(一切)의 보살(菩薩)이 모이셨느니라. 이 보탑품(寶塔品)은 어느 곳에 지금(只今) 계실까 하고 생각해 보니 니치뇨부인(日女夫人)의 가슴 속·팔엽(八葉)의 심연화(心蓮華) 안에 계신다고 니치렌(日蓮)은 보았느니라. 예(例)를 들자면 연(蓮)의 열매에 연화(蓮華)가 있는 것과 같고, 왕후(王后)의 뱃 속에 태자(太子)를 회임(懷妊)함과 같으니라. 십선(十善)을 지켜온 사람이 태자(太子)로 태어나려고 하여 왕후(王后)의 뱃 속에 계시기에, 제천(諸天)이 이를 수호(守護)하기 때문에 태자(太子)를 천자(天子)라고 칭(稱)함이라. 법화경(法華經)·이십팔품(二十八品)의 문자(文字)가 육만구천삼백팔십사자(六萬九千三百八十四字)인데·일일(一一)의 문자(文字)는 글자마다 태자(太子)와 같으며, 글자마다 부처


니치뇨부인답서(日女夫人答書)(어서 1250쪽)
의 종자(種子)로다. 어두움 속에 그림자가 있으나 사람이 이를 보지 못하고, 허공(虛空)에 새가 나는 흔적이 있지만 사람이 이를 못보며·대해(大海)에 물고기의 길이 있으나 사람이 이를 못보고, 달속에 사천하(四天下)의 인물(人物)이 하나도 빠짐없이 있으나 사람이 이를 보지못한다. 그러나 천안(天眼)은 이를본다. 니치뇨부인(日女夫人) 자신(自身)의 내심(內心)에 보탑품(寶塔品)이 계시지만 범부(凡夫)는 보지 못해도 석가(釋迦)·다보(多寶)·시방(十方) 제불(諸佛)은 보시느니라. 니치렌(日蓮) 또한 이를 짐작하니·실로 존귀(尊貴)하고 존귀(尊貴)하도다. 주(周)의 문왕(文王)은 늙은 자(者)를 부양(扶養)해서 싸움에 승리(勝利)했고, 그 말(末)·삼십칠대(三十七代)·팔백년(八百年)동안 말예(末裔)들은·그릇된 일도 있었지만, 근본(根本)의 공(功)에 의하여 번영(繁榮)하였었다. 아사세왕(阿?世王)은 대악인(大惡人)이었지만, 아버지인 빈바사라왕(頻婆沙羅王)이 부처를 수년(數年) 동안 공양(供養)했기 때문에 구십년(九十年) 동안이나 왕위(王位)를 유지(維持)하시었다. 당세(當世)도 역시 이와 같이 법화경(法華經)의 적(敵)으로 되어 버린 대(代)이기에 수유(須臾)도 존속(存續)하리라고는 보이지 않으나·고곤노다이후전(故權大夫殿)과 무사시(武藏)의 전사입도전(前司入道殿)의 정사(政事)가 훌륭해서 잠시(暫時)는 안온(安穩)함이라. 그것도 시종(始終) 법화경(法華經)의 적(敵)이 된다면 불가능(不可能)할 것이니라.

이 사람들의 벽안(僻案)에는 염불자(念佛者) 등(等)은 법화경(法華經)에 지음(知音)이지만, 니치렌(日蓮)은 염불(念佛)의 적(敵)이니라. 우리들은 어느 것이나 믿느니라고 운운(云云). 니치렌(日蓮)이 힐문(詰問)하여 가로되, 금대(今代)에 대화(大禍)가 없다면 옛날보다 더한 역병(疫病)·기근(飢饉)·대병란(大兵亂)은 어찌된 일이뇨. 소환대결(召喚對決)도 없이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두 번이나 대과죄(大科罪)에 처(處)했으니 어찌될 것인가·가엾고 가엾도다. 그런데 여인(女人)의 몸으로서 법화경(法華經)의 명(命)을 이으심은 석가(釋迦)·다보(多寶)·시방(十方)의 제불(諸佛)의 부모(父母)의 생명(生命)을 이으심이니라. 이러한 공덕(功德)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일염부제(一閻浮提)에 있겠느뇨, 공공근언(恐恐謹言).
六月 二十五日 日蓮花押
니치뇨부인답서(日女夫人答書)


출가공덕어서(出家功德御書)(어서 1251쪽)
출가공덕어서(出家功德御書)
弘安二年五月 五十八歲御作

요즘 누군가가 듣고 말하기를, 내심(內心)으로 환속(還俗)할 마음이 생기고 있다는 사연의 풍문(風聞)이 있음은, 사실(事實)인지 아니면 허사(虛事)인지 어쩐지 불안하므로 한마디 적어 보내오. 대저 부모(父母)의 집을 나와서 승려(僧侶)가 되는 것은 반드시 부모(父母)를 구조(救助)하는 길이외다. 출가공덕경(出家功德經)에 가로되 「높이가 삼십삼천(三十三天)에 백천(百千)의 탑파(塔婆)를 세우는 것보다도 일일(一日) 출가(出家)의 공덕(功德)은 뛰어나니라」라고. 그러므로 그 몸은 무지무행(無智無行)일지라도, 머리를 깎고 가사(袈裟)를 걸친 모습에는 천마(天魔)도 두려움을 갖는다고 쓰였느니라. 대집경(大集經)에 가로되 「머리를 깎고 가사(袈裟)를 입으면, 지계(持戒) 및 훼계(毁戒)도 천인(天人)이 공양(供養)하리라. 즉 부처를 공양(供養)함이 되느니라」 운운(云云). 또 어느 경문(經文)에 어떤 사람이 해변(海邊)을 지나자 한 사람의 아귀(餓鬼)가 있어서 기뻐 춤추기에, 까닭을 물은즉, 나의 칠대(七代)의 손(孫)이 금일(今日) 출가(出家)하여 그 공덕(功德)에 이끌려서 출리생사(出離生死)할 것이니 기쁘다고 대답(對答)하였다. 그러므로 출가(出家)가 되는 것은 자신(自身)이 구조(救助)될 뿐만 아니라, 부모(父母)도 구조(救助)하고 상무량(上無量)의 부모(父母)까지 구조(救助)되는 공덕(功德)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인신(人身)을 받기는 어렵고, 인신(人身)을 받아도 출가(出家)가 되는 것은 더욱 어려우니라. 그런데 악연(惡緣)을 만나 환속(還俗)할 마음이 일어난다는 것은 한심(寒心)한 일이며, 금(金)을 버리고 돌을 취하고, 약(藥)을 버리고 독(毒)을 취함과 같으니, 자신(自身)이 악도(惡道)에 떨어질 뿐더러 육친권속(六親眷屬)까지도 악도(惡道)로 이끄는 것이 지극(至極)히 안타까우니라.

그 위에 재가(在家)의 몸으로 세상(世上)을 사는 신로(辛勞)는 보통(普通)이 아니니 곧 반드시 후회(後悔)가 있으리라. 오직 부모(父母)가 그러했듯이 도(道)를 어기지 않고 출가(出家)로서 있을지어다. 도(道)를 어기지 않으면 십나찰녀(十羅刹女)의 수호(守護)가 굳으리라. 도(道)를 어긴 자(者)는 신(神)도 버리심이 도리(道理)이니라. 대세지경(大勢至經)에 가로되 「중생(衆生)에 다섯 가지 죄(罪)가 있어서 반드시 악도(惡道)에 떨어지리니, 일(一)에는 출가환속(出家還俗)의 죄(罪)이니라」 또 가로되 「출가(出家)의 환속(還俗)은 그 죄(罪)가 오역(五逆)보다 더 하도다」, 오역죄(五逆罪)라고 함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죽이고 부처를 때린다거나 하는, 커다란 죄(罪)를 다섯 가지 모아서 오역죄(五逆罪)라고 함이라. 그러므로 이 오역죄인(五逆罪人)은 일중겁(一中劫) 동안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져 나오지 못한다고 쓰였느니라.


묘이치니부인어소식(妙一尼夫人御消息)(어서 1252쪽)
그런데 지금 숙선훈발(宿善薰發)하여, 출가(出家)한 사람이 환속(還俗)하려는 마음이 생겨서 떨어진다면, 저 오역죄(五逆罪)의 사람보다도 죄(罪)가 깊어서, 대지옥(大地獄)에 떨어지기도 하는 경문(經文)이니라. 똑똑히 이 글월을 보시어 숙고(熟考)하시라. 내 몸은 하늘에서 떨어지지도 않았고 땅에서 솟아나지도 않았으며, 부모(父母)의 육신(肉身)을 나눈 몸이니라. 나의 몸을 손상(損傷)함은 부모(父母)의 몸을 손상(損傷)함이라. 이 도리(道理)를 알고 부모(父母)의 분부(吩咐)에 따름을 효행(孝行)이라 하고, 부모(父母)의 분부에 배반(背反)함을 불효(不孝)라고 하느니라. 결국(結局) 어떠한 마음이 생길지라도 몸은 가르침대로 일평생(一平生) 출가(出家)하여 있으면, 저절로 명가(冥加)도 있으리라. 이 도리(道理)를 어기고 환속(還俗)하면, 불천(佛天)의 벌(罰)을 입어, 현세(現世)에는 처량하게 되어 버리고 후생(後生)에는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지리라. 깊이 깊이 숙고(熟考)할지어다. 몸은 무지무행(無智無行)일지라도 외모(外貌)가 출가(出家)라면, 고향(故鄕)에서도 기뻐하고 나도 축복(祝福)하노라. 황차 좋은 승려(僧侶)임에 있어서랴. 위세(委細)한 사연은 다음 편지를 기(期)하겠소. 홍안이년(弘安二年) 五月 日 日蓮花押

묘이치니부인어소식(妙一尼夫人御消息)

建治元年五月 五十四歲御作

묘이치니부인(妙一尼夫人)

대저 하늘에 달이 없고 해가 없으면 초목(草木)이 어찌 자라겠느뇨. 사람에게는 부모(父母)가 있는데 한 사람이라도 없으면 자식(子息)들은 자라기 어렵다. 게다가 과거(過去)의 성령(聖靈)은 혹은 병(病)든 아들도 있고 혹은 따님도 있으며, 남겨 놓은 어머니도 건강(健康)하지 않은데, 누구에게 부탁(付託) 말을 남기고 명도(冥途)로 가셨을까.

대각세존(大覺世尊)이 열반(涅槃)하실 때 한탄(恨歎)하여 가로되, 나는 열반(涅槃)하리라,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아사세왕(阿?世王)뿐이로다. 가섭동자보살(迦葉童子菩薩)이 부처에게 여쭈되, 부처는 평등(平等)의 자비(慈悲)이시니 일체중생(一切衆生)을 위하여 생명(生命)을 아끼소서. 어찌 유별(有別)나게 아사세왕(阿?世王) 일인(一人)이라고 말씀하시나이까 하고 묻자오니, 대답(對答)하시어 가로되 「비유하면 한 사람에게 일곱 자식(子息)이 있는데, 이 일곱 자식(子息) 중(中)에 한 자식(子息)이 병(病)에 걸렸다. 부모(父母)의 마


묘이치니부인어소식(妙一尼夫人御消息)(어서 1253쪽)
음이 평등(平等)하지 않음이 아니지만, 그러나 병(病)든 자식에 있어서는 마음이 즉 편중(偏重)함과 같도다」등(等) 운운(云云). 천태(天台)는 마하지관(摩訶止觀)에 이 경문(經文)을 석(釋)하여 가로되 「비유컨대 칠자(七子)의 부모(父母)가 평등(平等)하지 않음이 아니니라. 그러나 병자(病者)에 있어서는 마음이 즉 한편으로 기우는 것과 같도다」 등(等) 운운(云云)·이렇게 부처는 대답(對答)하시었다. 문(文)의 뜻은 사람에겐 여러 자식(子息)이 있지만, 부모(父母)의 마음은 병(病)든 자식에 있다고 함이라. 부처에게 있어서는 일체중생(一切衆生)은 모두 자식(子息)이라, 그 중(中) 죄(罪)가 깊어서 세간(世間)의 부모(父母)를 죽이고 불경(佛經)의 적(敵)이 된 자(者)는 병(病)든 자식(子息)과 같다. 그런데 아사세왕(阿?世王)은 마갈제국(摩竭提國)의 주(主)이며, 나의 대단나(大檀那)였던 빈바사라왕(頻婆舍羅王)을 죽이고 나의 적(敵)으로 되었기 때문에 제천(諸天)도 버리고 일월(日月)에 이변(異變)이 생기고, 대지(大地)도 받들지 않으려고 진동(震動)하고, 만민(萬民)이 모두 불법(佛法)에 배반(背反)하여, 타국(他國)에서 마갈국(摩竭國)을 공격(攻擊)하니, 이것은 오로지 악인(惡人)인 제바달다(提婆達多)를 스승으로 삼았기 때문이로다. 결국(結局)은 금일(今日)부터 악창(惡瘡)이 몸에 생겨, 삼월(三月) 칠일(七日)에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리라, 이것이 슬퍼서 나는 열반(涅槃)하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하는 말씀이니라. 내가 아사세왕(阿?世王)을 구(救)한다면 일체(一切)의 죄인(罪人)은 아사세왕(阿?王)과 같노라고 한탄(恨歎)하시었다.

그런데 성령(聖靈)은 혹은 병(病)든 아들이 있고 혹은 딸이 있으니, 내가 버리고 명도(冥途)로 간다면, 말라 버린 후목(朽木)과 흡사한 늙은 처(妻)가 니치렌(日蓮)의 일이 마음에 걸리셨으리라. 부처의 말씀이 허망(虛妄)하지 않다면 법화경(法華經)은 홍통(弘通)되시리라. 그렇다고 한다면, 이 승려(僧侶)는 앞으로 어떠한 사연(事緣)이 있어서 훌륭하게 되시리라고 생각하셨을터인데 어이 없게도 유배(流配)당하여 떠났으므로 어찌하여·어찌하여 법화경(法華經)과 십나찰(十羅刹)은 하고 생각하셨으리라. 지금까지만이라도 생존(生存)해 계셨다면, 니치렌(日蓮)이 용서 받았을 때 얼마나 기뻐하셨을 것인가.

또 예언(豫言)한 것이 허망(虛妄)하지 않아서, 대몽고국(大蒙古國)도 내침(來侵)하여 국토(國土)도 위태(危殆)로울 지경이 되었으니 얼마나 기뻐하시겠느뇨. 이것은 범부(凡夫)의 심정(心情)이로다. 법화경(法華經)을 믿는 사람은 겨울과 같다.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되느니라. 아직도 옛날부터 듣지 못하고 보지 못했노라, 겨울이 가을로 되돌아간 것을, 아직도 듣지 못했노라. 법화경(法華經)을 믿는 사람이 범부(凡夫)가 되었음을.「경문(經文)에는 약유문법자무일불성불(若有聞法者無一不成佛)」이라고 설(說)해져 있느니라.

고성령(故聖靈)은 법화경(法華經)에 목숨을 버리시었다. 약간의 신명(身命)을 지탱했던 영지(領地)를 법화경(法華經) 때문에 몰수(沒收)당한 것은 목숨을 버린 것이 아니겠느뇨.


묘이치니부인어소식(妙一尼夫人御消息)(어서 1254쪽)
저 설산동자(雪山童子)가 반게(半偈)를 위하여 몸을 버리고, 약왕보살(藥王菩薩)이 팔꿈치를 태우신것은, 그는 성인(聖人)이기에 불에 물을 넣는것과 같으나, 이는 범부(凡夫)이니 종이를 불에 넣는것과 같으므로, 이것으로써 감안(勘案)하니 성령(聖靈)은 이 공덕(功德)이 있느니라. 대월륜(大月輪) 속에선지 대일륜(大日輪) 속에선지, 천경(天鏡)을 가지고 처자(妻子)의 몸을 비추어 십이시(十二時) 동안 보시고 있으리라. 설령 처자(妻子)는 범부(凡夫)이기에 이를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니, 비유컨대 귀머거리인 자(者)가 뇌성(雷聲)을 듣지 못하고, 눈이 실명(失明)한 자(者)가 일륜(日輪)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의심(疑心)하지 말지어다, 필(必)히 수호(守護)해 주시리라. 게다가 틀림없이 함께 계시리라.
될 수 있으면 찾아가 뵙겠노라고 생각하던 차에, 의복(衣服)을 하나 받게 됨은 의외(意外)의 일이니라. 법화경(法華經)은 훌륭한 경(經)이시므로 만약 금생(今生)에 생기(生氣) 있는 몸이라도 된다면, 이부인(尼夫人)이 살아 계시든, 혹은 저승에서 보고 계시든간에, 어린 자녀(子女)들을 보살펴 드리리라.
사도(佐渡)의 지방(地方)에서도 이곳에서도, 하인(下人) 한 사람을 딸려 주신 일은 어느 세상(世上)엔들 잊을 수 있겠습니까. 이 은혜(恩惠)는 다시 태어나서 갚아드리리다.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공공근언(恐恐謹言).
五月 日 日蓮花押
묘이치니부인(妙一尼夫人)


묘이치니부인답서(妙一尼夫人答書)(어서 1255쪽)
묘이치니부인답서(妙一尼夫人答書)

弘安三年 五月 五十九歲御作

대저 신심(信心)이라고 함은 별(別)다른 것이 아닙니다. 아내가 남편(男便)을 아끼듯이 남편(男便)이 아내를 위해 목숨을 버리듯이, 부모(父母)가 자식(子息)을 버리지 아니하듯이·자식(子息)이 어머니를 떨어지지 아니하듯이, 법화경(法華經) 석가(釋迦) 다보(多寶)·시방(十方)의 제불보살(諸佛菩薩)·제천선신(諸天善神) 등(等)을 신봉(信奉)하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것을 신심(信心)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그뿐만 아니라 정직사방편(正直捨方便)·불수여경일게(不受餘經一偈)의 경문(經文)을 여인(女人)이 거울을 버리지 아니하듯이·남자(男子)가 칼을 차듯이 조금도 버리려는 마음 없이 생각하십시오. 명심(銘心)하고 명심(銘心)하시라.
五月 十八日 日蓮花押
묘이치니부인답서(妙一尼夫人答書)

묘이치뇨답서(妙一女答書)
弘安三年 七月 五十九歲御作

물어 가로되, 일본국(日本國)에 육종(六宗)·칠종(七宗)·팔종(八宗)이 있는데 어느 종(宗)에 즉신성불(卽身成佛)을 세우느뇨. 답(答)하여 가로되, 전교대사(傳敎大師)의 의(意)는 오직 법화경(法華經)에 한(限)하며, 고보대사(弘法大師)의 의(意)는 오직 진언(眞言)에 한(限)하였다. 물어 가로되, 그 증거(證據)는 여하(如何). 답(答)하여 가로되, 전교대사(傳敎大師)의 수구(秀句)에 가로되 「마땅히 알지니라, 타종소의(他宗所依)의 경(經)에는 모두 즉신입(卽身入)이 없고, 일분즉입(一分卽入)한다고 해도 팔지이상(八地已上)에다 미루고 범부신(凡夫身)을 허용(許容)하지 않는데 천태법화종(天台法華宗)만이 소상(昭詳)히 즉입(卽入)의 의(義)가 있음」 운운(云云). 또 가로되 「능화(能化)·소화(所化) 모두 역겁(歷劫)이 없고 묘법경력(妙法經力) 즉신성불(卽身成佛)함」등(等) 운운(云云). 또 가로되 「마땅히 알지니라, 이 문(文)에 성불(成佛)하는 바의 사람을 물어서 이 경(經)의 위세(威勢)를 나타내느니라」고 등(等) 운운(云云). 이 석(釋)의 뜻은, 즉신성불(卽身成佛)은 오직 법화경(法華經)에 한(限)하느니라.

물어 가로되, 고보대사(弘法大師)의 증거(證據) 여하(如何). 답(答)하여 가로되, 고보대사(弘法大師)의 이교론(二敎論)에 왈(曰) 「보리심론(菩提心論)에 가로되, 오직 진언법(眞言法) 중(中)에 즉신성불(卽身成佛)하는 까닭은 이는 삼마지(三摩地)의 법(法)을 설(說)함이라, 제교(諸敎) 중(中)에 있어서 궐(闕)하여 쓰지 않았다. 타일러 가로되, 이 논(論)은 용수대성(龍樹大聖)의 소조(所造)인 천부(千部)의


묘이치뇨답서(妙一女答書)(어서 1256쪽)
논(論) 중(中)에 비장(秘藏)·간심(肝心)의 논(論)이며, 이 중(中)에 제교(諸敎)라고 함은, 타수용신(他受用身)과 변화신(變化身) 등(等)의 소설(所說)의 법(法)·모든 현교(顯敎)이니라. 이 삼마지(三摩地)의 법(法)을 설(說)한다 함은, 자성법신(自性法身)의 소설(所說)·비밀진언(秘密眞言)의 삼마지(三摩地)의 행(行)이 이것이며, 금강정십만송(金剛頂十萬頌)의 경등(經等)이라 함은 이것이니라.」

물어 가로되, 이 양대사(兩大師) 소립(所立)의 의(義)·수화(水火)이니 어느 것을 믿어야 하느뇨. 답(答)하여 가로되, 이 이대사(二大師)는 다같이 대성(大聖)이니라, 동년(同年)에 입당(入唐)하여 양인(兩人)이 동일(同一)하게 진언(眞言)의 밀교(密敎)를 전수(傳受)하고 전교대사(傳敎大師)의 양계(兩界)의 스승은 순효화상(順曉和尙)·고보대사(弘法大師)의 양계(兩界)의 스승은 혜과화상(慧果和尙)·순효(順曉)와 혜과(慧果)의 이인(二人)은 함께 불공(不空)의 제자(弟子)이니라, 불공삼장(不空三藏)은 대일여래(大日如來) 육대(六代)의 제자(弟子)이며 상전(相傳)에 있어서나 본신(本身)에 있어서나 세간(世間)에서 존중(尊重)함이 일월(日月)과 같았다. 좌우(左右)의 신(臣)과 다름이 없으니 말학(末學)의 몸으로 시비(是非)하기 어렵도다. 필시 악명(惡名)이 천하(天下)에 충만(充滿)하여 대난(大難)을 그 몸에 초래(招來)하리라. 그렇지만 시험(試驗)삼아 따져서 양의(兩義)의 시비(是非)를 규명(糾明)하겠노라. 물어 가로되, 고보대사(弘法大師)의 즉신성불(卽身成佛)은 진언(眞言)에 한(限)한다는 것은 어느 경문(經文) 어느 논문(論文)이뇨. 답(答)하여 가로되, 고보대사(弘法大師)는 용수보살(龍樹菩薩)의 보리심론(菩提心論)에 의(依)함이니라. 물어 가로되, 그 증거(證據) 여하(如何). 답(答)하여 가로되, 고보대사(弘法大師)의 이교론(二敎論)에 보리심론(菩提心論)은 인용(引用)하여 가로되 「다만 진언법(眞言法) 중(中)뿐, 내지(乃至) 제교(諸敎) 중(中)에 있어서 궐(闕)하여 쓰지 않음」 운운(云云). 물어 가로되, 경문(經文)이 있느뇨. 답(答)하여 가로되 고보대사(弘法大師)의 즉신성불의(卽身成佛義)에 가로되 「육대무애(六大無?)로서 항시 유가(瑜伽)이니라. 사종(四種)의 만다(曼茶) 각각(各各) 떨어지지 아니하고, 삼밀가지(三密加持)하면 속질(速疾)히 나타나며, 중중(重重)으로서 제망(帝網)과 같아짐을 즉신(卽身)이라고 이름함이라. 법연(法然)히 살반야(薩般若)를 구족(具足)하고 심왕심수찰진(心王心數刹塵)보다 더하도다. 각(各) 오지무제지(五智無際智)를 구족(具足)하고 원경력(圓鏡力)인 고(故)로 실(實)의 각지(覺智)이니라」 등(等) 운운(云云). 의심하여 가로되, 이 석(釋)은 어느 경문(經文)에 의함이뇨. 답(答)하여 가로되 「금강정경(金剛頂經) 대일경(大日經) 등(等)에 의함. 질문하여 가로되, 그 경문(經文) 여하(如何). 답(答)하여 가로되, 고보대사(弘法大師) 그 증문(證文)을 내어서 가로되 「이 삼매(三昧)를 수행(修行)하는 자(者)는 현신(現身)에 불보리(佛菩提)를 증(證)함」 문. 또 가로되 「이 몸을 버리지 않고 신경통(神境通)을 체득(逮得)하고 대공위(大空位)에 유보(遊步)하여 신비밀(身秘密)을 이룸」 문(文). 또 가로되 「나는 본시(本是)부터 불생(不生)임을 깨달음」 문(文). 또 가로되 「제법(諸法)은 본시(本是)부터 불생(不生)이니라」 운운(云云).

힐난(詰難)하여 가로되, 이들의 경문(經文)은 대일경(大日經) 금강정경(金剛頂經)의 문(文)이니라, 그렇지만 경문(經文)은 혹은 대일여래(大日如來)의 성정각(成正覺)의 문(文)·혹은 진언(眞言)의 행자(行者)가 현신(現身)에 오통(五通)을 득(得)하는 문(文)·혹은 십회향(十回向)의 보살(菩薩)이 현신(現身)에 환희지(歡喜地)를 증득(證得)하는 문(文)으로서, 역시 생신득인(生身得忍)이 아니니, 어찌 하물며 즉신성불(卽身成佛)에 있어서랴. 그러나 보리심론(菩提心論)은 一에는 경(經)이 아니며, 논(論)을 본(本)으로 하니 배상향하(背上向下)의 죄과(罪過) ·의법불의인(依法不依人)의 불설(佛說)에 상위(相違)함이라.


묘이치뇨답서(妙一女答書)(어서 1257쪽)
도사(東寺)의 진언사(眞言師)가 니치렌(日蓮)을 악구(惡口)하여 가로되, 그대는 범부(凡夫)이며, 고보대사(弘法大師)는 삼지(三地)의 보살(菩薩)이니라. 그대는 아직 생신득인(生身得忍)이 아니며, 고보대사(弘法大師)는 제왕(帝王)의 안전(眼前)에서 즉신성불(卽身成佛)을 나타냈다. 그대는 아직 칙선(勅宣)을 받지 않았으니 대사(大師)가 아니며, 일본국(日本國)의 스승이 아니로다 등(等) 운운(云云) 시일(是一). 지카쿠대사(慈覺大師)는 전교(傳敎)·기신(義眞)의 제자(弟子)·지쇼대사(智證大師)는 기신(義眞)·지카쿠(慈覺)의 제자(弟子)·안네화상(安然和尙)의 제자(弟子)이니라. 이 삼인(三人)이 가로되, 법화천태종(法華天台宗)은 이비밀(理秘密)의 즉신성불(卽身成佛)·진언종(眞言宗)은 사리구밀(事理俱密)의 즉신성불(卽身成佛)이라고 운운(云云). 전교(傳敎) 고보(弘法)의 양대사(兩大師)는 어느쪽도 어리석지 않지만, 성인(聖人)은 편파(偏頗)가 없기 때문에·지카쿠(慈覺)·지쇼(智證)·안넨(安然)의 삼사(三師)는 전교(傳敎)의 산(山)에 산다고 해도, 그 의(義)는 고보(弘法) 도사(東寺)의 마음이니라. 따라서 일본국(日本國)의 사백여년(四百餘年)은 이의(異義)가 없는데, 그대가 불초(不肖)의 몸으로서 어찌 이 악의(惡義)를 갖느뇨 시이(是二). 답(答)하여 가로되, 악구(惡口)를 토하고 악심(惡心)을 일으킨다면 그대에게는 이 의(義)를 말하지 않겠노라. 정의(正義)를 듣겠다고 한다면 말하겠노라. 그러나 그대들과 같은 자(者)는, 말을 하지 않으면 막혔다고 생각할것이니 말하리라, 악심(惡心)을 일으키기보다도 악구(惡口)를 하는 것보다도, 명명백백(明明白白)한 경문(經文)을 내어서, 그대가 믿어온 고보대사(弘法大師)의 의(義)를 도우라. 악구(惡口)·악심(惡心)을 보고서·생각하건대 경문(經文)에는 즉신성불(卽身成佛)이 없음인가. 그러나 지카쿠(慈覺)와 지쇼(智證)와 안넨(安然) 등(等)의 일은 이는 또 가쿠쇼(覺證)의 양대사(兩大師)·일본(日本)에서 교대사(敎大師)를 믿는다고 해도, 한토(漢土)로 건너가 있을 때, 원정(元政)·법전(法全) 등(等)의 의(義)를 믿고, 마음으로는 교대사(敎大師)의 의(義)를 버리고, 몸은 그 산(山)에 살면서도 속이고 있었던 것이니라.

물어 가로되, 그대의 이 의(義)는 어찌하여 생각해 내었느뇨. 답(答)하여 가로되, 전교대사(傳敎大師)의 석(釋)에 가로되 「마땅히 알지어다, 이 문(文)은 성불(成佛)하는 바의 사람을 물어서 이 경(經)의 위세(威勢)를 나타내느니라」고 쓰여 있음은, 상(上)의 제바품(提婆品)의 아어해중(我於海中)의 경문(經文)을 써서 실으시었는데, 석(釋)의 뜻은, 아무리 사람이 말한다 해도, 즉신성불(卽身成佛)하는 사람이 없으면 받아들이지 말지어다 라고 쓰셨느니라. 과연 순원일실(純圓一實)의 경(經)이 아니고는 즉신성불(卽身成佛)은 있을 수 없는 도리(道理)로다. 대일경(大日經)·금강정경(金剛頂經) 등(等)의 진언경(眞言經)에는 그런 사람이 없느니라. 또한 경문(經文)을 보아하니 겸(兼)·단(但)·대(對)·대(帶)의 취지(趣旨)가 분명(分明)하니라. 이승성불(二乘成佛)이 없고 구원실성(久遠實成)은 자취도 없으니, 지카구(慈覺)·지쇼(智證)는 선무외(善無畏)·금강지(金剛智)·불공삼장(不空三藏)의 석(釋)에 기만(欺瞞)당하고 있느니라. 이 사람들은 현인(賢人)·성인(聖人)이라고는 생각하지만, 먼것은 존귀(尊貴)하게 여기고 가까운 것은 경멸(輕蔑)하는 사람이니라. 저 삼부경(三部經)에 인(印)과 진언(眞言)이 있음에 속아서 대사(大事)인 즉신성불(卽身成佛)의 도(道)를 잊어 버린 사람들이니라. 그러함을 당시(當時)·에이산(叡山)의 사람들·법화경(法華經)의 즉신성불(卽身成佛)의 양상(樣相)


묘이치뇨답서(妙一女答書)(어서 1258쪽)
을 말하는 것 같지만, 지카쿠대사(慈覺大師)·안넨(安然) 등(等)의 즉신성불(卽身成佛)의 의(義)이니라. 그 사람들의 즉신성불(卽身成佛)은 유명무실(有名無實)의 즉신성불(卽身成佛)이며, 그 의(義)가 전연 전교대사(傳敎大師)의 의(義)에 상위(相違)하였다. 교대사(敎大師)는 분단(分段)의 몸을 버리거나 버리지 않거나 법화경(法華經)의 본의(本意)에 있어서는 즉신성불(卽身成佛)이니라. 가쿠대사(覺大師)의 의(義)는 분단(分段)의 몸을 버린다면 즉신성불(卽身成佛)이 아니라고 생각하였으니 결코 즉신성불(卽身成佛)의 의(義)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니라.

질문하여 가로되, 지카쿠대사(慈覺大師)는 전교대사(傳敎大師)를 만나뵙고 배워서 상전(相傳)받았으며, 그대는 사백여년(四百餘年)의 연기(年紀)를 지났는데 여하(如何). 답(答)하여 가로되, 스승으로부터 구전(口傳)받은 사람은 반드시 오류(誤謬)가 없는데 후대(後代)에 물어서 구명(究明)하는 사람이 어리석다면 경문(經文)을 버리고 사의(四依)의 보살(菩薩)에 따를 것인가, 부모(父母)의 양도장(讓渡狀)을 버리고 구전(口傳)을 쓸 것인가, 전교대사(傳敎大師)의 석(釋)은 무용(無用)하고 지카쿠대사(慈覺大師)의 구전(口傳)이 진실(眞實)하다는 것인가, 전교대사(傳敎大師)의 수구(秀句)라고 하는 어문(御文)에 일체경(一切經)에 없는 일을 열 가지 들었는데, 제팔(第八)에 즉신성불화도승(卽身成佛化導勝)이라고 쓰시고, 차하(次下)에 「마땅히 알지어다, 이 문(文)은 성불(成佛)하는 바의 사람을 물어서 이 경(經)의 위세(威勢)를 나타냄이라, 내지(乃至) 마땅히 알지어다, 타종소의(他宗所依)의 경(經)에는 모두 즉신입(卽身入)이 없다」 등(等) 운운(云云). 이 석(釋)을 어기고 가쿠대사(覺大師)의 사리구밀(事理俱密)의 대일경(大日經)의 즉신성불(卽身成佛)을 받아들일 것인가.

질문하여 가로되, 교대사(敎大師)의 석(釋) 중(中)에 보리심론(菩提心論)의 유(唯)의 자(字)를 사용(使用)하지 않은 석(釋)이 있느뇨 없느뇨. 답(答)하여 가로되, 수구(秀句)에 왈(曰) 「능화소화(能化所化) 다같이 역겁(歷劫)없이 묘법경력(妙法經力)으로 즉신성불(卽身成佛)함」 등(等) 운운(云云). 이 석(釋)은 보리심론(菩提心論)의 유(唯)의 자(字)를 쓰지 않는다고 보입니다. 물어 가로되, 보리심론(菩提心論)을 쓰지 않음은 용수(龍樹)를 받아들이지 않음인가, 답(答)하여 가로되, 단(但)아마도 역자(譯者)의 곡회사정(曲會私情)의 뜻이리라. 의심하여 가로되, 역자(譯者)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법화경(法華經)의 나습(羅什)도 신용(信用)하지 않겠느뇨. 답(答)하여 가로되, 나습(羅什)에게는 현증(現證)이 있으나 불공(不空)에게는 현증(現證)이 없다. 물어 가로되, 그 증(證) 여하(如何). 답(答)하여 가로되, 혀가 타지 않은 현증(現證)이니라. 상세(詳細)히는 물을지어다. 질문하여 가로되, 가쿠(覺)·쇼(證) 등(等)은 이것을 알지 못했느뇨. 답(答)하여 가로되, 이 양인(兩人)은 무외(無畏) 등(等)의 삼장(三藏)을 믿는 고(故)로 전교대사(傳敎大師)의 정의(正義)를 신용(信用)하지 않았으리니 이는 즉 사람을 믿고 법(法)을 버린 사람들이니라.

물어 가로되, 일본국(日本國)에 아직 가쿠(覺)·쇼(證)·넨(然) 등(等)을 파(破)한 사람을 듣지 못했는데 여하(如何). 답(答)하여 가로되, 고보대사(弘法大師)의 문가(門家)는 가쿠(覺)·쇼(證)를 받아들이겠는가. 가쿠(覺)·쇼(證)의 문가(門家)는 고보대사(弘法大師)를 받아들이겠는가.


묘이치뇨답서(妙一女答書)(어서 1259쪽)
물어 가로되, 양방(兩方)의 의(義)가 상위(相違)하다 해도, 그대의 의(義)와 같이 수화(水火)가 아니고 비방정법(誹謗正法)이라고는 하지 않는데 여하(如何). 답(答)하여 가로되, 비방정법(誹謗正法)이란 그 상모(相貌) 여하(如何)·외도(外道)가 불법(佛法)을 헐뜯고·소승(小乘)이 대승(大乘)을 헐뜯고·권대승(權大乘)이 실대승(實大乘)을 낮추고·실대승(實大乘)이 권대승(權大乘)에게 힘을 합(合)하여·결국(結局)에는 승(勝)을 열(劣)이라고 하며·법(法)에 배반(背反)하기 때문에 방법(謗法)이라고 함이라. 고보대사(弘法大師)가 대일경(大日經)을 법화경(法華經) 화엄경(華嚴經)보다 뛰어나다라고 하는 증문(證文)이 있느뇨. 법화경(法華經)에는 화엄경(華嚴經)·대일경(大日經) 등(等)을 낮추는 문(文)이 분명(分明)하니라. 소위(所謂) 이금당(已今當) 등(等)이로다. 고보(弘法)가 존귀(尊貴)하다 해도 석가(釋迦) 다보(多寶) 시방분신(十方分身)의 제불(諸佛)에게 배반(背反)하는 대과(大科)는 면(免)하기 어렵다. 그런데 권문(權門)을 의지해 니치렌(日蓮)을 위협(威脅)하느니보다 오직 정확(正確)한 문(文)을 내놓아라. 그대들은 사람을 제편으로 하고 니치렌(日蓮)은 일월(日月)·제석(帝釋)·범왕(梵王)을 내편으로 하리라. 일월(日月)·천안(天眼)을 뜨고 보시리라. 또한 일월(日月)의 궁전(宮殿)에는 법화경(法華經)과 대일경(大日經)과 화엄경(華嚴經)이 있으니 서로 비교(比較)하여 보시라, 고보(弘法)·지카쿠(慈覺)·지쇼(智證)·안넨(安然)의 의(義)와 니치렌(日蓮)의 의(義)와는 어느 것이 뛰어났느뇨. 니치렌(日蓮)의 의(義)가 만약 백천(百千)에 하나라도 도리(道理)에 맞는다면 어찌하여 도와주시지 않나이까. 저 사람들의 의(義)가 만약 사의(邪義)라면, 어찌하여 일본국(日本國)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이 무안(無眼)의 업보(業報)를 얻게 됨을 가엾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니치렌(日蓮)이 두 번의 유죄(流罪), 결국은 참수(斬首)에까지 이른것은, 석가(釋迦)·다보(多寶)·시방(十方)의 제불(諸佛)을 참수(斬首)하려는 사람이로다. 일월(日月)은 일인(一人)이시지만 사천하(四天下)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안목(眼目)이며 목숨이니라. 일월(日月)은 불법(佛法)을 맛보고 위광세력(威光勢力)을 더하신다고 보입니다. 불법(佛法)의 법미(法味)를 그르치는 사람은 일월(日月)의 힘을 빼앗는 사람·일체중생(一切衆生)의 적(敵)이로다. 어찌하여 일월(日月)은 빛을 내시어 그들의 머리 위를 비추어 수명(壽命)과 의식(衣食)을 주어 부양(扶養)하시느뇨, 저 삼대사(三大師)의 제자(弟子)들이 법화경(法華經)을 비방(誹謗)함은, 오로지 일월(日月)의 마음을 아시고서 비방(誹謗)하시는 것인가. 그 의(義)가 없이 니치렌(日蓮)이 잘못된 일이라면 일천(日天)도 가르쳐 주고 그들과도 대질(對質)시켜서 그 이(理)에 패(敗)하고서도 그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면 천수(天壽)마저도 빼앗아 버리시라.

그런 의(義)가 없이 다만 도리(道理)를 다하지 않고 그들에게 원숭이의 새끼를 개에게 맡기고, 쥐의 새끼를 고양이에게 주는 것같이 함부로 맡기어 마음껏 괴롭히게 하시어, 그들을 벌(罰)하시지 않는 것은 납득(納得)하기 어렵도다. 니치렌(日蓮)은 일월(日月)에게 있어서는 아마도 대단한 적(敵)이로다. 교주석존(敎主釋尊)의 어전(御前)에서 반드시 호소(呼訴)하여 말씀드리리라, 그 때 원망하시지 말지어다. 일월(日月)이 아니더라도 지신(地神)도 해신(海神)도 들으시라. 일본(日本)


묘이치뇨답서(妙一女答書)(어서 1260쪽)
의 수호신(守護神)도 들을지어다. 전연 니치렌(日蓮)의 곡의(曲意)는 없느니라. 서두르고 서둘러 대책(對策)이 있으시라. 늦어지신 다음에 니치렌(日蓮)을 원망하지 마시라.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남묘호레게쿄(南無妙法蓮華經), 공공(恐恐).
七月 十四日 日蓮花押
묘이치뇨답서(妙一女答書)

묘이치뇨답서(妙一女答書)
弘安三年十月 五十九歲御作

지난 七月중순경(中旬頃) 진언(眞言)·법화(法華)의 즉신성불(卽身成佛)의 법문(法門)을 대체로 주석(註釋)하여 보냈소이다. 그 후(後)는 어김없이 법화경(法華經)의 즉신성불(卽身成佛)을 믿고 계시리라. 그렇지 않다면 당세(當世)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무득도(無得道)의 즉신성불(卽身成佛)로 되어 버릴테니 걱정스럽도다. 전일(前日)에 써 보내 드린 법문(法門)을 잘 유의(留意)하여 보시라. 게다가 즉신성불(卽身成佛)이라고 하는 법문(法門)은, 세상(世上)에 유포(流布)된 학자(學者)는 모두 일대사(一大事)라고 하여 열심히 말하는 일입니다. 더구나 나의 문제(門弟)는 만사(萬事)를 제쳐 놓고 이 일사(一事)에 유의(留意)할지어다.

건장오년(建長五年)부터 이 홍안삼년(弘安三年)에 이르기까지 이십칠년(二十七年) 동안, 재재처처(在在處處)에서 설(說)해온 법문(法門)은 번다(繁多)하다고 해도, 구극(究極)은 다만 이 일도(一道)이니라. 세간(世間)의 학자(學者) 중(中)에 진언가(眞言家)에서 세워 놓은 즉신성불(卽身成佛)은, 석존(釋尊)의 소설(所說)인 사미삼교(四味三敎)에다 접입(接入)시켜 놓은 바의 대일경등(大日經等)의 삼부경(三部經)에·별교(別敎)의 보살(菩薩)의 수직관정(授職灌頂)을 지극(至極)의 즉신성불(卽身成佛) 등(等)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칠위(七位) 중(中)의 십회향(十回向)의 보살(菩薩)의 환희지(歡喜地)를 증득(證得)한 경계(境界)이니라. 전연 원교(圓敎)의 즉신성불(卽身成佛)의 법문(法門)이 아니로다. 가령 경문(經文)에 있는 것을 내세운다 해도, 환희행(歡喜行)을 증득(證得)한 위에 득(得)한 바의 공덕(功德)을 논하는 입장의 사람들이니라. 이는 십지(十地)의 보살(菩薩)의 인분(因分)의 소행(所行)이며·십지등각(十地等覺)은 과분(果分)을 알지 못하느니라. 원교(圓敎)의 본의를 가지고 엄밀(嚴密)히 말한다면, 육즉(六卽) 중(中)의 명자관행(名字觀行)의 일념(一念)과 같고, 대강 말할 때는, 관행즉(觀行卽)의 사리화융(事理和融)이며 이혜상응(理慧相應)의 관행(觀行)에 미치지 못하느니라. 혹은 보리심론(菩提心論)의 문(文)에 의하고, 혹은 대일경(大日經)의 삼부(三部)의 문(文)에 의해도 즉신성불(卽身成佛)은 아니며·생신득인(生身得忍)에 조차도 가까이 가지 못하는 법문(法門)이니


묘이치뇨답서(妙一女答書)(어서 1261쪽)
라.

그러므로 세간(世間)의 사람들은 보리심론(菩提心論)의 유진언법중(唯眞言法中)이라는 문(文)에 빠져버려 즉신성불(卽身成佛)은 진언종(眞言宗)에 한(限)한다고 생각했으며, 이 때문에 틀림없이 즉신성불(卽身成佛)을 설(說)하신 법화경(法華經)을 희론(戱論) 등(等) 운운(云云). 지관오(止觀五)에 가로되 「설령 세상(世上)을 피(避)하는 자(者)도 하열(下劣)한 승(乘)을 좋아하여 지엽(枝葉)에 반부(攀附)함은, 개가 노비(奴婢)를 따르고 미후(??)를 존경(尊敬)하여 제석(帝釋)으로 삼으며, 와력(瓦礫)을 숭배(崇拜)하여 이를 명주(明珠)로 삼으니, 이 흑암(黑暗)의 사람이 어찌 도(道)를 논(論)할 수 있으랴」 등(等) 운운(云云). 이런 의(意)니라. 한탄(恨歎)스러움은 화엄(華嚴)·진언(眞言)·법상(法相)의 학자(學者)가 헛되이 시간(時間)을 들여서 즉신성불(卽身成佛)의 법문(法門)을 세운 일이로다. 우선 법화경(法華經)의 즉신성불(卽身成佛)의 법문(法門)은 용녀(龍女)를 증거(證據)로 하라. 제바품(提婆品)에 가로되 「수유(須臾)의 사이에 즉 정각(正覺)을 이룸」 등(等) 운운(云云). 내지(乃至) 「변(變)하여 남자(男子)로 되다」라고. 또 가로되 「즉(卽) 남방(南方) 무구세계(無垢世界)로 감」 운운(云云). 전교대사(傳敎大師) 가로되 「능화(能化)의 용녀(龍女)도 역겁(歷劫)의 행(行)이 없고 소화(所化)의 중생(衆生)도 또한 역겁(歷劫)이 없으니, 능화소화(能化所化) 다같이 역겁(歷劫)이 없다 묘법경력(妙法經力)으로 즉신성불(卽身成佛)함」 등(等) 운운(云云). 또 법화경(法華經)의 즉신성불(卽身成佛)에 이종(二種)이 있으니, 적문(迹門)은 이구(理具)의 즉신성불(卽身成佛)이요, 본문(本門)은 사(事)의 즉신성불(卽身成佛)이니라. 지금 본문(本門)의 즉신성불(卽身成佛)은 당위즉묘(當位卽妙) 본유불개(本有不改)라고 결정(決定)함이니 육신(肉身)을 그대로 본유무작(本有無作)의 삼신여래(三身如來)라고 함이 이것이로다. 이 법문(法門)은 일대제교(一代諸敎) 중(中)에 없으니, 문구(文句)에 가로되 「제교(諸敎) 중(中)에 이를 비(秘)로 하여 전(傳)하지 않았음」 등(等) 운운(云云).

또 법화경(法華經)이 홍통(弘通)하시게 될 때가 두 번 있으니 소위(所謂) 재세(在世)와 말법(末法)이니라. 수행(修行)에 또한 이의(二意)가 있으니, 불세(佛世)는 순원일실(純圓一實)이요, 멸후(滅後)의 말법(末法)인 금시(今時)는 오로지 본문(本門)이 홍통(弘通)되시게 될 때이니라. 적문(迹門)이 홍통(弘通)되시게 될 때는 이미 지난지 이백여년(二百餘年)이 되었는데, 천태(天台)·전교(傳敎)야말로 그 능홍(能弘)의 분이셨으나, 그 분들도 벌써 입멸(入滅)하시었다. 니치렌(日蓮)은 지금 때를 얻었으니 어찌 이 소촉(所囑)의 본문(本門)을 홍통(弘通)하지 않을소냐. 본적이문(本迹二門)은 기(機)도 법(法)도 시(時)도 아득히 각별(各別)하니라.

물어 가로되, 니치렌(日蓮)만이 이것을 아느뇨. 답(答)하여 가로되 「천친(天親)·용수(龍樹)·내감냉연(內鑑冷然)」 등(等) 운운(云云). 천태대사(天台大師) 가로되 「후(後)의 오백세(五百歲) 멀리 묘도(妙道)에 첨(沾)하리라」 전교대사(傳敎大師) 가로되 「정상(正像)은 초초(稍稍) 지나 버리고 말법(末法)은 매우 가까이에 있으며, 법화일승(法華一乘)의 기(機)는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니라. 무엇으로써 알 수 있느뇨. 안락행품(安樂行品)에 가로되, 말세법멸(末世法滅)의 시(時)」 운운(云云). 이들의 논사(論師)나 인사(人師)는 말법투쟁견고(末法鬪諍堅固)의 때에 지용(地涌)이 출현(出現)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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