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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인의 삶에서 벗어나 ‘인간 한명숙’의 삶 되찾다>
대대로 내려온 모질고 모진 가문의 업(業). 한명숙 씨는 ‘반드시 내 대(代)에서 끊어내겠다’고 결심하고 온 생명을 다해 신심으로 부딪혔다. 모진 숙업에 휘둘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인생길이, 스승을 만나 대원의 인생에 뛰어든 순간부터 행복의 방향으로 유유히 흐르기 시작했다.
‘무속인’이었던 시어머니 1974년, 한명숙 씨는 남편 김경관 씨와 연애결혼을 했다. 결혼 전, 남편에게서 “우리 엄마는 무속인이야. 너무 놀라지마”라고 들었다. 사랑 앞에서 시어머니의 직업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결혼 후, 시어머니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한 씨를 무복(巫服)을 입은 채 맞았다. “새아가, 집안 어른께 인사 드려야지.” 시어머니는 보통 사람 키의 두 배나 되는 동상들을 가리키며 큰 절을 하라고 일렀다. 인사하고 나자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문 밖에서 서성거렸다. 시어머니에게 미래를 묻기 위해 찾아온 손님이었다. “시어머니는 울산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유명한 무속인이었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손님이 끊이지 않았죠. 지역 유지, 재력가, 정치가 등 무수히 많은 유명인도 드나들었습니다.” 그후, 6대 독자인 남편과 함께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한 씨가 시집 와서 했던 일은 굿을 하기 위해 제사상을 차리는 것이었다. 과일, 떡, 고기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위치에 놓아야 했고, 시어머니는 정성이 담겨야 한다며 며느리가 차려놓은 제사상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이런 일이 매일같이 반복되자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두 숟가락 정도 입에 넣으면 바로 구토했다. 그렇게 1년 동안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 몸무게가 20kg이나 빠졌다. 병원에서는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라며 정확한 진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즈음, 시어머니가 간암말기 선고를 받았다. 6개월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의 말에 시어머니는 병원 문 밖을 나서기가 무섭게 한 씨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내가 얼마 살지 못한다는 것은 이제 신을 네게 내릴 때가 됐다는 거다. 이젠 때가 됐다.” 얼마 살지 못하는 시어머니의 뜻을 계속 거절하는 것은 불효라는 생각에 한 씨는 며칠 후, 신내림을 받았다. “그것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거죠. 불법(佛法)에서 말하는 지옥과 같은 겁니다.”
“정말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사진1>

한명숙 씨의 신심으로 일가화락을 이룬 가족. 가정적인 남편 김경관(맨 왼쪽) 씨 덕분에 가족은 언제나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1985년, 남편이 다니는 직장에서 부부 동반으로 식사하는 자리에 참석했다. 자리한 사람들 대부분이 한 씨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는지 기이하게 쳐다봤다. 그때 누군가가 “많이 힘드시겠어요. 정말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건넸다. 남편 상사의 부인이었다. 무심코 들었던 ‘행복’이라는 말에 코끝이 찡해졌다. 눈시울도 붉어졌다. 한 씨의 마음을 읽었는지 그 부인은 핏기 없이 차디찬 한 씨의 손을 움켜잡으며 자리를 옮기자고 했다. ‘인간 한명숙’으로 대해 주는 것이 그저 고맙기만 했다. 세상과 단절된 그에게 불법의 위대함을 이야기하며 ‘반드시 마음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단언했다. 그리고 “미래의 과(果)를 알려고 하면 그 현재의 인(因)을 보라”(어서 231쪽)는 성훈을 말하며 숙명전환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는 흐리고 탁한 생명을 맑고 깨끗한 생명으로 정화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창제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집으로 돌아와 창제를 했다. 처음에는 창제를 할 때마다 쏟아지는 착시현상과 빙의가 숨막힐 듯이 괴로웠다. 그럴수록 몇 대째 이어오는 시댁의 숙명을 자식들에게 절대 물려주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고 기원했다. 밥도 먹지 못할 만큼 생명의 마성이 몸 세포 하나하나를 건드렸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가슴의 응어리가 하나씩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창제를 하면서 잠을 자기 시작했어요. 몇 년 만에 깊은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밥 한 그릇을 거뜬히 먹을 만큼 입맛도 좋아졌다. 남편도 자신의 모습을 보고 함께 입회했다. 시어머니도 한 씨의 건강한 모습을 보고 편안하게 임종했다. 장녀 김효정(학성권 지부부부인부장) 씨는 “매일 안방에 누워 혼잣말을 하시던 어머니가,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창제를 시작하면서 더 이상 아픈 일이 없었어요. 신심 덕분에 엄마의 본디 모습을 되찾게 된 것 같아 마냥 기뻐했던 것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하고 말한다.
‘왜 이런 어려움이 계속되는 걸까’ 그때쯤 남편이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직장 동료 두 명과 함께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동업을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 말려보았지만, 남편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술 한잔 마시지 못했던 남편이 취해서 들어오는 날이 잦았다. 이어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도가 나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겼고, 이로 인해 엄청난 부채를 떠안게 됐다. 생각지도 못한 일에 눈앞이 캄캄했다.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도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내게는 왜 이런 어려움만 닥치는가?’라는 생각에 매일 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남편은 집에서도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한 씨의 잔소리는 더욱 심해졌다. 두 사람 사이에 마음의 골도 깊어졌다. 한 씨는 한두 번 회합을 빠지다가 신심에서도 점점 멀어졌다. 그때 학회 선배가 집으로 찾아왔다. 그 선배는 “깊은 숙명을 학회의 사명으로 바꿀 수 있어요. 불법의 위대함을 꼭 증명해 주세요”라고 격려했다. 다시 어본존 앞에 앉아 타성에 젖은 생명을 반성했다. 덮어 두었던 학회 관련 서적을 펴자 생명을 파고드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스승을 가진 사람은 행복하다. 사제의 길에 의해서만 인간은 ‘향상과 성장의 궤도’를 나아갈 수 있다. ‘스승’이 없는 사람은 자유롭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기준이 없는 ‘무궤도’의 인생으로 되어간다”라는 이케다 SGI 회장 스피치였다. 자신의 상황이 절박한 이때야말로 ‘스승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동업하지 말라고 할 때 하지 말지’라는, 남편을 향한 푸념과 원망의 마음이 가득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무의식 중에 시댁의 숙업을 한탄했던 마음도 모두 자신에게서 시작된 것이라고 받아들이게 됐다.
용기내어 신심 알려가는 도전을! <사진2>

언제나 큰 힘이 되어주는 학회원이 있어 든든하다고 말하는 한명숙(가운데) 씨. 지부 거점을 제공하며 광포의 인생을 평생 걸어가겠다고 한 씨는 다짐한다.
그는 스승과 같이 타인을 위한 인생에 전 혼을 기울이겠다고 다짐, 주위 사람들에게 불법을 알리기로 마음먹었다. 가장 먼저 마음의 병을 치유한 것을 지켜본 시댁, 친정 식구들에게 신심을 권유했다. 친척들도 한 씨가 불법을 실천하면서 마음의 병이 깨끗하게 나아 굉장히 밝아졌다고 입을 모은 상황이었다. “모두 긍정적으로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포교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시댁의 숙명을 뿌리째 뽑아버린 한 씨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 시댁, 친정 식구들도 연이어 입회했다. 달라진 그의 일념 때문인지 남편은 동업의 실패를 인정하며 용기를 내 다시 어본존 앞에 앉았다. 남편 김경관 씨는 “매일 제게 잔소리하던 아내가 학회활동에 매진하면서 밝아지고 긍정적으로 변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도 새롭게 창제를 시작했지요”라고 말한다. 부부의 금슬이 좋아지니 경제적인 상황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지인의 도움으로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고, 동업을 할 때보다 더 많은 일을 수주했다. 남편이 운영하는 회사는 경제불황이 무색할 만큼 번창했다. 사업 실패로 인한 엄청난 부채도 모두 해결했다. “지부 거점을 제공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적인 상황이 좋아졌습니다. 이 모든 것이 공덕이죠.”
내게 큰 기쁨 주는 사람 ‘며느리’ <사진3>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이름보다 ‘엄마와 딸’이란 말이 더 어울리는 두 사람. 앞으로 더욱 열심히 살아가기로 약속하며 “파이팅!”을 외친다.
한 씨의 자랑 삼 남매도 광포의 뜰 안에서 자라며 모두 행복한 가정을 가꾸며 살아가고 있다. 그 중에서도 한 씨에게 가장 큰 기쁨을 주는 가족이 한 사람 있다. 바로 며느리 천은미 씨다. 기독교 신자였던 천 씨는 신심을 접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시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며 ‘한번 알아보고 싶다’는 마음에 지부총회와 좌담회에 참석했다. 천은미 씨는 “어떤 어려움에도 지지 않는 강한 자신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이 귀에 쏙 들어왔어요”라고 말한다. 회합에 참석한 학회원의 밝고 따뜻한 모습을 보며 마음이 움직였다. 이에 순수하게 입회해 신심의 기본을 배우고 실천하며 성장했다. 한 씨는 “사실, 며느리에게 시댁의 나쁜 숙업을 물려줄 것 같아 얼마나 기원했는지 몰라요. 지금 열심히 학회활동을 하는 며느리를 보면 안심이 돼요”라고 말한다. 천 씨는 입회 후, 친정 식구 모두를 포교하며 불법의 힘을 확신하고 있다. 천 씨는 “저는 어머니의 예전 모습을 보지 못해 실감이 나진 않아요. 그러나 어머니의 필사적인 신심 도전이 있었기에 일가화락을 만들 수 있었다고 확신합니다. 친정 부모님도 시댁 식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입회하신거죠”라고 말한다. 며느리의 이야기에 흐뭇한 웃음을 짓고 있는 한 씨는 “지금까지 살면서 고생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복운의 인생이었습니다. 시어머니 덕분에 마음이 더욱 강해졌고, 남편은 저를 단련시켜준 고마운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제 인생의 가장 큰 공덕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이윽고 며느리의 손을 잡으며 “파이팅!”을 외친다. <한명숙 김해권 총합지구부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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