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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신 무(新無) - 여섯번째 쉼표

작성자사휘|작성시간05.08.26|조회수14 목록 댓글 0
화산파는 평화로웠다. 최근들어 사파와의 싸움도 별로 없는데 이어 속가제자(俗家弟子)들이 연달아 줄을 이어 - 물론 사파와의 싸움에서 큰 한몫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 대 성황을 이루었다. 적풍과 칠검객들은 평안히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자운과 기령은 아직도 실력을 겨루겠다면서 열심이었고, 류현은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시간표를 짜느라 골치였다. 적풍은 뒷마당을 거닐면서 조그마한 개미들을 이리저리 모느라 정신이 없었다.

" 여어! "

누군가의 목소리에 적풍의 얼굴이 불쑥 올라갔다.

"어엇! 화련 사형! 영신 사형도?!"

- 콩!

"아야얏!"

"사형이라 하지 말랬지?"

적풍의 머리를 가볍게 콩 쥐어박은 주인공은 바로 '천화만궁(天花滿弓)' 이화련 이었다. 화련은 여자의 몸에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로 칠검객의 자리에 앉았고, 유일하게 활을 쓰는 여인이었다. 또한 가녀린 몸매에 얼굴도 아름다워 그녀의 추종자들이 가득했다. 그녀의 옆에있는 무뚝뚝한 사람은 매화만검(梅花滿劍) 류영신이었다. 벌써 검향의 검경에 도달했다는 영신은 현재 수행중에 있었다. 영신의 얼굴은 약간 코가 높고, 눈이 패여서 눈 밑이 어둑어둑 했다. 그리고 팔 다리는 빼빼 말라서 약골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런 영신이 여전히 음산하고 무뚝뚝한 말투로 적풍에게 말했다.

"그건 그렇고. 사형들은 어디에 계시니?"

"예. 지금 류현사형은 연무장에 가 계시고 , 중연 사형은 집무실에 가 계세요. 자운사형과 기령사형은… 아시죠?"

영신이 픽 웃으면서 말했다.

"연무장에 있겠군. 어쨌든 고맙다."

그가 휘적휘적대며 가버리자 화련이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하여간 무뚝뚝하긴. 참, 풍아야."

"예? 사형?"

"사형∼?! 차라리 누나라고 불럿!"

"아…알았어요 누나."

사자(師姉)라고 불러야 할 것을, 적풍은 화련의 평소 행실 - 워낙 남자같아 칠검객들은 기피했었다. -을 알고 있기에 언제나 사형이라 불러대었던 것이다. 정체를 숨기고(?)있는 화산파 문원들 앞에서 혹시나 정체가 들킬까 조마조마한 화련이었다.

"어쨌든. 이것좀 봐봐."

화련이 등에 달려있던 분홍빛 매화궁을 집어들었다. 그녀가 화살을 조심스레 시위에 메기고 앞에 있는 나무를 바라보았다. 적풍은 여전히 그녀가 뿜어내는 위압감에 몸이 얼은 듯 했다. 그녀는 평소엔 푼수끼가 있으나 전투시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람을 죽인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은 그녀를 마궁(魔弓)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여튼 화련 누나의 매화궁이 내공이 주입되는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매화궁의 모습은 분홍빛 나무가지같은 것이 활에 감겨 있었는데, 실전용이 아닌 장식용이라 해도 훌륭할 만큼 멋있었다.

- 매화궁(梅花弓)
  연발(延發)
  흩날리는 매화.
  절(絶) -

- 파바바밧!

매화 잎같은 분홍색 강기가 회전하면서 빠르게 앞에 있던 나무에 적중했다.

" 와아! "

찰나(刹那)의 순간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나무는 기이한 모양으로 뒤틀려 있었던 것이다! 화살에 실린 조그마한 강기로 저런 위력을 낼 수 있다니! 적풍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지자 화련이 거만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 호호홋. 어떠니? "

" 우와… 이정도면 순식간에 스무명 정도는…. "

" 얘는, 어쨌든 들어가 보자. 태사숙조님이 나무 하나 없앴다고 화내시겠다. 호호. "

칭찬에 기분좋아진 그녀가 적풍의 뒤를 따라 들어가자 영신은 태사숙조에게 여행의 일을 보고하고 있었다. 영신이 화련을 쳐다보며 말했다.

"- 이쯤하면 얘기는 끝난 것 같습니다. 참. 최근 전투가 잘 되셨다는데, 축하드립니다."

"그런대로 된 게지. 풍아야. 숙소를 안내해드리고, 좀 쉬고 있거라."

"네. 아버님."

적풍은 영신과 화련의 방을 안내해 주었다. - 나중엔 화련 누나가 만들어놓은 걸작품(?)을 보신 아버님께서는 오열하셨다고 한다. - 적풍은 모든 일을 다 끝마친 뒤 자신의 숙소로 들어가 누웠다. 지금 즐기고 있는 휴식이 앞으로의 폭풍을 견뎌내기 위한 휴식인 듯 싶었다. 불현 듯 불안한 생각이 든 적풍은 단순히 헛생각으로 치부하면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혈(血). 뭐하는 짓이냐?"

조용히 먼지를 툭툭 털고 있는 청년에게 이연이 다시 한번 물었다. 그러나 혈이라 불린 청년은 그의 말을 무시한채 몸의 먼지를 터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이연이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 네 놈이 괴사문과 혼검파를 궤멸시킨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야-! 네 어찌 감히 마교와 맹약한 사파의 문파들을 없애는 것이냐? "

혈이라 불린 청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 - 쓰레기를 청소하는데 기분 나쁜가? "

" 뭣? "

혈이란 청년이 자신의 회색빛 머리를 뒤로 넘기면서 말했다.

" 난 단지 쓰레기를 청소할 뿐이지. 다른 악의는 없어. 나 적혈(赤血). 사부의 이름에 먹칠하기 싫어서라도 당신에게 욕먹을 짓은 안해. "

"광오하구나!"

이연이 마황신검을 뽑아들어 검기를 뿜어냈다. 마황신검에서 커다란 귀곡성이 울리며 다시금 검은 모습을 지닌 악마(惡魔)가 순식간에 적혈의 몸을 뒤틀어버릴 듯 위협적으로 으르렁대고 있었다. 적혈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 내, 참. 당신 힘으로 날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

" 네…네…이놈! "

마황신검의 날카로운 칼날이 검은 궤적을 이루며 순식간에 적혈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이연은 결코 녹록한 실력이 아니어서 인지 날카롭고 한군데도 흠잡을 수 없는 공격이었다. 그러나 적혈은 웃고 있었다. 일말의 긴장감도 가지지 않은채, 적혈의 손에 멀리 떨어져 있던 붉은 검신이 손에 들어왔다. '허공섭물(虛空燮物)!' 이연이 그 틈을 타 옆구리를 치고 들어가자, 검신을 감싸고 있던 종이가 파앗 소리와 함께 찢겨져 나가며 적혈의 손에서 빛났다.

- 수라마강검(修羅魔剛劍)
  오의(悟意)
  혼(魂)
  아수라(阿修羅) -

- 콰지지지직!

이연의 몸이 뒤로 훌쩍 날아가면서 그의 온몸에 검흔이 주욱주욱 그어지기 시작하였다. 동시에 팍 뿜어져 나오는 핏물. 그러나 적혈의 검에는 아무것도 묻어있지 않았다. 이연의 마황신검은 멀리 날아가 있었다. 이연이 신음을 내뱉으며 연신 중얼거렸다. 적혈은 차가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 이제 실력차를 인정하겠나? "

- 쓰레기들.

"제길… 제길…"

그때, 누군가의 약간은 쾌활하다 싶은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 이제 그만하지? "

" - 먼저 시비를 건 건 이쪽이어서 말이죠. 저에겐 그만두라는 명령은 통하지 않습니다. "

주천화가 마사전창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말했다.

" 친한 내 부탁인데도? "

" …. "

적혈은 조용히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이연은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방을 나갔고, 주천화가 요란스럽게 창을 돌리면서 말했다.

" - 그렇게 사람 화 돋구는 일좀 하지마 얘. "

" - 전 사람 화 돋군 적이 없습니다. 제 풀에 발끈한 거지. "

" 얘좀 봐라. 이연 성격은 너도 알잖니? "

적혈은 입을 다물며 검은 겉옷을 내팽겨치듯 벗었다. 주천화가 옷을 흘낏 쳐다보더니 다시 한번 말을 꺼냈다.

" 뭘 했길래 이리 피가 묻어있는 거니? "

적혈은 무표정하게 말했다.

" 쓰레기 청소. "

주천화가 못마땅하다는 듯 말했다. 그의 행동은 주천화가 보기에도 조금 심한 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 거참, 또 사파를… "

적혈이 매섭게 주천화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 - 더 이상 말하면 아무리 누나라고 해도 가만 둘 수 없어. "

주천화는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무공 수위도 자신이 낮을뿐더러, 체력, 무력(武力) 등도 자신이 월등히 차이났기 때문이었다. 적혈은 나이 21세에 이미 사마천왕의 직위를 뛰어넘고 주교를 호위하는 호법에 임명되었다. 하지만 그 잔인함과 손속 덕분에 그에게 친한 사람은 자신과 적혈의 사부 밖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연은 적혈을 별로 맘에 들어하지 않는 눈치였다. 적혈도 그걸 아는지 이연을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철성의 말은 그런대로 잘 들어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 그래. 어쨌든 이건 덮어 주겠어. 빨리 씻고 호법실이나 가봐라. 이러다가 들키면 너도 힘들걸? "

" … 알겠습니다. "

적혈은 저벅저벅 걸음을 옮겨 돌아가면서 자신의 방문을 열어젖혔다. 적혈의 방에는 차디찬 기운만이 감돌고 있었다. 푸른 강기. 방을 웅웅 맴돌면서 마치 침입자를 감시하는 듯한 강기들은 적혈이 들어오자 물러나면서 길을 만들어 주었다. 적혈이 검을 내려놓고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검을 검대에 찬 적혈은 자신의 붉은 매화(梅花)가 새겨진 검을 들어보고는 혼잣말로 말했다.

" … 난 지금에 충실할 뿐이다. 과거의 나는 이미 내가 아니야. 난 오직 적혈일뿐. "

적혈이 방을 나가고, 주천화가 조용히 방에 들어왔다. 그녀는 안타깝다는 어투로 말했다.

" 차라리 예전때는 쾌활하다고 생각했는데, 사람이 이렇게도 변하다니…. "

주천화는 적혈의 책상을 내려다 보았다. 적혈의 책상엔 각종 병법책들이 꽂아져 있었고, 그리고 책들 사이에 웬 흰 종이가 삐져나와 있는 것을 발견한 주천화는 손을 내뻗어 그것을 끄집어냈다. 구깃구깃 구겨진 종이를 펴든 주천화는 , 그 종이에 써있는 글씨는 둘째치고, 그 글씨가 피로 쓰여진 것에 놀랐다. 그리고 그 글씨에는 마치 낙서처럼 여러 가지 말들이 써져 있었다.

쓰레기들.
만족할줄 모르는 쓰레기들.
나는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누군가가 쓰레기를 치우지 않는다면,  

주천화가 읽다가 공백을 보고는 맨 끝으로 눈길을 돌렸다. 종이의 맨 끝에는 적빛으로 살기
가 넘실대는, 마치 글씨가 원한을 품은듯하게 말 한마디가 새겨져 있었다.


내가 아수라(阿修羅)가 될거야. 모든 쓰레기들을 정리 할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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