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정사(正史)
위서(魏書)
여포장홍전(呂布臧洪傳)
여포전(呂布傳)
여포는 자를 봉선(奉先)이라 하고 오원군(吾原郡) 구원현(九原縣) 사람이다. 용감하고 싸움을 잘하여 병주(幷州)에서 벼슬했다. 병주자사 정원(丁原)1)이 기도위가 되어 군대를 하내에 주둔시켰을 때, 여포를 주부로 임명하였으며, 매우 잘 대해 주었다. 영제가 세상을 떠나자, 정원은 군대를 이끌고 낙양으로 들어와 하진과 공모하여 모든 환관들을 주살하려고 모의하여 집금오(執金吾)2)에 임명되었다. 하진이 실패하자, 동탁은 수도에 들어와 바야흐로 환난을 일으켜 정원을 죽이고 그의 군대와 군사들을 손에 넣으려 했다. 동탁은 여포가 정원에게 신임을 얻고 있음을 알고는 여포를 유인하여 정원을 살해하도록 했다. 여포는 정원의 머리를 베어 동탁에게 바치니 동탁은 여포를 기도위로 삼고 그를 매우 아끼고 신임하였으며 부자(父子)의 서약을 맺었다.
여포는 활쏘기와 말타기에 익숙하였고,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팔힘을 갖고 있었으며, 자신을 비장(飛將)3)이라고 불렀다. 그의 관직은 얼마 후에 중랑장에 이르렀으며 도정후에 봉해졌다. 동탁은 다른 사람을 만날 때 예의가 없었으며, 다른 사람이 자신을 모해할까 두려워 밖으로 나갈때나 집에 있을 때 항상 여포에게 자신을 호위하도록 했다.
동탁의 성격은 강퍅하고 모든 일을 제멋대로 하였으며, 화가 나면 자신의 위험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았고 조그만 일에도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화극(畵戟)을 여포에게 던졌다. 여포가 팔힘과 민첩함으로 그것을 피하고 동탁에게 고개숙여 사죄하면 동탁의 분노는 즉시 가라앉았다. 그러나 이런 일로 말미암아 여포는 자신도 모르게 동탁을 원망하는 마음이 들었다. 동탁은 항상 여포로 하여금 중합(中閤)을 수비하도록 하였다. 여포는 동탁의 시녀와 사통하였는데, 이 일이 발각될까 두려워 마음은 절로 불안했다.
이전에 사도 왕윤은 여포가 자신과 같은 고향사람이고4) 건장한 인물임을 알고 그를 후하게 대접하여 친해 두었다. 나중에 여포는 왕윤을 만나기를 청하여 동탁이 자신을 죽이려 했던 상황을 설명하였다. 그 당시 왕윤은 복야(僕 ) 사손서(士孫瑞)와 함께 동탁을 주살하려고 몰래 모의하고 있었는데, 이 일을 여포에게 알려 여포로 하여금 스스로 응하도록하니, 여포가 말했다.
“나와 그는 부자의 관계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소!”
왕윤이 말했다.
“당신은 본래 성이 여씨(呂氏)이니, 그와는 본래부터 혈연관계는 아니오. 지금 그대는 언제 죽을지 몰라 근심하는데, 무슨 부자관계를 말하시오!”
여포는 이 말을 듣고 드디어 그 일을 도모할 것을 허락하고, 동탁을 찔러 죽였다. 이 일은 〈동탁전(董卓傳)〉에 실려 있다.
동탁을 죽인 후에 왕윤은 여포를 분무장군(奮武將軍)에 임명하고 부하의 처벌권을 나타내는 절(節)을 주었으며, 삼공과 같은 의례를 해주고, 그를 온후(溫侯)로 봉하고 함께 조정의 정치를 맡았다. 여포는 동탁을 죽인 후, 동탁의 출신지인 양주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증오하였으며, 양주 사람들 역시 여포에게 원한이 있었다. 이런 까닭으로 말미암아, 동탁의 수하에 있던 이각 등이 드디어 서로 결탁을 맺어 군대를 모아 장안성을 공격했다.5) 이각 등은 드디어 장안에 들어왔다. 동탁이 죽은 지 60일이 지나6) 여포 또한 패배하였다. 그는 수백 명의 기병을 이끌고 무관(武關)을 빠져나가 원술에게 가려고 하였다.
여포는 스스로 그가 동탁을 죽인 것은 원술을 위해 복수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 때문에 원술이 그의 은덕에 감격해하리라고 여겼다. 그러나 원술은 그가 반복하여 배반한 것을 증오하여 거부하고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포는 하는 수 없이 북쪽의 원소에게 갔고, 원소는 여포와 함께 상산(常山)에 있는 장연(張燕)을 공격했다. 장연은 정예군대 1만여 명과 기병 수천 명을 거느리고 있었다. 여포는 적토(赤兎)7)라고 불리는 좋은 말 한 필을 가지고 있었다. 여포는 그와 친하게 지내는 성렴(成廉)과 위월(魏越)등과 함께 예봉을 꺾고 진지를 부수고 드디어 장연의 군대를 쳐부쉈다. 이후에 여포는 원소에게 군대를 충원해 줄 것을 요구하였으며, 게다가 여포의 장사(將士)들이 약탈을 일삼자 원소도 여포를 두려워하며 기피하였다. 오래지 않아 여포는 원소의 속마음을 알아차리고 원소에게 그가 떠날 수 있도록 요청했다. 원소는 여포가 돌아와서 자신을 해칠까 두려워하며 자객을 보내 밤에 여포를 암살하도록 했는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일이 분명해지자 여포는 하내로 달아나 장양(張揚)과 합세했다.8) 원소는 병사들에게 여포를 추격하도록 명령했으나, 감히 가까이 다가서려는 자가 없었다.
장막(張邈)은 자가 맹탁(孟卓)이고 동평군(東平郡) 수장현(壽張縣)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의협의 기질이 있어 이름을 날렸으며, 간난한 사람을 구제해 주고 위급한 사람을 구해주는 데 있어서 집안을 기울일 정도로 재산을 아끼지 않았으므로 선비 중의 대다수가 그에게 귀속되었다. 조조와 원소도 모두 장막과 친구가 되었다. 장막은 삼공의 부서에 초빙되었으며 뛰어난 능력이 있어 기도위에 임명되었고, 진류태수로 영전되었다. 동탁이 난을 일으키자, 조조는 장막과 함께 먼저 의병을 일으켰다. 변수의 싸움에서 장막은 부하 위자(衛玆)에게 군대를 주어 조조를 수행하도록 했다. 원소는 맹주가 된 이후에 교만하고 오만한 기색을 드러냈으므로 장막은 정론(正論)을 펴서 원소를 질책했다. 원소는 조조에게 장막을 죽이도록 했으나, 조조는 듣지 않고 원소를 꾸짖어 말하였다.
“맹탁은 친구이므로 그가 옳든 그르든간에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오. 지금 천하는 아직 평정되지 않았는데 자신들끼리 상대방을 위험에 빠지게 해서는 안됩니다.”
장막은 이 사실을 알고서 더욱 조조에게 은덕을 느꼈다. 조조는 도겸을 토벌하러 갈 때, 집안 사람들을 계도하여 말했다.
“내가 만일 돌아오지 못한다면, 맹탁에게 가서 의탁하라!”
조조는 나중에 돌아와서 장막을 만나자 서로 얼굴을 맞대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들의 친밀함은 이와 같았다.
여포가 원소를 버리고 장양을 따라갈 때, 먼저 장막을 찾아가 만났으며, 이별할 때 두 사람은 악수하며 맹세하였다. 원소는 이 일을 듣고서 매우 증오했다.
장막은 조조가 결국에는 원소를 위하여 자신을 죽일 것을 두려워하여 마음이 스스로 불안했다.
흥평 원년(194)에 조조는 다시 도겸을 토벌하러 가는데, 장막의 동생 장초(張超)가 조조의 장수 진궁(陳宮), 종사중랑(從事中郞) 허범(許氾)․왕해(王楷)등과 공모하여 조조를 모반하였다. 진궁이 장막에게 말했다.
“지금 영웅호걸이 모두 일어나 천하는 나뉘어지고 붕괴되었는데, 당신은 사방 천리나 되는 광대한 토지를 소유하고서도 칼을 어루만지며 바라만보고 있고, 도리어 다른 사람들에게 제압당하고 있으니, 너무 비굴하지 않습니까? 지금 주군(州軍)은 동쪽으로 출정가서 그곳은 텅 비어있고 여포는 장사이니 그의 앞에 적은 없듯이 잘 싸울 것이니, 만일 그를 영접하면 함께 연주(兗州)를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천하의 형세를 보고 일의 변하고 통함을 기다려 보건대, 사람들 가운데서 호걸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이는 또한 천하를 마음대로 다스릴 유일한 기회입니다.”
장막은 진궁의 말을 듣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 조조가 막 진궁에게 군대를 이끌고 동군에 주둔하라고 했을 때, 진궁은 그의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부터 여포를 맞이하여 연주목이 되었으며 복양을 점거했다. 각 군과 현이 여포에게 호응하였는데, 단지 견성(鄄城)․동아(東阿)․범현(范縣) 등에서만은 조조를 위하여 지켰다. 조조는 군대를 이끌고 돌아와 여포와 복야에서 싸웠는데, 조조의 군대가 불리한 가운데 1백여 일 동안 서로 대치했다. 그 당시 기후가 건조하고 병충이 있었고 식량이 적어 백성들은 서로를 잡아먹기도 하였는데, 여포는 동쪽 산양에 진을 치고 있었다. 2년 동안 조조는 많은 성을 탈환하였으며, 거야(鋸野)에서 여포를 쳐부쉈다. 여포는 동쪽으로 달아나 유비에게 갔다.9) 장막은 여포를 따라가며 장초(張超)에게 가족을 맡기고 옹구(雍丘)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조조는 몇 개월 동안 공격하여 그들을 죽이고, 장초 및 그의 모든 가족을 참수했다. 장막은 원술이 있는 곳으로 가서 구원병을 요청했으나, 구원병이 오기도 전에 그 자신도 부하의 병사에게 죽임을 당했다.
유비는 동쪽으로 향하여 원술을 공격하였고, 여포는 하비성을 습격하여 취하였으며,10) 유비는 돌아와서 여포에게 귀의했다. 여포는 유비를 파견하여 소패(小沛)에 주둔시켰고, 여포는 스스로 서주자사라고 일컬었다. 원술은 장수 기령(紀靈) 등과 보병 3만 명을 파견하여 유비를 공격했으며, 유비는 여포에게 구원을 요청하니, 여포의 여러 장수들이 말했다.
“장군께서는 항상 유비를 죽이려고 하였으니, 지금은 원술의 손을 빌려 죽이십시오.”
여포가 말했다.
“그렇게 할 수 없소. 원술이 만일 유비를 쳐부수면, 북으로 태산(太山)의 여러 장수를 연합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나는 원술의 포위망에 있게 되므로 부득이 유비를 구해주어야 하오.”
여포는 곧 굳센 보병 1천 명과 기병 2백 명을 데리고 유비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기령 등은 여포가 온다는 말을 듣고는 군대를 모두 거두고 다시는 공격하지 않았다. 여포는 소패의 서남쪽 1리 떨어진 곳에서 주둔했는데, 하수인을 보내어 기령 등을 불렀으며, 기령 등도 여포를 초청하여 함께 마시고 먹었다. 여포는 기령 등에게 말했다.
“현덕(玄德;유비의 字)은 나의 동생이오. 동생이 여러분에 의해 곤경에 처했으므로 그를 구하러 온 것이오. 나는 성격상 서로 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다만 싸움을 중재하기를 좋아할 뿐이오.”
여포는 문지기들에게 진영의 문 가운데 있는 화극 하나를 가져오라고 명하고는 말했다.
“여러분은 내가 화극의 소지(小支)를 쏘는 것을 보시오. 한번 쏜 것이 중심에 맞으면 여러분은 마땅히 화해하고 돌아가고, 맞지 않으면 남아서 싸워도 되오.”
여포는 활을 들어 화극을 쏘니, 화극의 소지에 명중하였다. 여러 장수들은 모두 놀라서 말했다.
“장군께서는 정말로 하늘의 위세를 갖추고 있소이다.”
다음날, 다시 즐겁게 모여서 연회를 베푼 이후에 각자 싸움을 그만두었다.
원술은 여포와 교분을 맺어 구원군으로 삼을 생각으로 곧 아들에게 여포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게 하였고, 여포는 그것을 수락했다. 원술은 사자 한윤(韓胤)을 파견하여 참람되게도 황제의 칭호를 사용하여 여포에게 논의하고는 아울러 며느리를 맞이할 것을 요청하였다. 패국의 재상 진규는 원술과 여포가 사돈을 맺으면 서주와 양주가 연합하게 될 것이며, 이는 장차 국가의 재난이 되리라고 생각하여 여포에게 나아가 말했다.
“조공(조조)은 천자를 받들어 영접하고 국가의 정사를 보조하고 있으므로 그 위세는 헤아리기 어렵고 명성은 세상에 드높으며 장차 천하를 정복하려고 하고 있으니, 장군께서는 마땅히 조공과 협력하여 책략을 세워 태산과 같은 안정을 도모해야 합니다. 지금 원술과 사돈지간이 되면 천하에서 의롭지 못한 명성을 얻게 되며, 반드시 계란을 쌓아 놓은 것과 같은 위험에 놓이게 됩니다.”
여포 또한 원술이 처음에 자신을 받아주지 않았던 것을 원망하였다. 딸은 이미 길을 떠난 뒤였으므로 그는 딸을 뒤쫓아가 돌아오게 해 혼인약속을 파기하고, 한윤에게는 형틀을 채워 호송하여 허현의 저자에서 머리를 베어버렸다. 진규는 아들 진등(陳登)으로 하여금 조조를 만나게 하려고 했으나, 여포는 그를 파견하도록 승낙하지 않았다. 때마침 조조의 사자가 와서 여포를 좌장군(左將軍)에 제수했다. 여포는 매우 기뻐하며 진등이 조조를 만나러 간다는 것을 듣고는 주장(奏章)을 가지고 가서 은혜에 보답하도록 했다. 진등은 조조를 만나, ‘여포는 용맹하나 지모가 없고 배반하고 의존함을 가볍게 여기니 일찌감치 그를 제거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니, 조조가 말했다.
“여포는 야만스런 마음을 갖고 있는 이리 같으므로 진실로 오래 받들기는 어려울 것이오. 그대가 아니었다면 그의 정황을 살필 수 없었소.”
즉시 진규의 서열을 2천 석으로 끌어올리고 진등을 광릉태수로 임명하였다. 서로 헤어질 때, 조조는 진등의 손을 잡고 말했다.
“동방(서주)의 일은 단지 그대에게 달려 있소.”
조조는 진등으로 하여금 은밀히 부대의 군대를 모아 내통하도록 한 것이다.
본래 여포는 진등을 통하여 서주목이라는 지위를 요구하였는데, 임명되지 못했으므로 진등이 돌아오자, 매우 화를 내며 화극을 뽑아 상을 쪼개며 말했다.
“그대의 아버지께서는 내게 조공과 협력하라고 권하였으므로 공로(公路;원술)와의 결혼을 파기하였으나, 지금은 내가 요구한 것 중에서 한가지도 얻은 것이 없소. 그런데도 그대 부자들은 높은 지위에 올랐으니, 그대들에 의해 나는 팔렸을 뿐이오. 그대가 나를 위해서 한 그 말은 무엇이오?”
진등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으며 천천히 여포에게 깨우치며 말했다.
“저는 조조를 만났을 때, ‘장군을 대하기를 마치 호랑이를 기르듯 해야 합니다. 호랑이는 고기를 먹어 배가 불러야 하지, 배부르지 않으면 사람을 물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그대가 말한 것과 같지 않소. 비유컨대 매를 기르는 것 같소. 굶주리면 그것을 이용할 것이고, 배부르면 그것을 날려보낼 것이오’라고 했으니, 그의 말은 이와 같았습니다.”
여포는 마음속의 분노가 곧 가라앉았다.
원술은 화가 나서 한섬과 양봉 등과 세력을 합하여 대장 장훈(張勛)을 보내 여포를 공격하였다. 여포는 진규에게 말했다.
“지금 원술의 군대를 불러들인 것은 그대 때문이니, 이 일을 어찌하면 되겠소?”
진규가 대답했다.
“한섬(韓暹)과 양봉(楊奉) 등의 군대는 원술과 마찬가지로 갑작스럽게 모아진 군대일 뿐이니 계책과 모략이 평소에 만들어지지도 않았으며 유지해 나가지도 못할 것입니다. 제 아들 진등이 이 일을 처리할 것입니다. 비유컨대 꿩과 닭이 한군데 모여 있으면 함께 둥지를 틀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여포는 진규의 계책을 받아들여 사람을 파견하고 한섬과 양봉을 설득하여 자신과 힘을 합쳐 원술의 군대를 공격하자고 하고는 가지고 있던 군사물자를 모두 한섬과 양봉에게 보내주었다. 따라서 한섬과 양봉은 그를 따랐고 장훈은 크게 패하였다.
건안 3년(198)에 여포는 다시 원술과 연합하여 조조에게 반기를 들었으며, 고순(高順)을 파견하여 소패에 있는 유비를 공격하여 쳐부쉈다. 조조는 하후돈을 보내어 유비를 구하도록 했으나 고순에게 패하였다. 조조는 직접 여포를 정벌하기 위해 여포의 성 아래(하비)에 이르러 여포에게 편지를 보내어 ‘조조와 결합하는 것과 원술과 결합하는 것’의 이해관계를 설명해주었다. 여포가 투항하려고 하자, 진궁 등은 자신들이 지은 죄가 깊다는 것을 생각하여 그의 생각을 저지하였다. 그런데 여포가 사람을 파견하여 원술에게 구원을 요청하니 원술은 스스로 기병 천여 명을 이끌고 전쟁에 나섰지만, 패배하여 달아나 돌아가서는 성을 지키고 감히 나와서 싸우려 하지 않았다. 원술 역시 여포를 구원할 수 없었다. 여포는 비록 용맹스럽지만 무모하고 의심과 질투가 많고 그의 부하를 통제할 수도 없었으며, 단지 몇 명 장수들만 믿었다. 그러나 여러 장수들도 서로간에 의견이 같지 않아 서로 믿지 않고, 이로 인하여 싸울 때마다 대부분 대패하였다. 조조가 참호를 파고 포위한 지 석 달만에 여포의 진영에 있는 사람과 위아래에 있는 사람과의 마음이 달라 그의 장수 후성(侯成)․송헌(宋憲)․위적(魏績)은 진궁을 묶어버리고, 그들의 부하를 이끌고 와서 조조에게 투항했다. 여포는 직속 부하들과 함께 백문루(白門樓)에 올랐다. 포위망이 좁혀오자, 여포는 하는 수 없이 내려와 항복했다.11) 드디어 여포를 사로잡았는데, 여포가 말했다.
“너무 꽉 조이게 묶었으니, 조금 느슨하게 하십시오.”
조조가 말했다.
“큰 호랑이를 묶었으니 부득이 꽉 조여야 한다.”
여포가 요청했다.
“명공께서 근심으로 여기던 것 중에서 나 여포보다 더 지나친 것은 없었는데, 이제 이미 항복했으니, 천하에 근심거리가 될 만한 것이 없습니다. 명공께서는 보병을 거느리고 나 여포로 하여금 기병을 거느리게 하면 천하를 쉽게 평정할 것입니다.”
조조는 의심하는 기색이 있었다. 유비가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명공께서는 여포가 정건양(丁建陽;정원)과 동태사(董太師;동탁)를 섬기는 것을 보지 않았습니까?”
이 말을 듣고 조조는 고객을 끄덕였다. 여포는 손가락질하며 유비에게 말했다.
“이 녀석은 가장 믿지 못할 놈이구나!”
결국 여포를 목매달아 죽게 했다. 여포와 진궁․고순 등은 목이 베어져 허창까지 옮겨졌으며, 그런 연후에 그들을 매장했다.
조조가 진궁을 사로잡았을 때 진궁에게 그의 노모와 딸을 살려주어야할지 죽여야 할지를 물으니, 진궁이 대답했다.
“제가 듣건대, 천하를 효(孝)로서 다스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피붙이를 끊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저의 노모가 살고 죽는 것은 명공에게 달려 있지 제 뜻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닙니다.”
조조는 그이 노모가 여생을 마칠 때까지 불러서 봉양해 주었으며, 진궁의 딸도 시집을 보내 주었다.
진등(陳登)은 자를 원룡(元龍)이라고 하며 광릉(廣陵)에서 위엄과 명성이 있었다. 또 여포를 견제한 공적이 있어 복파장군까지 겸했으나 나이 서른아홉에 죽었다.12) 나중에 허범과 유비가 형주목 유표의 식객이 되었는데, 유표가 유비와 천하의 인재에 대하여 논의할 때, 허범이 말했다.
“진원룡(진등)은 남방의 인물이지만 오만한 기풍을 없애지 않았습니다.”
유비가 유표에게 말했다.
“허군의 견해는 옳은 것입니까, 그른 것입니까?”
유표가 대답했다.
“그르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이 사람(허범)은 뛰어난 선비이니 마땅히 헛말은 아니 할 것이오. 만일 옳은 말이라면 원룡의 명성은 천하에 울리고 있는 것이오.”
유비가 허범에게 물었다.
“당신은 그가 오만하다고 말했는데,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허범이 말했다.
“옛날에 나는 전란을 만나 하비성을 지나다가 원룡을 만났습니다. 원룡은 주인과 손님의 예의도 없었으니, 오랫동안 서로 말도 없이 혼자 큰 침상 위에 눕고, 손님으로 하여금 침상 아래에 누워있게 하였습니다.”
유비가 말했다.
“당신은 국사(國士;국가의 인물)라는 명성을 갖고 있으며, 지금 천하가 크게 혼란스러워 천자는 거처할 장소도 잃어버렸습니다. 당신은 국가를 근심하고 세상을 구제하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머물만한 전원에 관심을 둘 뿐이며, 말을 해도 받아들일 만한 점이 없으니, 이는 진원룡에 의해서 거리낌받는 바이니, 어떤 화제를 인연으로 하여 당신과 더불어 말을 하겠습니까? 만일 저 같으면, 백 척 높이의 누각에 누워 당신으로 하여금 땅 위에 누워있게 했을 것인데, 어찌 침상 위와 침상 밑의 구분뿐이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유표가 크게 비웃었다. 유비가 이 웃음에 탄식하며 말했다.
“진원룡처럼 문무를 겸비하고 담력이 웅지를 갖춘 인물은 마땅히 고대에서 찾을 뿐이니, 창졸간에 그와 비견될 만한 인물을 찾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