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니 그동안 힘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나머지 세월이 즐겁고 평탄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하루하루 크고 작은 고난을 겪으며 지나온 긴 여정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인생길을 고달프다고 하는가 보다.
돌이켜 보면 수많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던 습관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처럼 그 버릇을 끝내 고치지 못한 채 살아온 것이 지금 생각하면 가장 큰 후회로 남는다. 세월이 흐른 지금에야 작은 미룸 하나가 결국 큰 후회가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는다.
그 버릇의 역사도 깊다. 학창 시절에는 조금만 더 자다가 지각도 많이 했고, 공부는 늘 내일로 미루다가 시험이 다가오면 당일 벼락치기에 매달리며 허둥대기 일쑤였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미루는 버릇은 여전했다. 부지런히 처리해야 할 서류는 책상에 쌓아둔 채 뒤로 미루다가 마감에 쫓겨 허둥대곤 했다. 그래도 계획 하나는 잘 세운다. 요즘도 걷는 운동이 최고라고 해서 양재천에서 위례 남한산성 입구까지 매일 걷는 계획을 세워놓고서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다. 계획을 세우는 능력과 실천하는 능력은 꼭 비례하지 않는 모양이다.
인생은 참 정직하다. 셈 또한 한 치의 오차가 없다. 힘들더라도 계획을 실천하면 그만큼의 결실이 돌아오고, 게으름을 피우면 그 대가 역시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온다. 아침에 벌떡 일어나지 않고 자리에 누운채로 약 30분간에 걸쳐서 손과 팔을 비비고 다리와 허리를 비틀고 문질러서 혈액순환이 되게 한후 일어나는 운동을 했다. 그 보상으로 몸의 성능이 유연해져서 뼈마디 사이로 윤활유가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아서 불편한 곳도 특별히 없고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란 늘 한결같지 않은 법이다. 어떤 날은 이런 이유로, 또 어떤 날은 저런 이유로 "내일부터 열심히 하지." 하며 하루를 건너뛰곤 했다.
그랬더니 어느 날 아침에는 가운데 손가락이 아파서 구부러지지도 않았다. 동네 정형외과에 찾아갔더니 방아쇠 손가락 염증이라고하며 손가락 마디에 주사를 놓는다. 병명도 희한하지만 손가락이 구부러지지 않아서 주사까지 맞고 보니 내 나이도 솔찬히 되었구나 새삼 느낀다.
그러나 세상은 계산기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돌아가는 냉혹한 곳만은 아니다. 나사 하나쯤 풀린 듯 느긋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도 살아갈 자리 하나쯤은 남겨 둔다. 물론 풍요와 여유는 대개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들의 몫이 되지만, 게으름의 대가를 평생의 형벌처럼 치르라고 내치지도 않는다. 비록 배짱이처럼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며 남이 땀을 흘릴 때 그늘에 누워 풍악으로 세월을 흘려보낸 한량일망정. 최소한의 생계를 위한 복지 혜택으로 품어 안는다. 그럼에도 오늘 닥친 죽음마저 내일로 미루고 싶어 하는 마음은, 어쩌면 한량이 가진 마지막 낭만 이며 우리사회의 아량인지도 모른다. 그 밖에도 때로는 로또 당첨 같은 뜻밖의 행운을 슬며시 건네며, 고단한 삶에도 잠시 웃을 이유도 만들어 준다. 그래서 세상은 엄격하면서도 어딘가 인간적인, 묘한 유머를 지닌 곳이다.
다만 그놈의 나쁜 버릇.,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되지” 요놈 때문에 마음 고생이 심했는데 이제와 늙었다고 핑계대지 말자. 어쩌면 인생이 우리에게 마지막까지 가르쳐 주는 진리는 아주 단순한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할 일은 오늘 하라."는 평범한 한마디가 결국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장 값진 삶의 지혜라는 사실 말이다.
(26-6 백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