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머리로만 소통하려면
사람들로 북적대는 지하철을 탔다. 평상시에는 경로석을 피하는데 몸도 피곤하고 마침 경로석에 노인이 혼자 앉아 있어서 염치 불구하고 한쪽으로 앉았다. 두 정거장쯤 갔을 때 건강하게 보이는 다른 노인이 같이 앉게 되었다. 뒤에 탄 노인이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다시 옆에 앉아 있는 노인을 쳐다본다. 두 노인 옆에 앉아 있는 게 불편하기도 하여 일반석 쪽에 혹시 빈자리가 있는가 보았더니 서 있는 사람들도 빽빽하여 혼잡했다. 좀 난감했지만 일어나기가 싫었다. 이럴 때는 눈을 감고 잠자는 척하는 게 좋다. 잠시 정적이 흐르는 것이 좀 불안한 기분이었는데 방금 앉은 노인이 옆 노인에게 말을 건넨다.
“올해 어떻게 되셨수? ”
“네. 나요? 여든 아홉이요.”
그 말에 나도 슬쩍 눈을 뜨고 노인을 쳐다보았다. 얼굴의 주름이나 백발 모습이 충분히 그 나이는 되어 보였다. 말을 건넨 노인을 보니 그 노인보다는 한참 어려 보여서 좀 무안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나보다 두 살 아래구먼” 한다. 아니 그럼 말을 건넨 노인이 아흔 한살이 아닌가. 다시 쳐다보니 도저히 그렇게 보이지를 않았다. 여든 아홉인 노인도 자기보다 두 살 위라고 해서인지 힐끗 쳐다본다. 다시 눈을 감고 두 노인이 어떤 대화를 이어갈지 궁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이제나저제나 두 노인 중에 아무한테서라도 무슨 말이 나올 법도 한데 한 정거장 한 정거장씩 지나가는데도 아무리 기다려도 누구도 더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나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두 노인을 쳐다보았다. 무슨 생각들을 하는지 두 노인이 똑같이 눈을 감고 있었다. 두 노인은 최소한 겉으로는 나만큼 궁금하지는 않는 듯 보였다. 오히려 ‘이봐 젊은이 무엇을 알고 싶어서 그리 궁금해? ’ 하면서 나무라는 것 같았다.
문득 두 노인은 굳이 말을 나누거나 보지 않더라도 서로가 치열하게 묻고 따지면서 소통하는 경지에 올라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팔십인데 눈감고 생각은 한다. 그런데 저 노인들처럼 눈감고 머리로 얘기 나눌 능력을 가지려면, 아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들을수라도 있으려면 얼마나 더 살아야 되는가.
(26-6 백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