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도 지고 밤에도 지는 남자
오늘따라 엘이 이상하다고 생각됐다. 왜냐하면, 안그래도 젖살이 있어 통통한 볼을 부풀리곤 꽁해 있는 것 하며, 말 끝마다 오늘이 무슨 날이냐고 계속 꼬치꼬치 묻는 것이다. 안그래도 엘뤼엔의 밀려있던 서류를 정리해 피곤하던 참이였다. 쏘아 붙이는 말에 나도 덩달아 틱틱댔더니, 엘이 완전히 삐져버렸다.
아니, 그런데 대관절 오늘이 무슨 날이길래 이리 난리란 말인가?
오늘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옆 신전에서 엘뤼엔과 카노스가 방아방아 떡떡 치고 있는 소리를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무시하며 서류를 처리하고 있었다. 수행천사가 엘뤼엔의 밀린 서류를 한가득 가져와도, 이것만 처리하면 엘을 보러 정령계로 가야지 하는 일념만 가지며 열심히 일했다. 그렇게 한참을 일하고 있었을때 였다. 갑자기 엘이 아레히스를 꼬득인건지 뭔지 신전으로 쳐 들어 온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었지.
"크로아첸, 오늘 뭐하고 놀까? 생각해둔 거 있어?"
"오늘 무슨 날이야? 갑자기, 그것도 최초로 내 신전에 쳐들어 오고?"
"쳐들어왔다니? 그리고 오늘 무슨 날인지 몰라?"
"역사적으로 니가 내 신전에 처음 발을 들인 날?"
나는 그 순간 보았다. 시바, 안그래도 새파란데 더욱 시퍼렇게 안광을 빛내는 엘의 눈을 말이다.
"야, 우리 헤어져."
"뭐?"
"아니 뭐 이런 신이 다있어?"
"뭐야?"
"오늘 무슨 날이지?"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눈빛으로 그렇게 억울하듯 쳐다보자 엘이 입술을 자근자근 깨물었다. 그리고 그 후, 달라붙는 엘이 아주, 아주 조금 귀찮아서 모른다고 대답하자, 이렇게 꽁해 있는 것이다.
"엘, 삐졌어?"
"넌 내가 행복한걸로 보이냐?"
"아니... ..."
"그럼 좀 닥치고 있어."
그 후, 한동안 엘은 내 신전을 이리저리 활보하고 다녔다. 나는 못내 남아있는 서류를 처리하려 했으나 결국 물건을 던지기 까지 하는 엘을 두고볼 수 만은 없어 펜을 놔야 했다.
마침 비싼 도자기를 깨트리려는 엘이 보이자, 나는 언령으로 엘과 마주섰다. 도자기를 들고 있는 팔을 가로막자, 엘이 나를 분한 표정으로 쏘아보았다.
사실 몇백년도 더 지난 악신과의 전쟁에서 각성해버린 녀석의 본 셩격은, 전대 엘퀴네스, 즉 엘뤼엔의 전생보다도 세 배 쯤은 무서웠다. 라피스 시절에는 마냥 유희를 좋아하던 때라 새로운 변화를 준 엘의 성격이 마냥 즐거웠었다. 그러나 신이 되고, 관계가 발전되며 애인이란 타이틀에 신계와 정령계가 들썩였을 때에는 아니였다. 지금도 그렇다. 나는 엘이 무서웠다.
"진...정하고. 천천히 말을 해봐. 도대체 무엇 때문에 화난거야?"
"내가 화난 이유를 너는 모르니까 내가 화가 난거야. 아니, 이런거에 기대한 내가 머저리지."
그리고 나는 또 보고야 말았다. 시퍼런 안광을 거두곤 점점 분에 못이겨 빨개지는 볼과, 매력적인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말이다. 남신이 된 이후, 나는 정령이자 무성인 엘을 거의 여자쯤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양심에 찔릴 수 밖에 없었다.
"아... 짜증나."
꺼슬한 천으로 만든 소매로 엘이 눈을 닦으려 했다. 아, 우리 엘은 저런거로 피부 문지르면 피부가 약해서 금방 달아오를텐데. 나는 눈으로 가져대는 엘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손등으로 엘의 눈물을 대신 훔쳐주었다.
"밤인데, 별이나 구경하면서 얘기하자. 너 너무 흥분했어."
"... ..."
눈물을 보인 것이 못내 창피한지 엘은 고개를 푹 숙이며 긍정의 표시로 내 소매를 꼭 잡았다. 옷에 실리는 손이 너무나 작고 고와서, 나는 짐짓 피어나오려는 웃음을 삼켰다. 그리고 언령을 읊조렸다.
"이동."
신들은 밥먹듯이 하는 언령이라지만, 나는 도저히 이 감각에 익숙해 질 수 없었다. 온몸의 정기가 다 빨리면서 세상을 한 바퀴 유체이탈 상태로 도는 느낌. 그것도 일초 내로. 기상천외한 그 감각에 소름이 돋는 몸을 진정시키며 나는 어느새 꼭 감았던 눈을 떴다.
"에바스 에덴은 언제 봐도 아름다워. 그치?"
"내 집 밖으로 나오면 보는게 이 곳인데, 뭐..."
그러면서도 싫지 않는다는 듯 해 나는 그만 피식 웃었다. 그런 나를 흘끔 쳐다보곤, 금새 땅이 푹신한 곳을 찾아 엘이 풀썩 앉았다. 나도 그의 옆에 따라 앉았다. 아, 별이 너무 예쁘다.
한참을 바라보자, 그런 나를 또 한참 바라보는 엘을 느낄 수 있었다.
"안그래도 소멸의 날이 머지 않았는데, 다시 태어나면 나 상급 여신으로 태어나야 할까봐."
"왜? 누구보다도 인세를 원했으면서."
"아니... 인간으로 태어나면 전생의 일을 기억 못하니까. 아무리 인연의 끈이 이어져 있다고 해도 기억 못하는건 상대방이 비참해지고. 아, 이건 내가 느껴봐서 알아."
"흠... 예전에 시벨 놈의 표정을 봤을 때, 조금 알 것 같긴 했어."
"아, 알아. 그 세상이 무너질것만 같았던 표정."
엘이 피식, 하고 나오려는 웃음을 삼켰다.
"난 원래부터 성 정체성이 확고했단 말이야. 누구보다도 남자로 태어나길 소망하고 싶었는데, 자꾸 네놈 때문에 나도 가끔 나 자신을 여자로 착각해. 뭐, 오래 살다보니까 이젠 누가 뭐래도 무감각하고... 게다가, 음. 남신으로 태어나면 너랑 나랑 바라보는 시선들이 조금 부담스러워서..."
파란색 머리카락을 베베 꼬며 말하는 엘이 못내 귀여웠다. 나는 말뜻을 이해하곤 킥킥 웃었다.
"웃지마, 너. 뭐가 잘났다고 웃어?"
"아... 맞다. 엘, 진짜 화난 이유 말 안해 줄거야?"
적성에도 맞지 않는 애교를 부려가며 엘을 타일렀다. 그러자 엘이 한숨을 폭 쉬며 내 머리카락을 잡아 당기는 것이다. 그러자 내 머리카락에 나이아스들이 달라붙으며 무엇인가를 이루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내 머리카락은 마치 홍염을 머금은 듯 한 새빨간 색이 되었다.
"이거, 내 드래곤 시절 머리색 아니야?"
"맞아."
갑자기 엘이 검지 손가락 두 개로 내 눈을 찌르는 시늉을 했다. 내심 놀래 몸을 뒤로 빼자, 엘은 내 눈을 한참 바라보더니, 곧 손을 뒤로 뺐다. 나는 벌렁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물었다.
"혹시, 내 눈 색깔도 바꾼거?"
"맞아. 그리고 이 시각, 이 장소, 이 말로 너는 내게 말했었지."
헐... 나는 갑자기 머리를 후려치는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랬었다.
"엘, 요즘 왜그래? 왜 자꾸 나 피하는데? 혹시 저번에 수행천사가 나한테 찍쩝대서 그래? 그는 이미 진작에 천사자격을 박탈당해서 인세를 걷고 있어. 아니면 다른 여신이랑 선물 주고받아서 그래? 아, 근데 이런건 내 남자의 비즈니스로 생각해 주면 안되?"
오늘은...
"니가 자꾸 나한테 거리감 두니까 불안해. 신이 된 이후로 그랬어. 혹시 지금 내가 맘에 들지 않는거야? 그렇다면 바꿀게. 자, 됐지? 나 라피야. 그러니까 제발 멀어지지 말자."
그리고 내가 부끄러움도 모르고 엘을 꽉 안았었지... 아니,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오늘은!
"우리 사겨. 너랑 멀어지는거 싫어. 내 호적에 너 강제입주 시킬거야. 누가 뭐래도 사귀는거야!!"
사귀는거야! 사귀는거야! 자꾸 내 머릿속에서 맴도는 그 말이였다. 그래, 오늘은 엘이랑 사귄지 백 일채였다. 내가 스스로 지구의 문화를 공부해 투투랑 오십일까지 챙겨줬는데... 투투 챙기면 깨진다고 한사코 말리던 엘에게 결국 장미 한 다발을 안겨 줬었는데...바야흐로 백일이라니...
"... 이제 좀 생각나냐?"
"엘."
엘이 속사포 랩을 말하느라 조금 거칠어진 숨을 다듬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해줄까? 지금 심정으로는 니 발에 엎드려서 사정해도 모자랄 정도로 미안해."
"글쎄..."
"아, 겁나 내가 죽일 놈이다. 어떻게 해줄까, 엘? 니가 바라는건 모든지 들어줄게. 정말 내가 나쁜놈이야. 병신, 머저리."
그렇게 자해를 하고 있을 때였다. 엘이 갑자기 눈을 번뜩였다. 아, 이럴 때는 나에게 꼭 불리한 상황이 오던데. 살짝 오한이 들었다.
"정말 바라는건 모든지 들어줄꺼야?"
"어?"
"정말?"
"어...어?"
"진짜지?"
"아..."
"흠, 알았어. 이번 한 번만은 용서 해 줄게. 원래 내 계획은 내가 너 신전에서 픽업해가서, 아크아돈의 명소 몇 군데를 둘러본 후, 니 신전 침대에서 뜨거운 시루떡을 치는 계획이였는데, 뭐. 할 수 없지. 오늘 무지개떡을 한 번 만들어 보자."
사실, 밀린 서류를 처리하는 데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비실대는 이유는 내 정력을 빨아먹는 존재들 때문이렸다. 첫째는 엘뤼엔과 카노스의 꽁냥질 때문이요, 두번째는 순수한 마족들의 히스테릭 때문이요, 셋째는 어째 나보다 정력이 솟구치는 듯 한 엘 때문이였다. 하면 할 수록 엘은 광채가 나고, 나는 노폐물이 쌓여가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언제나 환상의 오르가즘을 달리고 나면 쓰러지는 쪽은 나였다.
"너랑 하는거 너무 좋아. 오늘은 중간에 허리에 쥐나서 기절하면 안돼? 끝까지 달려야되?"
"야, 엘."
"응? 자기야?"
어느새 언령을 부린건지 공간이 바뀌고, 물의 영역의 침대 맡으로 강제소환된 나는 기암을 토하고야 말았다. 물의 공간에서는 엘이 물만난 인간처럼 필받는데... 나는 이제 엘퀴네스가 아니라 신이라서 더이상 폭포처럼 빠르게 허리 못돌리는데...
"앉아봐."
앉혀졌다. 니미.
그리고 엘은 내 다리를 쩍벌로 만들더니, 내 다리 사이로 자리잡은 것이다. 아래에서 보는 엘은 기묘할 정도로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웠다. 내 애욕어린 시선을 느낀 것인지, 엘이 내 허벅지에 뺨을 기대며 씨익 웃어보였다.
"라피, 가만히 있어야돼?"
엘은 곧 나를 vip석 홍콩행 비행기로 날려보냈다. 아, 끝내준다. 눈앞에 무지개떡이 어른거리고, 내가 기력이 딸려 그대로 침대위에 쓰러지자, 내 위로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아, 엘. 나 오늘 니 애비 서류 밀린거 처리하느라 오늘 좀 딸리는데... 아까 카노스가 장어 먹으라고 할때 그냥 먹을껄... 나 장어먹고 오면 안, 으븝..."
어째 나보다 테크닉이 더 좋은듯 하다. 살짝 자존심이 상해 나도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입이 얼얼하다. 마치 입으로 떡을 치는듯한 움직임이였다.
그리고 어느새 나도 모르는 새에 엘의 위로 올라타게 되었다. 아, 시바. 이건 본능이야. 오늘 밤도 살아남지 못할 것 같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새벽에 쓴거라 정신이 없어요 양해 바람요 그리고 내리라고 하면 조용히 내리겠어요..죄송합니다 음란마귀가 으어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은령(銀翎) 작성시간 12.08.11 키킥.. 의외로 엘이 더 강...//하네요...////// 아아.. 크로아첸에게 동정심이 물씬~
쨌든 라피엘 기대했었는데, 재밌어요!! 다음시리즈도 기대할께요!! -
작성자湞鈴☆ 작성시간 12.08.11 와아.....상황이 뒤집혔네요 라피를 이기는 엘이라....야 우리 헤어져에서 왠지뿜었다니까요?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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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다크깔깔이 작성시간 12.08.12 라피엘은 낮져밤져도 좋아요^0^//////
다음시리즈는 이사알리루...낮져밤이라든가 ..바라고있어영..!! -
작성자꾸뎅이 작성시간 12.08.19 흐아요.......////////////////
다시봤어요..아가페님...워메
아가페님 소설은 모두 재밌어요!:9 -
작성자[W]애눌 작성시간 12.08.21 검사 완료했습니다 :) 도발적? 인 엘이네요 ㆍ▽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