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엘뤼엔과의 만남이 있은 후, 여섯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 나는 제법 카노스와 친해지게 되었고, 스스로 일어날 수도 있게 되었으며 이젠 제법 이도 많이 나서 여러 가지 대화 또한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무려! 혼자 걸을 수 있다! 혼자 걸을 수 있다고, 내가! 얼마나 감동스러운지 모르겠다. 비록 세발자국 가다가 넘어지고 또 걷다가 또 넘어지고……. 뭐 이런 수준이기는 하지만 이게 어디야! 응, 그래…. 이게 어디겠냐고! 처음에는 기는 게 다였는데…. 무려, 내가….
갑자기 눈물 나려고 하네.
양 손으로 눈을 비빈 나는 가지고 놀라며 카노스와 유리엘이 잔뜩 들여놓은 장난감 더미를 응시했다. 게다가 장난감도 늘었어…. 음식도 이젠 다양하게 먹고……. 아, 너무 감동적인데 이거. 내가 이유식 생활을 탈출하다니! 물론 내가 이유식이 싫은 건 아니지만! 내가! 이유식 생활에서! 탈출했다! 장난감 더미들 중에서 미니 피아노 비슷한 것을 찾아낸 나는 아무렇게나 딩동 거렸다. 승리의 축하곡을 부르자! 으하하하.
"시아님 기분이 많이 좋으신가봐요…. 그렇죠, 카노스님?"
"응! 우리 시아 기분 좋구나! 그런 의미로 아빠ㅡ 라고 불러줄래요? 응?"
싫거든.
방해하지 말고 저리가세요, 잉여신님. 피아노니스트마냥 다채롭게 손을 놀리던 나는 내 음률에 맞춰 박수 치는 카노스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잉여 아빠는 저리 가라니까! 양 볼에 가득 바람을 불어넣으며 저를 노려보니 심기가 뒤틀린 것을 아나보다. 카노스가 잔뜩 우울한 표정으로 서류 더미를 향해 걸어가 버렸다. 이에 유리엘이 박수를 짝짝이며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잘하셨어요, 시아님.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 카노스님을 조련……아니 아니 굴려……아니, 음……."
무슨 단어를 써야 하나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한 유리엘의 얼굴을 물끄러미 올려다본 나는 이윽고 가만히 입을 열었다. 이젠 꽤나 길어서 등허리까지 와 닿는 검은빛 머리칼이 간지럽다. 바람에 따라 출렁이는 머리칼을 귀찮다는 듯 한손으로 묶어버린 나는 작은 손을 가득 채우고도 남는 머리숱에 입술을 깨물었다. 아, 간지러운데.
"간지러어."
"아, 머리 묶어 드릴까요?"
"응!"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새 내 손을 벗어난 머리카락들이 흩날린다. 우 씨. 잔뜩 신경질을 부리며 고개를 훠이 훠이 젓는데, 유리엘이 부드럽게 웃더니 이윽고 빗으로 내 머리카락을 빗겨 준다. 부들부들, 유리엘의 나긋나긋한 손놀림에 몸을 맞기며 눈을 감았다. 왠지 옆에서 카노스가 '나, 나도 빗겨주고 싶어!' 라고 외치는 것 같지만 그건 내 착각이겠죠. 하하, 저런 잉여는 좀 무시해도 된다.
6개월 동안 그와 함께 살아본 결과, 나는 존잘남은 개뿔. 저 놈은 그냥 무시하는 게 장땡이라는 사실을 얻게 되었다. 그래, 내가 엘뤼엔한테 '아바'라고 말했다고 밥도 안주고 잔소리할 때부터 알아봤어. 그 때 유리엘이 뒤늦게 찾아와 밥도 못 먹고 있는 날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아, 무섭다. 아마 아사해서 죽었을지도 몰라…. 오소소 돋는 소름에 나는 작게 몸을 떨었다.
"다 묶었어요!"
유리엘 특유의 목소리가 내 귓가를 간질였다.
눈을 뜨며 유리엘을 바라보니 살며시 웃는 그녀가 시야에 가득 들어온다. 작은 거울을 건네받은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며 한 번 웃어보았다. 좋았어, 예쁘다. 언제 봐도 난 예뻐, 응. 내가 환생……? 혹은 빙의를 해서 그런 건진 몰라도 나는 내 얼굴을 꽤나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는데, 그 결과 나는 내 얼굴이 정말 '객관적으로' 예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블링 블링한 아기는 아마 없을 거야. 오죽 예뻤으면 처음 거울을 본 순간 잘하면 내가 엘뤼엔을 꼬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이프리트가 여왕님 이미지라 해도 상관없다. 나도 예쁘거든, 나름. 뽀얀 피부와 오동통한 젖살은 미친 듯이 귀여웠고, 카노스를 쏙 빼닮은 결 좋은 머리칼 또한 가지런히 빗겨져 있다. 뾰족한 귀 끝이 걸리기는 하지만 색다른 매력을 풍기고 있으니까 패스. 입술은 도톰하고 붉은 것이 꼭 젤리 같은 모양새다. 나한테 반할 것 같아. 윽, 하고 중얼거리며 나는 볼을 감싸 쥐었다.
"이뻐!"
"그렇죠? 제가 머리 손보는 건 좀 잘하거든요!"
아니, 내 얼굴이.
굳이 정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나는 웃을 뿐이었다.
그나저나 이 거울 꽤나 유용하네. 선물 받은 지 거의 석 달 정도 지난 것 같은데 아직까지 멀쩡하다. 유리에 그 흔한 지문하나 안 묻고. 딱히 유리엘이 닦은 것 같지는 않던데. 내, 아니 '아이린시아'의 첫 생일날 엘뤼엔에게 받은 거울을 훑어보며 나는 거울을 장식하기 위해 달아놓은 여러 보석들을 쓰다듬어 보았다. 서늘하고 미끈한 느낌이 나쁘지 않다. 그나저나 이 굵직굵직한 것들이 다 진짜 보석이라니 신기하네……. 거울의 대부분을 차치하는 은빛 부분이 백금이라는 건 더더욱. 신이라서 그런지 통인 큰가보다. 그러고 보니 카노스는 무슨 선물을 줬었지…? 가만히 생각하며 나는 삼 개월 전, 그러니까 내 생일파티를 열었던 날을 회상해 보았다.
* * *
그건 유난히 햇볕이 따스한 날이었다.
"딸! 축하해!"
빵빵빵!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기천사들이 날아다니며 트럼펫을 분다. 이건 무슨 생쇼일까요. 만화책에서만 보던 일이 내게. 이거 뭔가 뒤에서 꽃배경 깔아줘야 될 것 같은 기분인데. 그렇게 생각하며 멍하니 그를 응시하며 나는 입을 열었었다.
"왜?"
나이를 한 살이나 꽤 먹어서 그런지 단어는 띄염띄염, 그래도 제법 위화감 없이 말할 수 있었던 내가 질문하자 카노스가 그것도 모르냐는 듯 뚱한 표정을 구사했다. 하지만 말해줄 생각인 듯, 이내 미소 지으며 카노스가 답했다. 목소리가 발랄하네. 정말 기분 좋은가보다. 가볍게 생각한 나는 카노스의 말을 경청했었다.
"그거야! 오늘은 우리 딸의 생일이니까!"
"새길?"
"생일!"
그래, 생일이다. 지금 내가 혀 겁나 못 굴린다고 무시 하냐.
에라이, 안 해먹어. 작게 생각하며 나는 무심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는 척 했던 것뿐이지 실제로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일주일 전부터 그렇게 노래를 불러댔는데 내가 모를 리가 없질 않겠는가. 유리엘도 무언가 준비하는 지 꽤나 바쁜 눈치였고.
유난히 하얀 피부를 빛내며 카노스는 사뿐히 미소 지었다. 두 눈동자에 담긴 감정이 다른 것도 아닌 '행복' 이라서. 타박을 놔주려던 나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지 생일도 아닌데 저렇게 기뻐한다니. 뭔가 묘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이상하고 간질간질한 감정에 숨을 깊게 한번 들이 마신 나는 유리엘을 찾았다.
"우리엘은?"
"저 찾으신 거예요, 시아님?"
유난히 화려한 옷의 레이스 주름을 꾹꾹 피는데, 뒤쪽에서 나긋나긋한 음성이 들려온다. 뒤를 돌아 목소리의 주인을 찾으니, 거의 내 몸통마냥 큰 케이크를 들고 온 유리엘이 눈에 띄었다. 우와. 새하얗다. 케이크 보다는 유리엘이 입은 새하얀 원피스에 관심을 보이며, 나는 손을 뻗었다. 아니, 뻗으려고 했는데…….
"케이크는 손으로 먹는 게 아니다."
"아?"
"엘뤼엔님!"
엘뤼엔이다.
3달 전의 일 이후로는 보지 못한 그를 조금 어색한 기분으로 마주하며 눈을 깜빡인 나는, 그냥 웃어버리기로 결정했다. 어색한 듯 입 꼬리를 끌어당겨 웃는데, 갑자기 엘뤼엔이 헛기침을 하더니 내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뭘까 싶어서, 봉지를 탈탈 털어버린 나는 은빛의 번쩍거리는 무언가가 나오자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으에?"
"이건 거울이라는 거다."
"거우?"
"거울."
너까지 내 발음 무시 하냐, 흑흑.
내 발음이! 뭐! 어때서! 속으로 항변한 나는 우물거리며 엘뤼엔의 발을 무시했다. 어쨌든 좋다. 내 얼굴이 궁금하던 참이었는데 마침 거울을 얻다니, 운이 좋았달까. 그렇게 생각하며 거울을 뒤집어 내 얼굴을 살펴보던 나는 가만히 침묵했다.
"……."
"……?"
"우아."
예뻐.
짱 예뻐. 미친, 이건 아기 여신의 강림이다.
그냥 아주 말이 안 되는 얼굴에 나는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이런 내 행동에 거울 속의 인형 또한 눈을 깜빡인다. 검은빛의 풍성한 속눈썹 사이로 오팔마냥 여러 빛(하지만 푸른빛이 가장 강했다.)을 흩뿌리는 눈동자가 보였다, 사라졌다 했다. 거울을 쥐지 않은 손을 들어 올려 흔들자, 거울 속의 아이가 똑같은 행동을 취했다. 이게 정말 나라고……? 이게 정말? 나는 오팔마냥 눈이 예쁘다는 유리엘의 말을 떠올렸다. 그냥 사탕발림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어! 순수하게 놀라며 나는 볼을 꼬집어보았다. 정말 행동을 똑같이 따라하네. 너무 신기하다.
그렇게, 한동안. 나는 계속 거울만 바라보고 있었다.
"시아님, 이건 제 선물이에요!"
거울을 계속 바라보고만 있는데,(엘뤼엔은 선물만 건네주더니 도로 돌아가 버렸다.) 어느새 유리엘이 수줍은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응? 그때의 나는 거의 멘붕 상태라서 제대로 대답할 수가 없었던 나는 그저 우물거릴 뿐이었달까. 손을 뻗어 유리엘이 건네주는 것을 대충 받아드는데, 평소 만지던 실크들과는 차원이 다른 부드러움이 내 손을 감싸왔다. 거의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서 그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던 나는 생각지도 못하던 것에 화들짝 놀랐다.
"고옴?"
"곰이에요."
응, 그래.
나도 곰인 거 안다고. 곰 인형을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본 나는 곰 인형이 유리엘의 깃털마냥 새하얗다는 것을 자각하고서는 유리엘의 어깻죽지 부근을 바라보았다. 다행히도 날개의 깃털이 듬성듬성하지는 않아 보이는데…. 그럼 이 곰 인형에게 다닥다닥 붙어있는 털들은 무어란 말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질문했다.
"터얼……."
"털이요? 부들부들 하죠?"
신계에 사는 유니콘 털을 사용한 것이거든요.
뒷말을 이은 유리엘이 담담하게 웃자, 나는 조금 얼이 빠져버리고야 말았다. 유니콘 털이라는 거……. 그렇게 쉽게 구할 수 있는 거였나? 응?! 유리엘이 마신의 수행천사라는 것을 상기시키며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마냥 웃어재꼈다.
ㅡ내 첫 생일은, 제법 평화로운 분위기였던 것 같다.
그때까지는.
*
오랜만이네요...저 기억하시는 분 계ㅅㅔ요?
일년만인가...,반갑습니다.
음, 아마 10분 내로 두 편 더 올라올 예정입니다.
엘뤼엔과의 만남이 있은 후, 여섯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 나는 제법 카노스와 친해지게 되었고, 스스로 일어날 수도 있게 되었으며 이젠 제법 이도 많이 나서 여러 가지 대화 또한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무려! 혼자 걸을 수 있다! 혼자 걸을 수 있다고, 내가! 얼마나 감동스러운지 모르겠다. 비록 세발자국 가다가 넘어지고 또 걷다가 또 넘어지고……. 뭐 이런 수준이기는 하지만 이게 어디야! 응, 그래…. 이게 어디겠냐고! 처음에는 기는 게 다였는데…. 무려, 내가….
갑자기 눈물 나려고 하네.
양 손으로 눈을 비빈 나는 가지고 놀라며 카노스와 유리엘이 잔뜩 들여놓은 장난감 더미를 응시했다. 게다가 장난감도 늘었어…. 음식도 이젠 다양하게 먹고……. 아, 너무 감동적인데 이거. 내가 이유식 생활을 탈출하다니! 물론 내가 이유식이 싫은 건 아니지만! 내가! 이유식 생활에서! 탈출했다! 장난감 더미들 중에서 미니 피아노 비슷한 것을 찾아낸 나는 아무렇게나 딩동 거렸다. 승리의 축하곡을 부르자! 으하하하.
"시아님 기분이 많이 좋으신가봐요…. 그렇죠, 카노스님?"
"응! 우리 시아 기분 좋구나! 그런 의미로 아빠ㅡ 라고 불러줄래요? 응?"
싫거든.
방해하지 말고 저리가세요, 잉여신님. 피아노니스트마냥 다채롭게 손을 놀리던 나는 내 음률에 맞춰 박수 치는 카노스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잉여 아빠는 저리 가라니까! 양 볼에 가득 바람을 불어넣으며 저를 노려보니 심기가 뒤틀린 것을 아나보다. 카노스가 잔뜩 우울한 표정으로 서류 더미를 향해 걸어가 버렸다. 이에 유리엘이 박수를 짝짝이며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잘하셨어요, 시아님.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 카노스님을 조련……아니 아니 굴려……아니, 음……."
무슨 단어를 써야 하나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한 유리엘의 얼굴을 물끄러미 올려다본 나는 이윽고 가만히 입을 열었다. 이젠 꽤나 길어서 등허리까지 와 닿는 검은빛 머리칼이 간지럽다. 바람에 따라 출렁이는 머리칼을 귀찮다는 듯 한손으로 묶어버린 나는 작은 손을 가득 채우고도 남는 머리숱에 입술을 깨물었다. 아, 간지러운데.
"간지러어."
"아, 머리 묶어 드릴까요?"
"응!"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새 내 손을 벗어난 머리카락들이 흩날린다. 우 씨. 잔뜩 신경질을 부리며 고개를 훠이 훠이 젓는데, 유리엘이 부드럽게 웃더니 이윽고 빗으로 내 머리카락을 빗겨 준다. 부들부들, 유리엘의 나긋나긋한 손놀림에 몸을 맞기며 눈을 감았다. 왠지 옆에서 카노스가 '나, 나도 빗겨주고 싶어!' 라고 외치는 것 같지만 그건 내 착각이겠죠. 하하, 저런 잉여는 좀 무시해도 된다.
6개월 동안 그와 함께 살아본 결과, 나는 존잘남은 개뿔. 저 놈은 그냥 무시하는 게 장땡이라는 사실을 얻게 되었다. 그래, 내가 엘뤼엔한테 '아바'라고 말했다고 밥도 안주고 잔소리할 때부터 알아봤어. 그 때 유리엘이 뒤늦게 찾아와 밥도 못 먹고 있는 날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아, 무섭다. 아마 아사해서 죽었을지도 몰라…. 오소소 돋는 소름에 나는 작게 몸을 떨었다.
"다 묶었어요!"
유리엘 특유의 목소리가 내 귓가를 간질였다.
눈을 뜨며 유리엘을 바라보니 살며시 웃는 그녀가 시야에 가득 들어온다. 작은 거울을 건네받은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며 한 번 웃어보았다. 좋았어, 예쁘다. 언제 봐도 난 예뻐, 응. 내가 환생……? 혹은 빙의를 해서 그런 건진 몰라도 나는 내 얼굴을 꽤나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는데, 그 결과 나는 내 얼굴이 정말 '객관적으로' 예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블링 블링한 아기는 아마 없을 거야. 오죽 예뻤으면 처음 거울을 본 순간 잘하면 내가 엘뤼엔을 꼬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이프리트가 여왕님 이미지라 해도 상관없다. 나도 예쁘거든, 나름. 뽀얀 피부와 오동통한 젖살은 미친 듯이 귀여웠고, 카노스를 쏙 빼닮은 결 좋은 머리칼 또한 가지런히 빗겨져 있다. 뾰족한 귀 끝이 걸리기는 하지만 색다른 매력을 풍기고 있으니까 패스. 입술은 도톰하고 붉은 것이 꼭 젤리 같은 모양새다. 나한테 반할 것 같아. 윽, 하고 중얼거리며 나는 볼을 감싸 쥐었다.
"이뻐!"
"그렇죠? 제가 머리 손보는 건 좀 잘하거든요!"
아니, 내 얼굴이.
굳이 정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나는 웃을 뿐이었다.
그나저나 이 거울 꽤나 유용하네. 선물 받은 지 거의 석 달 정도 지난 것 같은데 아직까지 멀쩡하다. 유리에 그 흔한 지문하나 안 묻고. 딱히 유리엘이 닦은 것 같지는 않던데. 내, 아니 '아이린시아'의 첫 생일날 엘뤼엔에게 받은 거울을 훑어보며 나는 거울을 장식하기 위해 달아놓은 여러 보석들을 쓰다듬어 보았다. 서늘하고 미끈한 느낌이 나쁘지 않다. 그나저나 이 굵직굵직한 것들이 다 진짜 보석이라니 신기하네……. 거울의 대부분을 차치하는 은빛 부분이 백금이라는 건 더더욱. 신이라서 그런지 통인 큰가보다. 그러고 보니 카노스는 무슨 선물을 줬었지…? 가만히 생각하며 나는 삼 개월 전, 그러니까 내 생일파티를 열었던 날을 회상해 보았다.
* * *
그건 유난히 햇볕이 따스한 날이었다.
"딸! 축하해!"
빵빵빵!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기천사들이 날아다니며 트럼펫을 분다. 이건 무슨 생쇼일까요. 만화책에서만 보던 일이 내게. 이거 뭔가 뒤에서 꽃배경 깔아줘야 될 것 같은 기분인데. 그렇게 생각하며 멍하니 그를 응시하며 나는 입을 열었었다.
"왜?"
나이를 한 살이나 꽤 먹어서 그런지 단어는 띄염띄염, 그래도 제법 위화감 없이 말할 수 있었던 내가 질문하자 카노스가 그것도 모르냐는 듯 뚱한 표정을 구사했다. 하지만 말해줄 생각인 듯, 이내 미소 지으며 카노스가 답했다. 목소리가 발랄하네. 정말 기분 좋은가보다. 가볍게 생각한 나는 카노스의 말을 경청했었다.
"그거야! 오늘은 우리 딸의 생일이니까!"
"새길?"
"생일!"
그래, 생일이다. 지금 내가 혀 겁나 못 굴린다고 무시 하냐.
에라이, 안 해먹어. 작게 생각하며 나는 무심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는 척 했던 것뿐이지 실제로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일주일 전부터 그렇게 노래를 불러댔는데 내가 모를 리가 없질 않겠는가. 유리엘도 무언가 준비하는 지 꽤나 바쁜 눈치였고.
유난히 하얀 피부를 빛내며 카노스는 사뿐히 미소 지었다. 두 눈동자에 담긴 감정이 다른 것도 아닌 '행복' 이라서. 타박을 놔주려던 나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지 생일도 아닌데 저렇게 기뻐한다니. 뭔가 묘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이상하고 간질간질한 감정에 숨을 깊게 한번 들이 마신 나는 유리엘을 찾았다.
"우리엘은?"
"저 찾으신 거예요, 시아님?"
유난히 화려한 옷의 레이스 주름을 꾹꾹 피는데, 뒤쪽에서 나긋나긋한 음성이 들려온다. 뒤를 돌아 목소리의 주인을 찾으니, 거의 내 몸통마냥 큰 케이크를 들고 온 유리엘이 눈에 띄었다. 우와. 새하얗다. 케이크 보다는 유리엘이 입은 새하얀 원피스에 관심을 보이며, 나는 손을 뻗었다. 아니, 뻗으려고 했는데…….
"케이크는 손으로 먹는 게 아니다."
"아?"
"엘뤼엔님!"
엘뤼엔이다.
3달 전의 일 이후로는 보지 못한 그를 조금 어색한 기분으로 마주하며 눈을 깜빡인 나는, 그냥 웃어버리기로 결정했다. 어색한 듯 입 꼬리를 끌어당겨 웃는데, 갑자기 엘뤼엔이 헛기침을 하더니 내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뭘까 싶어서, 봉지를 탈탈 털어버린 나는 은빛의 번쩍거리는 무언가가 나오자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으에?"
"이건 거울이라는 거다."
"거우?"
"거울."
너까지 내 발음 무시 하냐, 흑흑.
내 발음이! 뭐! 어때서! 속으로 항변한 나는 우물거리며 엘뤼엔의 발을 무시했다. 어쨌든 좋다. 내 얼굴이 궁금하던 참이었는데 마침 거울을 얻다니, 운이 좋았달까. 그렇게 생각하며 거울을 뒤집어 내 얼굴을 살펴보던 나는 가만히 침묵했다.
"……."
"……?"
"우아."
예뻐.
짱 예뻐. 미친, 이건 아기 여신의 강림이다.
그냥 아주 말이 안 되는 얼굴에 나는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이런 내 행동에 거울 속의 인형 또한 눈을 깜빡인다. 검은빛의 풍성한 속눈썹 사이로 오팔마냥 여러 빛(하지만 푸른빛이 가장 강했다.)을 흩뿌리는 눈동자가 보였다, 사라졌다 했다. 거울을 쥐지 않은 손을 들어 올려 흔들자, 거울 속의 아이가 똑같은 행동을 취했다. 이게 정말 나라고……? 이게 정말? 나는 오팔마냥 눈이 예쁘다는 유리엘의 말을 떠올렸다. 그냥 사탕발림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어! 순수하게 놀라며 나는 볼을 꼬집어보았다. 정말 행동을 똑같이 따라하네. 너무 신기하다.
그렇게, 한동안. 나는 계속 거울만 바라보고 있었다.
"시아님, 이건 제 선물이에요!"
거울을 계속 바라보고만 있는데,(엘뤼엔은 선물만 건네주더니 도로 돌아가 버렸다.) 어느새 유리엘이 수줍은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응? 그때의 나는 거의 멘붕 상태라서 제대로 대답할 수가 없었던 나는 그저 우물거릴 뿐이었달까. 손을 뻗어 유리엘이 건네주는 것을 대충 받아드는데, 평소 만지던 실크들과는 차원이 다른 부드러움이 내 손을 감싸왔다. 거의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서 그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던 나는 생각지도 못하던 것에 화들짝 놀랐다.
"고옴?"
"곰이에요."
응, 그래.
나도 곰인 거 안다고. 곰 인형을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본 나는 곰 인형이 유리엘의 깃털마냥 새하얗다는 것을 자각하고서는 유리엘의 어깻죽지 부근을 바라보았다. 다행히도 날개의 깃털이 듬성듬성하지는 않아 보이는데…. 그럼 이 곰 인형에게 다닥다닥 붙어있는 털들은 무어란 말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질문했다.
"터얼……."
"털이요? 부들부들 하죠?"
신계에 사는 유니콘 털을 사용한 것이거든요.
뒷말을 이은 유리엘이 담담하게 웃자, 나는 조금 얼이 빠져버리고야 말았다. 유니콘 털이라는 거……. 그렇게 쉽게 구할 수 있는 거였나? 응?! 유리엘이 마신의 수행천사라는 것을 상기시키며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마냥 웃어재꼈다.
ㅡ내 첫 생일은, 제법 평화로운 분위기였던 것 같다.
그때까지는.
*
오랜만이네요...저 기억하시는 분 계ㅅㅔ요?
일년만인가...,반갑습니다.
음, 아마 10분 내로 두 편 더 올라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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