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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3 (요14; 14 -21)

작성자이성용|작성시간10.06.06|조회수29 목록 댓글 0

성 전 3 (요14; 14-21)

성전을 건축 하기롤 기획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그 성전의 재료가 되신 분은 예수님이시며

그 성전을 이끌고 가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다.

성령님의 특징은 그가 어디에나 계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이다.

몸 된 성전을 이야기 하시면서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는 것은

성령님의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성령님이 이 세상에 보내어진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의 대사로 이 땅에 보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이 땅을 축복하십니다.

이것은 이미 에스겔 성전을 통해서 우리에게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그 영향을 통해 인류가 사는 것입니다.

교회가 살아있는 곳이면 그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나라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교회의 특징은 지역 교회입니다.

지역마다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통해서 그 지역이 발전해 왔던 것을 보게됩니다.

어느 지역이든 그 지역에 50년 이상 된 교회가 그 지역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를 중심으로 그 지역이 발전 되어 왔습니다. 우리 교회만 해도 그렇습니다.

예)

그렇듯이 교회의 역할을 통해 지역사회가 발전 되어왔고, 그 지역은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즉 교회의 성장이 지역의 성장입니다.

그 이면에는 새로운 비전을 창출하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그 곳에서 교회를 이끌고 갔던 성령님의 인도와 그 인도에 순종한 사람들로 인하여 교회는 성장해 왔고, 그 지역은 발전 되어 왔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교회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가 성전이 되는 원리입니다.

성령님이 교회의 주인이십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그 교회의 주인이 사람이 되려고 하는 노력이 있습니다. 그 때부터 교회는 쇠락의 길을 걸어가고, 그 지역은 더불어 아픔을 겪는 길을 향해 가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그 교회가 진정한 성전이 되고, 그 교회를 통하여 이루실 하나님의 역사를 보기를 원합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유언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요한복음 14-16장은 예수님이 이 땅을 떠나시기에 앞서 우리에게 분부하시는 이야기 이고, 17 장은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한 예수님의 기도문이 있는 장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첫 번 째는 구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지혜도 구하고, 힘도 구하고, 명철도 구하며, 화합도 구하고, 생명도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무엇을 하든지 기도를 하고 시작합니다.

왜 입니까?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결정하고 하나님이 심부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고 우리가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이끌고 가시는 주인이 성령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인도하시지 않으면 아무런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성전을 처음 이야기 할 때 에덴 성전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 성전이 무너졌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유혹입니다.

구체적으로 내가 주인이 되고자 하는 유혹에 무너진 것입니다.

오늘도 교회는 내가 주인공이 되고자 합니다.

내가 주체가 되고자 합니다.

여러분 한 번 물어 봅시다.

내가 주체가 되어 무엇이 되겠습니까?

내 한계 이상으로 교회가 성장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주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내가 성장할 수 있도록

내가 더 깊은 세계를 볼 수 있도록

내가 더 넓은 세계를 볼 수 있도록

내 육신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쓰여 졌던 성령의 역사만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역사하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기대하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펼쳐지는 하늘나라의 역사를 소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기도 없이 됩니까?

그런데 그것이 내가 가진 한계를 벗어버리지 않았는데 가능합니까?

그런데 그것이 내가 주인인 상태로 됩니까?

주님의 성령임 임하시면 가장 먼저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주인의 자리를 비워 드려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자유롭게 일하실 수 있도록

그리고 나는 그것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나를 사랑하면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령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정말 사랑하여야 할 것을 사랑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모든 것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 재물의 사용 - 왜 세상이 혼탁해 지는가?

세 번째는 보혜사를 보내 주신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 다른 기도입니다. 주님의 보호를 요청할 때 주님은 우리에게 오십니다.

파라클레토스 라는 희랍어는 “법정 변호인”을 의미합니다.

그 변호사는 돈 없고, 힘없고 자신이 약하지만 자신을 변호해 줄 무언가를 요청할 마음만 있으면 그분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물론 부르는 그 사람은 죄인입니다.

죄를 지었기에 그 속에 있지 않겠습니까?

또 억울한 일을 당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 억울한 일 때문에 변호사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 요청할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월급 주고 준비 시킨 그 분이 오셔서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도와주시고 지혜를 주시고, 그 일을 극복할 무엇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돕기 위해 준비된 분입니다.

이사야 61장을 보면 주의 성령이 임하시면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고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한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사람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고, 그런 시야도 없습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그 중간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뿐만 아니라 날마다 새로운 일을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마음을 아시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성결 가운데 인도 하십니다.

자유함으로 인도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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