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역정 4
영적 전쟁을 경험하고 나면 이제는 다시 집단적인 공격이 옵니다.
이것은 내면의 갈등이 아닙니다. 우릴 미혹케 하고 혼란하게 하는 것들입니다. 많은 분들이 내면의 갈등과 미혹하게 하는 것과 혼돈을 합니다. 내면의 갈등의 근원은 나 자신이지만 미혹의 주체는 사단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미혹은 여호와의 증인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가지고 이야기 합니다. 무오함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해석이 다릅니다. 진리의 모양을 가졌지만 그 내용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즉 내 내면의 문제가 아니라 외부로부터 오는 공격이 나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이나 공포와는 다릅니다.
그 첫 번째가 수다쟁이와의 만남입니다.
이 책이 수다쟁이라고 표현한 인물은 말은 그럴 듯하게 하는데 삶이 안 되는 사람입니다. 지식은 있는데 그 지식이 삶을 지배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전히 그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나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수다장이의 모습을 이 책은 이렇게 표현 합니다.
“그 사람은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종교를 더럽히고 욕되게 하고
수치스럽게 만드는 존재입니다.“
“타향에서는 성자요, 고향에서는 악마” 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생각해 봅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이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갔을 때 어떻게
그 변화가 나타날까요?
수다쟁이는 이렇게 대답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가슴에 충만하게 되면 죄에 대한 반발의 소리가 크게
일어날 것이고 ----“
그러자 믿음은 이렇게 반론합니다.
“죄에 대한 반발의 소리라기 보다는 영혼으로 하여금 죄를 혐오하게 만듬 으로써 하나님의 은총이 나타나리라고 봅니다.”
“사람은 전략상 죄를 비난하는 소리를 할 수 있지만 진실로 죄 그 자체를 미워하려면 죄악을 대적하는 경건한 반감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요셉의 주인의 부인은 마치 자신이 정숙하고 경건한 것처럼 큰 소리로 외쳤지만 기꺼이 요셉과 더불어 부정한 짓을 행하려 들었습니다.
두 번째 질문을 합니다.
은혜의 작용의 두 번째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복음의 신비에 대한 많은 지식의 획득이지요.”
역시 믿음이 이야기 합니다.
“복음의 지식이 아무리 많다 해도 지식만으로는 영혼에 적용하는 은총의 혜택이 될 수 없으니까요. 그것을 알고 행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요13;12) 즉 진리를 아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행하는 것에 축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은 하나님의 것을 아는데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합니다.
믿음의 고백이 분명한 사람은 자신의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깨우친 진리를 이야기 하는 것이지만 내 고백을 이야기 하는 것은 내가 보고 듣고 본 바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객곽성만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은 힘이 있습니다.
이 분은 이야기 합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그 은혜로 영향을 끼칩니다. 은총을 소유한 사람은 다음과 같은 효과를 나타냅니다.
은혜의 작용으로 인하여 자신의 죄 의식을 깨닫게 되고, 특히 본성의 타락함과 불신앙의 죄를 인식하게 되지요. 즉 은혜의 덕택으로 그가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비를 얻지 못하면 그는 정죄를 받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주님과 함께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깨닫게 되고, 평생 동안 주님과 함께 살아야 하는 절대성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죄를 이기는 힘은 그리스도 그 분과 함께 할 때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힘이 아니면 이길 수 없기에 우리를 위해 주님이 십자가게서 죽으신 것입니다.
이처럼 믿는 믿음의 크고 작음을 통해서 그의 기쁨과 평화, 경건한 것을 사모하는 마음, 주님을 더 알고자 하는 소망의 정도가 달라지며, 이 세상에서 주님께 봉사하고자 하는 열성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1.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체험적으로 고백함으로써
2. 고백에 대한 실제적 삶을 영위하는 것
즉 경건한 일상생활의 대화, 경건한 가정, 자신의 모든 것을 경건하고
깨끗하게 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죄를 미워하게 되며, 가정 내에서도
이런 혐오감 때문에 암암리에 죄를 멀리하게 되고, 마침내 온 세상에
경건함을 증진시키되, 단지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지닌 능력에 의지하여 믿음과 사랑으로 순종하고 실천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대화를 보면서 결국 거짓과 어두움은 진리와 빛이 오면 물러나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저항도 만만치 않습니다. 누가 보든지 그것이 진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억지를 써가며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 합니다. 이 수다쟁이도 그런 모습을 가졌지만 그 다음 장에 보면 더 어려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들이 허영이라고 하는 시장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 들어가기 전에 전도자를 다시 만납니다. 그리고 그 전도자를 통해서 앞으로 되어질 일에 대한 이야기를 미리 듣습니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과 준비를 통해 앞으로 되어질 일을 예비하십니다.
이들에게 주신 것은 죽음을 각오하는 이들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이라는 계시록 2;10의 약속 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주님이 주시는 약속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약속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축복된 자리로 인도해 가십니다.
그리고 그들은 허영이라고 하는 도시로 들어갑니다.
허영의 도시의 바알세불은 예수를 유혹하여 온갖 허영을 사도록 권고하였고, 예수님은 그것을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들은 그 도시는 반드시 통과 하여야만 하는 도시였습니다.
신앙생활에 선택의 문제가 있기도 하지만 반드시 겪어야 하는 일도 있게 마련입니다. 이 도시는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가야 하는 길입니다.
첫째는 이들이 입은 옷이었습니다.
시장에서 파는 옷이었다. 바보라고 혹은 미친놈이니 이방인이니 하는 욕들을 하였다.
두 번째는 말씨까지도 이상하게 여기는 것이었다.
가나안어를 사용하였는데 당연히 이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천국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세 번째는 허영의 물건을 조금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상인의 말
무엇을 구하십니까?
“진리를 구합니다.”
이 일로 이들은 심판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아무런 나쁜 짓도 하지 않았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재판장들은 그들이 그 사회를 혼란시켰다고 이야기 하면서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들은 사회를 혼란에 빠뜨렸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들을 많이 때려 흙투성이가 된 채로 말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도록 하였습니다.
이들은 온갖 놀림, 경멸, 분풀이, 욕설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장의 주인은 그들이 수난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웃기만 하였습니다.
물론 이들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의 행실을 보니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세 명의 증인 질투, 미신, 아첨
이들은 바알세불을 비난 하였고,
노인경, 음란 경, 사치경, 허영경, 호색경, 탐욕경등을 모욕하였으며
배심원
맹인 씨, 불선 씨, 악의 씨, 애욕 씨, 방탕 씨, 성급 씨, 자만 씨, 적의 씨
거짓말쟁이 씨 잔인 씨, 증광 씨, 부자비 씨,
크리스찬은 소망을 만났다.
빛으로 이기기도 하지만
영적 싸움에서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사람이 허영의 시장에 들어가고 그 시장에 들어가서는 많은 이들의 참소를 받아 결국 죽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권세 - 죽을 수 있는 권세
이길 수 있는 권세
왜 어떤 싸움에서는 이기고 어떤 싸움에서는 죽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