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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 생명 (창1;6-13)

작성자이성용|작성시간11.07.10|조회수40 목록 댓글 0

나눔과 생명 (창1;6- 13)

지난 주간에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김주영 권사님을 보내면서 마음 아파하는 많은 분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 분과 오래 교제하지 못하고 헤어져서 아쉽다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별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별이라는 말은 서로 각자 다른 방향의 길을 가는 것을 말하기도 하고,

나누어지는 것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혹자는 말하기를 하나님은 나누는 것을 싫어하신다고 말하곤 합니다.

물론 그것은 사실입니다. 나누어지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나눔을 감행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것입니다.

분열은 분명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세포 분열은 아름답습니다.

그곳에서 새로운 생명력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죽음 그 자체는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소망을 주기도 합니다.

성경은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는 것을 말합니다.

열매는 그 씨가 죽어야 일어납니다.

그런데 어떤 씨는 땅에 들어갔지만 죽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물론 열매도 없습니다.

이처럼 이별이라고 하는 것에 하나님이 주인 되시면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그 일에 관여 하시면 다른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눔은 조금 다른 나눔입니다.

하나가 되었던 것을 나누어서 두 개를 만든 것입니다.

이것은 과학에서 이야기 하는 세포분열과도 다른 것입니다.

한곳에서 두 곳으로 나누어 졌지만, 두 개가 각기 다른 모습을 가지고 연합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늘과 땅이 나누어 졌습니다.

같은 물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가 되었던 적이 있다는 것은 적어도 공존할 수 있는 무엇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것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돕는 관계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생명을 낳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를 만들었습니다.

왜 하나였던 것을 나누었을까요?

서로 공존할 수 있는 공통분모가 있다는 것입니다.

극단의 경우가 아니면 남자와 여자가 "우린 너무 달라요."라고 말하고 헤어지는 것은 자제 하여야 합니다.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입니다. 공존할 수 있는 기본적인 성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나누었을까?

생명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생명이 그 안에서 창조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회성과 연속성이 있습니다.

한 번은 하나님이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면 그것은 무언가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 계속해서 자연스럽게 펼쳐질 수 있는 일을 만들기 위해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이런 일들이 진행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생명의 역사는 계속 되어야 합니다.

오늘 하다가 말고 그만 하는 일이 아닙니다.

상황이 어렵다고 그만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예) 하나 낳기 운동할 때 천주교에서 취했던 태도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는 계속 되어야 합니다.

예) 대를 이어가기 위한 안전장치 (유대 풍습)

두 번째는 나누는 것을 통해서 공동체가 형성 됩니다.

하늘과 땅이 협력하여야만 열매가 있지요.

땅과 물이 조화를 이루어야만 열매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나눔을 위해서는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합니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입니다.

다르기 때문에 화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르기 때문에 상대를 인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마다 고유한 색깔이 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다름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서로 판이하게 다른 12 제자들을 이끌고 가실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만일 12제자들과 목회를 한다면

여러분은 어떨 것 같습니까?

행동보다 말이 앞서는 베드로

뒤에서 다른 꿈을 꾸고 있는 야고보와 요한

자기 우월주의에 빠진 가롯 유다와 셀롯인 시몬

‘팀 라하이’ 는 예수님의 12제자들은 각 기질의 대표적 성향이라고도 이야기 합니다.

장점도 많지만 약점이 드러나면 대책 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그 사람들

예)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흩어졌던 무리들

예수님이 그들을 모은 한 가지 이유는 다른 것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단 중심에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 스스로가 중심에 서려고 합니다.

아닙니다. 주님이 중심에 서셔야 중심이 섭니다.

그래야 나와 당신이 다른 것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그것을 하나로 묶으시는 것입니다.

그 나눔을 감당할 수 있어야 공동체가 이루어집니다.

세 번째는 이런 나눔을 통해 새로운 창조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낮과 밤이 그리고 하늘과 땅이

물과 뭍이 안어지고 나서 딸과 풀과 씨 맺는 채소와 이런 것들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부터 창조 안에서 창조가 일어나는 역사가 시작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나눔을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하지 못합니다. 그것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눔을 변질 시킵니다.

나눔은 나를 풍성하게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목적이 되면 변질 됩니다.

나눔은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있는 것으로 나누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인도하십니다.

나눔은 분명히 새로운 창조를 낳습니다.

새로운 역사를 만듭니다.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게 합니다.

예) 김천역에서의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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