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요기가 되려고 분투하는 때, 왜 그처럼 의지가 약하느냐?
어느 누구도 너에게서 나무그늘을 빼앗아 가지도, 강물을 가져가려고도 않는다.
왜 무상한 일에 그처럼 걱정을 하는지?
모든 미래와 과거의 생각들을 포기하는 것이 너의 의무이다;
진실로 프라나에 지속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면서, 모든 현재의 직분을 수행하거라.
물질적인 부를 통해 행복을 성취한 이는 아직 없었으며 (앞으로도) 결코 없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돈을 벌도록 떠미는 것은 마음의 도발이다.
미래에 대해 왜 그처럼 안달이냐?
모든 이들이 돈을 위해서는 꼭두각시처럼 열광적으로
그리고 제 정신을 잃은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이 세상은 시련의 장소다.
모든 면에 능숙해져야 하고 계속 부족한 느낌을 받아야 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이런 것에 안주하면 안 된다.
지금 당장 정신적인 힘을 키우는 것이 필수적이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모든 행위를 솜씨좋게 해야만 한다.
악마는 항상 마음 속에 있으므로,
너는 마음이 soul 외에는 어떤 것에도 집중하지않도록 주의해야만 한다.
크리야가 실제적인 베다의 학습이다.
규칙적으로 크리야를 수행하는 것으로 크리야의 초월적인 상태가 생겨나고,
이것이(크리야의 초월적 상태) 실제적인 베단타 철학이다.
크리야를 수행하는 것으로 이것을 실현할 수 있다.
책을 읽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크리야만이 yajna(봉헌)이다.
크리야가 유일한 진실이고, 다른 모든 것은 거짓이다.
모든 사람들은 이 yajna를 수행해야만 한다.
마음의 정지가 mantra라고 알려져 있다.
어느 누구도 무지하지는 않지만, 마음이 무지할 뿐이다.
Narayana는 모든 존재속에 존재한다.
어느 누가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고, 신이 모든 것을 행하시는 것이며,
모든 존재는 위장일 뿐이다.
크리야 코드에 맞추어 Guru-Bhagavan께 집중하도록 노력을 경주하거라,
이것이 넉넉함(부)을 줄 것이다. Soul이 Guru이시다.
크리야는 이러한 꿋꿋한 기상으로 수행되어져야만 한다 –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예속되어 있지 않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예속되어 있지 않다는.
어느날인가, 모든이가 모든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은 확실한 일이다.
언제 누구에게 (이런)특정한 순간이 올 것인지는 완벽하게 미정이다.
사람들은 이런 것을 의식하지 않은 채로 있다가 이 순간이 갑자기 다가오면, 모두 탄식한다.
그러므로 인생의 목표는 올바르게 세워져야 하며 모든 이는
그러므로 이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기를 소원해야 한다.
사실, 사람들이 신을 향해 호소하지 않는다면,
내적으로 그(신)을 염원하는 마음이 발생하지않는다.
불멸의, 사라지지 않는 Guru(the soul)만이 이유없는 사랑의 단적인 예이다.
그는 선천적으로 모든 이의 마음 속에 존재하지만,
심지어 그렇다 해도 어느 누구도 그를 찾으려는 적절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살아 있는 존재는 무엇이 선한 것인지에 마음을 두지 않는데,
이러한 사실을 안 후에야 그는 Siva가 될 것이다.
무엇이 선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면,때론 선한 것도 사악한 것으로 보여진다.
마음을, 들숨과 날숨에 대한 의욕이 영구히 존재하지 않는 때인
크리야 초월상태의 전행(행위를 초월한 상태)에 두어야 한다.
앞에 말한 경지는 Bhagavan Krishna라고 불리운다.
Krishna라는 말은 앞서 말한 그 경지만을 뜻한다.
부단히 생겨나는 들숨과 날숨의 정지 상태가 Pranakrishna이다.
싸다나를 은밀하게 수행하는 자들이 gopi들이다.
은밀한 수행자, 즉 고피들은 끊임없이 그의 몸-즉Vrindavana에서
앞에 명기한 증후와 같은 Pranakrishna의 도착을 기다린다.
Guru의 축복을 기대하는 것은 불필요하며,
Guru의 가르침(지시사항)을 성실히 따른다면
찾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Guru의 축복)이 올 것이다.
Guru의 금언을 꼼꼼하게 고수하면,
구루의 권고라는 신-의식의 모습은
자신의 침묵하는 prana 속에서 천천히 발전되어 갈 것이다.
Guru의 금언에 신심을 가지고 행위를 수행한다면,
어느날인가 그것(신의식)은 직접적으로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확실하다.
정신력이 부족하다면
그러면 그때는 (정신력)을 부여해 주는 그러한 장소에서 (정신력)을 얻어야만 한다.
크리야를 이런 곳에서 수행해야만 한다.
[번역자: 정신력이 너무 약하다면 수행자가 득력한 장소나 성스러운 곳에서의
증가된 수행의 힘으로 스스로의 정신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두려움을 가지고 크리야를 수행한다면,
이건 전혀 크리야가 아니고 이런 크리야의 도움으로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
모든 이들은 신실한 크리야 수행으로 그들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크리야반을 봉양해라,
그들을 봉양하는 것으로 너는 모든 신과 여신을 봉양하게 될 것이다.
크리야반만이 유일한 devata들이고, 모든 devata들은 이 크리야를 수행한다.
삶 속에서 삶 자신의 구원을 성취하기 위해,
크리야는 규율과 질서에 따라 수행되어져야만 하며,
오직 이런 후에야 기도하는 것이 Guru의 은총으로 부여될 수 있다.
구원이 아닌, 은총과 장수를 얻고자 하는 자는, 거짓에 잠겨있다.
그들은 은총을 바라지만 그러나 (은총은)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