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어느날 우울한 교만

작성자시골버스|작성시간09.09.09|조회수591 목록 댓글 5

언젠가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중에

옆쪽에 앉은 한국인 두사람이 대화하는 내용이 무심코 들렸다.

구체적인 내용이야 알 수는 없지만,

자기 주변에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거 하며

그 사람을 얼마전에 만나 같이 식사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했다며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알고 있음을 무척 자랑스러워 했다.

 

아마도 그런 이야기를 함으로써 주변사람들에게

대단한 부러움을 사고 싶어했는 지도 모른다. 

자칫 빈정거림과 비웃음으로 '그럼 너는 뭔데?'라고

욕하고 비난할 수 있으나 또한 누구나 그럴 수 있는 일이다.

 

순간, 스쳐지나가는 생각 중에 내모습도 그러했음이 기억났다.

 

나도 주변사람들, 혹은 여느사람들에게

나도 높은 자리에 있는 내가 아는 사람들을 이야기함으로

은근히 주변사람들에게 부러움을 사고 왠지 선망의 대상이

되고자 한 적도 있고

소리만 요란한 빈깡통마냥 '깽깽'거린 적도 있다.

 

걔중의 대부분은 허풍이고 과장이고 조작이지만,

왠지 우쭐거리는 느낌의 유혹과 남보다 우월하다는

개꼬랑지같은 알량함이 늘 나를 조종했던 것이다.

 

사실을 알고나면 허망하고 허탈하고 속은 기분인 그것인데...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집에 금송아지가 한포대 있다던지

조선시대 때, 우리 할아버지가 정승을 해먹었다던지

하는 그런말들은

재미는 있을 지언정, 설득력이 없는  자기속임수이다.

 

대리만족일 터이다.

부모가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가 자기들보다 특수한 재능과

뛰어난 소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속칭 천재로 키우려는 의도 속에는

아이를 통한 대리만족을 느끼려는 심정이 있듯이...

 

나도 그랬다.

내 아이가 천재려니 하고 내마음대로 판단하고서

그러니까 무엇이든지 잘해야하고 잘할 수 있다고 오판을 하고

그래서 다른집 아이들보다 뛰어날 것이다 하고 잣대를 들이대었다.

 

오만과 착각의 최첨단이었다.

 

주변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 친구 아무개는 무슨 일을 하고 있고

내 친척 거시기는 어디에서 어떤 자리를 꿰차고 있고

어릴 적 개울 진창에서 뒹굴며 놀던 친구는

몇 층짜리 건물을 가지면서 BMW를 멀고 다닌다는 둥,

내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그저 허풍에 지나지 않는

흙먼지만 일으키는 자랑을 일삼고서

사람들이 나를 부러워하기를 바랜 적이 있다.

 

실제 집에 들어가면 쌀독에 거미가 줄을 치고 있는데도...

 

그런 생각을 하니 한없이 우울해진다.

오물묻은 속옷을 입고 멋지지도 않은 몸매자랑한다며

길거리를 질주한 일이나 무엇이 다르랴~

 

내가 한치의 땅도 일구지않고 씨앗을 뿌리지도 않고

이빨빠진 낫일지언정 내가 이삭을 수확하지 않고

탈곡하여 껍질벗겨 밥을 지어먹지 않는 이상,

배고픈 현실에서 나를 배불려 주는 것은 없다.

 

그런 고생과 고달픈 움직임없이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을 거들먹거리고

그들이 나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줄 것처럼

폴짝거리는 행위를 통해 드러나는

내 존재의 천박함과 가벼움이 부끄럽다.

 

설령, 내가 대통령을 알고 있다한들,

그는 나를 그리 잘 알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내가 그를 통해 무엇인가를 얻으려 한다면

그것은 사기에 가까운 기만일 것이다.

 

그러기에 늘 나를 돌아본다.

 

나는 지금 매끈하고 부드럽고 가뿐하게 펼쳐진

포장도로위에 서있지 않다.

흙먼지 날리고 군데군데 움푹움푹 패이고

뾰족뾰족한 돌들이 올라와 지나는 걸음을 찌르기도 하고

걸려넘어지게도 하는  마구 파헤쳐진 길위에 서있다.

 

그길을 나는 그냥 걸어가던지,

삽으로 다듬어 평평한 신작로로 만들던지 하며

살아갈 모양이다.

 

지금 나의 상황은

불도저를 불러서 길을 닦을 형편도 아니고

사람들을 돈주고 시켜 할 모양도 아니다.

 

나에게 아무런 작용도 하지못할

그래서 나와는 아무도 상관없이 자기살기 바쁜

그런사람들을 나는 왜 팔아먹었을까?

말도안되는 교만으로 잠시 우쭐했고 기고만장했던

망가진 모습에 나는 우울해진다.

되지도 않는 말로 있지도 않은 현실로 자기를 기만한

씁쓸한 현실의 말로이기에 그저 우울할 뿐이다.

 

나서지 말고 뒤에서 가만히 밥이나 먹고 갈 일이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실세가 있고 거물이 있다고

말해본들,

당장 내가 먹은 칼국수 한그릇값 내줄 사람도 아닌 바에야

허공에 대고 세상은 내 것이라고 헛된 주먹질을 해대는 꼴이다.

 

나에게는 내 발끝을 아프게 하는 돌뿌리는 치우는 일이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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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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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처음처럼07 | 작성시간 09.09.09 네!! 충분히 동감이 가는 말씀이시며, 저 또한 경험한 부분임을 인정하게 되는군요.. 나 먼저 스스로 겸손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작성자차이차이 | 작성시간 09.09.09 님!!에글은 늘 깊게 생각하게 됩니다.맞습니다. 돌뿌리 치우는 일이 급한데...
  • 작성자이룬다 | 작성시간 09.09.09 너무나 맞는 말씀입니다. 이런 맘이 들지 않도록 자존감을 갖도록 해야 겠습니다.
  • 작성자아낙 | 작성시간 09.09.09 님의 말씀을 쭉 보면서 참 .. 요즈음 내맘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슴이 짠 하네요..
  • 작성자높은음자리표 | 작성시간 09.09.10 주위를 내세워 허세를 부리는 사람들 대부분은 컴플렉스가 많은 사람들 입니다. 주위 배경으로 자기를 내세우면 남들에게 인정을 받을거란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듣는이 대부분은 그 허세뒤의 진실들을 다 알고 있지 않을까요. 가치있는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다 드러 나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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