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잃어버린 데미안을 찾아(1)

작성자시골버스|작성시간08.12.23|조회수611 목록 댓글 10

그리고 그후...

 

맞선녀와 한 달여 만남은 씁쓸한 기억만 남겼고 충격이 컸던 지

무엇하나 손에 잡히지도 않고 마음이 나지도 않고 기력이 빠져

일시적이지만,  무기력과 허무주의와 냉소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더더욱 주변을 다니기 보다는 "자아"라는 세계를 엮어놓고는

여섯잠을 자고난 누에가 실을 토해내어 고치를 만들고는

스스로를 그 안에 가두어 놓듯이 나자신을 "자아"속에 가두어 놓았다. 

 

본래 성격이 주변사람과 어울리지 못해 석달 열흘을 두어평 방안에서

아무런 지루함이나 따분함없이 철저히 주변과 담을 쌓고 지내도

손바닥만한 일제 쏘니 카세트 하나만 있으면 세상 부러운게 없었다.

 

밤새 FM음악도 듣고 영어테이프 듣고

그러면서 영어소설도 읽고 영어시도 읽고 영어로 글도 쓰고~

 

한 때 외교관이 되기위해 영어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또한 외교어는 불어라서 불어를 잘해야 하므로

영어외에 하루에 4시간씩 책상머리에 앉아 불어만 공부한 적도 있다.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공부하거나 하는 거외에는

삶의 의미와 재미를 느낀 적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런 생활에 철저히 몸이 밴 내게 결혼 직전의 파혼(?)으로

내주변의 존재와 가치와 삶은 또한 철저하게 부정되었고

면벽생활에 전념하는 수도승처럼

"과연 나는 무엇인가?"라는 오래 전의 궁금증을 풀기위한

또다른 유희에 빠져들었다.

 

말은 그럴싸 하지만, 무념무상(無念無想), 무위무행(無爲 無行)의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장장 5년이었다.

 

정말 그랬다.

 

1981년 11월부터 1989년 2월까지 큰형님댁에 지내면서

큰형수님은 지긋지긋했다고 한다. 내가 결혼한 후의 말이지만....

 

그러던 것이

89년 초에 큰 형님이 이란으로 2년 근무를 가게되고

큰조카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고

큰형수님이 세째아이를 가지면서 더이상 형님 댁에

머무를 뻔뻔함이 없었다.

 

그당시에 대학원논문 준비를 하다가 8월에 애먼 일을 겪고나서

공부고 뭐고 다른 생활에 경도(傾到)하고픈 마음에 정말 아무 것도

안하고 지냈으니 대학원 졸업은 물에 떠내려간 임자없는 나룻배였다.

 

그것보다는 뻥뚫려 황소바람이 씽씽불어대는 빈가슴을  추스려야 했고 

미치지 않으려고 마음을 가다듬어야 했고 망가지지 않으려고 발악해야 했다.

 

지금에 와서 하는 말이지만,

주변사람들은 내가 큰형님댁에 오랜동안 머물러 사는 일을 드고

손가락질을 많이 했다.  대학까지 나오고 대학원공부까지 한놈이

아무 일도 안하고 편편히 먹고 놀면서 형님 살림 축낸다고....

 

실은 그게 아니었다.

당시 형님은 살림이 넉넉하지 않으면서 동생들을 뒷바라지 했고

나와 동생 둘이 큰형님께 신세지며 대학을 다녔기에

보이게 안보이게 경제적인 도움을 받았다.

 

동생들은 공부를 잘 해 대학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후

교사로 임명받아 지금껏 교직에 근무하고

나도 대학을 졸업하자 마자 학원강사로 취직해 많은 월급을 받았다.

 

사람들은 빨리 돈벌어서 결혼하라고 말했지만,

내생각은 전혀 달랐다.

 

대학졸업 후 취직을 하면서 대학4년 내내 도움받은 형님께

물질적인 보답을 하지 않는다면 은혜를 모르는 짓이고

더구나 조카가 하나, 둘, 셋이 생기면서 돈쓸 일이 많아진 형님댁에

내가 먹고자는 기본적인 생활비와 조카교육비 정도는 보충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결혼 전까지 그렇게 하였다.

결혼 후에도 적잖은 물질적 지원을 해주었으며

그래서 지금도 큰형님 댁에 들러도 별 미움안받는 이유가

오래 전에 내나름 큰형님댁에 은혜를 갚은 일때문이 아닌가 싶다.

또한 결혼 후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에도 큰형님께 도움을 받았고....

 

 

아뭏든 88년도에 엄청난 일을 겪은 후

89년도에 또다른 삶을 시작하였는데 정말 철저한 자기세계에만

빠져 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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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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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반추 | 작성시간 08.12.24 재미있어요. 님의 넌픽션인지 알쏭하긴 하지만, 삶이 추억이되어 여러사람에게 들려줄정도의 아름다움을 간직하셨네요. 멋지신분일거 같아욤~~ ^^
  • 작성자이젠형님아닌듯 | 작성시간 08.12.24 난 글이 몽창 모아지면 봐야지~~
  • 답댓글 작성자반추 | 작성시간 08.12.25 푸하하하하~~ 넘 귀여워서 웃음이 나오넹.. 나도 그럴껄.. 미리 1편을 봐서 ... 궁금해서 안된다이~~ ㅎㅎ
  • 작성자etoian | 작성시간 08.12.25 자꾸 몸도 마음도 움추러드는 요즘 시골버스님 글 기다리는 낙으로 하루하루 보냅니다. 정말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 작성자Bonita | 작성시간 09.05.14 저도 뒤늦게 시골버스님 글을 읽고 왔다갔다 하던 중에 방이 새롭게 개설된걸 봤네요. 이방에 글들이 많아 샘물을 발견하듯 좋아했답니다~ㅎㅎㅎ 너무 재미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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