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잃어버린 데미안을 찾아(6)

작성자시골버스|작성시간09.01.07|조회수267 목록 댓글 3

경숙이 생각을 하면서 집에 오는 중에

밀물처럼 지난 기억이 밀려왔다.  그렇게 흘렀나?

 

갑자기 그아이가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혹시나 연락처라도 알아볼 수없을까? 하는 막연한

바램도 생겼다.

 

그아이가 사는 아파트는 알고 있지만,

벌써 오래 전에 다른 곳으로 이사갔을 지도 모르고

다 큰 처녀를 다른 마음으로 접근하려는 것도

순수하지 않은 마음이어서 왠지 내키지 않았다.

 

세상과 단절하여 지내겠다는 생각과 무관하게

한번 스쳐본 여자아이를 마음 한켠에 두고 있다는 것이

우습기도 했다.

 

하지만, 뭐, 그게 대수랴?

살다보면 결심이 무너지는 경우도 있고

결심과 타협하는 경우도 있고 변절하는 경우도 있지,

언제까지 계획도 없이 막연하게 세상과 절연만 할 건가?

 

대학원 시절 같은과에 여학생이 있었다.

 

지금이야 사람들이 조금만 여유가 있으면

고속버스만한 크기에 고속버스 가격의

승용차를 끌고다니지만,

나는 이제나 저제나 늘 시골버스였고 지금도 그렇다.

 

당시 그 여학생은 미국유학을 마치고 박사과정을 다니면서

대학전임강사를 했는데 지금은 국제변호사로 활동한다.

아직 결혼했다는 소식은 못들었는데

나와 비슷한 나이이고 그렇게 늙어갈 모양인데

주변에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그랬다.

 "시집이나 가지??"

 

나도 대놓고 그런 말은 못하지만,

속으로 그랬다.

노츠녀가 시집이나 가지...

 

오래 전의 일이니 그여학생에 대한 기억도 흐려지고

나 먹고 살기 바쁜 마당에 기약없이 헤어진 과동기를 생각할

여유는 없는 판국이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중국오기 1년 전에 파란지붕이 있는 집에서 근무할 생각에

파란지붕있는 집에서 1급별정직으로 근무할 직원을 뽑는다는 공고가 났다.

몇명 뽑냐고? 당연히 1명이지...

외국어가 필수이고 영어를 잘해야 한다길래

지원서를 냈다.

 

서류통과가 되었으니 모월모일날 국무총리실공관으로

면접보러오라는 통지를 받았다. 

실력이 짱짱한 인간들이 지원서를 냈던 모양이고

주로 고시합격생들, 박사학위자, 대학교수들, 등이 있었다.

그 중에 20명이 1차합격하였다.

 

면접을 보았고 국무총리실 직원이 전화를 했다.

"시골버스 선생님의 높은 인격과 지식과 실력에

깊은 경의와 존경을 표합니다.

이번 파란지붕직원 선발과정에 뽑히지 않았음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다음기회에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 이런~~주굴래???

 

조금 열받았다. 내가 이정도밖에 안돼?

그때가 1월초였다. 

방송대 법대에 우수한 실력으로 합격했다.

(음~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수석합격은 아니지만,

하여간 그렇지 않을까?라고 짐작만 함.)

 

변호사시험에 합격하고서 파란지붕에 들어가 주마...

 

며칠 후, 인터넷에 검색하다가 파란지붕에 합격한

직원이 이야기가 실렸다.

 

오잉? 이 노츠녀가???

위에서 말한 그 노츠녀가 모 대학교수를 하다가

미국가서 로-스쿨을 졸업하고선 미국변호사자격증을

따가지고 한국에서 국제변호사로 활동 중이라는 거다.

뭐, 나랑 같이 공부한 친구이니 진정으로 축하하마

라고 생각하면서 파란지붕 홈피에 있는 그친구의 홈피에

축하한다는 글을 올렸다.

 

대놓고 말은 못하고

노츠녀가 시집가서 애낳고 살림하고 남편뒷바라지 하고

그럴 일이지 왜 남의 앞을 가로막고...

그랬다.

 

얼마전에 기사를 보니 파란지붕을 나와서 그냥

국제변호사 한다더만...

그럴걸 왜 가족이 있는 사람의 앞길을 가로막냐고, 잉??

 

그후에 방송대법학과를 우수한 실력으로 합격하고서

열심히 이론공부하였고 중국오기 직전까지

장래의 유능한 법률전문가로 활동하기 위해

실전경험도 익혔다.

 

그럼,변호사시험공부해서 합격한 다음에

한국에서 짱짱하게 잘 나갈 일이지

왜 중국에 와서 구질구질하게 사냐고?

 

다들 이런말 한마디씩 하는데

나는 도무지 왜들 이런 말을 하는 지 이해를 못한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내가 중국에 매료된 건

96년 처음 중국에 왔을 때

별로 문명화되지 않은 중국의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시골스런 모습때문이었다. 

 

내가 초중고를 다니던 시골의,

지금은 사라진 어린시절의 모습을

중국은 가지고 있었기에

눈물나게 그립고 가고 싶었던 어린시절을

고스란히 남겨준 중국이 무척이나 고마웠다.

그 그리움이 어떤 것인지를 알기나 하는 지...

 

아뭏든,

그잘난 과친구는 여전히 노츠녀이고 노츠녀로 늙어갈테지만,

나는 적어도 그럴 마음은 없었다.

 

경숙이로 인해 세상과의 절연보다는 

또다른 사랑의 불씨를 지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일단은 경숙이를 이핑계저구실 삼아 한번 만나보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연하고 운명적인 만남을 가장한 "조작된 만남"을

만들어 내야 했다.

 

그래서 그 다음날 우연한 만남인양 가장하기 위해

경숙이가 오랜만에 만난 나를 보고 실망않도록 하기 위해

조금은 의상과 외모에 신경을 쓰고선

경숙이가 지나갈 시간을 예상하여 일부로 슈퍼에 물건사러다녔다.

 

그렇게 한 지 한 며칠.

좀체로 경숙이가 다니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다니는 시간이 매일 다른 모양이다.

 

그렇게만 해서는 경숙이를 만날 가능성이 없었다.

예전에 경숙이 어머니가 형수를 통해서 나에게 과외를

부탁했으니 아마도 큰형수는 경숙이네 연락처를 알고 계시리라..

 

요즘에 며칠 간 큰형수에게 가지도 않아 그간의 상황이 궁금하고

예쁜 조카들도 보고싶고 해서 조카들 줄 먹을거리를 한다발 사가지고

형수님 문방구점으로 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우연을 가장해 문득 형수에게 말했다.

큰형수,

며칠 전에 집앞 슈퍼에 물건사러 가다가

예전에 과외를 한 "정경숙"이란 아이를 보았거든요.

그 아이 혹시 아세요?

 

"당연히 알죠.  그얘 엄마랑은 요즘도 종종 연락하는데요."

 

그렇군요.  그럼 경숙이는 요즘 직장다니나요?

 

"직장은요.  대학에 다니는데 재순가 삼순가 해서 음악과에 들어갔대요."

 

음악과요?  여상나온 걸로 아는데 왠 음악과?

 

"낸들 알아요? 첼론지 멜론지 연주한대요. 그거 악기값만 천만원 간다는데...

아무리 지방대학이라도 그렇지 음대를 어떻게 보내???  그집은 돈도 많아.

그런데 삼촌은 그집아이 이야기를 왜 하는데요?"

 

아니, 그냥요.  오랜만에 본 얼굴이기에 새삼스러워서요.

 

큰형수가 잠시 내얼굴을 보고 무언가를 읽어내더니

쌩뚱맞게 그런다.

 

"삼촌!  경숙이란 아이 생각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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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높은음자리표 | 작성시간 09.01.07 2000년에 내가 느낀 중국의 모습도 거칠고 다듬어 지지않은 시골의 모습이었다.어린시절 방학때면 시골 할머니 집에서 놀던 그 시골의 정취가 사람들 에게서 느껴졌었다. 왠지모를 촌스러움에서 느껴지는 때묻지 않은 순박함... 저녁이면 석양을 등에지고 소를몰고 집으로 돌아오던 막내삼촌 같은 정겨움이 묻어나왔었다.그런데 지금 시골의 정취를 느낄수있는 작은도시들이 발전해가는 모습이 싫다....... 얼마나 이률배반적인가....나의삶은 날로 양질이 되길바라고... 내 유년의 추억회상을 위해.. 이곳은 그대로 물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 작성자sophy | 작성시간 09.01.07 작년에 이 곳에 온 나도 상해의 한 귀퉁이에서 6,70년대의 한국, 촌스럽고 세련되지 않은 사람들의 몸짓이 왠지 아득한 그리움으로 다가왔던 .... ㅎㅎ추억이란 나이듦의 또 다른 얼굴이겠지요?
  • 작성자꿈이맘 | 작성시간 09.01.12 밀려있던 글을 오늘 다 읽었습니다.....올해도 재미있고 좋은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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