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개자식이 한마리 있습니다.

작성자시골버스|작성시간09.01.10|조회수1,415 목록 댓글 10

참, 별 볼일도 없습니다.

오죽하면 개자식이겠습니까?

그렇다고 욕을 하는 건 아닙니다.

힘없는 자는 무엇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힘있는 자에게는 시빗거리가 되기에

말입니다.

 

세상이 그러하니

당하지 않도록 힘을 키워야겠습니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가 그랬습니다.

앞으로를 대비해서 두개이상의 외국어를 공부하고

6개월동안 버티고 살 현찰을 준비하고

생활필수품도 준비해두라고...

 

그는 우리들에겐

신비스런 계시자이고 선각자였습니다.

그의 말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정답이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어릴 적 강아지한마리 주워다 키운 적이 있습니다.

본래 주인이 따로 있었는데

새끼중에서 가장 작고 약하고 비실거리고

얼마 있다 죽을 거 같아서

주인이 쓰레기 더미에 그냥 버렸답니다.

 

크기가 얼마나 작은 지

생쥐가 낳은 쥐새끼보다 작았고

얼마나 못먹고 자랐는지

강아지란게 모양만 그렇지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며 지냈습니다.

 

시장에 다녀오시던 어머니가 강아질 보시곤

불쌍하기도 하고 애들 주면 좋아할 거 같아

장난감삼아 가지고 놀라고 주워왔습니다.

 

장난감이 없던 어린저희들에겐

좋은 벗이었고 친구였습니다.

 

남들은 모양이 추레한 강아지를 그냥 묻지

뭐덜러 키우냐는 거였습니다.

더구나 사람먹을 밥도 없는데 강아지 먹일 밥은...

 

그 개자식 아니, 그 강아지는

그럭저럭 안죽고 잘자랐습니다.

처음엔 비트적거리며 얼마못살것 같던 놈이

한달, 두달 우리들과 가족처럼 지내며

무척 행복했나 봅니다.

 

학교갔다오면 온몸이 틀어지듯 꼬리를 치고

어디를 가던 따라다니고 반기고 재롱도 떨었습니다.

 

대여섯달후엔 정말 처음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변했습니다.

멋진 개였는데 아마도 셰퍼트 일종이 아닌가 싶습니다.

귀는 쫑긋하고 몸은 머리부터 엉덩이까지

잉어처럼 미끈하게 쭉 빠졌고

털은 짧으면서 기름을 바른 듯 검은 빛이 흐르고

꼬리는 바짝치켜든 채 천하를 호령하는 모습이었죠.

그래봤자 개자식이지만...

 

어느해 겨울이었습니다.

시골에 눈이 몹시 내리고 몹시 추운 겨울 밤이었습니다.

눈이 무릎까지 빠질만큼 내렸었지요.

 

그날밤은 이상하게 우리집 개자식이 잠도 안자고

밤새 짖어대는 것입니다.

짖어대는 것이 아니라 거의 울부짖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동네개들이 같이 짖어대더니 조용해지고

우리집 개자식이 혼자서 열나게 짖어대는 겁니다.

 

아무리 멈추라고 고함을 질러도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오줌도 마렵고 똥도 누고싶어 그러려니 하고 풀어주었습니다.

왠걸,

아예 미친개처럼 울부짖고 돌아다니는데

뭘 잘못먹고 미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깨갱! 왈왈왈! 크르르릉!!하는 소리가 들리며

우리집 개자식과 어떤 짐승이 싸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혹시 호랑이나 삵쾡이가 처들어왔나 싶어 방문을 열고

양철 양동이를 들고 꽝꽝꽝 두드렸습니다.

 

한참을 그랬더니 우리집 개자식이 죽는 소리를 냈습니다.

그리고는 아예 뻗어버렸습니다.

무섭기도 하고 날씨가 춥기도 해서 날이 밝으면 끌어다 묻지 뭐,

하며 그냥 방구석에 처박혔습니다.

 

잠시 후에 우리집 개자식이 또 죽기살기로 짖어대며

미친듯이 이리뛰고 저리뛰고 하더니 이젠 뒷간에 빠지더군요.

그래서 개자식이 미치면 뒷간에 빠져뒤지는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뒷간에 빠져서 꼼짝도 안하고 뻗었길래 뒤진 줄 알고 끌어다가

눈밭에 내 던졌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우리집 개자식이 어떻게 되었나

궁금했습니다. 얼어죽었으려니 생각했지요.

그런데 그 개자식이 죽지도 않고 눈밭위에서 눈만 껌뻑껌뻑거렸습니다.

밤새 그렇게 시달리고 그렇게 추운 날씨에 얼어죽지 않은게 신기했고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온 몸에 똥투성이 인놈을 부엌으로 끌어다가

물을 데워서는 비누칠해서 씻어주었고 아궁이 옆에 짚을 깔아주곤

편하게 지내게 했습니다.

 

개자식 팔자가 상팔자라더니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가 봅니다.

 

그리고 밤새 뭔일이 있었나 싶어 집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그런데 기절할 뻔 했습니다.

집주위 눈밭엔 온통 어른발자국만한 짐승발자국투성이었습니다.

우리집은 산 바로밑이어서 다른 집들과는 거리가 떨어졌고

왕래가 없으면 사람이 죽어나가는 지 애르 낳고 기르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런 곳에 먹을 것을 찾으러온 산짐승(호랑이인지, 삵쾡이인지)이 왔는데

우리 가족을 보호하겠다고 우리집 개자식이 죽기살기로 싸운 것입니다.

 

온 몸엔 할퀸자국이 많더군요.  

 

참으로 기특했습니다.

쓰레기더미위에서 다 죽어가던 놈을 데려다 키운 것이

이렇게 커서 주인을 지키기 위해 사나운 짐승과 사투를 벌이다니

너는 정말 개자식일지언 정, 은혜를 알고 의리를 지키는구나.

그날 부터 우리집 개자식은 우리들과 더더욱 친해졌습니다.

 

그것까지는 좋았습니다.

그 개자식이 숫놈인지라 어찌나 암놈을 밝히던지

온동네 암캐들을 죄다 건드려서 새끼를 배게하고

동네방네가 저놈 안방인양 휘젓고 다니며

남의 집 부뚜막에 올려놓은 꽁치하며 고등어하며

죄다가 먹어 조지는 바람에 사과하고 배상하고...

 

그것까지도 괜찮았습니다.

 

그런 어느해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우리집 개자식 선물이랍시고 야광이 뻔쩍거리는

개목걸이를 사왔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습니다.

 

어머니 말씀이 누군가가 길가에다가

쥐약묻힌 꽁치두어마리를 두었는데

그거먹고 갔다는 겁니다.

 

집에와서 숨을 헐떡거리며 거품을 토하고 죽어가는데

그냥 안됐다 싶어 끌어다가 묻어주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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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죽은 개자식을 원통해하고 한탄하고 그리워한 들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파란만장하게 살아간 그 개자식을 다신 볼 수 없습니다.

 

요즘들어 쥐약바른 꽁치먹고 뒤진 개자식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집에 들어와 살다가 5년만에 간 것 같습니다.

 좀 더 멋있게 죽지 않은 게 안타깝지만, 어쩌겠습니까?

개자식 팔자란게 쥐약묻은 꽁치먹고 죽을 거였나 보죠.

 

그래도 여름복날,

실컷 몽둥이 찜질을 당하고는 

온통 된장발려진 몸으로 가마니에 뒤집어 씌운 채

모가지는 철사줄에 걸려 끄슬려 죽는 개자식에 비하면

양반이죠...

 

 

그런데 인생을 살아가다보니

살아가는 꼬락서니가 영 아닙니다.

쥐약바른 꽁치먹고 뒤진 개자식이나

온몸에 된장발려져서 가마니뒤집어 쓴채

끄슬려 죽어 보신탕되는 개자식이나

다를게 뭐가 있는지...

 

추운 겨울들어

별스런 생각을 다 해봅니다.

아마도 갑자기 찬바람을 쐬어

머리에 얼음장이 들어서 그런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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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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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얘들아 사랑해~~ | 작성시간 09.01.11 돈 많은 사람과 친해지면 뭔가 콩고물이라도 떨어지지 않겠나 하던 거지근성. 그렇게 거지근성으로 무임승차 하려다 뒈지게 당하는 꼬라지...슬픈 자화상입니다.
  • 작성자내일은맑음 | 작성시간 09.01.11 글쓰신 분 심경이 조금은 헤아려 지는 글이네요...하지만 같은 이야기도 어떻게 보냐에 따라 그 감흥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실감하고 갑니다. 늘 그렇듯이 말이죠.
  • 작성자구름속의 달 | 작성시간 09.01.14 재밋게 읽고 갑니다~
  • 작성자상하이눈 | 작성시간 09.01.18 주인집을 지키겠다고 상처투성이가 되도록 싸웠던 강아지가 너무나 쉽게 저 세상으로 가버렸네요. 지켜줄 강아지도 없으니 마음이 허전합니다. 위험이 왔다고 알려줄 수많은 강아지들이 이젠 우리에게 더이상 없을까요?
  • 작성자상하이눈 | 작성시간 09.01.18 우린 그저 안됐다 하고 가슴에 묻는 거 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슬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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