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꾹꾹 참고 산다는 것

작성자시골버스|작성시간09.02.09|조회수655 목록 댓글 8

설경구 주연의 "공공의 적"을 보았다. 아무생각없이 보는 영화중의 하나이다.

우중충해보이는 설경구 개인의 연기력도 보암직하고 연기가 재미도 있고...

 

영화에서는 깡패비스무리한 강력계 "강철중"형사로 나오는데

썽깔하나는 지랄배기이다.

욱하는 성질만 터지면 누군가를 죽도록 패는성질.

그러다가 짤리고 처벌받고 다시 복직하고...

나름대로 인생을 처절하게 살아가는 88년 서울올림픽 태권도 은메달리스트로

경찰특채 강철중 경사.

 

악의 근절을 위해 목숨바쳐 일하는 모습이

관객들에게 박수갈채를 한몸에 받아 마땅하고

볼 때마다 시원스런 그의 연기력은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한줄기 소나기같고

몹시 목마를 때 마시는 얼음탄 콜라맛이다.

 

거칠것없이 내질르고 뒤집어엎고 박살을 내는

그러한 그의 연기력에서 우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본래 카타르시스는 '설사약'이라는 뜻의 그리이스어이다.

고대 그리이스에서는 배탈이 나거나 속이 더부룩할 때

카타르시스라는 설사약을 먹으면 한방에 속에 있던

이물질이 배출되니 속이 시원함을 느낀다.

 

여자들을 그렇게 목숨걸도록 좋아하게 만든

신성일/문희/김정훈 주연의 "미워도 다시한번"이란 영화는

얼마나 많은 여성들을 울렸고 전국의 손수건을 동나게 했는지...

 

그러한 순정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영화가 잘 만든 영화라서

감동을 받고 삶에 질을 향상시키고 생활수준을 높여주어서가 아니라

실컺울고나면 속이 후련하니 그래서 여성들이 그런영화를 좋아하는 건 아닐지...

 

속이 후련해지는 영화를 친다면야 홍콩르느와르만큼 화끈한게 있을까?

주윤발하며 장국영하며 원표하며 홍금보하며...

아무런 의미도 없이 그냥 화끈하게 연기하다 끝나는...

뭐, 그런거...

 

이야기가 또 옆으로 흘렀다.

 

하여간 설경구의 "강철중 형사"처럼 자기 성질대로

있는 성깔 없는 성깔 내질르고 싶은대로 산다면

세상에 스트레스로 병생길일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결과에 상관없이 말이다.

 

거야, 뭐, 별거있겠나? 노래방가서 화끈하게 불러제끼거나

나이트에 가서 온몸부서지게 비틀던지 부비다 온다거나

아니면 뼈가 가루나도록 뒹굴다 올 수 있는 또다른

카타르시스 대용, 무엇인가를 하면 스트레스가 날아가기는 하겠지만,

그런거 돈들고 시간들고 신경도 써야하는 일이라

매일같이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영화 속의 "강철중 형사"도

성질대로 내질르고 살지만, 사는게 곰살스럽지 않다.

이리 부대끼고 저리 깨지고 하다보니

성질머리가 개판이 된 거 뿐이다.

게다가 성질대로 일저지르면 그댓가를 톡툭히 치뤄야하고...

 

실제로 발디딛고 살아가는 세상에서

처절하게 나를 죽여야만 하는 일들이 참 많다.

속으로 심장이 터져 죽을 거같은데도 참아야만 했던 경우말이다.

 

우리어머니 세대들이 속병이 생겨 그것이 도지고도지고 했던 일도

심장이 터지는 대신에 다른 부위에 병이 생겼던 모양이다.

그래서인가 속에 무슨 덩어리가 돌아다닌 다는 말을 자주하던데

그것을 한의학 표현으로 "積(적)" 혹은 "聚(취)"라고 했다.

 

積은 뱃 속에 덩어리가 매달려 있다는 뜻이고

聚는 그덩어리가 뱃속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닌다는 뜻이다.

그것을 조선시대 여인네들은 "홧병(火病)"이란 말로 정의했고

그 화를 풀지못하고 죽으면 "恨(한)"으로 남지 않았느냔 말이다.

 

오래전의 영화이지만,

패트릭 스웨이지(Patrick Swayze)  와 드미 무어(Demi Moore-데미 무어가 아니라)가 주연한

"사랑과 영혼(원래 제목은 "Ghost'임)"은

이미 죽어버린 애인을 그리워하는 몰리(Mally)를 안타깝게 생각한

주인공의 혼이 나타나서는 그녀를 보호한다는 내용은

이생에서 못다 푼 한을 안고 죽은 사람은 죽어서도 저승에 가지못하고

이생을 떠돌아다닌 다는 동양적 사고를 극화한 영화인데

 

사실 서양인에게는 별로 와닿지 않는 슬픔/한/홧병의 내용은

동양인, 특히 한국인들에게는 듣기만해도

가슴이 저리고 뼈마디가 시린 언어이다.

 

이것 모두가 속에 있는 말들과 생각을 풀지못하고

속으로 담고 삭히고 이를 깨물고 참아야 했던 분통함의 결과가 아닐런지...

 

참는다는 것은 일종의 미덕이고 인격이고 사람의 됨됨이를 말해주지만,

힘이없고 능력없어 참아야 하는 일은 뱃 속에 암덩어리를 키우는 일일 것이다.

 

참고참고참아도 그분통함을 삭히지 못해

결국 남안보는 곳에서 혼자 찔끔찔끔 흘리는 눈물로

마무리하지만, 세상은 참 잔인하다.

 

미국 소설가인 F. Scott Fitzgerald가 쓴 Tender  is  the  Night 에서는

어려운 역경과 고통을 잘 견디는 흑인의 참을성을 칭찬하는 내용이 있는데

흑인이 본래 참을성이 강하고 참고싶어서 참고 살았겠는가?

참지않았다가는 생난리를 겪고 일을 치룰테니 날죽여 줍쇼하고 만거지...

 

일본의 토쿠가와 이에야쓰(德川家康)가 있다.

참을성의 대가요 살아있는 표본으로 알려져있다.

 

그의 큰아들이 토요토미 히데요시(豊信秀吉)에게 무슨 실수를 저질렀나 보다.

그 아들이 자신의 앞에서 할복(셋부쿠-切腹)을 하며 죽는데

그걸 두눈으로 바라보는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하지만, 토쿠가와 이에야쓰는 눈썹하나 찡그리지 않고 무덤덤하게

아들의 할복장면을 바라본다. 속으로야 얼마나 가슴이 찢어졌을까?

그는 토요토미 히데요시 살아생전에 절대 배반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가 죽자 토쿠가와 이에야쓰는 그의 아들 토요토미 히데요리(豊臣秀賴)에게

충성을 맹세한 언약을 깨고 전투를 벌여 결국 토요토미 히데요리를

오사까 성에서 자신이 보는 앞에서 자결하게 하고 토요토미 히데요시 일족을

뿌리를 뽑아버린다.

 

소름이 끼칠정도의 무서운 인내력의 보복이고 복수이다.

 

그러나 그도저도 아닌,

그냥 되는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별다른 의지도 없이 살아가는 나에게

당장 눈알이 뒤집히는 일이 생겨나도 속을 끓고 드러누웠을 지언정

강철중형사처럼 당장에 뒤집어엎고 부수지도 못하고

토쿠가와 이에야쓰처럼 속으로 이를 갈면서 복수의 칼도 갈지 못하고

그렇다고 죽어 생전에 못다푼 한을 풀겠다는 구신도 되지 못하고

방구들 내려앉으라고 뒤통수 방바닥에 대고 누워 신세타령만 한다.

 

참고견디고인내하는 것이 반드시 미덕이 아니고 훌륭한 인품도 아님을 

그간의 살아온 과정을 통해 알겠건만 그렇다고 어떻게 발광도 못하겠다.

 

그냥 무기력하게 방바닥이나 긁고 누워있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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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시골버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02.09 원래 백수가 늘 할말이 많고 걱정없어 보이잖아요. 일있는 분들은 저처럼 방바닥에 누워 바닥긁을 새가 없지요. *^^*!
  • 작성자얘들아 사랑해~~ | 작성시간 09.02.09 요새 무슨 일 있으세요? 보는 글마다 조금씩 속상하네요. 설마 용산 땜에 그런것은 아니시구요??...
  • 답댓글 작성자시골버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02.09 *^^*! 누군가에게 오해를 받으면 그것이 잘풀려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속으로 삭혀야 하니 힘이 들더라구요. 그런거 있잖아요. 나는 분명히 할말이 많은데 원천적으로 문이 막혀서 혼자 끙끙앓아야 하는 경우... 참는 것도 시험이려니 싶듭니다.*^^*!
  • 작성자샹하이황 | 작성시간 09.02.09 가진것이 전혀 없다고 생각할순 있지만 제 3자의 시선으로 본다면 님도 분명히 가진것이 잇어 보이군요^^ 그건 님이 더 잘아실듯 주무기를 전공으로 방에만 있지마시구 활동을 해 보시죠, 글재주가 보통이 아니시구 박식하시구요~~
  • 답댓글 작성자시골버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02.09 실은 만나는 사람도 없고 갈데도 없고 방구들장만 지고 사니 입에서 가시가 돋더군요. 다행히 손놀림이라도 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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