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이야기]인간에 대한 예의-노무현대통령께

작성자시골버스|작성시간09.05.24|조회수457 목록 댓글 5

대학 1학년 때였습니다.  81년도였지요. 다들 아실 겁니다.

세상에 무서운 것 없고 자신감 있고 정의라고 생각되던 일에

목숨걸던 시절...

 

80년 5월 광주를 피로 물들고 온나라를 뒤흔들어 놓고

그리고 80년 7월 8일 미스유니버스대회가 열리고...

 

무척 어지러웠습니다.

그때는 광주사태라고 했습니다.  엄청많이 죽었지요.

얼마나 죽었는 지 잘은 모릅니다.

 

저는 충청도 시골하고도 깡촌에 있는 농고를 졸업해서

농사를 지으면서 대입시 재수를 하던 때였는데...

나라돌아가던 상황을 트랜지스타 라디오로만 알았고

북한 무장공비가 광주를에 침투하여 난리가 난 줄로 알았습니다.

 

며칠 후에 친구가 휴가를 왔습니다.

그 친구는 중학교 동기에 같은 농고 축산과를 나왔는데

축산과 나왔다고 위생병으로 차출되었고

광주에 근무했는데 광주사태(광주민주화운동)때

광주통합병원에 있었고 시민학생군과 진압군의 총격전을

직접 목격하였다고 하였고 병원에 실려온 환자들을 보고

끔찍했다고 합니다.

 

죽어서 온 민간인들은 많아서 아수라장이었고

그 중에 좀 특이한 환자가 있었답니다.

어떤 여대생이 들 것에 실려왔고

시-트를 목까지 올렸는데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더랍니다.

누구냐고 했더니 모 대학 여학생인데

계엄군에게 가슴이 잘렸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다음날엔가 죽었다고 했습니다.

 

또다른 한 친구는 군복무 중 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해있는데 밖에 총성이나고 난리가 났대서

죽는구나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새벽 1시가 넘어서인가요?

눈물섞인 여학생이 마이크로 호소하는 소리가 들리더랍니다.

"광주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있습니다.

광주시민들께서 이방송을 듣고 나와서

계엄을 물리쳐주십시오."

하더랍니다.

 

그 때 그여학생의 눈물섞인 간절한 목소리가

소름끼치도록 무서우면서 하도간절해서

가슴이 먹먹하고 며칠간 잠을 못잤다고 합니다.

 

그때의 참상은 저는 잘 모릅니다.

나중에 광주에 갔을 때 터미날에 사람찾는 전단지를

보고서

다만 끔찍하고 비참하고 슬프다는 생각과

군인이 민간인을 죽인다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재수 끝에 대학을 들어갔습니다.

재수라기 보다는 독학이었지요.

 

대학 신입생 시절.

저보다 10살은 많아 보이는 남자 둘이 있었습니다.

늘 강의실 뒷자리에 앉아있다 싫증나면 나가고...

저도 늦게 대학입학했지만, 예비역인 줄로만 알았던 그들.

 

책가방도 없고 책도 없고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쉬는 시간되면

학교건물 앞 벤치에서 담배나 피워물고

자기 둘만 이야기하고

어느땐 행정실에서 나오고 어느땐 학장실에서 나오고...

 

나중에 알고보니 사복경찰이었습니다.

한번은 대판 말싸움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왜 마음놓고 수업도 못듣게 하냐고...

민주국가에서 이런 일이 가당키나 하냐고...

그랬더니 난들할 수있냐? 시키는대로 하는 거지 그럽니다.

 

학생들과 종종 말다툼과 시비가 있었지만, 큰 충돌은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 새 친해지고 학교식당에서 식사도 같이하고

배드민턴도 같이치고 인생이야기도 하고...

 

그렇게 몇개월이 흘렀고

저는 여전히 모범생으로서 집-학교-도서관을 다니며

외무고시 준비를 하느라

영어-불어-일본어-국제법, 등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꿈같이 흐른 세월입니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혼자 길을 내려오는데

전에 저와 말다툼을 벌이고, 나중에 배드민턴도 같이친

사복경찰형님이 저를 부르며 같이 가자고 합니다.

 

그때까지 저는 별로 잘못한 거 없고 말다툼은 몰라도 

데모나 반정부활동을 한 적도 없으니 별일 아니려니 했습니다.

 

모 경찰서 조사실에서 그 경찰형이 그럽니다.

"야~ 시골버스야. 니가 수업시간에 반정부발언을 한다며?"

"네? 무슨???"

"니가 수업시간만 되면 북한정권을 찬양하고 현정부를 뭉개야한다매??"

"그런 적이 없는 거 같은데요..."

"니가 주동적이래~ 왜그래?? 내가 없는 말 하는 줄 알아?"

"누가 그러는데요?"

"니가 잘 생각해봐. 어느교수 수업시간인지를..."

 

그때 생각이 났습니다.

당시 민정당 무슨정책위원(의원이 아니라)이라며

개꼬리같은 감투를 감투랍시고 뻑하면 회의에 참석한답시고

강의를 쉬던 대머리까진 인간.

 

수업시간만 되면 미국이 아니면 우리나라는 벌써 공산화되었고

미국만이 살길이고 미국을 섬겨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미국은 하나님이 축복하신 나라이니 은인의 나라라고

떠들던 대머리...

 

교수라기 보단 시대에 빌붙어 사는

백년 묵어도 여우꼬리 안되는 개꼬리...

 

경찰형이 그런다.

"시골버스야.

나는 네가 착실하고 정직하고 공부열심히 하는 학생이란 거 안다.

그리고 젊은 시절 객기로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두어라.

교수라고 절대 신뢰하고 인격자라 생각하고

너희들을 올바로 지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마라.

오히려 썩은대로 썩은 인간일 수 있고

자기개인의 영달을 위해 수단방법을 안가리고

학생들을 팔아넘길 수 있는 인간들이다.

내가 너희학교 담당이고

너희학교 교수들에게 보고받는데 내가 모르겠니?

절대로 교수들을 훌륭한 인격자로  생각하지 마라.

그들은 절대 그렇지 않다.

 

단지 너의 장래를 생각해

내가 이선에서 마무리 짓겠고

너와 내가 이런일로 다시 만나지 말았으면 한다."

 

그날,

집에 와 누운 자리에서 밤새 고민을 하였습니다.

내가 과연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위해

이따위 공부를 하는지...

 

내가 외교관이 되어 이나라의 발전과 국위선양을 위해

몸을 망가트려가며 공부를 하는 결과가

겨우 교수나부랭이가 나를 경찰에 고발이나하고 조사받으려 함인가?

 

이런 나라에 내가 무슨 희망을 두겠으며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또한 내가 이루고픈 일을 이룬들

그게 좋은 결과를 산출하지 않는다면 나의 노력과 수고는 도루묵이 아닌가?

 

그후로 저를 경찰에 고발한 교수와는 모든 인간관계를 끊었고

인간취급도 하지 않았고 민정당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

그런 인간들이 득시글거리는 세상이 싫어

세상에 대한 모든 욕망을 접었습니다.

 

그리고는 문학과 시와 사색에 빠져들었습니다.

 

종종 운동권학생들의 집단인 탈춤패와도 어울렸지만,

운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탈춤패에서 운동을 하던 여학생이 캠퍼스내에서

경찰에 잡혀가는 꼴을 보고도 눈을 감았습니다.

그 여학생을 위해 내가 해줄 일이 없었고

내가 나선 들 세상이 뾰죽하게 나아질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녹색사업이랍시고

잡혀간 남학생이 군에서 죽었다는 말도 들었고

저를 형처럼 따르던 몇몇 운동권녀석들은

학교를 그만두고 시골로 도망가거나 자진입대하거나...

 

80년 대 대학시절은 무척 우울하였습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고 함부로 해도 괜찮았던 그 시절.

할 수만 있다면 탈출하고 싶었던 그시절, 그현실...

차마 몸이 부서지라고 돌던지고 화염병던지고 구호외치며

길거리로 나서지 못한 소심함이 가득하던 그시절...

대한민국에서 희망을 못읽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실존주의와 초현실주의를 오가며

마약에 취한듯 미몽과 환몽의 세계를 넘나들며

그렇게 살며 대학원을 다녔습니다.

 

그때 6.10운동도 겪었고 6.29때 노구라선언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희망을 보았습니다.

젊고 똑똑하고 힘있고 참신한 인재가

대한민국에 아직도 건재함을 확신하였습니다.

 

노무현, 이철, 이인제...

그외 강삼재, 홍사덕, 이해찬, 등 ...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능력과 실력을 갖춘

젊고 똑똑한 정치가들이 속속들이 등장하였고

잘되기를 바랐습니다.

 

어쨌거나,  그후로

노무현씨는 대통령이 되었고

나라가 잘 되기를 바랐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가 대통령되기를 바라지는 않았지만,

이왕이면 잘했으면 싶었습니다.

그래도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청와대에서 1급비서관으로 근무하던 친구의 말이

외국에서 보았을 때 비교적 잘하고 있다고 한다 했습니다.

그래도 한나라당보다는 낫겠지요.

 

그 말이 사실이기를 바랐고

그에 대한 세상의 조롱과 놀림과 비난이 싫어

일체의 것에 눈감고 입막고 귀막았습니다.

 

단, 인간에 대한 예의만을 지켜주기를 바라며...

 

그런데,

방문을 열어놓고 마당을 거닐 수 있는 자유만이라도

달라던 유언과도 같은 절규마저 무시한 채

사람들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지키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힘을 가지고 칼자루를 쥔 채 소름끼치는 웃음으로

일체의 것을 무시하고 밟아도

인간에 대한 예의조차 지키지 않는 사람이라면

하늘은 반드시 그를 버릴 것입니다.

 

인간에게 지켜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마저

짓밟혀진 채

허망하게 몸을 날려 세상에 저항한

그분의 죽음이 몹시 슬픕니다.

 

죽어서라도 자존을 지키고 싶었기에

우리의 남아있는 모습이

한없이 무기력하고 부끄럽습니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세상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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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웅성맘 | 작성시간 09.05.24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감히 댓글을 달 엄두가 나지 않을만큼......
  • 작성자liang | 작성시간 09.05.24 너무 슬프네요... 90년대 초,중반 까지만 해도 대학교 단과대 학생회실에 도청장치가 되어있었지요...그이후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정권 이후에 모든게 과거로 다시 회귀하는것 같아 가슴이 아픕니다
  • 작성자월드브릿지 | 작성시간 09.05.24 검찰직원 수십, 수백명 동원하여 몇달간이나 친척 친족 후원인 계좌 죄다 이잡듯 뒤진다면 금전관계 천사처럼 깨끗한 경영인, 정치인 있겠습니까? 노무현이 제자리로 돌려준 검찰자치권한을 정치권력으로 둔갑시킨 현 정부 검찰은 반드시 역사적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 작성자와인과 재즈 | 작성시간 09.05.24 그분의 말씀대로 아무도 원망할 것 없습니다. 그를 죽음으로 몬 것은 우리입니다. 러셀이 말했던가요. 매국노 정치인 뒤에 매국노 국민 있고 부패한 정치인을 떠받치는 건 부패한 국민이라고 했습니다. 다들 부동산 투기로 한몫 잡게 해주겠다는 말에 혹해서 일생 동안의 사기행각을 신화니 뭐니 떠받들면서 전과 14범을 대통령으로 뽑은 어리석고 부덕한 국민이 그를 버린 것이지요.
  • 작성자호사랑 | 작성시간 09.06.15 자살이.. 사람을 높이다니.. 정말 이상한 나라가 되어가고 있는것 같습니다.. 감정으로 사회를 바라보지말아야할것 같습니다. 조금더 이성적이 생각을 해야할 때가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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