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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말씀

[스크랩] [성 바르나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믿는다는 것

작성자저녁노을|작성시간26.06.10|조회수31 목록 댓글 0

초대교회의 소중한 조역, 바르나바

사도 11,21-13,3; 마태 10,7-13 /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2026.6.11.

 

  오늘 전례의 복음은 산상설교에 이어 파견설교를 전합니다. 갈릴래아 지방의 가난한 이들을 주로 찾아다니시던 예수님께서 미처 찾아가실 수 없었던 방방곡곡으로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당신이 선포하던 메시지를 위임하셨습니다. 당신의 명성과 기적 소문이 전국에 퍼지는 바람에 갈릴래아에로 몰려 들었던 군중에게 복음에 대한 믿음을 더욱 확실히 다지고자 하신 의도가 엿보이고, 또한 이 기회에 군중 가운데에서 제자로 불리움 받은 이들을 훈련시켜 믿음과 사명감이 확고한 사도로 양성하시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산상설교에서는 부각시키지 않으셨던 메시지를 제자들을 통해 공개적으로 선포하시려던 의도도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메시지는, “때가 차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태 10,7; 마르 1,15) 였습니다. ‘하늘 나라’ 또는 ‘하느님 나라’는 아브라함 이래 하느님을 믿는 백성이 고대하던 현실이었습니다. 예언자들이 알려준 메시아 대망의 메시지도 초점은 그분이 선포하실 하느님 나라에 있었습니다. 그 나라는 – 그 당시 사두가이나, 바리사이나, 혁명당원들의 기대와는 달리 –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에 의해서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죽은 후 내세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도래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내세에 맞이할 영원한 생명 역시 죽음으로 말미암아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메시아께서 선포하시는 그 복음을 믿는 이들의 삶에서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이 메시지가 ‘복음’인 이유입니다.

 

  마르코 복음서 전편에서 드러나지 못했던, 그리고 마태오 복음서 산상설교에서 참된 행복을 선사받은 주체들은 그 시대 이스라엘의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가 주어졌다는 소식이야말로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바, ‘다가온 하느님 나라’의 역사적 실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제자들을 통해서 전국에 가서 그 현실을 확산시키라는 명령이 파견설교에 주어진 것입니다.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마태 10, 8)

 

  그래서 제자들은 철저한 가난의 생활 자세를 견지하도록 명령받았습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하는 지침은 기본이었고, “전대에 금도 은도,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마태 10, 9) 하는 수칙이 복음을 선포하기 위한 철저한 가난을 요구했습니다. 이것이 제자가 사도가 되기 위한 자격 조건이었습니다. 이 철저한 지침과 수칙을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요구하실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 동안 갈릴래아 지방에 모여 들었다가 자기 고향으로 돌아간 군중 가운데 지지자들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지지자로 보이는, 그래서 머물기에 ‘마땅한’ 그들의 집에 머무르면서 그들 가운데에서 새로운 제자도 선발하고 그들의 도움도 받으면서 복음을 선포하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혹시 그들이 복음 선포에 소극적이거나 심지어 배척하는 낌새가 보이면, 주저 없이 그 집을 떠나라는 단호한 자세도 아울러 요구하셨습니다. 이 요구가 다음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마태 10, 12) 이것이 지지자인지 아닌지 여부를 가늠하는 신호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만일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마태 10,14) 하고 말씀하심으로써 복음선포자로서 당당한 자세를 견지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또한 루카 복음사가의 보도를 참조하여 이 파견의 맥락을 살펴보자면, 이 때 파견된 제자들은 예순 명의 성소자를 확보한 것으로 보이고 이들과 함께 두번째로 파견되어서는 많은 성과를 거두고 돌아왔습니다.(루카 10,1.17-20) 그 성과에 흡족하신 예수님께서는 모처럼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시며”(루카 10,21)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셨고 감사의 이유는 파견된 제자들이 가난하고 고통받던 많은 이들을 하느님께로 돌아오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음 문장이 이를 알려줍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루카 10,21)

 

  오늘 교회가 기념하는 바르나바 사도는 초대교회 역사에서 예루살렘 시대와 소아시아 시대를 이어주는 인물이고, 열두 사도단과 바오로 사도를 이어준 인물일 뿐만 아니라 파견을 통한 ‘예수 추종’을 알려주는 살아있는 본보기입니다. 그는 해외 디아스포라에 살던 유다인으로서 키프로스 태생이었는데, 그가 율법에 따라 예루살렘 성전에 순례하러 왔다가 초대교회 사도들과 신자들이 보여주는 공동생활에 감명을 받아서 신자가 되었고(사도 4,36-37 참조), 사도단의 신뢰를 받아서 안티오키아 공동체로 파견되어 사목 책임도 맡았습니다(사도 11,22 참조). 그러니까 사도들도 예수님께로부터 자신들이 받았던 파견 직무를 바르나바에게 행사한 셈입니다.

 

  안티오키아 공동체는 스테파노로 인한 박해 때문에 흩어진 신자들이 개척한 공동체로서 스테파노의 영향을 받았으므로 베드로를 따르던 예루살렘 신자들보다는 복음에 더 열성적이어서 선교 의식도 뛰어났던 듯하고, 성령의 이끄심을 알아듣는 능력에 있어서도 탁월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베드로와 야고보를 비롯한 사도들은 자신들이 직접 지도하기보다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여’(사도 11,24) 원만한 성품의 소유자로 초대교회에서 인정받았던 바르나바를 안티오키아 공동체로 파견했습니다. 그 후 바르나바는, 이 공동체의 신자들이 박해자였던 사울이 그리스도인으로 돌아섰으며 고향에서 자숙하고 있다는 소문을 전해주자, 주저없이  타르수스로 가서 사울을 데려와 안티오키아 공동체에서 신자들을 가르치게 하였습니다(사도 11,25 참조).  열성적인 공동체를 이끌어 갈 만큼 원만한 성품만이 아니라 사울의 능력도 알아볼 만큼 안목도 탁월했던 셈입니다. 그 무렵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에 예루살렘에 큰 가뭄이 들자 안티오키아 공동체는 모금을 했고, 바르나바와 사울로 하여금 이 모금된 돈을 가지고 예루살렘의 사도단에 전달하도록 했는데 이 때 자연스럽게 바르나바는 사도단에게 사울을 소개하면서 덩달아 신원보증도 서게 되었습니다.(사도 11,28-30;12,25 참조)  

 

  그러다가 성령께서 안티오키아 공동체 신자들에게 말씀을 내리셨습니다: “내가 일을 맡기려고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렀으니, 나를 위하여 그 일을 하게 그 사람들을 따로 세워라.”(사도 13,2)  이렇게 해서 성령에 의한 파견으로 바르나바와 사울에 의한 소아시아 선교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울은 선교 활동에 앞서 히브리식으로 불리는 대신 그리스식으로 자신의 이름을 바꾸었기 때문에, 그 이후부터는 바오로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교회 역사상 첫 공식 선교 활동이 바르나바와 바오로, 이 두 사도에 의해서 시작되었고, 초대교회가 예루살렘과 유다 땅을 떠나서 소아시아 지방으로 퍼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바르나바는 자신의 고향인 키프로스에 복음을 전했고, 예루살렘에 갔을 때 만나서 데리고 온 마르코를 수행시킴으로써 복음선포에 눈을 뜨게 해 주었습니다. 1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기성 사도단의 수하들이 사도들에게 문제를 제기하여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사도들의 전체 회의가 열리게 되었는데 그 문제란 바로 하느님께로 돌아오는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면제해 주어도 좋은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이 할례 논쟁을 주제로 열린 사도회의에 바르나바와 바오로가 함께 참석했지만, 기성 사도단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이방인 선교에 유리하도록 결론을 내릴 수 있었던 데에는, 사도단에 알려지지 않았고 박해자의 전력까지 있었던 바오로보다는 아무래도 이미 신뢰를 받고 있었던 바르나바의 역할이 더 컸을 것입니다. 기성 사도단에서 결론을 내릴 때 가장 크게 참고했던 바가 그것이었습니다. 즉,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은 사람”(사도 15,26)이라고 안티오키아와 다른 이방인 출신 신자 공동체에 보내는 편지에서 쓰고 있습니다. 

 

  1차 선교여행 이후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마르코 때문에 다투다가 감정이 격해져서 서로 갈라섰지만, 바오로가 2차와 3차 선교여행을 하고 그때마다 안티오키아 공동체로 돌아와서 보고를 하기도 했어도 안티오키아 공동체는 변함없이 바오로의 선교활동을 지원해 주었고, 바르나바가 개입한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렇게, 개입하지 않고 방해하지 않으며 비방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바르나바는 선교의 주도권을 원만하게 바오로에게 넘겨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바르나바는 바오로를 위한 징검다리 역할과 신원보증인 노릇을 충실히 한 것만으로도 초대교회 역사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 한 것입니다. 또한 1차 선교여행에서 떨어져 나간 자신의 조카(또는 사촌동생) 마르코가 그 이후의 선교여행에 동행하지 않고 예수를 만났던 증인들을 찾아다니며 취재활동을 했는데, 그 결과로 그는 역사상 최초로 예수님을 주체로 하는 복음서 양식을 선보였으니, 이것이 ‘마르코 복음서’입니다. 이 역시도 마르코가 바르나바의 제안으로 바오로와 함께 하는 선교여행에 참가했었던 경험 덕분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다마스쿠스 사건 이후 아무도 만나주지 않았던 바오로를, 과거의 동지였던 바리사이들도 그를 배신자라고 낙인찍어 피했고, 미래의 동지가 될 그리스도인들도 아직은 미심쩍어서 그를 피하고 있던 시절에, 오직 바르나바만이 은인자중하며 지내고 있었던 그를 찾아가서 설득하고 격려하여 사도로 일으켜 세웠습니다. 이런 사항들을 종합하여, 사도행전에서는 바르나바에 대해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처음 예루살렘 공동체에 왔을 때, 자신이 소유한 밭을 판 돈을 사도들에게 봉헌했는데, 이로써 초대교회의 공동생활이 후대에 이상화된 것이 아니라 신자들이 얼마나 성령이 충만했었는지를 실제로 입증해 주는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행동이 사도들에게 커다란 위로가 되었던지 사도들은 그에게 ‘위로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세례명으로 지어주었으니 그 이름이 ‘바르나바’입니다(사도 4,36-37 참조).  그리하여 그는 기성 사도단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요컨대, 바르나바는 초대교회 신자들의 공동 생활의 산 증인이었으며, 직제자 출신이 아니라 비주류였던 바오로가 사도로서나 선교사로서 서방 복음화의 일꾼으로 나서게 해 준 신원 보증인이었는가 하면, 역사상 처음으로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으로 복음서라는 형식으로 마르코가 기록하도록 제 몫을 찾아준 중개자로서, 초대교회의 ‘기둥’과 같은 존재로 여겨지던 야고보와 베드로와 요한과는 또 다르게(갈라 2,9참조), 그리고 선교 활동의 주역이 된 바오로와도 다르게 보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역할을 감안해 보면 그는 조역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게 중심을 잡아 주었다는 점에서 초대교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사도였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 역시 같은 메시지, 즉 “때가 차서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복음을 듣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현존으로 우리 안에 예수님께서 함께 사시면 우리도 이 나라의 현실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열두 제자나 바르나바처럼 그분의 손길과 말씀이 필요한 곳에 파견될 수도 있습니다. 또는 파견될 필요 없이도 우리가 살며 일하는 자리를 파견지인 것처럼 하느님 나라를 선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죽어서나 가려고 하지 말고, 지금 여기서 이미 다가온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여 세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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