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친구인 종운이.
종운이 아들이 장가 가는 날 새벽에 친구가 쓴 글이다.
진심어린 독백이자 일기였다.
뭉클했다.
그 글이 너무 좋아 여기에 소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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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 동안
나에게 늘 든든하고 멋졌던 아들을 이제는 제짝에게 양도하는 날.
젊은이들은 시집살이 시키지말고 가까이 가지도 말란다.
'시'자 들어가는 자체가 부담이라고ᆢ
나이든 이들은 이런다.
그래도 잘 살게 가르쳐야 된다고ᆢ
모두들 자기 입장에서 말하며 그것이 진리인냥 말들을 한다.
나역시 '시'자 들어가면 어렵다.
여태도 집안 어르신들이 계신 자리에서는 내몸 사리지 않고 부지런 떨며 움직인다.
그런 게 예법에 맞는다고 배웠고 30여 년을 이 집 식구 되려고 부단히 노력을 했다.
스스로 반문하며 뭘 더 해야되는지 부족한 게 뭐였는지ᆢ
그러다보니
이제 내가 '시어른'이 된단다.
이제는 시어른다운 게 어떤건지 어떻게 행동해야 바른 건지를 생각한다.
좀 억울한 생각이 든다.
끼인세대 같은ᆢ
하지만 단 하나
내 정성스레 살았더니 남편이 정성스레 대해주고
내열심히 시어른 공양했더니
남편이 나를 존중해준다.
이제 내 아들을 내 맘대로 대우해서도 안되고
한 가정의 가장대접을 깍듯하게 해야된다.
그 만큼 멀어지고 어려워 지리라.
며느리가 절대 딸이 될 수 없음을 안다.
그래서 난 며느리에게 많은 것들을 공유하려 하지 않을 생각이다.
공유하면 살아온 세월 만큼의 잔소리가 많아질 테니까ᆢ
좀 더 인생을 멋지고 알차게 둘이 준비하길 바라면서
아들아!
혼자보다는 둘이 좋더라.
둘이 만들 새로운 세상에서 꿈이 펼쳐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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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3일 토요일.
주말 새벽에 친구의 글을 읽고 가슴이 뭉클했다.
그래서 내가 댓글을 달았다.
다음과 같이.
사랑하는 아들을 장가보내는 날 아침.
네 글을 숙고하며 읽었다.
여느 때완 분명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아들 내외에 대한 소망과 기대
그리고 새로운 관계설정을 예비하는 현숙한 여인의 기돗소리가 들린다.
네 글은,
분명 나의 두 눈으로 읽었는데 귀로 들렸다.
멋지고 아름답구나.
너의 그 '기도문'이 참 정결하고 고귀하여
과년한 딸과 아들을 둔 어느 애비의 마음에도 잔잔한 감동의 파장이 일렁인다.
오늘 대전에 간다.
승합차와 승용차로 친구들 십여 명과 함께.
대학졸업 후 삼십여 년 만에 처음으로 보게 될 혼주인 너의 모습,
아니 캠퍼스적 부드러운 미소와 초롱한 눈망울이 유달리 맑았던 네 모습이,
오늘 결혼식장에서 또 한 명의 주인공으로서 빛나고 있을 테니까.
그래서 '만유인력'보다 소중한 '오래된 우정'이 서로를 더욱 뭉치게 하고 발길을 돌리게 만든다고 믿는다.
이따 보자.
멋진 내 친구 종운아.
건실한 아들 상원이의 '새출발'을 다시 한번 진심으로 축하한다.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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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역에서 승합차 한 대와 승용차 한 대로 오전 10시에 10명이 출발했다.
결혼식은 오후 6시, 야외 예식장에서 있을 예정이었지만 친구들끼리의 짧은 M.T도 겸해서 좀 일찍 갔다.
대전까지 왕복하는 동안에 마음껏 웃고 떠들며 격의 없는 대화를 이어갔다.
즐겁고 유쾌했다.
미리 예약해 둔 숲속의 맛집에서 푸짐하고 맛있는 식사를 했고
그 근방에 있는 넓은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었다.
남자 둘, 여자 여덟.
동행하기로 했던 세무서장 친구와 예비군 중대장 친구는 갑작스레 일이 생겨 함께 하지 못했다.
35년 전에 캠퍼스 봉사동아리에서 만나 운명처럼 친구가 된 사람들.
애경사를 포함해 숱한 삶의 여정들을 함께 엮어왔던 사람들.
순수와 열정 그리고 배려가 있어 좋았다.
대전에서 교수인 남편과 한평생을 다정다감하고 예쁘게 살아 온 친구, 종운에게 다시 한번 뜨거운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사진 몇 장을 남겼다.
모두 곱게 나이 들어간다.
품격과 여유가 충만한 중년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