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대한민국엔 몇몇 걸출하고 호방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정주영, 이병철, 구인회 등 한 때 거인들이 살다간 시대가 있었다.
그때도 갈등이 있었고 온갖 아픔들이 많았다.
하지만 당시 그들이 내렸던 큰 결단은, 거인들이 가슴에 품었던 대의와 사업보국이란 이념과 충정에 따라 움직였다.
세월이 흐르고 거목들이 떠나자 바야흐로 잔챙이들의 시대가 도래했다.
풍요를 얻어 절실함이 사라진 탓이 클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라와 국민이 늙어 도전정신이 사라진 탓도 있을 테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터였다.
작금의 한국사회는 어찌 이리도 작고 얄팍한 것일까.
정말로 유치하고 치졸하다.
자타가 인정하는 우리사회의 잘난 사람들을 보자.
그들은 정부와 기업의 요직을 두루 거친 엘리트들이었다.
그런데 그 잘난 사람들의 위기대처 능력과 고난 속에서의 리더십을 보면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
큰 일이 터지고 보니,
그들의 잘난 점이란 것이 고작 시험과 승진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온갖 술수를 동원하는 능력 뿐, 대의도 명분도 자기희생도 없는 졸렬한 인간군상들의 모습에 지나지 않았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또한 위기 속에서 매번 허둥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평생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비교하는 삶에 갇혀 살아온 소인배들의 면모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1등주의와 학벌주의 그리고 고시 만능주의는 다만 저들을 가진자로 만들었던 사다리였을 뿐이었다.
위기 앞에 당당하게 나서 담대하게 책임을 지며 대책을 제시하는 이는 없었다.
적어도 고위직을 꿰차고 있던 그 잘난 이들 중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그러면서 진실 앞에 한없이 비겁하고 나약해 빠진 잔챙이들의 민낯과 변명만이 영혼 없이 허공에 나부낄 뿐이었다.
정말로 역겹다.
저런 인간들에게 헌신, 애국, 대업을 기대하기란 애시당초 불가능했던 거였다.
정권이 바뀌었고 그래서 일말의 기대감을 갖고 힘차게 응원의 박수를 보냈지만 국가의 큰 위기 앞에서 그들은 늘 각주구검이었다.
자괴감으로 가슴이 아프다.
그래서 더 참담하고 슬프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대형 참사 앞에서 잘난 위정자들의 흔들리는 내면과 무한 책임 앞에서 자꾸만 회피하려는 얄팍함을 목도했다.
저들의 변절과 변명 그리고 궤변을 들을 때마다 힘없는 민초들의 영혼은 까무룩 자지러졌고 끝모를 나락으로 한없이 추락했다.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사이.
우리 사회는 무엇이 변했고 얼마나 개선이 되었던가?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어디에 올려야 할 지를 결정할 때가 온다.
그런 때가 반드시 온다.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일지라도, 욕을 먹거나 손가락질을 당할 수밖에 없는 때일지라도 책임자라면 마땅히 전면에 나서서 '결자해지'의 자세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문제해결에 진력해야 한다.
그것은 '인간애'와 '책임감'을 최우선으로 삼아야만 비로소 표출 가능한 처신이다.
'애국'과 '헌신'의 철학이 확고한 자들에게서만 발현될 수 있는 고결한 품성이다.
또한 인간 됨됨이일 수도 있고, 광활한 그의 철학일 수도 있으며 성숙한 인격일 수도 있다.
거목의 시대가 저물자 약장수들만 남았다.
언론과 각종 유튜브, SNS엔 다양한 주장과 논거들이 차고 넘치지만 하나 같이 피래미들의 이전투구와 잇속만이 파닥거릴 뿐
조금의 울림도 없다.
21세기,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선진국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구각을 탈피하지 못한 시대의 패러독스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준비 안 된 위정자들의 서푼짜리 권세와 임명권자만 바라보는 보신주의 그리고 심각한 직무 해태가 이리도 국민들의 영혼을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할 줄이야.
'대도무문'과 '견리사의'를 다시 한번 생각하며 마음에 새겨 보는 아침이다.
"주여, 이 땅을 굽어 살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