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고 1990년도에 입사했다.
그때 만났던 입사 동기들이 50명이었다.
'미션 컴퍼니'라 동기들 대부분이 '크리스천'이었다.
11월 30일(토) .
부고를 받았다.
입사 동기가 긴 투병 끝에 하늘나라도 떠났다는 내용이었다.
그 동기는 입사 후 3개월 간의 신입사원 연수 기간 동안 다른 동기와 눈이 맞았다.
그 후로 몇 년 간 예쁘게 연애를 했고 모든 동기들의 축복 속에서 부부가 되었다.
매우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에 남자 동기의 건강이 좋지 않다고 했다.
위암이었다.
수술은 잘 되었고 예후도 좋았다.
그리고 수술 후 5년이 흘렀다.
주치의로부터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 당시 그 부부는 광명에서 살았다.
그 소식을 듣고 동기들이 광명으로 가서 축하모임도 가졌다.
식사도 같이 했고 차도 함께 마셨다.
그러면서 암을 이겨낸 남자 동기와 곁에서 극진하게 간호한 여자 동기에게 진심어린 박수를 보냈다.
완치 소감도 들었고 투병 중 알게 된 건강의 정보도 얻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날 그 동기의 병이 재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암이 재발하면 더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도 했다.
그러나 그의 건강이 날로 악화되었다.
2024년 11월 29일,
유달리 신앙심이 좋았던 그 동기는 끝내 눈을 감았다.
가족들의 기도와 찬송을 들으며 그렇게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하나님의 품 안에서 편안하게 안식하시길, 동기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기도했다.
동기회 회장을 맡고 있는 나에게 부고가 왔는데 그 안에 계좌번호가 없었다.
슬픔에 잠긴 여자 동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가족회의에서 그리 결정했다고 했다.
빈소에서 까지 조문객들의 조의금을 사양하면 결례가 되겠지만 계좌로는 받지 않기로 했단다.
유족의 그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
동기들 밴드에 부고를 올렸고, 모든 동기들에게 일대일로 톡을 보냈다.
지방에 있거나 해외 출장 중인 동기들, 시간을 낼 수 없는 동기들이 나에게 조의금을 보냈다.
꽤 큰 규모였다.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경사든 조사든 함께 하고자 하는 동기들의 그 따뜻한 마음이 읽혀져 뭉클했다.
사랑하는 남편과 영원한 별리를 겪고 슬픔에 잠긴 여자 동기는 더욱 마른 체구에 깊고 까만 눈만 퀭한 모습이었다.
몹시도 마음이 아팠다.
딸은 간호사였고, 아들은 의전원에서 의학 공부를 하고 있었다.
자녀들이 긴 세월 동안 아빠의 병마를 곁에서 지켜보며 모두 의료분야로 진출해 자기들 나름대로 힘찬 내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문상을 마치고 사무실로 왔다.
일요일 밤.
아무도 없는 조용한 사무실에서 한 잔의 커피를 앞에 두고 있다.
숱한 상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입사 동기들 중 벌써 3명이 하늘나라로 떠났다.
건강할 때,
우리에게 시간이 주어졌을 때,
더 의미있고 향기롭게 살자고 적었다.
동기들 밴드에 그렇게 적었다.
공수래 공수거다.
우리의 인생 여정, 더 사랑하고 더 감사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열정적으로 각자의 스토리텔링을 엮어갔으면 좋겠다.
우리의 여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으나 매 순간 '메멘토 모리'를 생각하며 더 즐거운 삶을 살아가길 기도하고 있다.
시간이 급류처럼 흘러 간다.
번개보다 더 빠르게 간다.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아름답고 포근한 12월이 되었으면 좋겠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