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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의 자규시

작성자현기욱|작성시간26.03.06|조회수403 목록 댓글 0

 
 
 

 

자규시(子規詩)
 
 
 
 
 
 
 
나는 한 마리 궁궐에서 쫓겨난 원통한 새

짝지을 그림자도 없는 외로운 몸 산속을 떠도네

잠 못드는 밤이 가도 밤이 와도 잠은 오지 않고

한(恨) 맺힌 해가 가고 해가 와도 한은 끝이 없구나

새울음 끊긴 새벽 산마루에 달빛 걸려 있고

피맺힌 봄 강물에 지는 꽃이 더 붉구나

하늘은 귀머거리인가

내 애끊는 소원 듣지 못하고

슬픈 내 귀에 소쩍새 울음만 들리는 것이냐


 
 
 
 
 
---   단종(端宗)(1441~1457)   ---
 
 
 
 
 
 
 
 
영월에 가면 '청령포'가 있다.
삼촌인 '수양(首陽)'에게 임금자리를 빼앗긴 열세 살 어린 '단종'.
그 앳된 임금을 가두었던 유배의 땅이다.
 
촉나라 '망제(望帝)'가 신하의 반역으로 죽어 '소쩍새'가 되었다지.
그 소쩍새가 쏟아냈던,
한이 깊은 피 울음이 진달래로 피었다던가.
 
꽃 지는 봄밤.
더욱 마음 붙일 곳 없는 단종의 이 피울음 같은 '자규시'를
하늘도 듣고 있는 것일까 
 
죽음의 사약을 받기 전
열일곱 청년이 한 움큼씩 집어 가슴에 묻어두었을
청령포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되레 서럽고 슬펐다.
 
그래서였을까.
울울창창한 솔숲과 맑은 서강이 너무 고와 아렸다.
적어도 내 가슴엔 그리 울렸고 그리 들렸다.
 
 
 
 
 
 
 

 
 
 
 
 
 

 
 
 
 
 
 

 
 
 
 
 
 

(청령포 탐방을 마치고 나룻배를 타려고 강가로 나왔다. 동글동글하고 예쁜 돌들이 많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친구들이 둥글고 넓적한 돌멩이를 찾았고 곧이어 물수제비를 하기 시작했다. 미숙이가 제일로 즐거워했다. 호재, 미숙이, 성도, 숙희의 뒷모습이 보인다)

 
 
 
 
 
 
 

  
(경희대 봉사 동아리 '바인 친구들'과 함께 떠났던 영월 M.T 중 내가 찍었던 사진이다. 강변에 있는 고즈넉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오랫동안 수다를 떨었다. 그런 다음 '섶다리'를 건너갔다. 소싯적 추억의 한 장면 같았다. 성도, 선희, 기홍이, 숙희, 호재 그리고 미숙이의 모습이 보인다. 나의 순간적인 판단이지만, 이 섶다리 건너는 모습이 추억의 한 장면이 될 것 같아 강변을 따라 약 30미터 정도를 달려간 뒤에 물에 비친 친구들의 모습을 찍었다. 지금까지 바인 19기 친구들과 M.T를 많이 다녔다. 그런데 이 장면이 가장 아끼는 사진 중 하나였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이 글은
내가 본 게시판(살며 사랑하며 배우며)에
2025년 6월 18일에 올렸던 글이었다.
 
1박 2일간의 영월 M.T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갔던 청령포를 떠올리며
올렸던 '단종의 자규시'였다.
 
요즘 영화 '왕사남'이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나도 주말 심야에 관람했다.
 
아마도 오늘(6일),
1000만 명을 넘길 것 같다.
 
한국 개봉영화 역대 34번째,
한국영화로는 25번째 '천만영화'가 탄생했다.
심심한 축하를 전한다.
 
나도 눈물을 많아 쏟았다.
단종과 청령포 그리고 엄흥도의 애잔한 스토리가 
관객들의 심금을 진하게 울렸다.
그것도 뜨겁게 말이다.
 
모든 관람객들이 다 그랬을 것이다.
뭉클했을 것이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래서 '자규시'를 한번 더 읽어보았다.
 
영화관을 다녀온 지 며칠이 지났지만
여전히 마음이 아프고 시리다.
 
'문화예술'의 힘은 
총칼보다 더 강하고 영향력이 크다고 믿는다.
사실이 그랬다.
짧은 시간 내에 천만 명을 극장으로 불러들인 그 저력도
바로 문화예술의 힘이었다.
그래서 늘 감동하고 있고
감사할 따름이다.
 
종영되기 전에 한번 더 관람하려 한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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