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 저녁.
서울역 4층 식당가에서 모임이 있었다.
1990년 하반기에 함께 입사했던 동기들이었다.
총 13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서울역에서 모인 이유는 '교통사정' 때문이었다.
'부산', '세종', '아산'에서 오는 사람들은 KTX를 이용했다.
'파주 운정'에서 온 동기는 GTX를 타고 왔는데 2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했다.
아무튼 광속의 시대였다.
17년 동안 중국 '상하이'에서의 근무를 마치고 영구 귀국한 동기도 있었고
5월에 '하와이'에서 자식의 결혼식을 치르는 동기도 있었다.
작년에 '위암'으로 남편을 먼저 보낸 동기도 있었다.
어머니 두 분이 치매를 앓고 계셔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닌 동기들도 있었다.
상호간에 안부도 나눴고 각자의 근황도 주고받았다.
서로에게 '건강과 평안'이 가득하기를 기원했다.
또한 금년 하반기에 떠날 동기들 '해외 M.T'에 대한 일정과 장소도 확정했다.
날자는 11월에 3박 4일로 정했고 장소는 일본 '규슈지역'으로 낙점했다.
승합차를 렌트하고, 지도 한 장 들고, 배낭 하나 메고, 우리들끼리 자유롭게 다니자고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주체적으로 준비하고 어레인지 할 예정이다.
매번 하던 일이라 새로울 건 없었다.
바쁜 업무 중에 조금씩 시간을 할애하여 차근차근 준비하려 한다.
'기도'를 꼭 교회나 사철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봉사'와 '헌신'을 꼭 어떤 공동체나 어떤 현장으로 가야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매일 숨을 쉬고 밥을 먹듯이 기회가 있을 때, 우리에게 아직 건강이 있을 때, 나의 가까운 주변과 지인들을 위해 한번 더 헌신하고 배려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신앙이고 봉사였다.
오래된 나의 행동강령이며 삶의 이정표였다.
그리 기도했고, 그리 실천했다면 모두가 밝게 웃을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장소를 '일본'으로, 그중에서도 '규슈'로 낙점한 이유는 그곳이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외국이기 때문이었다.
두 친구가 과거에는 없었던 새로운 고통을 호소했다.
이른바 '폐소공포증'이었다.
항공기에서 1시간 이상이 지나면 '호흡곤란'이 온다고 했다.
심각한 '공황장애' 때문에 무척 힘겹다고 했다.
과거엔 안 그랬는데 50대 중반부터 점점 심해졌고 지금은 아예 먼 나라엔 갈 생각조차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했다.
20일 저녁에 만난 동기들 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도 비슷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그 사람들의 입장과 아픔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내일의 건강과 각자의 상황을 누구가 장담 할 수 있겠는가.
아무튼 동기들간의 긴밀한 협의와 배려 덕분에 의견수렴이 잘 이루어졌다.
지금도 시간은 비호 같이 흐르고 세상은 쉼 없이 변하고 있다.
우리에게 건강, 시간, 열정이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만나고, 적극 소통하자고 했다.
1-2년이나 3-4년 후에 누가 아플지, 누가 떠날지, 누구의 형편과 상황이 급변할지 우리가 어떻게 알겠는가.
기회 있을 때마다 사랑하고 감사하며 살자고 했다.
오늘 이 하루가, 우리에게 주어진 기적의 전부라고 믿는다.
동기들 모두에게 신의 가호가 언제나 충만하기를 기도한다.
동기들에게 사랑과 감사를 전한다.
브라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