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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즈버

작성자현기욱|작성시간26.06.07|조회수42 목록 댓글 0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도라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이 시조는 여말선초의 격동기를 살았던 '길재'의 회고가다.
그는 '정몽주'의 제자였으며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다.
또한 그는 충신이자 문인이었고 학자였다.

'고려'가 멸망하자 '불사이군'을 신조로 삼으며 조선엔 출사하지 않았고 초야에 은거했던 충절과 기개의 인물이었다.
'조선'이 한양으로 천도한 뒤에 옛 수도였던 개경을 필마로 둘러보면서 온갖 상념과 소회를 시조로 읊었던 절창이었다.

오늘 'DMZ 평화의길'을 걸었다.
인제군을 지나 고성군에 접어들었다.
'진부령'을 넘는데 마침 '알프스 리조트'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잡목과 무성한 잡초에 뒤덮힌 리조트를 보았다.
한동안 고목처럼 그곳에 서서 옛추억을 반추했다.

나는 1990년 연말에 모회사에 입사했다.
그런데 그 회사는 매년 겨울에 일주간 수련회를 떠났다.
장소는 '알프스 리조트'와 '용평 리조트'였다.

낮에는 스키를 탔고 밤에는 기도와 예배 그리고 영적 수련회에 집중했다.
당시 수련회의 주 강사님은 한국 교계의 기라성 같은 리더들이었다.
'옥한흠 목사님', '하용조 목사님', '김동원 목사님', '방선기 목사님', '최일도 목사님', '이기준 목사님' 등이었다.
영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매우 뜨겁고 정결했으며 감사가 충만했던 시간이었다.

91년 1월에 우리부부도 수련회에 참석했다.
미혼인 직원은 당연히 싱글로 참여했고 기혼자들은 부부동반 참가가 원칙이었다.
수천명이 일시에 행사를 진행할 수없어서 사업부별로 차수를 정해 수련회를 진행했다.
아주 오래 전 일이지만 내 기억으로는 1회차부터 7-8회차까지 몇 백명 단위로 수련회를 진행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대부분 직원들은 수련회 때 스키를 처음으로 접했고 이내 깊은 마력에 빠져들곤 했었다.

35-6년 전엔 '알프스'와 '용평 리조트'가 최고의 스키장이었다.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후반까지 꽤 많은 '스키 리조트'가 생겼지만 초기엔 '알프스'가 핫플이었다.
입사 후 3-4년 정도 알프스에서 수련회를 진행했었고 그 이후엔 용평을 메인포스트로 삼았다.
교통이 편해 접근성이 좋았다.
규모와 시설도 그쪽이 우수했다.
그렇게 '알프스 리조트'는 우리의 기억에서 점점 멀어졌다.

오늘, '진부령'을 넘는데 새까맣게 잊고 있었던 '알프스 리조트'를 만났다.
우연이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시설들은 녹슬어 있었다.
그러니까 무려 30년 하고도 2-3년이 지난 시점이라 그곳은 아주 먼 추억속의 장소였다.

콘도 지붕 위에도 이름 모를 잡초들이 자라고 있었다.
과거의 슬로프들엔 나무들이 빼곡했다.
넓고 쾌적한 고속도로, 고속철도 등 현대판 교통환경이 갈라놓은 비정한 흥망성쇠의 산 간증이었다.

나는 갓길에 서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숱한 성념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자연스럽게 '길재'의 시조가 생각났다.
특히 '어즈버'와 '꿈'이란 단어가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저릿했고 몹시도 안타까웠다.



















지난 주말에 '봉정암'에 다녀왔다.
기도하러 갔었다.

'봉정암'에 가본 사람은 잘 알겠지만 급경사로 이루어진 마지막 깔딱고개가 있다.
매우 힘든 암벽 구간이다.
그곳을 '해탈고개'라고 한다.

힘들게 그 '해탈고개'를 넘어가면 고갯마루 위에 숨을 고를 수 있는 작은 휴식공간이 나온다.
나무의자도 있다.
그곳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천당과 극락'이 따로 있는가.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

'봉정암'에 갈 때마다 내 영혼에 아로새겼던 '최후의 잠언'이었다.

지금 이 순간이 극락이고,
여기 이 자리가 천당이다.
영원한 진리다.

오늘 감사하지 않으면,

오늘 행복하지 않으면,

오늘 헌신하지 않으면,

과연 언제 할 것인가.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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