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편지 >
무슨 병인지도 모르면서 병원에 입원할때는 11월 5일,
초겨울 이었어요.
그런데 어느덧 겨울을 병원에서 다 지내고 노란 융단이 방안 가득히 깔리는 햇발 따스한,
이 은총스런 봄날.
집에서 이렇게 편안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삼촌한테 편지 보낼수 있어서 너무나 기뻐요.
고마운 사람들의 고운 마음이 모아져 이렇게 퇴원해서 잘 지내고 있는것 같아요.
병원 무균실에서도 삼촌 편지 받고 많은 힘이 되고 고마웠어요.
그런데 또 이렇게 퇴원했다고, 축하한다고, 잊지 않고 마음써주는 정성어린 삼촌의 편지와 따뜻한 글들,
정말 고마워요.
세 번씩이나 나에게 혈소판을 헌혈해 주고 힘든 일은 없었는지......
마음 속으로 많이 걱정되었고, 삼촌에 대한 고마움에 눈물이 많이 났어요.
삼촌 이름이 씌여있는 혈소판 주머니에서 사랑의 혈소판들이 한 방울, 한 방울 내 몸속으로 들어올 때,
더욱더 힘을 내려 애썼고, 무너져 내리는 육신을 부여잡고 마지막까지 영혼의 힘으로, 사랑의 힘으로
버텨낼 수 있었어요.
삼촌!
정말 고마워요.
삼촌을 사랑하는 마음, 내 가슴속에 가득합니다.
독한 항암치료에 빠지고 또 빠졌던 머리카락이 이제 새싹처럼 가지런히 돋아나고 있어요.
까맣게 변한 얼굴도 조금씩 조금씩 처음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어요.
아직 먹는 것 때문에 힘들어서 어머님 마음을 편찮게 해드리고 있지만 잘 지내고 좋아지고 있어요.
정말 기도 많이 했어요.
저는 아직 할 일이 많다고, 더 많은 일들을 해야 한다고 기도했어요.
우리 소중한 가족들 항상 가슴에 품고 있으며, 특히 장애를 갖고있는 부족한 강준이를 위해 간절하게 기도했어요.
그애가 잠든 시간까지도, 그 아들을 향한 크고 작은 끈들을 놓지 못하고 있다고.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앞으로도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형보다 믿음직한 우리 둘째 아들 강민이.
고마운 남편.
그리고 장애인 복지관 조기교실 꼬마들이 "선생님~"하면서 나에게 달려들 것 같고,
노인대학 어르신들이 저를 찾을 것 같아요.
무료 급식소로, 성가대로 당장이라도 과거의 제 자리로 돌아가고 싶은데
아직은 더 많이 쉬고 조심해야 된대요.
백혈병 치료받으며 고생하는 걸 옆에서 지켜본 형님(남편)이 더욱더 긴장하고 걱정을 많이 해요.
하지만 다시 건강해져서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곳으로 달려가고 싶어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해 주신 달란트는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그 단 하나의 소망을 위해 더 열심히 살고 싶어요.
병이 나으면, 삼촌 말처럼 더 크게 쓰실 거라고 생각하며,
그런 달란트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려요.
그런 기도와 감사로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지내고 있어요.
사랑하는 삼촌.
여전히 매일 바쁘고 힘들죠?
건강 잘 챙기고 가끔은 편하게 쉬면서 일하세요.
하늘 한번 더 바라볼 수 있는 여유있는 마음이 삼촌에게 더 많아지기를 바랄게요.
항상 모든 것에 자신감 있고, 모난 데 없는 삼촌이고, 아끼는 삼촌이지만
오늘은 이런 당부의 말도 하고 싶어 지네요.
삼촌 고마워요.
그리고 정말로 사랑해요.
우리 자주 연락 해요.
- 망우동에서 삼촌을 사랑하는 형수가 -
3년전 어느 날.
사랑하는 형수님은 이 편지를 끝으로 다시 현대 아산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셨습니다.
제가 형수님으로 부터 받았던 마지막 편지였습니다.
그리고 며칠만에 끝내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선녀같이 착하고 아름답던 형수님.
유달리 봉사활동에 열심을 내셨고, 불우한 어린이들과 갈 곳 없는 노인들을 위해 매양 헌신하셨던 예쁜 형수님.
자신의 큰 아들(조카)이 정신지체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음에도 오히려 늘 세상에 감사하며 사셨던 천사같은 형수님.
오늘 밤, 그런 아리따운 형수님이 미치도록 그립습니다.
보고싶습니다.
오늘 오전에 포천 <나눔의 집>에 각종 의류들을 전달하느라 잠시 다녀왔습니다.
베어스 타운 앞을 지나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습니다.
운전하는데 갑자기 형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훗날, 건강이 호전되면 가족들과 삼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모두 다 같이 스키타러 가고 싶다고 하시던 곱고 아리따운 우리 형수님.
그 분의 잔잔한 목소리가 그 스키장 앞에서 귓가에 맴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스키장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베어스타운 입구 조금 지나 차를 세우고 핸들에 고개를 박은 채로 그렇게 한참 동안 가슴 먹먹한 울음을 울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수님.
보고싶은 형수님.
하늘 나라엔 백혈병처럼 그런 천형같은 병마는 존재하지 않겠죠?
부드럽고 유난히 희고 곱던 섬섬옥수가 생각납니다.
"삼촌, 사랑해요"라며
항상 따스한 눈빛으로 환한 미소를 보내주시던 아름다운 형수님.
딱 한번만이라도 다시 뵙고 싶습니다.
이 밤, 그리움이 뼈에 사무칩니다.
올 가을,
형수님이 몹시도 좋아하셨던 국화꽃 한아름 안고서
여주군 북내면 내룡리 어느 야산 자락으로 인사드리러 갈게요.
향긋한 형수님만의 해맑은 미소를 다시 한번 보고싶습니다.
그리고 형수님께서 좋아하셨던 해바라기 노래를 제가 한번 들려드릴게요.
목이 잠겨 음정이 형편없이 일그러지더라도 너무 탓하진 마세요.
너무 너무 보고싶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아름답고 천사같았던 형수님을 향한 사랑이 더욱 깊어지고 간절해 지는 것 같아요.
사랑합니다.
2005-08-02일
나의 일기장 중에서.
< 2002년 7월 12일 일기장 >을 들춰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네요.
3일전에 우리가 사랑했고 존경했던 형수님은 이 땅과 사별했다.
백혈병으로 판정받고, 투병을 시작한지 8개월 2일만에.
오늘 경기도 여주땅,
양지바른 곳에 형수님을 편히 누여드리고 함께 했던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눈물속에서 장례식을 치렀다.
너무나도 순수하고, 유리알같이 깨끗한 삶을 살았던 아름다운 사람.
매순간 나누려 힘쓰고 베풀려고 노력했던 어여쁜 사람.
한없이 착하고 늘 봉사하는 생활속에서 큰 기쁨과 만족을 느끼며 살았던 분이었다.
신은 왜 이렇게 선하고 착한 사람을 먼저 데려가시는지 모르겠다.
의식을 잃고 생명의 불이 꺼져가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이 땅에서 더 할 일이 많다고 얘기하시던 분.
더 많은 사랑을 나눠주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더 베풀고 더 헌신하고 싶다고 되뇌이시던 분이셨다.
그래서 더더욱 많은 눈물과 큰 슬픔이 여주땅 어느 야산자락에 진하게 스며들었던 하루였는지 모른다.
착하신 형수님의 유지를 받들어 못다한 사랑과 베푸는 삶에 대한 지속적인 연결고리를
우리 남겨진 이들이 가슴에 뜨겁게 떠안기로 했다.
파헤쳐진 황토흙 위에서 모두다 무릎꿇고 그렇게 기도했다.
죽는 날까지 그 약속을 굳건하게 지키겠노라고 나도 그렇게 그렇게 다짐했다.
그것이 예쁜 형수님의 마지막 소망이었으니까.
그동안 경향각지에서 엄청난 헌혈증을 보내주시고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엄청난 분량에 아산 중앙병원에서도 크게 놀랐다고 한다)
그리고 하루에 2-3명씩.
릴레이식으로 혈소판을 뽑아 형수님께 전달했던 신내동 성당의 건장한 청년들과
그 밖의 많은 혈소판 공여자분들께도 진심어린 사의를 전한다.
44년간의 애틋하고 아름다웠던 한 여인의 일기는 예서 마감되었다.
펼쳐졌던 그 분의 일기장은 이제 덮혔다.
이젠 긴 침잠의 나라, 바람없는 피안의 세계로 영면을 떠나셨다.
그러나 그 분이 남기고 가신 큰 뜻과 향기나는 족적을 수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으니,
훗날에 한 알의 씨앗이 큰 열매를 맺을 것이고,
그 열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풍요로움과 잔잔한 행복감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중간에 잠시 병세가 호전되어 퇴원하고 집에서 휴식을 취하셨다.
그때 어렵사리 키보드를 두드려 나에게 편지를 보내주셨던 형수님.
자주 연락하자던 형수님의 마지막 글귀가 오늘따라 왜 이리도 내 가슴을 치는지...
이 편지가 지난 18년간의 형수님과의 교제와 나눔에 대한 마지막 편지가 될 줄이야 나는 꿈엔들 생각하지 못했다.
형수님을 보내드리고 돌아온 날.
깊은 밤.
일기를 쓰는데 또다시 눈물이 앞을 가린다.
아름다운 형수님.
고이 잠드소서!!
당신을 사랑합니다.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요.
2002-07-12일의 일기중에서.
(덧붙임)
과거 언젠가 한번 소개했던 편지입니다.
명절이 다가오니 그 분의 따뜻한 미소가 생각나서 다시 한번 파일을 들춰보았습니다.
이제 명절 연휴가 시작됩니다.
사랑하는 가족들끼리, 친척들이나 형제간에, 다양한 지인들이나 선후배간에
조건없이 더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무엇 때문에 어렵고, 무엇 때문에 안되고, 무엇 때문에 서운하고, 무엇 때문에 가까이 할 수 없고....
이게 아니라
아무런 이유없이 먼저 웃고, 먼저 양보하며, 먼저 배려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세월은 오늘도 쉼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한번 흘러간 시간들은 그 어느 누구도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냥 아무 조건없이 더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사랑과 감사가 흐르는
그런 명절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행복한 설날 보내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