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쌀쌀했던 지난 주말 오후.
하늘은 높고 파랬다.
절친한 친구가 주연으로 열연하는 창극 '춘향전'을 관람하러 '종로구민회관'으로 갔다.
우리의 소리를 찾고 연구하며 그 전통의 맥을 이어가는 순수 민요, 판소리 동호회 '소리마루'의 2010년도 결산 공연이 그곳에서 있었다.
창극이란 '창(唱)'을 기본으로 하는 '음악극'이다.
즉, '국악 뮤지컬' 정도로 표현하면 좋을 듯하다.
창극이라고하면 다소 생소한 느낌이 들면서도 뮤지컬이라고 하면 금세 친밀감과 익숙함이 느껴지는 현실.
난 사실 부끄러웠다.
나는 한국인이면서도 우리의 가락과 우리의 소리를 잘 알지도 못한 채 세계적인 뮤지컬들에 대해 조금씩 아는 체를 했었다.
그러면서 주제 넘게도 그 감동의 편린들에 대해 썰을 풀었고 작품의 뒤안길을 훑고 다니려 노렸했었다.
그러나 빌려 입은 복장이 내 몸과 영혼에 딱 맞을 수는 없었다.
구라파에서 잉태된 오페라와 뮤지컬들이 여전히 감동스럽긴 하지만 그 작은 행간의 울림과 복선으로 깔리는 예술적 해학과 기지까지 간파하여 그 작품 고유의 맛을 제대로 흠향하기란 애시당초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쉽지 않았다.
언젠가 친구의 사무실에서 차 한잔을 나누면서 우리 '전통문화'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다.
그때에도 친구의 우리 문화에 대한 지순한 열망과 학구적인 자세에 깊은 감명을 받았었다.
그런 그가 드디어 '창극'의 주인공 '이도령'이 되어 2010년의 세밑을 뜨겁게 달궜던 거였다.
사업가로서 자신의 업무도 무척 많을 텐데 열정적인 몸짓으로 그 숱한 시간들을 주경야독한 결과가 드디어 빛을 보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더욱 알토란 같이 귀하고 의미있는 공연이었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나는 이번에 '소리마루' 사람들을 처음으로 보았다.
그야말로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의 순수 예술단체였다.
낮엔 저마다의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고, 밤 시간과 주말에 모여 서로 머리를 맞댔으며 이 작품을 위해 각자 맡은 분야에서 온 정열을 쏟았다고 한다.
아마츄어들의 공연이라서 원숙미와 완성도 그리고 무대 디자인과 장치 등은 다소 미진한 감이 있었다.
하지만 시종일관 한없이 풋풋했고 다감했다.
순수 동호인들의 하모니라서 더 정겹고 흐뭇했다.
그들의 땀의 흔적과 우리 소리에 대한 섬세한 접근이 관객들로 하여금 더욱 콧등을 시큰거리게 만들었다.
이번 창극의 타이틀은 '봄의 향기를 노래하네'였다.
계절과 어울리지 않았다.
시나브로 엄동설한을 향해 치닫고 있던 때였다.
그러나 겨울이 깊어 갈수록 새봄의 생명과 온기를 기다리는 건 인지상정일 터였다.
한 해의 끄트머리에 서서, 혹한의 날씨를 뚫고 말쑥한 도포자락과 댕기머리 휘날리며 매화향기 만발한 따뜻한 봄날의 서정을 노래했던 소리마루 사람들.
공연의 타이틀과 계절적 느낌표들이 엇박자처럼 보였으나 나는 공연을 보고 나서야 바로소 알았다.
소리마루 사람들의 영혼에도 그리고 그 공연을 관람했던 사람들의 가슴속에도 이미 춘향이의 한 사람을 향한 곧은 절개와 이도령의 한 여인을 향한 진중한 연정이 우리의 고유한 가락과 리듬을 타고 감동의 날갯짓으로 한없이 비상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것은 신록 같은 연둣빛 서정이었고, 잔잔한 봄날의 향연이었다.
그랬다.
그 대목마다에 설핏 콧등이 찡했던 감동의 실체는 분명 '봄의 향기'였고 지순한 '사랑'이었다.
소생의 계절이었다.
생명과 찬미의 시기였다.
봄의 따스한 감흥들이 그들의 다양한 몸짓과 창을 통해 예쁜 화신들처럼 앞을 다투며 다채롭게 벙글어지고 있었다.
'춘향전'은 이미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스토리다.
하지만 새로운 스펙트럼을 통해 분광되는 예술적 편린들은 전혀 다른 종류의 감동을 선사해 주었다.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신선했고 청량했다.
1부 축하 공연.
'송민숙' 명무(名舞)님과 '왕기석' 명창(名唱)님의 혼을 담은 듯한 열연은 단연 서막을 여는 백미였다.
오랜 시간 정진하며 '명인'의 지경에 도달한 예인의 '자락'(舞)과 '가락'(唱) 앞에서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리 문화예술에 대한 오랜 목마름에 천둥처럼 화답하는, 깊은 산골 숨겨진 옹달샘 같은 시원적 맑음과 울림의 감동이었다.
우리의 창극, 우리의 소리에 대한 깊은 반향이었다.
나는 한 순간도 귀와 눈을 뗄 수 없었다.
1막의 '쑥대머리' 부분과 2막의 '춘향집 후원', '암행어사 출두' 부분에선 더욱 가슴이 먹먹해졌다.
스토리의 익숙함을 뛰어 넘는 연기자들의 열연이 빛나는 대목이었으니까.
때로는 신명나고 구슬프게, 때로는 결연하고 처연하게 사랑과 신뢰를 소리로 엮어내는 전통 창극만의 진수가 그곳에서 흥건하게 묻어나고 있었다.
"욕봤다, 그리고 진심어린 감사를 전한다"
무대의 막이 내려지고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예서제서 감사를 전하는 목소리들이 봇물처럼 터졌다.
저마다 다른 곳에서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밤과 휴일에만 모여 짬짬이 맹 훈련을 거듭하며 우리의 문화와 예술을 진작하기에 여념이 없는 예쁜 사람들.
그들에게 온 마음을 다해 깊은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소리마루'를 이끌어 주시는 정승무 회장님, 지도교수로서 노고가 많으신 김학용 명창님, '소리마루'의 발전을 위해 많은 물심양면으로 많은 성원을 보내주신 유영대 국립 창극단 예술 감독님, 이도령과 춘향으로 열연한 김재관님과 김유나님을 비롯한 수 많은 소리마루 회원님들께 다시 한번 심심한 감사를 전한다.
'오페라'나 '뮤지컬'은 함께 호흡할 수 없는 장르다.
물론, 중간 중간에 박수를 보낼 수는 있지만 관객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힘을 북돋아 가면서 흥과 끼를 함께 엮어갈 수는 없는 공연이다.
관객들은 무대에서 전해지는 그들의 퍼포먼스를 일방적으로 감상해야 하며 최대한 정숙할 것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창극은 다르다.
"얼쑤", "잘한다", "좋다", "그렇지" 하면서 동반의 마음으로 '추임새'를 넣었다.
우리 소리, 우리 가락만의 또 다른 감흥이었다.
우리 전통의 창극은 그런 추임새가 잦을수록 좋았다.
양방향의 소통이었고 서로에게 보내는 격려와 배려였다.
그게 아름답고 멋졌다.
여유와 해학 그리고 진정한 '어울림의 예술장르'가 질펀하게 펼쳐진 축복의 주말이었다.
공연장을 나서며 기원했다.
부디 '소리마루'에 더 큰 성장과 발전이 있기를,
우리 것, 우리 문화, 우리 예술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점진적으로 세계를 향해 힘차게 뻗어 갈 수 있기를,
어둑어둑해지는 해넘이의 하늘을 바라보면서 마음 속으로 간절하게 기도했다.
수고하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깊은 감사와 사랑을 전하고 싶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아름다운 사람들.
아름다운 우리 가락.
"소리마루여, 영원하라"
2010년 12월 15일.
심야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