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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손가락

B to C

작성자현기욱|작성시간24.02.17|조회수88 목록 댓글 0

 
 
후배가 찾아왔다.
고민이 많다고 했다.
원래는 한 시간 정도의 미팅을 하려했는데 서로 깊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3시간이 지나 있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흐른 지 몰랐다.
 
후배는 꽤 큰 사업을 했었다.
돈도 많이 벌었다.
그런데 2008년 9월.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대형 폭탄이 터졌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리만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전 세계의 경제가 극심하게 요동쳤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침체였다.
 
강력한 미국발 '금융위기'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세계는 격랑 앞에서 심하게 출렁거렸고 부실했던 기업들이 줄줄이 침몰했다.
후배도 그 유탄을 맞았고 큰 고초를 겪었다.
후배의 태만이나 과오는 아니었지만 원청기업의 도산으로 함께 무너졌다.
허무했고 가슴이 미어졌다.
 
"이제 사업을 접을까 해요. 앞이 보이지 않네요"
"건물까지 모두 정리해도 몇 억의 빚이 남을 것 같다"고 했다.
지난 10여 년 간 숱하게 흘렸던 땀과 쏟았던 열정의 열매는 그렇게 아픈 상처만을 남긴 채 마무리 되고 말았다.
그러면서 앞으로 어떤 일을 했으면 좋을 지를 물었다.
 
후배도 벌써 사십대 후반이었다.
1-2년만 지나면 곧 쉰 살이 될 터였다.
결코 작지 않은 나이였다.
자녀들에게도 한창 돈이 들어갈 때였다.
 
"사업을 하되 초기 투자가 많지 않은 것 그리고 60대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보라"고 했다.
"더 이상 'B to B'는 하지 말고, 철저하게 'B to C' 형태의 사업을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래야만 외부의 쓰나미로 인해 자신의 사업이 동반 침몰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외부의 파도나 환경 때문에 문을 닫아야 한다면 이 얼마나 애통하고 가슴 아픈 일이겠는가.
 
비즈니스의 디테일한 각론보다는 사업의 형태와 구조에 대한 얘기를 주로 했다.
그리고 미래의 세상 흐름에 대한 서로의 생각과 준비하고 있는 내용도 진지하게 나눴다.
각 가정 얘기, 각자 사는 얘기, 책임자로서의 태도와 스피릿에 대한 얘기들도 공유했다.
서로의 의견에 깊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3040 시기에는 한두 번 실패의 쓰라림을 겪는다 해도 다시 힘을 내서 얼마든지 재기할 수 있다.
그러나 '지천명' 이후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체력, 정신력, 자신감, 자녀들 지원, 노후준비, 인적자원, 자본조달, 열정 등등 모든 부분에서 부담은 커지고 제반 역량은 급격한 하향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더욱 조심하고 다각도로 심사숙고하라고 당부했다.
 
"어느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끝까지 고객에게 집중하고, 초심을 잃지 말며 뜨거운 열정으로 임하라"고 했다.
"화려한 것, 폼잡는 것, 편안한 것을 멀리하고 한결같이 내실을 다지는 라이프 스타일을 견지하라"고 했다.
"다시 세월이 흐른 뒤에 사업의 열매가 잘 익어 풍성하게 수확할 수 있다면 그땐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열심히 나누고 섬기자"고 했다.
 
서너 달 후에 동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의 사무실에서 다시 만났다.
그는 새로운 영역에서 뜨겁게 뛰고 있었다.
사랑하는 후배의 야무진 도전에 힘찬 박수를 보냈다.
작지만 튼실하기를 바랐다.
그의 나무가 광활한 대지에 견조하게 착근하기를 기도했다.
 
자고로 '백만대군을 이기는 것보다 극기가 훨씬 더 어렵다'고 했다.
그랬다.
맞는 말이었다.
본디 사업이란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일이다.
사막에 강을 내고, 광야에 길을 뚫는 무지 힘든 도전이다.
남이 닦아 놓은 길을 편하게 갈 수도 있다.
그런 인생도 나름대로는 멋지고 아름답다.
하지만 열 배 스무 배 더 힘들지라도 황무지를 개간해 옥토로 만드는 일은 훨씬 더 값진 여로일 것이라 믿는다.
 
'엔드 유저'를 향해 가는 중간지점, 즉 'B to B'가 아니라 '최종 소비자'를 직접 만나 그들을 감동케 하며 시대상황에 흔들림 없이
자신만의 비즈니스를 실속있게 끌고갈 수 있는 'B to C' 사업모델이라 나도 기쁘고 감사했다.
고객에게 더 집중할 수 있기를, 그리고 더 겸손하며 더 열정적으로 진력해 주기를 기도했다.
아우는 누구보다도 잘 헤치며 전진할 사람이었다.
황소같은 우직함에 늘 배우려는 그의 마인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중년의 나이에도 익숙함과 편안함을 과감하게 파기한 채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나는 이 땅의 많은 도전자들에게 주님의 은총과 가호가 늘 함께 하기를 기원해 본다.
심신이 올곧은 아우에게도 이 지면을 빌려 다시 한번 깊은 사랑과 감사를 전한다.
파이팅 !!!
 
 
 
 
2011년 3월 28일,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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