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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손가락

기도모임 형제들

작성자현기욱|작성시간26.01.28|조회수44 목록 댓글 0

 
 
 
 
협잡과 부패로 얼룩진 환멸의 시대다.
이런 세태속에서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국민들도 밝은 미래를 얘기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이 땅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청년들의 희망과 꿈까지 깔아뭉개고 짓밟아버린 현 정권의 작태를 보았다.
지금까지 오롯이 보듬어 왔던 한 줄기 소망마저도 처참하게 무너지는 듯한 비애감이 밀려들었다.
 
'기도모임' 형제들이 모였다.
더 기도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과거에 직장생활할 때 각 계열사의 대표를 맡았던 사람들이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기도하기 위해 모이고 있다.
기도 만이 아니라 서로 격려도 하고 진솔한 삶을 나누기 위해 바쁜 시간들을 쪼갰다.
 
내겐 매우 귀하고 소중한 형제들이었다.
통상 10-12명 정도가 모이는데 대부분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라 일이 바쁘면 나오지 못했다.
이번엔 6명이 모였다.
이 형제들이 있어 그저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한 형제가 '스파게티 전문점'을 오픈했다.
정통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상호는 '따라멜리 19'였다.
오픈 축하도 할겸 이번 기도모임을 그 레스토랑에서 갖자고 했고, 형제들도 모두가 좋아했다.
식사 중에 레스토랑 상호가 왜 '따라멜리 19'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쥔장 형제가 "이십 몇 년 전에 이태리 지사장으로 근무할 당시 지사의 주소가 따라멜리 19였다"고 했다.
이태리 지사 주소가 상호가 된 케이스였다.
 
그 당시 나는 불루진 사업부의 책임자였고, 누구는 해외지사장이었으며 누구는 캐주얼 1-5, 아동, 호텔, 건설, 유통, 스포츠, 신사, 숙녀, 주얼리, 구두, 시계와 악세서리, 사목과 채플, 인사와 교육, 해외소싱 등등 다양한 영역의 책임자들이 이 기도모임의 멤버였다.
 
레스토랑 사장이자 '요리사'였던 형제가 주방에서 정성스럽게 요리해 준 스파게티를 먹었다.
과연 일미였다.
지중해의 푸른 물결과 잔잔한 해풍이 입안 가득히 퍼지는 듯햇다.
여느 때처럼 식사를 마치고 나눔과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밤 늦게까지 끝나지 않았다.
기도모임 형제들이 모이면 늘 그랬다.
교제와 나눔의 시간이 값지고 소중했던 만큼 밤이 깊도록 이어졌다.
 
무능하고 영혼 없는 '박근혜 정권' 하에서 '최순실 게이트'의 온갖 추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완전 진흙탕이었고 병폐의 온상이었다.
탐욕으로 얼룩진 인간들의 삿된 욕망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정말로 비루했고 어처구니 짝이없는 '권력질'이자 '권력놀음'에 다름 아니었다.
'무철학', '무원칙', '무개념'이 창궐한 이 헛된 세상에 어디 한 군데라도 '올곧은 가치'와 '강건한 기상'이 착근할 공간이 있었겠는가.
그래서 우리 형제들은 갈급하고 간절한 심정으로 기도했고 주님의 임재와 섭리를 간구했다.
사는 날 동안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삶의 의미'와 '신앙의 근원적 소명'에 대해 자복하고 다짐했던 시간이었다.
 
난마처럼 얽힌 이해관계의 매듭을 풀고, 시끄러운 정치판 너머 머나먼 소망의 대지에서 불어오는 '진실의 눈빛'과 '생명의 찬미'를 우리 주변에 적극적으로 이식하며 뜨겁게 살자고 했다.
누가 보든 말든, 누가 뭐라고 하든 말든, 타인의 판단이나 시선 따위엔 마음 쓰지 말고 오로지 '기도했던 대로', '간구했던 대로', '소망했던 대로' 어렵고 힘든 길일지라도 흔들림 없이 가자고 했다.
그래서 각자의 '소명과 미션'이 중요할 따름이었다.
어차피 인생은 나그네 길이니까 말이다.
열심히 살다 어느날 홀연히 귀천할 수밖에 없는 '속절없는 존재'였다.
그래서 각자에게 부여된 일상을 열정적으로 살되 욕심은 내려놓은 채 더 나누고 더 섬기며 살자고, 형제들끼리 다짐했다.
 
주님께서 명령하신 생명의 '축복'과 '한계'를 바로 알고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 기도했다.
푸른별 지구 여행자, 즉 나그네로서의 근원적인 '속성과 한계'를 제대로 헤아리기 위해 나는 새벽마다 큐티를 빼먹지 않았다.
그 한계를 망각하는 순간 인생은 십중팔구 '정죄의 툇마루'로 변질되기 십상이었으니까.
 
작금, 우리는 절망과 상실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한 복판을 지나면서 나는 새벽마다 주님께 자복하고 회개했다.
5년짜리 그 찰나 같은 권력은 삿되고 헛된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뿐만 아니라 어느 시대, 어느 공간, 어느 역사를 막론하고 '권력의 종말'은 대개 그랬다.
영원한 것은 생명을 향한 '소망'과 '사랑', '헌신'과 '배려'였다.
영원한 건 그것 뿐이었다.
 
어젯밤 늦게까지 '이대역' 부근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사랑하는 형제들의 기도모임이 있었다.
그리고 오늘 새벽, 나는 04시에 출근해 홀로 내 사무실에서 큐티를 진행했다.
기도 후에 다시 한번 내 마음판에 '기도했던 바'를, '서원했던 바'를 새겨 넣었다.
그 핍진한 기도문을 새겨넣은 채 또 다시 힘찬 하루를 시작해 보려 한다.
 
요즘 자꾸만 '난득호도(難得糊塗)'를 생각하게 된다.
아마도 무능의 극치를 달렸던 '박근혜 정부'와 그 권력의 구중심처에서 서푼짜리 '권력놀음'에 취했던, 허접하고 불쌍한 영혼의 '최순실 게이트' 때문일 게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다.
사랑하는 모든 분들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해 마지 않는다.
주님의 은총과 평강이 온누리에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브라보.
 
 
 
 
 
 
 

 
 
 
 
 
2016년 11월 9일.
수요일 아침에,
새벽에 큐티를 마치고,
어젯밤 기도모임을 생각하며 몇 자 적었다.
사랑하는 나의 형제들.
모두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빈다.
영혼이 맑고 마음이 따뜻한 형제들에게 사랑과 감사를 전하고 싶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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