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초순,
대학 동아리, 'VINE 친구들'의 '송년모임'이 있었다.
모임이 끝날 즈음에 모교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한 친구가 제안을 했다.
"감동적인 연극이 있는데 새해 벽두에 단체관람을 하는 게 어떨까"라고 했다.
반대할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그렇잖아도 모두가 문화와 예술을 좋아하는 친구들이었다.
매우 좋은 제안이었다.
단박에 의기투합이 이루어졌다.
필요 경비도 바로 각출했다.
바삐 살다보니 한 달이 급류처럼 흘렀다.
지난주 금요일 퇴근 후, '동아리 친구들'이 다시 대학로에 모였다.
식사부터 했다.
대학로에서의 식사는 오랜만이었다.
식사 후에 커피를 테이크 아웃하여 '자유극장'으로 갔다.
그곳에서 '앵콜공연'에 돌입했던 바로 그 작품, <여보 나도 할 말 있어>를 관람했다.
연극 <여보 나도 할 말 있어>는 신생 극단인 '나는세상'에서 무대에 올린 작품이었다.
그 극단의 '김영순 대표'가 집에도 가지 않은 채 찜질방에서 꼬박 3개월 동안 먹고 자면서 그곳에서 각본을 썼다.
또한 그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과 대화했으며 치열하게 사유했던 작품이었다.
연극의 얼개도 찜질방에서 완성했다.
한마디로 찜질방에 의한, 찜질방을 위한, 찜질방의 공연이었다.
육필로 썼고 온몸으로 연출했다.
그만큼 진솔한 땀의 결정체였다.
'김 교수'의 소개로 공연장 입구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녀와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고마운 일이었다.
한 눈에 척 봐도 품격과 교양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공연 후 귀가하여 그녀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상업계 고교를 졸업했고 곧바로 취업하여 일을 하다가 30대에 늦깎기로 유학을 떠났다.
'뉴욕대'에서 공부한 성실맨이었고 노력파였다.
11년 간 미국에서 연극과 공연에 대한 공부와 경험을 축적한 뒤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때가 5년 전이었다.
귀국 후엔 집필과 강의, 공연, 극단대표 등으로 눈코 뜰새 없이 바삐 살았다.
한마디로 그녀는 '열정맨'이었다.
객석 정 중앙, 그것도 맨 앞줄에 앉았다.
이 공연의 콘티와 구성은 다른 공연과 확연히 달랐다.
스토리에 대한 '기승전결'의 전개방식이 아니었다.
소 주제별로 단락과 맥락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스토리의 일관된 연결이 아니라 뜬금없이 전혀 다른 장면들이 전개되곤 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연출가의 의도와 취지를 한 흐름으로 매끄럽게 엮어가는 '옴니버스' 공연이었다.
영화나 소설, 뮤지컬에선 가끔씩 접했던 전개방식인데 연극에선 생소했다.
좁은 공간에서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며 섬세한 표정 하나, 호흡 하나, 땀방울 하나까지 가까이서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현장감과 압권이었다.
연극무대의 특징과 속성이 그대로 녹아흘렀다.
연극에서의 '옴니버스'는 다소 생경했지만 그만큼 신선했고 집중도도 높았다.
반복되는 감동의 원천, 다양한 눈물과 감성터치, 그런 멀티플 포인트가 바로 '김 대표'가 추구했던 '옴니버스 형식'의 스토리텔링이었다.
남녀노소 누구라도 마음 편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시종일관 가슴이 먹먹했다.
미혼보다는 기혼에게, 청년보다는 중년에게,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더 깊고 넓게 심금을 울리게 했던 수작이었다.
나니나 다를까 여자 동기들도 하나 같이 손수건을 꺼내서 닦기 바빴다.
남자들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나도 여러번 눈가를 훔쳤다.
우리들 모두의 내면에 잠재된 통속적인 서사였다.
우리네 부모님의 진솔한 뒷모습이자 자식들의 속 깊은 고백이었다.
고부간의 숨길 수 없는 애증이었고 동시에 평범한 이웃들의 질박한 편린이었다.
먹먹한 감동에 완벽한 공감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랬다.
이 연극을 딱 한 문장으로 축약한 '시놉시스'도 바로 이런 스토리였다.
물론, 중간 중간에 해학과 골계가 넘쳐흘렀다.
하지만 그 유머와 웃음 이면엔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파생되는 아픔과 절망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그 슬픔과 고통을 딛고 다시금 희망과 치유의 삶으로 승화시켜 나가는 절절한 '찬가'였다.
마치 까마득한 수평선 너머에서 하늘과 바다가 같은 빛깔로 만나 끝내 한 선과 한 몸을 이루는 것처럼 말이다.
그 회복과 갱생은 '광야의 길'을 통과하고 '사막의 강'을 건넜던 사람에게만 임하는 정금같은 축복일 터였다.
모든 관객들에게 아주 쉽고 편안하게 다가갔지만, 느낌과 감동의 여과지는 저으기 묵직했고 진중했다.
그리고 못내 애달팠다.
한마디로 골계와 눈물로 교직해 낸, 핍진한 작품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유머와 박장대소 안에서 어느 순간 강렬한 울림과 감동이 눅진하게 흘렀다.
그런 눈물과 뭉클함을 '무지개떡' 위에 '고명'처럼 얹어서 맛깔스럽게 막 쩌낸 대학로 '문화 방앗간' 같았다.
교양과 열정을 두루 갖춘 중년 미혼 여성, '김영순 대표'가 얘기하고 싶었던 작품 속 메시지도 바로 이것이었으리라.
인생은 절대로 만만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나와 당신만 힘든 게 아니었다.
또한 어느 한 사람만의 질곡도 아니었다.
누구나 '대동소이'한 삶의 여정을 엮어가고 있었다.
누구의 인생이든 대개 비슷한 삶의 궤적이라고 이 작품은 은유와 복선을 통해 그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그 깨달음과 통찰이 성숙과 감사로 가는 길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통총량의 법칙'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칙이었다.
농삿일이 풀과의 전쟁이듯 인생도 다양한 갈등과의 전쟁임을 다시 한번 저릿하게 일깨워 준 연극이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갈등과 번민은 피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치유와 회복'은 절대적으로 각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또한 '치열한 성찰', '간절한 기도', '진심어린 노력' 여하에 따라 하늘과 땅 만큼이나 다르게 표출되는 삶의 일기장이자 회고록이었다.
이 공연은 중저음 사자후처럼 명징하고 묵직하게 '감동과 성찰', '눈물과 소회'를 관객들의 가슴판에 새겨넣고 있었다.
오랜만에 먹먹한 눈물을 쏟았던 시간이었다.
고마운 일깨움이자 시원한 '카타르시스'였다.
런닝타임은 약 100분 정도였다.
백 분 중 칠할 정도는 계속 폭소가 터졌으며 어느 땐 배가 아플 정도로 웃었다.
극장이 '요절복통'의 도가니로 돌변하기도 했다.
시종일관 유쾌했고 재미 있었다.
연기자들은 관객들의 감성과 서정을 하나하나 끄집어 내 자신의 찜질복 주머니에 우겨넣기 일쑤였다.
그리고는 인정사정 없이 야멸차게 낚아챈 뒤에 격하게 흔들어댔고 찜질방 바닥에 세차게 메치기도 했다.
그들의 신들린 연기력에 우리의 영혼은 속수무책으로 빨려들어 갔다.
그 블랙홀의 언저리에서 침을 한번 꼴딱 삼키는 순간, 여지없이 마룻바닥에 내동댕이 처졌다.
심신의 무장이 헤실헤실 풀어졌고 끝내 낱낱이 해체됐다.
어느 곳에선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졌고, 한순간에 격정의 비등점을 찍으며 하늘로 튀어오르기도 했다.
시종일관 유쾌했고 흥에 겨운 전개였지만 어느 대목에선 여지없이 손수건이 필요했다.
스토리가 제 아무리 탄탄하고 짱짱해도 연기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그건 이미 사람 떠난 빈들이자 불 꺼진 항구였다.
한국에서 제일가는 연기파 배우들의 맛깔스런 입담과 발군의 연기력에 경탄했다.
또한 그들의 빼꼽 빠지는 해학 앞에서 관객들은 모두가 폭소를 터트렸고 수도없이 손뼉을 쳤다.
연방 환호가 쏟아졌다.
그러면서도 중간 중간에 눈물 쏙 빠지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절묘한 콘티였다.
우리가 관람했던 공연엔 '유형관', '김태양', '우상민', '김정하', '허인영', '권혜영 씨' 등 한국 연극계에서 내로라 하는 실력파 배우들이 무대를 쥐락펴락했다.
그런 기라성 같은 배우들 덕분에 관객들은 감동의 심연 속으로 깊게 깊게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백 분이 마치 십 분 같았다.
행복하고 감사했다.
연출자의 예술적 감각과 인사이트, 연기자들의 혼을 담은 열연이 대학로를 감동의 땅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대학로가 한국 종합예술의 메카로 평가받는 건, 그래서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었다.
서초동의 예술의전당, 광화문의 세종문화회관, 홍대나 명동, 강남, 역삼, 삼성의 대형 무대들을 종종 접하며 살았지만,
역시 대학로는 대학로만의 고유한 향기와 색깔이 있어 좋았다.
나만의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예향의 농도와 질박함으로는 아마도 이곳을 뛰어넘을 곳이 없지 않을까 한다.
내가 마음 속으로 가끔씩 반추하는 문장이 하나 있다.
"의미있는 인생은 숨을 쉰 횟수에 의해서가 아니라 숨 막힐 정도로 가슴 벅찼던 경험과 추억에 의해서 평가받는다"라는 문장이다.
내 마음 속에 살아 숨쉬는 이정표이기도 하다.
인생의 감동과 행복도 같은 방향이자 맥락이 아닐까 싶다.
나이가 들수록 인맥은 좁아지기 마련이다.
또한 낯가림도 심해진다.
어쩔 수 없다.
그게 '인지상정'이니까.
옛날엔 '어디를 가느냐가 중요했지만 이젠 누구랑 가느냐'가 훨씬 더 중요해졌다.
캠퍼스 시절, 그 싱싱하고 푸르렀던 시기에 '봉사 동아리'에서 만났던 소중한 친구들이었다.
이 친구들과의 '문화행사'여서 더욱 감미롭고 감동이 깊었던 것 같다.
이 벗들과는 노후에도 자연스럽게 동행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동기모임'을 리드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렇게 기도하며 지냈고 그런 생각으로 흔들림 없이 배려했고 노력했다.
나는 우리들의 순수와 신뢰를 자산으로 삼아 우정의 미래의 밑그림을 차근차근 그려갈 생각이다.
또한 나는 추억이 풍부하고 감사가 깊은 관계를 꿈꾸고 있다.
금전적인 부유가 아니라 문화, 예술, 나눔이 씨실과 날실되어 다채로운 문양으로 모자이크 되어가기를 바랄 따름이다.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분광되며 멀리까지 퍼져나가는 영혼의 풍요를 소망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 관점의 경험과 사유룰 순수한 우정의 도가니에 넣고 향기롭고 예쁘게 버무릴 생각이다.
앞으로도 나의 건강이 허락되는 한 그런 역할을 게을리 하지 않을 참이다.
긴 인생길.
함께 울고, 함께 웃을 수 있는 벗들이 있어 고맙다.
좋은 기회를 제안해 준 경희대의 '김 교수'와 동행해 준 친구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전한다.
이 작품은 1월 하순에 종연될 예정이다.
아직 관람하지 않은 분이 있다면 꼭 감상해 보실 것을 권하면서 동아리 친구들의 모임 후기를 맺을까 한다.
인생은 아름답다.
배려와 존중을 잘 알고 잘 행동하는 대학친구들이 있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봉사 동아리, VINE'
소중한 벗들에게 진심어린 사랑과 고마움을 전한다.
브라보.
2018년 1월 14일, 일요일.
사랑하는 친구들을 생각하며,
대학로 모임과 문화행사에 대한 소회를 기록해 보았다.
항상 고맙다 바인 19기 친구들.
새해 복 많이 받고 언제나 건강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