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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손가락

초동친구

작성자현기욱|작성시간26.03.17|조회수57 목록 댓글 0

 
 
 
나는 1964년 9월에 태어났다.
여덟 살이 되던 해인 1971년 3월에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거기서 동급생들을 만났다.
나의 선택이 아니었다.
운명같은 '관계'였다.
우리는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6년 후인 71년 3월에 면 단위에 달랑 하나밖에 없는 '중학교'에 진학했다.
시커먼 교복에 머리를 빡빡 밀고 등교했다.
'국민학교' 세 곳에서 모여든 어린 학생들.
또 그렇게 내 의지와 무관하게 3개 학급, 백팔십여 명의 동창생들이 생겼다.
축복이었다.
'죽마고우'라고 부를 수 있는 순박하고 부끄럼 많던 시골 아이들이었다.
 
시간이 쏜살같이 흘렀다.
어느새 청년이 되었고 군복부까지 마쳤다.
캠퍼스를 떠나 사회에 진출했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정신없이 살았다.
그렇게 삼십대 초반이 되었을 무렵 문득 '초동친구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보고 싶었다.

모임을 만들자고 했다.
고향 앞으로 유장하게 흐르던 강의 이름을 따서 '금강회'로 명명했다.
 
서울,경인 지역에 살면서 평소에 많이 그리웠던 고향친구들 10명이 뜻을 모았다.
그 중 8명은 '국민학교' 1학년 때 만났던 친구였고, 2명은 '중학교' 때 만났던 친구였다.
'간담상조'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환상적인 '의기투합'이었다.
회칙도 만들었고 회비도 걷었다.

 

해마다 4차례씩 변함없이 만났고 애경사도 철저하게 챙겼다.
자녀들이 '초등학교'에 취학하거나 '중,고,대'에 진학할 때마다 소정의 축하금을 지급했다.
또한 기념일, 창업, 승진을 꼬박꼬박 챙겼다.

정기 산행과 트레킹, 가족동반 여행도 해마다 빼먹지 않았다.
그렇게 이십여 년간 '지란지교나 '관포지교'가 실감날 정도로 다정하게 지냈다.
 
우리들 우정, 어느새 우정 45년째다.
금년 4월 초순에 '봄날여행'을 다녀왔다.
'제주도'였다.
최근에 개통한 '호남선 KTX'를 타고 '광주'로 가서 1박했다.
기막한 '청둥오리 전문점'이 있어서 일부러 광주에 들었다.

그런 다음 '광주공항'에서 '제주'로 갔고 그곳에서 2박하는 일정이었다.
제주만의 멋진 풍광과 빼어난 경치를 가슴 속에 퍼담았다.

 

그곳의 맛있는 음식들도 많이 먹었다.
예컨대 '오분자기', '제주 흑돼지', '전복 뚝배기', '성게 미역국', '싱싱한 횟감', '갈치요리' 등이었다.
매 끼니마다 '왕후의 밥상'이었다.
'올레길', '비자림 천년 숲길', '사려니 숲길', '몇 군데 오름 탐방', '바닷가 카페' 등에서 제주의 독특한 자연을 만끽했다.
마냥 즐겁고 행복했다.
 
우리는 45년 이상을 더불어 살았던 사이였다.
그런 벗들이었기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흐뭇했고 훈훈했다.
진정으로 멋진 시간이었다.
과해서 넘치지도 않았고 부족해서 결핍을 초래하지도 않았다.
친구들 모두가 그렇게 젠틀하게 처신했다.
그랬기에 장구한 세월 동안 서로 낯을 붉히거나 갈등한 적도 없었다.
 
과거보다는 미래를 생각했다.
'아전인수'보다 '배려와 공존'을 간구했다.
그렇게 수많은 추억들이 우정이란 테마로 강물 속에 녹아들었다.
그런 토대 위에서, 우리들의 우정이 환한 웃음꽃으로 피어났다.

난 '금강회'가 참 좋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개인적으로 모임이 꽤 많은 편이지만 그중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귀한 안식처였다.
 
옛말에, "당신 인생을 반추하고 싶다면 당신이 만나는 친구들, 그중에서도 오래된 벗들의 얼굴을 보라"고 했다.
진리였다.
이 명제는 세월이 흐를수록 긍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이 아름답고 향기로운 이유가 있다.
그것은 타인을 위해 '희생', '헌신', '배려'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지천명'을 넘겼다.

아직 '백아절현'을 생각할 때는 아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모두 건강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회원들이 다 평안하고 무탈하다.
그러나 내일 일을 누가 알 수 있으랴.
어느날 불연듯 누군가가 아플 수 있고 더날 수 있다.

그런다 해도 한평생 사랑했고, 헌신했으므로 후회는 그리 크지 않을 듯하다.
지금도 '초동친구들'을 생각하면 소싯적 아득한 이미지들이 두둥실 떠오른다.
'부뚜막', '부지깽이', '엄마', '홀태', '고무신', '여물통', '용수', '방패연', '썰매', '삘기', '바작', '멍석', '굴뚝' 같은 영상들이다.
못내 살갑고 정겹기 그지 없다.
 
소중한 벗들에게 이 지면을 빌려 다시 한번 깊은 사랑과 감사를 전하고 싶다.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어도 서로를 향해 호탕하게 웃으며 마지막 여정을 함께 엮어가고 싶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친구들이다.

따뜻한 손길, 순수한 영혼이 있어 지금까지 행복할 수 있었음에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다.

'초동친구들'과 각자의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늘 충만하기를 기도해 본다.
 
"함께 여서 고맙고 늘 사랑한다. 언제까지나 건강하시길"
 
 
 
 
 
 

 
 
 
 
 
 
2015년 5월 1일.
 
고향친구들과의 광주 / 제주 여행을 추억하며 몇 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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