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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손가락

월드컵 경기장에서

작성자현기욱|작성시간26.06.19|조회수37 목록 댓글 0

지금 '2026 북중미 월드컵 대회'로 인해 전 지구가 뜨겁다.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과거에 있었던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의 추억이 떠올라 오래된 일기장을 다시 펼쳐 보았다.
여전히 풋풋한 미소와 감사가 피어올랐다.
 
 
 
 
 
 
2002년도에 한국에서 '월드컵 대회'가 개최되었다.
그 당시 전 세계의 이목이 '한국'에 집중됐었다.
그 중심에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이 있었다.
월드컵 대회가 끝난 이후로 지금까지 여러 번 경기장을 찾아갔다.
축구경기 때문이었다.
갈 때마다 경기장 특유의 열기와 함성에 압도되곤 했었다.
리프레시엔 최고였다.
 
2016년 3월 20일, 일요일.
오후 2시.
한국 '프로축구'의 최고 명문가 중 하나였던 'FC 서울'과 '상무'의 중요한 일전이 있었다.
언제 만나도 반갑고 살가운 '행정학과 친구들'과 함께 경기장을 찾았다.
'단체참관'이었다.
1시 30분에 입장했다.
 
그런데 우리의 자리는 일반석이 아니었다.
우리들이 자리한 곳은 상암 경기장의 'VIP 전용 공간'이었다.
이름하여 '스카이 박스'였다.
그 경기장에 여러 번 갔던 나도 정작 그런 공간이 있는지 몰랐다.
일반인들은 알 수 없는 비밀의 룸이었다.
"오호, 상암 경기장에 이런 곳이 있었어?"
나도, 친구들도 'SKY BOX'엔 처음이었다.
그 공간에 입장해 보니 매우 아담하고 아늑했으며 편안한 곳이었다.
 
대형 통유리를 통해 드넓은 운동장과 응원석이 한눈에 들어왔다.
내부 공간은 어느 호텔의 고급 레스토랑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십여 명이 앉아 식사를 함께 할 수 있는 큰 라운드 테이블이 2개 있었다.
그리고 그 테이블 위엔 고급 와인과 보르도 타입 와인잔, 각종 식기들이 깔끔하게 세팅되어 있었다.
룸 한쪽 변면을 따라 정갈하고 맛깔스러운 음식들이 뷔페식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맥주 및 각종 음료는 얼음이 가득 찬 큰 통에 잔뜩 잠겨 있었다.
"여기가 운동장이 맞는가?"
우리는 많이 놀랬고 감동했다.
한마디로 'WOW'였다.
 
맛있는 식사에 와인을 곁들이며 축구경기를 관람했던 경험은 매우 색다른 체험이었다.
그래서 기분이 고조되었고 행복감이 가득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준 친구에게 깊은 감사를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친구는 대학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했다.
언제나 웃는 얼굴에 겸손했고 그러면서도 실력까지 겸비한 친구였다.
그랬던 까닭에 그는 늘 선두주자로 승진했다.
이윽고 그는 중역이 되었다.
자타가 공인했던 재목이었다.
 
어느 날 그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현 회장, 우리 친구들에게 식사 한번 근사하게 대접하고 싶네. 그런데 장소가 레스토랑이 아니고 운동장일세"
"운동장이라니? 어떤 운동장에서 식사를 하는데?"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이야"
"아니 그곳에 근사하게 식사할 장소가 있는가?"
"나머지는 나에게 모든 걸 맡기고 친구들만 규합해 주소. 운동장에 VIP룸이 있는데 입장부터 식사 및 모든 서비스까지 내가 알아서 어레인지 할게. 현 회장은 친구들에게 고지하여 참가 가능한 숫자만 통보해 주시게"
"아아, 자네의 배려에 깊은 감사를 전하네. 오케이. 인원파악은 금방 가능하지. 3일 이내로 답신을 보내줌세. 고맙네"
우리나라 4대 그룹사의 한 곳에서 중역으로 근무중인 친구가 아니었으면 상암동 운동장의 VIP 관람석에서 식사를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솔직히 나는 '스카이 박스'가 있는 지도 몰랐다.
그 친구의 깊은 배려에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다.
 
경기는 'FC서울'의 대승으로 끝났다.
경기가 긑나자 수많은 관중들이 썰물처럼 일순간에 빠져나갔다.
텅 빈 운동장을 바라보며 우리는 '전용공간'에서 한참을 더 머물렀다.
상호 간의 근황과 정담을 나누며 감미로운 시간을 보냈다.
호텔 레스토랑처럼 '고객'을 위해 최선을 다해 서빙하는 젊은 직원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후식으로 제공된 커피와 전통차도 좋았다.
경기장 입장부터 떠날 때까지 모든 것이 최상이었고 무료로 제공되었다.
언제 만나도 반갑고 살가운 친구들, 그들과의  시간이었기에 시종일관 행복했고 감사했다.
 
'스카이박스'에 꽤 오래 머물렀다.
김미로운 시간을 보내고 경기장 밖으로 나왔지만 그대로 헤어지기가 싫었다.
경기장에서 지근거리에 있는 '마포 농수산물 도매시장'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엄청나게 큰 광어 한 마리, 그리고 전복, 굴, 낙지 등 다양한 해산물을 곁들여 소주를 마셨다.
아기자기했고 다감한 시간이었다.
마침 미국에서 온 친구도 동행했다.
부산, 진주, 세종 등 경향 각지에서 달려와 준 친구들의 건강한 하모니가 있었기에 더욱 고마운 시간이었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전철로 돌아오는 길.
나는 '배려와 감사'를 생각했다.  
대여섯 명은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을 방문한 것도 난생 처음이라고 했다.
그만큼 모두가 바삐 살았던 삶이었다.
한 친구의 배려로 이런 값진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귀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친구들을 생각하며 작은 것이라도 나누고 공감하며 함께 하고 싶어 했던 대기업 임원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느꼈다.
이 지면을 빌려 그 친구에게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다.
 
같은 해, 같은 학과에 입학해 운명적인 관계를 맺었던 친구들이다.
총 50명이었다.
조촐한 숫자였다.
우리는 졸업 후에도 각자가 자신의 길에서 열정적으로 살았고 최선을 다했다.
그랬던 사람들이었기에 각자의 뒷모습에 힘찬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행정고시'에 합격해 지금도 각 정부부처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친구들도 여러 명 있다.
국내, 국외에서 사업하는 친구들, 대기업 중역인 친구들, 연구원들, 공직자들, 회사의 팀장급 친구들,
이번에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의 순번을 확정한 친구까지 모두가 각자의 분야에서 열과 성을 다했다.
그런 친구들이 있어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도 회장으로서 역할을 많이 했지만 더 노력하며 살고 싶다.
조건 없는 '나눔'과 '소통'에 더 열심을 쏟고 싶다.
각자 걷는 길은 다르지만 공감과 나눔이 있기에 감사할 따름이다.
중, 고시절의 동창이나 대학의 동창들이 많지만 모두가 절친은 아니다.
'소통과 공감'이 녹아 흐르지 않으면 50대 중반 나이에 '동창'이란 단어는 때때로 공허한 메아리가 되기 쉬웠다.
'동창'이라고 해서 모두가 가까운 '친구'는 아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친구들 승진이나 애경사는 물론이고 각자의 결혼기념일까지 세세하게 챙기며 살았다.
서로 아껴주고 격려하며 지속적으로 손길을 맞잡아 주는 '대학친구들'이 있어 늘 고맙게 생각한다.
 
조건 없는 관심.
조건 없는 배려.
이 세상을 더욱 살만하게 해 주는 유일한 열쇠가 아닌가 한다.
좋은 사람들로 인해 따뜻한 이 봄날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곧 각종 봄꽃들이 유성처럼 대지를 뒤덮을 것이다.
수많은 꽃들은 분명코 자신만의 고유한 '존재가치'가 있기에 매해 그토록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것이겠지.
그래서 제 일 년치 생명력과 모든 에너지를 아낌없이 쏟아부어 찬란한 생을 살고 싶어 하는 것일 테지.
 
겨우내 온갖 신산과 혹한을 이겨낸 화신들.
그리고 각종 수목들.
그들의 진정한 환희와 축제가 곧 뜨겁게 벙글어질 테지.
나도 많이 기다려진다.
우리 사랑하는 친구들에게도 최고의 봄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멋진 사내들에게 다시 한번 사랑과 감사를 전한다.
브라보.
 
 
 
 
 
 

 
 
 
 
 
 
 
2016년 3월 28일, 월요일 저녁에.
 
'상암동 경기장'에서의 경험과 배려 그리고 소중한 추억을 떠올리며,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일기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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