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에서 사라진 폐교
그곳을 떠난 이웃 이웃들
지금은 평균 연령 60대이거나 이를 좀 낮춰주는 어딘가 어두운 그늘이 있는 어린이들...
몇 몇 마을은 관광객을 부르는 민박이나 식당으로 들어차고
뇌리에 박혀있는 옛날의 정이나 그 질감은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읍니다.
復本 또는 歸本은 다른 길이 없이 자연의 리듬에 맞추며 살아가는 것이라봅니다.
이슬로 천수를 다했던 신선이나 上善若水를 남기고 사라진 노인은 전설이 된지 오래입니다. 누구나 그런 삶을 원하지만 천지가 자본의 톱니바퀴에 맞물려 돌아가고 있으니 중생들이야 폐교가 있는 유정했던 동네로 마을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은 폐교가 되어버린 마을들은 자연적인 주거지로서 풍수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가 수백년을 두고 살아왔던 어른들의 고향이었읍니다. 그러니 우리들의 고향이 되겠지요.
해방이후 전쟁이후 우리가 배운 것은 많은부분 참살이에 별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그것마저 못배운 사람은 사회적 자본적 열세에 처했을 확률이 많지만 사람이 살만 찐다고
행복하거나 참 잘사는 것은 아니지요.
참 잘 살지도 못하고 고향으로 갈 수도 없고 처지가 딱한 사람들이 있읍니다. 그냥 소음과 오염속에서 가족과 오손도손 살다가 하얀병원에서의 죽음을 맞이 해도 좋겠지만...
몸은 자연의 리듬속에서 가족이나 사회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살고자 한다면 골짜기든 산 기슭이든 점점이 흩어져 분포했던 마을(폐교가 있었던)로 헤쳐모여야하지만 인간의 문명이 그렇게 허락하지 않읍니다. 인간이 원래 사회적 동물이라 어디서든 사랑을 실천하고 베풀 수 있지만 歸本이 가능한 곳은 자연이 살아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얘기지요. 이런점에서 환경이나 생명의 귀중함은 더욱 가치가 더합니다. 도시에서 망나니는 아니지만 조금씩 황폐해가는
개체가 되어가는 갈지도 모르는 자신이 유감입니다.
언제면 자연에서 고향에서 살 수있을까요? 고향은 있는 것인지도 의문입니다.
고향을 만들고 있는 골짜기 사람들이 부럽읍니다.
그곳을 떠난 이웃 이웃들
지금은 평균 연령 60대이거나 이를 좀 낮춰주는 어딘가 어두운 그늘이 있는 어린이들...
몇 몇 마을은 관광객을 부르는 민박이나 식당으로 들어차고
뇌리에 박혀있는 옛날의 정이나 그 질감은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읍니다.
復本 또는 歸本은 다른 길이 없이 자연의 리듬에 맞추며 살아가는 것이라봅니다.
이슬로 천수를 다했던 신선이나 上善若水를 남기고 사라진 노인은 전설이 된지 오래입니다. 누구나 그런 삶을 원하지만 천지가 자본의 톱니바퀴에 맞물려 돌아가고 있으니 중생들이야 폐교가 있는 유정했던 동네로 마을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은 폐교가 되어버린 마을들은 자연적인 주거지로서 풍수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가 수백년을 두고 살아왔던 어른들의 고향이었읍니다. 그러니 우리들의 고향이 되겠지요.
해방이후 전쟁이후 우리가 배운 것은 많은부분 참살이에 별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그것마저 못배운 사람은 사회적 자본적 열세에 처했을 확률이 많지만 사람이 살만 찐다고
행복하거나 참 잘사는 것은 아니지요.
참 잘 살지도 못하고 고향으로 갈 수도 없고 처지가 딱한 사람들이 있읍니다. 그냥 소음과 오염속에서 가족과 오손도손 살다가 하얀병원에서의 죽음을 맞이 해도 좋겠지만...
몸은 자연의 리듬속에서 가족이나 사회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살고자 한다면 골짜기든 산 기슭이든 점점이 흩어져 분포했던 마을(폐교가 있었던)로 헤쳐모여야하지만 인간의 문명이 그렇게 허락하지 않읍니다. 인간이 원래 사회적 동물이라 어디서든 사랑을 실천하고 베풀 수 있지만 歸本이 가능한 곳은 자연이 살아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얘기지요. 이런점에서 환경이나 생명의 귀중함은 더욱 가치가 더합니다. 도시에서 망나니는 아니지만 조금씩 황폐해가는
개체가 되어가는 갈지도 모르는 자신이 유감입니다.
언제면 자연에서 고향에서 살 수있을까요? 고향은 있는 것인지도 의문입니다.
고향을 만들고 있는 골짜기 사람들이 부럽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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