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백성의 첫 출발
민수기 10:1-36(구p.211) 찬송 180장 / 찬송 360장 20220806
오늘도 민수기 10장에 기록된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우리가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이 민수기는 훈련의 책입니다. 하나님과 언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준비와 훈련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민수기 1장-10장까지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출발하기 전에 준비하는 내용들이 기록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각 지파 별로 싸움에 나갈 만한 사람들의 숫자를 다 세게 하고, 행진하는 순서와 진 배치하는 순서를 다 정해 줍니다. 성막에서도 아무렇게나 일 하는 게 아니라 해야 할 일들을 분배를 해 줍니다. 성막에 봉사할 레위인들도 하나님께 드림으로 구별하고 철저하게 준비하고 훈련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반듯한 모습을 갖추게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야 드디어 첫 광야의 출발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수많은 백성들을 통솔하고 통제하기 위해서는 모세의 명령을 전달할 도구가 필요했습니다. 그게 바로 “나팔”입니다. 당시에는 오늘날 처럼 확성기나 마이크나 스피커와 같은 장비들이 없었기 때문에 200만이 되는 이 많은 사람들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큰 소리로 소리를 전달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은으로 된 나팔을 두 개를 만들어서 그 나팔을 가지고 다양한 방법으로 신호를 주게 됩니다.
여러분 나팔이라는 말은 “하초츠라”라는 말인데요, 요세푸스라는 역사책에 보면 1규빗에서 조금 모자라는 크기라고 되어 있습니다. 약 50Cm 정도 되는 크기로 만든 나팔입니다.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쇼파르”라는 양의 뿔로 된 나팔을 사용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은으로 된 나팔을 만들게 합니다.
그래서 2절 말씀에 보시면
“은 나팔 둘을 만들되 두들겨 만들어서 그것으로 회중을 소집하며 진영을 출발하게 할 것이라” 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리고 이 나팔을 언제 불어야 할지 다양한 사용 방법들을 설명해 주십니다.
이 나팔의 첫 번째 기능은 “회중을 소집하고 진영을 출발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3절 말씀에 보시면, “나팔 두 개를 불면” 백성들의 전체가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4절 말씀에 보시면 “이 나팔 하나만 불게 되면” 백성들의 대표인 천부장이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이 모세가 백성들 전체를 모으거나 또는 대표자들이 나오게 할 때 이 나팔 두개를 동시에 불거나 하나를 불어서 백성들을 나오게 하는 겁니다.
그리고 두 번째 기능은 “행진하게 하는 기능이”있습니다.
5절 말씀에 보시면, 이 두 개의 나팔을 크게 불면 행진을 시작하게 됩니다.
여기 “크게 분다”라는 말이 “테루아”라는 말인데요, 이것은 빠빠빠빠빠빠 이렇게 굉장히 급하게 아홉 번을 반복을 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면 동쪽에 있는 진영이 출발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6절 말씀에 두 번째 크게 불면, 차례대로 남쪽에 있는 진영이 행진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테루아”크게 불면, 예전에 번역에는 “울려서 불면” 이 진영이 행진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세번째 나팔의 기능은 전쟁에 나갈 때 불게 됩니다.
9절 말씀에 보시면, 전쟁에 나갈 때도 “크게 불지니”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기도 “테루아”빠빠빠빠 이렇게 아홉 번을 반복해서 불게 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대적에게서 구원을 해 주시겠다! 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리고 네번째 나팔의 기능은 절기를 지킬 때 나팔을 불게 됩니다.
여러분 10절 말씀에 보시면
“또 너희의 희락의 날과 너희가 정한 절기와 초하루에는 번제물을 드리고 화목제물을 드리며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시리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특별히 절기를 지킬 때는 4가지 나팔을 부는 방법이 있습니다.
주로 하나님의 경고와 회개를 촉구하는 나팔을 불게 됩니다.
첫번째는 테키아 라는 방법인데요, 길게 9초이상 뿌~~웅 하면서 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적을 혼란하게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두번째가 쉐바림 이라는 것인데요, 이것은 부웅 부웅 부웅 이렇게 세번을 울려서 불게 됩니다. 이것은 슬픔과 통곡, 회개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테루아 이것은 조금전에 설명했던 것처럼 빠 빠 빠 빠 빠 빠 이렇게 9번을 급하게 반복을 합니다. 이것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상징을 합니다. 그리고 속히 회개하라는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테키아 기돌라 라는 방법이 있는데요, 이것은 길게 숨을 끝까지 뿌~~~~ 하고 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셨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주의 재림을 상징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나팔을 불 때는 여러 가지 신호를 정해서 나팔을 불게 되면 백성들이 그 신호를 따라서 백성들을 모으고, 행진하기도 하고, 전쟁에 나가기도 하고, 또 절기를 지키면서 회개하기도 하고 또 하나님을 찬송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팔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하는 도구 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지금도 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나팔을 불멸서 절기를 지키고 또 기도하기도 하고 찬송을 하기도 합니다. 이 나팔 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감동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양 성경에는 이 땅에 마지막 종말이 되었을 때 주님이 이 땅을 심판하러 오실 때, 또 자기 백성들을 모으기 위해 이 나팔을 불게 된다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보시면 장차 될 일을 보여 줄 때 일곱인을 떼면 일곱 나팔이 나오게 되고요, 이 나팔을 불게 될 때 앞으로 되어 질 일들을 보여 주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나팔을 불려지게 될 때 주님이 이 땅을 심판하시고, 또 자기 백성들을 모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고린도전서 15:51-52절 말씀에 보시면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이 마지막 나팔이 중요합니다. 일곱째 천사가 마지막 나팔을 불게 될 때 주님이 이 땅을 심판하시고, 자기 백성들을 불러 모으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 나팔은 인류의 심판과 구원받은 백성들을 모은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찬송을 부를 때도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부를 때 잔치 참여하겠네”이렇게 찬송을 하는 이유는 구약에 나오는 이 나팔의 이미지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나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움직이고 행진하게 되는 것처럼 오늘 우리는 이 하나님의 말씀의 소리를 듣고 움직이고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우리가 이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님의 신호에 따라 믿음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영적인 모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광야의 첫 출발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10:11절 말씀에 보시면
“둘째 해 둘째 달 스무 날에 구름이 증거의 상막에서 떠오르매”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 도착 해서 성막을 만들고 난 뒤에 이제 처음으로 구름을 떠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향해 처음으로 행진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 때 제사장들이요 법궤를 메고 앞장서 나가고,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동쪽에 있는 “유다를 선두로 잇사갈, 스블론이” 장막을 거두고 출발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레위인들이 성막을 거두게 됩니다. “게르손과 므라리자손들이” 그 장막과 널판지와 기둥들을 챙겨 가지고 그 뒤를 따라 가게 됩니다.
그리고 남쪽에 있는 “르우벤, 시므온, 갓지파지파”가 따라가고 그리고 제일 중앙에 성소에 있는 기구들을 어깨에 맨 “고핫자손들”이 중앙에 따라가고 그 다음에 서쪽에 있는 “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지파가 따라가고 제일 마지막에 북쪽에 있는 “단, 아셀, 납달리지파”가 차례대로 깃발을 들고 행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모습은 장관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구름이 멈추게 되면 이 성막이 가운데 세워지고 그 주위로 12지파가 차례대로 장막을 치게 되는 것입니 다.
여러분 이런 질서 정연한 모습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이고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공동체 내에서는 가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순종함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가고, 또 각 지파는 성막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이루고 때로는 행진하고, 때로는 진을 치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런 백성들의 모습을 볼 때 가나안 땅의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여리고 성에 있던 기생이었던 라합의 말을 들어 보면 가나안 땅의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문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잃었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백 만명이 이렇게 광야를 줄서서 다니면서 아무도 죽지 않고 전쟁을 하면 하나님께서 도우심으로 이기게 될 때 이 사람들이 두려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교회가 사실 이런 모습을 배워야 하는 겁니다.
가정과 교회에서는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의 법을 배우고, 실천함으로 반듯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고요 또 교회를 중심으로 성도들이 서로 협력하고 하나되는 모습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누리지 못하는 복을 누리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이런 말씀에 대한 지식과 신앙이 없으면, 교회 오는 것이 부담이고, 교회에서 예배 드리고 성도로 섬기는 것이 고통이 된다면 누가 교회 오려고 하겠습니까? 교회에서 서로 시기 하고 질투하고 세상 사람들처럼 서로 왕따 시키고 다투고 싸운다면 사람들은 교회 오지 않을 것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하고 하나되어서 아름다운 모습으로 교회를 섬길 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이 가정과 교회를 섬길 때 이런 능력을 체험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29절 말씀에 보시면, 두 번째로 모세의 불신자들에 대한 초청이 있습니다.
가나안 땅으로 가는 여정에 “미디안 사람들을 초청을”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것이 성도가 해야 할 전도요. 선교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29절 말씀에 보시면
“모세가 모세의 장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주마 하신 곳으로 우리가 행진 하나니 우리와 동행하자 그리하면 선대하리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내리리라 하셨느니라” 라고 초청을 합니다.
“우리와 동행하자”여러분 이 가나안 땅은 이 땅에서는 하나님의 기업, 복을 의미하고, 영적으로는 천국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모세가 우리가 가야 할 천국의 여정에 미디안 사람들을 초청한 것입니다. 여러분 “함께 갑시다. 아버지 집에”이런 복음송이 있지않습니까! “우리 천국 가는데 같이 갑시다”모세의 전도입니다.
그런데 30절 말씀에 보시면, 호밥이 거절을 합니다.
“호밥이 그에게 이르되 나는 가지 아니하고 내 고향 내 친족에게로 가리라” 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런데 이 모세는 한번 더 초청을 합니다.
여러분 31-32절까지 말씀에 보시면
“모세가 이르되 청하건데 우리를 떠나지 마소서 당신은 우리가 광야에서 어떻게 진 칠지를 아나니 우리의 눈이 되리이다 / 우리와 동행하면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는 대로 우리도 당신에게 행하리이다”라고 초청을 합니다.
여러분 이것은 모세의 칭찬이기도 합니다. “당신들은 우리의 눈이 될 사람들입니다. 광야의 길을 잘 안내 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좋은 점을 칭찬하고 도움을 받게 될 때 그 사람의 마음을 우리가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호밥이 같이 갔는지 안 갔는지 답이 기록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주석가들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반대하지 않았다라고 해석을 하기도 하고요, 아니다! 함께 가지 않았을 것이라!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성경을 살펴보시면 이 미디안 사람들이 함께 동행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사사기 1:16절 말씀에 보시면
“모세의 장인은 겐 사람이라 그의 자손이 유다 자손과 함께 종려나무 성읍에서 올라가서 아랏 남방의 유다 황무지에 이르러 그 백성 중에 거주하니라”라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사무엘상 16:5절 말씀에도 보시면
“사울이 겐 사람에게 이르되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 가라 그들과 함께 너희를 멸하게 될까 하노라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그들을 선대하였느니라 이에 겐 사람이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니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이 하나님께서 아말렉 족속을 미워해서 심판을 하실 때 특별히 미디안 족속을 피하게 하시는 것을 보면, 이 미디안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 속에 살다 보면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선입견을 가지고 대할 때가 많습니다. 저 사람들은 예수를 믿지 않으니까? 우리하고 다른 사람들이야! 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보실 때 우리와 똑 같은 구원받을 사람들입니다.
다만 우리와 생각이 조금 다를 뿐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모세처럼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합께 갑시다”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함께 이 복을 받고, 함께 천국에 갑시다. 기회가 있을 때 이렇게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도 이 모세처럼 삶의 모습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 복음을 전하시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복을 나눠 줄 수 있는 축복의 통로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는 모세
그리고 마지막으로 35-36절까지 말씀에 보시면 모세의 기도가 나옵니다.
성막이 떠날 때와 성막이 머무를 때 하는 기도입니다.
여러분 35-36절까지 말씀을 보시면
“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말하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주 앞에서 도망하게 사소서 하였고 / 궤가 쉴 때에는 말하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종족들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 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이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를 인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궤”입니다.
여러분 이 언약궤는 말 그대로 언약의 말씀이 들어 있는 궤짝 입니다. 하나님과 언약한 백성이라는 표가 바로 이 언약궤입니다.
그래서 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발 할 때와 도착했을 때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이 기도로 “선포를”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선포한다는 것은 “알린다”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게 기도의 원리입니다. 여러분 한번 잘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언약 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과 지금 함께 하시는 겁니다. 그 증거로 언약궤가 앞서 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지금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것을 알리려고 백성들에게 선포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함께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까? 잘 생각해 보시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기도를 할 때 하나님께 함께 해주세요. 하나님 도와 주세요. 들어주세요. 좀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기 때문에 함께 해달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기도는 이방인들이 하는 기도입니다.
여러분 성도는 하나님과 언약을 했고, 또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대적을 흩으시고 그래서 세상을 이긴다! 라고 선포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궤가 출발할 때 대적들을 흩으시고, 궤가 쉴 때 백성들에게 돌아오소서 이렇게 모세가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지금 지키고 있기 때문에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나가고 기도하면 돌아오시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워 주시고,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이렇게 기도로 티를 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도와 주시고, 내가 기도 안 하면 하나님께서 안 도와 주시는가? 이렇게 생각 하시면 안 되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과 언약한 백성이기에 늘 지켜 주십니다. 밤낮으로 지키시고,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지키십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아침에도 기도하고, 저녁에도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는 것을 내가 확인을 하고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기도를 길게 하든 짧게 하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기도를 깊이 하든, 살짝 하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 있기 때문에 기도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삶을 살아갈 때 하루라는 시간을 시작할 때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워 주시기를 기도하고, 하루를 마쳤을 때 하나님께서 지켜 주셨으니 안식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냥 엎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이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또 하루 하루 삶을 살아 갈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또 장막으로 돌아와 쉴 때 하나님의 보호를 구함으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한다는 것을 확인하시고, 드러내며, 자랑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이 신앙의 삶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민수기 10장에는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로의 첫 출발의 모습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나팔 소리와 함께 하나님과 동행하고, 또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또 기도하면서 행진하게 될 때 세상 사람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이런 승리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우리가 이 하나님과 언약한 백성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고, 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표를 내면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이런 영적인 삶의 모습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기도문
합십기도
1. 오늘도 성도로서 세상 속에서 승리하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2. 나라와 민족과 교회와 가정을 위해 기도하고
3. 개인의 기도제목을 위해 기도하고 하루 삶을 또 시작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