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은 요나
요나서 4:1-11(구p.1289) 찬송 288장 / 찬송 218장 20230621
오늘도 요나서 4장에 기록된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이 요나서 4장 말씀에는 불순종하고 고집을 부리던 이 요나 선지자가 드디어 하나님의 그 깊은 심정을 이해하고 깨닫게 되는 장면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요나 선지자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상태를 보여주는 선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요나서 전체를 좀 이해를 해야 됩니다. 그런 면에서 요나서를 좀 정리를 하면,
요나서 1장은 불순종한 선지자, 2장은 회개하는 선지자, 3장은 다시 사명을 감당하는 선지자 그리고 오늘 이 요나서 4장 말씀에는 깨달은 선지자, 고집을 부리던 요나 선지자가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되는 내용을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요나 선지자는 하나님의 일꾼이지만 자기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처음 하나님께서 요나 선지자를 니느웨로 가라 하실 때도, 이방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싫어서 다시스로 도망을 갔고, 또 물고기 뱃속에서 고통 중에 회개하고 다시 순종은 했지만 제대로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억지로 마지 못해 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사명을 다했으니 돌아오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갑자기 이 니느웨 사람들의 회개하는 모습을 보시고, 재앙을 내리지 않겠다는 겁니다.
이때 요나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분을 참지 못합니다.
아니 하기 싫은 사람 억지로 불러서 40일 뒤에 심판하겠다고 말씀을 전했으면, 그 말씀대로 심판을 해야지!
갑자기 용서해버리고, 재앙을 내리지 않으면, 그러면 나는 뭐가 되냐는 겁니다.
기껏 40일이 지나면 망한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이 선지자의 체면이 뭐가 됩니까?
이 요나는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에 화가 난 것입니다.
여러분 이 요나는 선지자였지만, 죄인들이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이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그 애타는 심정을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요나서를 통해서 이런 영적인 모습을 잘 보셔야 합니다.
그래서 이 때부터 요나는 불평을 하면서 하나님을 원망 하기 시작합니다.
참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선지자가 하나님한테 삐진 겁니다.
여러분 이 때까지 선지자들 중에서 하나님께 삐진 선지자를 보셨습니까?
아! 하박국 같은 선지자가 있었는데요, 이 하박국은 하나님께 삐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정당한 호소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요나는 그 결이 좀 다릅니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안된다고 하나님께 삐진 겁니다.
그래서 오늘 요나서 4장 말씀에는 이 요나 선지자의 불평과 원망으로 시작을 합니다.
여러분 요나서 4:1절 말씀에 보시면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이 났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왜 요나가 싫어하고 성을 났느냐?
하기 싫다는 사람 억지로 불러서 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는 겁니다.
“40일이 지나면 이성이 무너지게 될 것이라!” 그러면 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 죄인들을 심판을 해야지! 왜 그들의 죄를 용서하고, 재앙을 내리지 않는냐? 는 겁니다.
이 요나 선지나는 이방인들이 회개를 했다고 해도, 그 회개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을 때 말씀대로 회개하면 말씀대로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것이 이 하나님 나라의 법입니다.
그런데 요나는 그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해당되는 것이지, 이방인들에게는 해당이 안된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이 이방인들은 회개해도 이방인들이기 때문에 심판을 하든지, 말씀대로 재앙을 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요나 선지자는 자기 중심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유대인의 선민사상에 젖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만 구원이 있고, 이방 사람들은 다 죄인이고, 다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마음이 요나 뿐만 아니라 당시에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자칫 잘못하면, 오늘 우리도 똑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끼리만 잘 지내고, 우리 가족들만 잘 되면 됐지!
불신자들이야 내가 알게 뭐야! 이게 신앙이 아닙니다. 이건 이기적인 마음 입니다.
교회만 잘 되고 복 받으면 됐지!, 세상 사람들은 어짜피 다 심판을 받을 거야! 라고 생각을 한다면 사실 우리가 요나와 똑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2절 말씀에 보시면, 이 요나는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말씀으로 시비를 겁니다)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여기 보시면, 이 요나 선지자는 하나님께 지금 비꼬아서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나는 처음부터 이 이방인들이 구원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내가 그럴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애가 많은 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다시스로 도망간 겁니다! 하면서 하나님께 불평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아예 대듭니다.
“차라리 나를 죽이십시요”
여러분 3절 말씀에 보시면, 요나가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자기의 원하는 것이 이루어 지지 않았다고 생명을 거두어 가라는 겁니다.
우리 말로 하면, 땡깡을 부리는 것입니다. 살기 싫다는 겁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고집을 부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애들이 자기 욕심대로 안될 때 엄마한테 투정을 부릴 때,
“나 안 해, 나 밥 안 먹어, 나 죽을꺼야!”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들이 이런 말을 할 때 그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화를 내고 때리기도 하지만, 정말 이 아이를 이해하는 부모는 이 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4절 말씀에 보시면, 이 하나님께서 요나가 알아 들을 수 있도록 설명을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왜 화를 내느냐? 네가 성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느냐?” 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아니 내가 죄인들을 법대로 용서를 하는데, 그런데 네가 왜 화를 내느냐? 그게 화를 낼 일이냐? 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나는 그래도 자기가 옳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가 옳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언덕에 올라가 초막을 짓고요, 40일동안 기다리겠다! 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분명히“40일이 있으면 이 성이 망한다고 말씀하셨으니까” 내가 망하는 것을 보리라! 하면서 초막을 지어 놓고 지켜 보겠다! 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말씀대로 심판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또 이 사람들은 이방인들이고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니까! 회개해도 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의 마음을 해아리지 못하는 자녀들이 고집을 부리는 것처럼, 이 선지자라도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게 되면,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겁니다.
자기 생각대로, 자기 뜻대로 해보겠다고 땡깡을 부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때 하나님께서는 말로 해도 안되니까? 자연을 통해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하시려고, 박 넝쿨과 벌레를 준비하시고 또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셔서 일하시게 됩니다.
때로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고집을 부리고 욕심대로 살아갈 때 이런 자연을 통해, 환경을 통해,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 마음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 일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 5절 말씀에 보시면, 요나가 동쪽 성읍에 앉아 초막을 짓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박 넝쿨을 빠르게 자라게 하셔서 그늘을 만들어서 시원하게 하십니다.
그때 요나가 기뻐했다! 아이구 편안하다! 아마 그랬을 겁니다.
여러분 실제로 중동지방에 가보면 햇빛이 굉장히 뜨겁습니다.
그런데 건조한 기후이기 때문에 온도가 40도가 넘어가도 그늘만 있고, 부채질만 할 수 있으면 시원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 요나도 동쪽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 때문에 더워할 때,
하나님께서 박 넝쿨로 그늘을 만들 주셔서 이 요나의 마음을 기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에는 하나님께서 벌레를 또 준비하셔서, 박 넝쿨을 싹 갉아 먹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해가 뜰 때 더 뜨거운 동풍을 보내어서 이 요나의 머리를 뜨겁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때 요나 선지자가 또 불평을 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8절 말씀에 보시면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하고 투덜투덜 거립니다.
여러분 이게 바로 요나의 마음입니다.
요나는 불평하는 게 버릇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의 분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래서“스스로 죽기를 구하면서 에이!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낫겠네!”하면서 불평을 하는 겁니다.
여러분 생명을 주신 분한데 그렇게 말한다는 것은 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기껏 사명 감당하면서 기쁨을 누리라고 생명 주시고, 사명을 주셨는데, 마음대로 안 된다고! 사명을 버리고, 생명을 버려 버리면, 하나님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그때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시고, 이 요나의 좁은 마음을 지적 하시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요나서 4:9-11절까지 말씀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이 말씀을 듣고, 요나가 충격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 9절 말씀에 보시면,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긍휼히여기다, 불쌍히 여기다, 용서하다) /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 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이 요나 선지자는 지금 하나님의 마음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내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또 내 머리를 시원하게 하는 이 박 넝쿨이 말라 죽었다고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자기가 심은 것도 아니고, 자기가 물을 주거나 수고한 것도 아닌데 이 박넝쿨이 없어졌다고 화가 난 것입니다.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죽는 이 박 넝쿨을 소중히 여기고 귀하게 여길 줄 알면서, 니느웨 성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은 왜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12만명이나 있다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여기 좌우를 분별하지 못한다는 말은 오른쪽 왼쪽을 분별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라고 보시는 분도 있고, 선악을 알지 못하는 이런 미련한 사람이라고 해석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어쨋든 12만명의 생명이 여기 있다는 것입니다. 또 많은 가축들의 생명이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고 있는데, 그 생명들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왜 합당하지 않는 것이냐? 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너는 이 박넝쿨의 생명을 불쌍히 여긴다면, 이 박넝쿨보다 더 귀한 이 생명을 아끼는 것이 왜 합당치 않다고 생각하느냐?
그리고 아마 제가 짐작컨데 여기에 생략이 되어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니느웨 백성들, 이 이방인들을 아끼는 하나님이시라면,
내 백성이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한다면 왜 내가 더 아끼고 더 사랑하지 않겠느냐?
내 백성을 하나님께서 더 사랑하고, 이 삐딱한 요나 선지자도 이 니느웨 사람들 보다 더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내 백성이 회개한다면 더 사랑할 것이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나처럼 자기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 지지 않는다고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낫다고 하면서 자기 생명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그런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은혜를 베풀어 주겠느냐? 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당시 예후의 아들들이 악을 행하면서도 아무도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회개하지도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앞으로 요나서 다음에 우리가 아모스서 말씀을 나누게 될텐데요, 이 아모스서를 잃어 보면, 당시 여로보암 2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악한 삶을 살았는지를 잘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예후의 아들들에게 다시 한번 부를 주고, 기회를 주었는데,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부와 권력을 가지고 선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악을 행하게 됩니다.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의 것을 탐을 내어서 머리의 티끌까지 탐을 내고,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고 심지어 사람들 돈을 주고 팔아 먹습니다. 그것도 신발 한 켤레 값을 받고 팔아 먹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꾼, 이 하나님의 일꾼 나실인들에게 술을 먹게 하고, 의인들을 멸시하고 그 죄를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 이 요나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지금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한 심령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생명의 주인이 되시기 때문에 모든 생명들을 아끼고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요나 선지자는 이 하나님의 사랑과 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이 요나서를 기록한 것입니다.
그리고 차마 이 요나는 부끄러워서 마지막 말을 쓰지도 못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스스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요나서 4장 말씀에는 요나 선지자의 이기적이고 좁은 마음과 이 하나님의 넓고 큰 사랑의 마음을 대조해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요나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기록한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 요나 선지자가 같이 좁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살기보다는 하나님의 넓은 마음을 깨달아서 서로 섬기고 사랑하며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나만 잘 되고, 내 가정만 잘되고, 내 자식만 잘되라고 기도하고, 세상이 어려워도 나만 잘 되면 됐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것은 세상 사람보다도 못한 신앙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나만 잘 되고, 다른 사람들이 힘들다면 그 사람들이 나를 가만 두겠습니까? 내 것을 다 빼앗아 갈 겁니다. 여러분 내 자식만 잘 되고, 다른 자식들이 다 건달이나 깡패가 되면 내 자식이 그런 세상 속에서 잘 살 수 있겠습니까? 고통을 당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
다 잘살고 다 잘되야! 서로의 도움이 되고, 어디를 가도 평안하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이 하나님의 마음을 마음에 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를 세상의 빛이라, 세상의 소금이라 말씀하실 때 그 빛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세상 속에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냥 소금이 라고 말씀하지 않고, 세상 속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고, 세상이 같이 잘 살 수 있도록 소금 같은 역할을 하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내가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이기적이고 좁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넓은 마음을 가지고 모든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갈 뿐 아니라 나도 살고, 다른 사람들을 살리고, 빛과 같이 소금같이 쓰임 받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이런 영적인 삶의 모습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기도문
합심기도
1. 오늘도 이 세상 속에서 사랑하고 섬기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2. 나라와 민족과 섬기는 교회와 가정을 위해 중보 기도하시고
3. 개인의 기도제목을 따라 기도하고 오늘 하루 삶을 또 시작하겠습니다.